가끔 주중엔 이른새벽, 주말과 휴일이면 시간나는대로 운동삼아 뛰거나 걸어서 다녀오는 서울인근의 사찰이 하나 있다. 운동효과 중 가장 좋다는 빠른 걸음으로 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1시간 30분 정도 걸어서 이곳 사찰에 도착하면 잠시 머물다가 다시 뛰거나 걸어서 돌아오곤 한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조용한 공간이 잠시 머리를 식히기에도 좋은 곳이어서 꾸준히 운동삼아 다니는 곳이다.

 

 

 


운동을 하면서 반환점으로 생각하는 이곳에 머무는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 특별한 습관은 이곳 연못가에 놓여있는 커피자판기에서 꼭 커피 한잔을 빼서 마신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마시는 300원의 자판기 커피는 어느 자판기 커피보다 그 맛이 살아있다.


아무래도 운동 중에 마시는 커피 맛이라 평소 때 마시는 커피 맛보다는 그 맛이 진할 수 밖에 없다. 땀 흘린 후 커피를 마셔 본 사람이라면 동감할 느낌이다. 게다가 이곳 자판기에 사용되는 물은 이곳에서 나는 약수물이니 그 맛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자판기가 내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 다른 것에 있다. 가끔 커피를 빼 마시다가 발견하는 동전반환구내에 있는 100원짜리 동전들이다. 누군가가 1000원짜리 지폐로 커피를 빼마시다가 그 잔돈을 남겨 둔 것이다.

 

 

 

 

1000원짜리 지폐를 넣고 남은 700원(500원 1개/100원 2개)과 누군가 남겨놓은 400원

 

 

 

가끔 남겨지는 동전들은 많게는 700원에서 적게는 400원까지다. 1000원짜리 지페를 넣고 300원짜리 커피나 율무차 한 잔이나 두 잔 값을 지불하고 남겨진 금액인 셈이다. 처음에는 사찰을 다녀가는 불자나 등산객들이 잔돈이 남은 것을 모르고 그냥 놓고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몇 차례 이같은 똑같은 상황을 접하고는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평소에도 자판기 커피를 자주 마셔 본 경험상으로 볼 때 이렇게 자주 동전이 남겨진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동네 근린공원에 있는 자판기나 체육센터에 있는 자판기를 주로 이용해 본 경험으로 볼때 이렇듯 작은 횡재(?)를 자주 겪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이같은 작은 궁금증은 작년 가을무렵에야 비로서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도 변함없이 운동삼아 다녀 온 길에 들른 커피자판기 앞에서 한 중년부부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된 것이다. 불자들로 보이는 이 부부들은 커피값으로 남은 잔돈의 존재를 알면서도 일부러 그냥 놔두고 가는 것이었다.


사찰 앞에 놓여있는 자판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보시(布施)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대상은 사찰을 오고가는 불자일수도 있고, 등산객일수도 있으며 내 경우처럼 운동을 겸해 다녀가는 일반대중도 되는 셈이었다.


자판기 커피값 300원의 보시(布施)는 비단 이들 중년부부만의 습관은 아닌 듯 싶었다. 운동중에 이곳에서 커피를 빼마시다 가끔 발견하게 되는 100원짜리 동전을 보면 어느 특정한 사람만의 행실은 아니라는 판단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주간 이른새벽에 운동삼아 다녀오던 길에 다시금 발견한 커피자판기 300원의 보시를 생각해 보았다. 보이지 않는 남을 배려하고, 작은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이렇듯 작은 마음씀씀이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느낀다. 300원의 보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동네에서 자주 이용한 커피 자판기들 (위, 근린공원내/아래, 체육센터내)

출처 : 커피값 300원의 보시
글쓴이 : 산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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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1급 뇌병변장애인 장가가는 날

 

▲ 다정히 손 잡고 웃고 있는 신랑과 신부

 

지난 28일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 예식장에서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하게 보이는 결혼식이 열려 이날 참석한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과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이날 결혼식을 한 주인공은 신랑 황인호(24)씨와 동갑내기 신부 엄재선 씨다. 보통 사람들의 결혼식이라면 굳이 기사화될 일이 없겠지만 이 두 사람의 경우에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묻어 있어 이 소식을 기사화 해본다.

 

솔직히 황인호 씨와 엄재선 씨의 이야기를 그 전 이들의 연애시절부터 세상에 알리고 싶었지만 이 두 사람의 결실이 어떻게 될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가 드디어 해피엔딩으로 결실이 맺어져 가볍게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 본다.

 

장애를 너머 하나가 되는 사랑

 

신랑이 된 황씨는 뇌병변1급장애인이다. 걷는 것을 물론 의사표현하기에도 다소 많은 불편함을 갖고 생활하는 장애인. 반면 신부 엄재선 씨는 신체 건강하고 활달한 비장애인이다.

 

이 두 사람은 춘천에 위치한 모 대학에 다니며 만난 커플이었다고 한다. 황 씨는 컴퓨터 전공을 했고 엄 씨는 불어를 전공했으며 신부에 경우 공부를 유독 잘하여 4년제 대학을 3년 만에 조기 졸업할 정도로 학구파다. 신랑 황인호 씨도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에 대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컴퓨터관련 대회에 참가해 입상을 하는 듯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주위 사람들에게 늘 모범이 되었다. 또한 같은 교회를 다니며 이 두 사람은 장애를 넘어 하나가 되는 사랑마저 이루어냈다.

 

감동과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결혼식

 

이번 결혼식은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과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결혼식이었다. 특히 나 같은 장애인들에게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흔히 결혼은 개인과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이 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참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늘 배제 하는 말이었다. ‘왜 결혼을 하는데 가족들을 의식해야하나?’가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친구들 결혼식에 갈 때마다 지켜보면 정말 가족들 없이는 하기 힘든 게 또한 결혼임을 깨달으며 나는 헤어나기 힘든 공허 속으로 빠지고 만다. ‘몸도 불편하고 가족도 거의 없다시피 한 나 같은 사람은 결혼할 꿈도 못 꾸겠다.’ 라는 피해망상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번 황인호 씨의 결혼식을 보며 희망보다는 또 다른 절망감을 느끼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적잖은 감동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날 결혼식을 지켜 본 한 여성 참석자는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 감동적이지만 나 같으면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까지 이런 결혼식을 할 용기는 없다. 하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이번 결혼식이 주는 의미가 얼마나 고차원 적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희비(喜悲)가 교차하는 가족들

 

이날 결혼식을 지켜보며 눈에 띤 것 중 또 하나는 양측 가족들의 표정들이었다. 신랑 측의 가족들은 당연히 밝을 것이고 신부 측 가족의 표정은 아무래도 어두웠다. 식이 모두 끝나고 각 가족별로 사진을 찍는 시간에 신부 측 부모가 자리를 떠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는 한 참석자는 ‘정말 그 부모님들 마음이 이해가 돼서 더욱 슬프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웃고만 있던 신랑 측 부모들의 마음도 과연 편하고 좋기만 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으리란 것을 그날 참석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보답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은 생각과 우려를 남기고 이뤄낸 결혼인 만큼 두 사람은 앞으로 행복하게 사는 게 모든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특히 몸이 불편한 신랑은 본인의 몸 관리를 잘 해서 최소한 아프지 않는 것이 신부를 위함이고 가족들을 위하는 일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번 황인호 씨와 엄재선 씨의 결혼은 장애인들에게는 물론이고 욕심 없이 살려는 비장애인들에게도 세상에는 아직 희망과 사랑이 존재함을 두 눈으로 확인시켜 준 커다란 본보기가 되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 대기실에서  밝게 웃고 있는 황인호 씨.

 

▲ 의젓하고 당찬 모습으로 입장하는 신랑.

 

▲ 마음만큼이나 외모도 예쁜 신부 입장 모습..

 

▲ 교회 지인들과 합창하는 모습.

 

▲ 신랑 신부의 결혼행진...

 

▲ 신랑 가족과 함께...

 

▲ 찾아 준 친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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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후기 =

이 기사를 쓰기 며칠 전부터 몇 명의 지인들과 많은 얘기를 했었다. 그 이유는

‘과연 이런 기사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얘기를 들어 본 결과 다수가 ‘이런 기사는 사람들에게 별 감동 주지 못할 것이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즉,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결혼하는 것이 뭐가 특별하냐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결혼식을 바라본 사람으로서 도저히 그냥 넘어 가기엔 무언가 허전하다는 판단 하에 이렇게 글을 썼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많은 축하가 있었음 하는 바람이다.

 

출처 :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히 보이는 결혼식
글쓴이 : 박준규 원글보기
메모 : .


“이메일도 전화도 안 되는 선이골에서 우리 가족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외딴집’ ‘일곱 식구’ 모두 도시와는 동떨어진 단어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휴대폰은커녕 전기, 전화, TV도 없다. 

요즘 도시 생활을 벗어나 전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들 일곱 식구처럼

문명 생활을 완전히 접고 완전무결의 자연인으로 생활 하는 가족은 흔치 않다.

동식물과 더불어 살아온 지 올해로 7년째.

살듯이 공부하듯이 살아가는 부부와 그들의 다섯 아이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엮어낸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본다.

 


강원도 화천군 선이골의 외딴집 한 채.

전깃불도, 우체부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농사짓고 나물 캐고, 책 읽고,

동식물과 어우러져 살아온 지 7년.

이 여름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고사하고 냉장고도 없으며,

당연히 컴퓨터나 TV, 세탁기, 게임기도 없다. 그럴싸한 옷장이나 책상도 없다.

마을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살면서 자동차나 경운기도 없다.

올해 여덟 살인 막내 원목이부터 열 살 화목, 열한 살 일목, 열두 살 주목, 열다섯 살 선목이까지

아무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용희씨(44)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필요에 넘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단 몇 권의 책과 공책, 연필 한 자루, 두 벌 옷과 한 짝의 신발,

이불 한 채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넘치는 물건들 속에서 아이들이 어찌 검소와 나눔을 배우겠는가?’
이들 가족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해 서울을 떠난 것은

1998년. 대학 강사였던 남편 김명식씨(60)도 직업을 버리고,

약사였던 김용희씨 자신도 약국 문을 닫고

선이골로 들어가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버릴 것 버리고 떠날 것 떠나고 나니 이들에게는 새로운 것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선이골에 온 까닭은
해마다 4월이 오면 우리 가족은 우리가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물었다.

선이골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게 참으로 고마워서 믿어지지 않기도 했고,

우리가 이곳에서 사는 의미를 좀더 깊게 느끼고도 싶었기 때문이다.

1997년 단군 이래 국가 최대 위기라는

IMF 금융 대란이 닥치면서 이웃들이 하나 둘 무너져갔다.

지역 주민을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약국에서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충격으로 쓰러지고 자살하고 가정이 파탄 나는 그 엄청난 병에 다섯 평도 안 되는 약국이,

더구나 줄줄이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약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맏이 선목이는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해 제멋대로였고,

주목이와 일목이, 화목이는 약국으로 나가는 내 발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칭얼댔다.

게다가 점점 배가 불러와 몸도 무거웠다.

바깥일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가족들을 돌보던 남편도 지칠 대로 지쳤다.

너나 할 것 없이 생활이 빠듯하고 바쁘고 지친 서울의 삶.

거기에 하루 24시간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 뿌연 하늘,

피해 의식, 두려움… 남편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

떠나는 것! 그러나 어디로? 우리 부부의 고향인 제주도에 가서 살아볼까도 생각했다.

고향 떠난 지 30년이 넘는 남편, 18년이 된 나, 고향에 가족과 친지가 있었지만

우리의 자리는 이미 뿌리 뽑힌 상태였다.

고향 제주는 우리 마음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 참으로 우연찮게 선이골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남편은 한 번 다여온 뒤 창고 같은 커다란 집만 한 채 있고 전기도 없고 인가도 없고

밭은 숲이나 다름없다고 말해주었고, 나는 “당장 갑시다. 가서 살면서 어떻게 해봅시다”라고 했다.

우리가 사시사철 아름다운 선이골에 와서 살게 된 것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착한 일 한 적 없는데

이런 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엔 우리집이 꼭 난민 수용소 같다고 하는 분도 있지만

너무 비싸게 팔아서 미안하다고, 이곳에서 집 짓고 길 내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서 자기들이 쓰던 모든 살림살이와 심지어 먹던 쌀 한 가마니까지

고스란히 남겨놓고 간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지은 집에

우리가 산다는 게 얼마나 마음 든든했는지 모른다. 

 

 

 

 

 

 

 

 

 

 

 

 

 

 

 

 

 

 

 

선이골의 밤
선이골의 밤은 골짜기에 몰려오는 바람과 떼 지어 파닥이는 솔새들과 함께 온다.

20~30분 안에 완전히 해가 넘어갈 것을 알기에

“자, 어두워지기 전에 청소들 하고 씻고 저녁밥 준비하자”며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모은다.

5남매는 그제야 우루루 몰려와서 집안 청소를 한다.

어느새 방 안은 어둑어둑하고 아이들은 잽싸게 정리하고 쓸고 닦는다.

바람은 마지막으로 기승을 부리며 아이들 등을 물가로 떠민다.

손발 씻는 것도 재빨리 마치고 벌써 방안에 들어와 촛불을 켜고

호랑이 새끼들마냥 서로 뒤엉켜 놀고 있다. 선이골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바람은 떠나갔다.

열 평 남짓한 안방에 일곱 식구가 다 모였다.

하루 동안 사느라 여기저기 어지럽혔던 것들은 대강 정돈이 되었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동쪽과 서쪽 문은 닫혔다.

큰아이 선목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선이골은 고요하면서도 부드러운 어둠에 싸이고, 무쇠로 된 난로에서는

참나무가 타닥타닥 타고, 온 가족이 모인 안방은 따뜻해진다.

벌써 이부자리까지 싹 깔아놓은 우리의 방.

그곳에서 한 시간 이내로 막내 원목이가 잠들 것이고

주목이, 일목이, 화목이 연년생 3형제는 형과 어머니, 아버지를 관객으로 하여

씨름과 닭싸움, 권투, 팔씨름을 하거나 삼중창 혹은 설교를 하면서 한바탕 우리를 웃길 것이다.

8시가 지나면 대부분 잠자리에 들고 선목이는 혼자서 공부를 한다.

9시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온 가족이 잠자리에 들어

난로에서 나무 타는 소리와 간혹 천장 위에서 쥐 한 마리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린다.

먹는 것과 사는 것
선이골의 농사는 우리가 씨 뿌리고 가꾸는 논밭 농사만이 아니라

하늘이 모두에게 베푸는 숲의 양식도 포함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느라

우리는 이맘때면 그동안 산과 숲을 쏘다니며 거둬들인 숲의 양식들을 죽 살펴본다.

두릅, 고사리, 고비, 무릇, 수리취, 동자삼, 참취, 미역취, 개미취, 참나물, 모싯대, 다래순,

키다리, 돼지감자, 달래, 머위대, 갈퀴나물, 망초, 쥐오줌풀, 마, 마타리, 방가지똥, 질경이,

클로버, 쇠뜨기, 짚신나물, 냉이, 칡, 둥굴레, 쑥, 뽕나무 잎, 별꽃, 구릿대, 화살나무 잎….
선이골로 들어온 첫해엔 농사 짓기보다

들로, 숲으로 산나물 캐러 다니고 밤 주우러 다니기에 바빴다.

멧돼지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에 기계 장비 하나 없이 맨손으로 밭을 일굴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첫해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선이골 생활 두 해째는 산나물로 온갖 요리를 해보았다.

지지고 볶고 삶고 무친 채소 반찬들은 밥상이 모자랄 정도로 날마나 풍성했다.

그러다 탐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갖가지 김치와 산야초 차, 장아찌, 효소들을 담았다가

거의 손도 대보지 못한 채 땅에 묻어야 했다. 이런 행위들이 헛수고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아무리 부지런을 떨고 온갖 화려한 양념을 한들 어찌 방금 따다 삶은 옥수수와

풋강낭콩, 오이와 토마토로 차린 여름 오후의 밥상보다 맛날 수 있을까?

다섯 아이의 어미로서 내게 가장 큰 관심은 가족들의 먹거리다.

금방 밥상을 치웠는데 한 시간도 안 돼 “아버지, 맛 좋은 거” 하며

노래 부르는 아이들은 어미의 본능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남편과 아이들이 어떤 몸이 될 것인지, 어떤 삶을 살아낼 것인지, 그것을 좌우하는 것이

내 손에 달려 있음을 어미는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서울에서 약국을 하며 수많은 성인병을 접하면서

‘밥이 보약’이라는 격언의 진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서울에서도 우리의 밥상은 건강식 위주로 차려졌다.

몸에 좋은 것, 오염되지 않은 것…

아무리 비싸도 약값보다는 싸니까 먹는 것에 관한 한 돈을 아끼지 말자는 주의였다.

선이골 다섯 아이의 학교
“참 튼튼하게 생겼다. 너 몇 살이니? 여덟 살? 어느 학교에 다녀?”
화천 사람들과 조금씩 낯이 익어갈 즈음 아이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연한 듯 묻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은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했다.

하늘이 모든 사람에게, 아니 짐승과 풀, 나무에게까지 주신 학교를 우리는 ‘가정’이라고 믿는다.

지상의 모든 몸들은 하늘이 주신 ‘가정’이라는 배움터에서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 되는 ‘품성과 관계’를 배워 나가는 것이라고,

남편과 나는 그 학교를 ‘하늘맞이 배움터’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왔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들의 배움과 학교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 고민이 바람직한 거라고 여겨져 우리 내외는 모르는 척 지켜보았고,

아이들은 선이골에서 배우는 것을 두고 저희들끼리 끊임없이 토론을 벌였다.

존경하는 외할머니가 그러셨듯이 인류의 역사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배우며

살아왔음을 깨달으면서 자기들은 어머니, 아버지를 스승으로 모셔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 되게 하는 삶을 배우는 ‘하늘맞이 배움터’의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알아가는 듯하다.

선이골에서 우리가 하는 교육 중 몇 가지만을 정리해본다.



 

 

 

 

 

 

 

 

 

 

 

 

 

 

 

 

첫째, 그림 그리기.

농사 짓기에 길들여지지 않은 남편과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각자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밖에서 두세 시간 일하다 들어와서도 책상 앞에 앉는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그 모습을 따라 했다. 네다섯 살 된 아이들의 글은 그림이었다.

선물받은 크레파스나 그림물감, 스케치북 같은 그림 도구가 많지만,

오로지 연필 하나로 화천에서 얻어온 이면지에 온갖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의 그림을 통해 나와 남편은 많은 것을 관찰하고 배운다.

특히 아이들의 손가락 힘을 가늠해 글자 공부시킬 시기를 정한다.

아이들의 관심과 관찰력도 살핀다.

연필 하나로 그려내는 사람과 짐승, 풀, 나무, 산과 구름, 해,

심지어 군사놀이의 빛깔, 모양, 표정들을 살핀다.

아이들은 이곳에 친한 사람들이 오면 무조건 그림을 그려달라고 보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고이 간직한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둘째, 수학 공부.

정해진 시간, 정해진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이른바 ‘공부’라 불리는 것 중

맨 처음으로 하는 공부가 수학 공부다.

글자 공부보다 먼저 수를 익힘으로써

추상과 상징의 부호인 글자의 세계로 이끌려는 생각에서다.

냇가나 길에서 주워온 크고 작은 각양 각색의 돌멩이로 숫자 세는 것을 배운다.

돌멩이 하나하나를 차례로 놓으면서 먼저 우리말의 수를 익힌다.

 

충분히 익히면 한자말의 수를 익힌다.
“일, 일하고 일은 이, 이하고 일은 삼….”
이것을 익히면 돌멩이 하나를 10으로, 100으로, 1000으로 삼아 또 숫자를 센다.

이 과정이 끝나면 돌멩이 대신 숫자 카드로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

‘열’은 ‘하나’가 열 개 모인 것이며 모든 수에는 ‘하나’가 숨어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된다.

겨울철엔 일주일에 4~5일, 30~40분씩.

처음 시작할 때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만 보여주고 대부분 자기 혼자서 한 달 정도하게 만든다. 

셋째, 겨레 말, 겨레 글 공부.

하늘이 사람에게 준 최고의 축복 가운데 하나가 말이 아닐까?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말, 말씀!

단 하나뿐인 모국어는 사람의 사고와 성격, 지적 능력, 관계 맺기 등의 토대가 된다.

남편과 나는 평상시 우리가 하는 말에 꽤나 신경을 쓴다.

아이들이 좋은 말 습관을 기르도록 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어린아이 같은 말투나 지나친 농담, 유행어 등도 흘려듣지 않는다.

넷째, 천연계를 통한 학습을 한다.

선이골의 천연계는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요, 동무이며, 삶의 터전이다.

아침저녁으로 빛과 어둠의 세계로 천지가 개벽하는 것부터 시작해

집짐승과 산짐승, 새와 벌레, 풀과 나무, 비와 눈, 우박, 천둥, 홍수, 가뭄이 모두 교과서다.

 


다섯째, 농사 짓기를 통한 공부다.

선이골 생활 3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24절기를 중심으로

한 태양력, 태음력을 정리했는데 우리는 해마다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되풀이해서 그것을 공책에 쓰고 또 외우게 한다.

여섯째, 몸 의학 공부를 한다.

몸은 거룩한 집. 그 ‘집’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한데 어울려 사는 것이다.

서로 잘 어울리면 그만큼 그 집, 그 몸은 너그럽고 건강하고 아름다워진다.

밥상은 그 아름다운 ‘집’을 짓는 가족들이 날마다 벌이는 잔치다.

그래서 먹거리의 성격, 만드는 법 등도 공부한다.

일곱째, 역사 공부를 한다.

부모의 지난 역사에 목말라하는 아이들,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어하는 아이들.

그 이야기는 더 거슬러 올라가 이 겨레의 역사, 인류의 역사, 하늘의 역사로까지 이어진다.

아직은 이 모든 것이 ‘옛 이야기’ 형식으로 전해지지만, 때로 책을 보면서

그것이 재미로 지어낸 옛이야기가 아니라 생생한 삶의 이야기임을 알아간다.

여덟째, 편지 쓰기를 통한 공부다.

우리 글 공부를 위해서, 외딴 산골짜기의 유일한 통신 수단이 편지이기도 해서,

또 보고픔과 그리움 때문에라도 편지 쓰기를 한다.

아이들의 즉자적인 관계 맺기를 조금 더 깊게, 진지하게 이끌기 위해

우리 부부는 때로 편지 쓰는 일에 더욱 정성을 들인다.

일기 쓰기도 그렇지만 편지 쓰기가 주는 온갖 좋은 점을 강조하면서

편지 쓰기에 자기의 능력과 정성과 재치를 쏟아넣을 것을 권한다.

편지 쓰기는 어릴 적부터

여러 어른과 관계를 맺고 다양한 삶과 예절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선목이는 자기 마음을 어찌하지 못할 땐 하루에 열 통도 넘게 편지를 쓴다.

아우들도 따라서 한다.



 

 

 

 

 

 

 

 

 

 

 

 

 

 

 

 

 

 

 

 

 

아홉째, 아침 맞이다.

아침 조례와도 같은, 아침 예배와도 같은 우리의 아침 맞이는

경전 읽기 - 조선의 경전들과 성경 등 - 와 기도, 노래로 이어진다.

예를 배우고 모두 하나 되는 삶을 기원한다.

잠꾸러기 어머니 때문에 때로 아이들이 배고파서 아침 맞이를 건너뛰길 바라기도 하고,

아버지 말씀이 어려워서 딴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남편과 나는 아침 맞이를 아이들의 부드러운 몸에 새기기를 멈추지 않는다.

음악 교육을 매우 중요시 하면서도 따로 음악 시간을 두지 않는

우리에게 날마다 부르는 아침 노래는 그 자체로 음악 공부가 된다. 

열째 바느질도 우리에겐 좋은 공부가 된다.

내가 도무지 손봐주지 않는 터진 옷을 남편은 스스로 바느질하곤 했다.

일목이와 화목이도 아버지를 따라 자기들의 구멍 난 양말을 얼기설기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열한째, 생일 맞이를 좋은 공부의 기회로 삼는다.

말띠 선목이가 이 세상에서 두번째 맞이하는 ‘말’의 해.

그러니까 만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아이들 넷을 데리고 6박 7일간 멀리 나들이를 갔다.

선이골에 선목이와 남편만 남겨두고 아우들이 없는 고요하고 잘 정돈된

선이골에서 혼자 밥 짓고 집안일하면서 ‘사람은 왜 태어났는지,

왜 병이 들고 늙고 죽는지’등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는 기회를 선목이의 생일 선물로 준 것이다.

6박 7일 동안 선목이는 끙끙 씨름을 해봤으나 아무 대답도 얻지 못했다. 

출처 : Mr. K의 숲속에 집짓기
글쓴이 : 心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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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리조트가 있는 덕유산 향로봉 오르는 길. 곤돌라를 이용해 향로봉 인근의 설천봉까지 오르면 정상에서 눈꽃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은 신이 났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심하다. 나이 들어 처음 스키를 배운다는 게 마음 같지 않고, 콘도에 앉아 있자니 좀이 쑤신다. 눈 위를 미끄러지는 것보다 걷는 데 더 자신이 있다면 산에 오르자. 스키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수려한 산악지대에 만들어졌다. 주변이 모두 등산코스이다. 스키장 인근 눈꽃 산행ㆍ트레킹의 명소를 꼽아본다.

# 발왕산 / 강원 평창군

용평스키장을 품고 있는 산이 바로 발왕산이다. 해발 1,458m로 높은 산이지만 산행 출발지인 용평스키장의 해발이 1,000m가 넘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지 않은 산행을 할 수 있다. 특히 적설량이 많아 겨울 눈산행에 그만이다.

정상에서 만나는 주목군락은 발왕산의 자랑거리. 1998∼99시즌에 스키하우스와 정상을 잇는 레인보곤돌라가 개통돼 이를 이용하면 약 20분이면 정상에 닿지만 정상적으로 등산을 한다면 4~6시간이 걸린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강풍이 불기 때문에 겨울 등산 장비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산행 기점은 용평스키장에서 서쪽 골짜기로 1㎞ 가량 들어간 용산2리 마을회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곳이나 일반적으로 사잇골로 오른다. 계곡을 1시간 30분 쯤 오르면 1,025m 고개이다. 이 능선부터 강풍이 부니 요주의. 주능선을 몇 번 오르내리면 1,400m 고지에 작은마당 이다. 하얀 눈꽃이 주목군락을 볼 수 있다. 이어 큰마당,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에 서면 오대산 황병산 등 강원도의 거산들과 동해의 모습에 가슴이 툭 터진다.

# 대관령옛길 / 강원 강릉시

대관령에는 모두 3개의 길이 있다. 새 영동고속도로와 이젠 옛길이 되어버린 옛 고속도로(456번 지방도로), 그리고 찻길이 나기 전에 동서를 연결하던 진짜 옛길이다. 진짜 옛길은 겨울 트레킹 코스로서 큰 인기를 누리는 길이다. 설화가 장관이기 때문이다.

옛날 횡계와 강릉 파발역의 중간지점인 반정(半程)에서 대관령박물관이 자리한 강릉시 어흘리까지 5㎞ 구간이다. 구대관령휴게소에서 옛 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구불구불 1㎞ 정도를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대관령옛길’이라는 비석이 보인다. 이 곳이 반정이다.

트레킹은 반정에서 강릉시 어흘리까지 내려가는 방법과 어흘리에서 올라오는 방법이 있다. 1시간 40분 남짓이면 주파하기 때문에 왕복 트레킹을 시도해도 무리가 없다.

대관령 부근에는 눈꽃 트레킹의 명소가 또 있다. 대관령 북쪽 황병산-오대산으로 이어지는 선자령고갯길이다. 구 대관령휴게소에서 북쪽의 대관사를 거쳐 해발 1,157m의 선자령에 올랐다가 내려온다. 왕복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 덕유산 / 전북 무주군

덕유산(1,614m)에는 10월 말부터 3월 초까지 겨울이 머물다 간다. 산행은 덕유산의 얼굴인 삼공매표소에서 백련사를 거쳐 주봉인 향적봉에 오르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약 9㎞. 오르고 내리는데 6시간 가량 걸린다.

백련사까지의 길은 경사가 거의 없는 평지다. 비파담, 구월담 등 구천동 계곡의 절경이 길 옆으로 펼쳐진다.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 가는 길을 많이 닮았다.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때 백련선사가 숨어살던 곳. 108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고 왼쪽으로 맑은 샘물이 있다.

매표소에서 백련사까지가 워밍업 코스라면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은 무척 힘들다. 약 4㎞에 불과하지만 대단한 인내를 요구한다. 매운 겨울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힘을 줄이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 향적봉 아래 설천봉까지 무주리조트의 곤돌라를 타면 20분 산행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그래서 향적봉에서는 뾰족구두를 신은 아가씨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덕유산국립공원관리소 (063)322-3174.

# 태백산 / 강원 태백시

민족의 영산이다. 그래서 신년이면 해맞이 인파로 가득 찬다. 주봉인 장군봉은 1,567m. 그 옆으로 문수봉(1,517m)이 이어져 있다. 고도는 높지만 해발 800여m에서 산행을 시작하는데다 험하지 않아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겨울이면 정상 부근의 주목 군락이 흰 눈을 이고 있다.

태백산에 오르는 코스는 크게 3 가지. 유일사 코스, 백단사 코스, 당골 코스 등이다. 유일사로 올라 정상과 문수봉을 둘러보고 당골광장으로 내려오는 길이 일반적이다. 약 11㎞, 5~6시간이면 족하다. 정선 카지노가 있는 고한에서 만항재를 넘으면 바로 태백산 봉우리가 보인다. 태백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 (033)550-2741.


출처 : 연인처럼 마주보며 눈길 따라서...눈꽃산행
글쓴이 : facezz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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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떡드세요....
글쓴이 : 천사의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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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아니라 예술입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음식을 보기 좋게 또 몸에 좋은 궁합을 맞춰 정성을 다해 만드셨으니

한국인의 정서와 혼이 깃들어 있는 우리 음식을 전 세계인들이 찬사를 보내는 이유가

아닐까요^^

 

- 봄내지기-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집 앞 강둑산책로 벗나무 위에 개개비(?)가 호기심에 가득찬 눈빛으로 무언가 바라보고 있다 ^^



               *경운기 할아버지*

 

따스한 봄햇살이 가득한 4월의 아침이 열리면 수면 위에 피어오르는 뽀얀 물안개가 나를 반긴다.

일터에 나와 일과 준비를 마친 후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컴텨 앞에 앉아 글을 읽으며 음악을 듣고 있는데

"똑 똑 똑 "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내다보니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문밖에서 머뭇거리며 무언가 말씀을 할 듯 서성이신다.


" 할아버지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
창문을 열고 내가 먼저 말을 건네자 할아버지는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 여기서 경운기도 손 봐주는지...? "
말꼬리를 흐려 어렵사리 말을 꺼내신다.


"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할아버지...경운기 어디 있어요? "

" 저 큰길가에 세워놓고 와서 내 가서 몰고 와야하우 " 하시며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 하시는 할아버지...


사연인즉...도시 주변에 농기계 수리하는 곳이 없어 (이곳에서 조금 외곽에 떨어진 마을에 살고 계셨다)

 몇몇 카센타에 들려 이야기를 하자 모두 모른다며 얼른 경운기를 다른 곳으로 빼라고 문전박대를 했단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주눅이 들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어려워 하시며 경운기를 길가에 세워놓고

조심스레 걸어오셔서 어렵사리 물어보시는 길이었다.

  

" 내 가서 경운기를 몰고 오리다...좀 봐 주..." 하시며 경운기가 있는 곳으로 가신다.

잠시후 퉁퉁 거리며 (ㅎㅎㅎ) 일터 마당에 정겨운 경운기가 들어와 멈추었다. 

사실 전날 맡겨놓은 자동차들이 마무리가 덜 되고 새로 맡긴 차들로 그리 여유있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업소는 승용차만 전문으로 취급하기에 업소 이미지와도 관련이 있어 화물차도 잘 안 받는

특수성이 있었기에 다소 난감했다. 그렇다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예컨데...

트럭이나 찝차 승합차 등 다양한 차종을 받으면 일반적으로 전문업소 기능이 떨어지는 선입견을 받게 되어

우리 업소는 승용차만 취급을 한다. 그런데 일터의 마당에 경운기가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하니 먼저 업소의

이미지가 그림처럼 떠올려진다.

그래도 어쪄랴...할아버지의 모습이 넘 안쓰러워 잠시만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경운기의 문제점은 시동키를 돌려도 시동이 안 된다.

농기계 전문은 아니지만 마이스터의 노하우를 살려 간단한 회로테스트를 해보니 시동스위치로 들어오는 전원

공급회로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10분만에 해결하여 시동키를 돌려 경쾌하게 경운기 시동을 걸어주자 할아버지는

안도와 기쁨의 표정을 감추지 못하신다.

그동안 시동키로 엔진 시동이 안 돼 노약한 할아버지의 힘으로 시동을 걸기에 얼마나 힘에 부치셨을까?

 

" 할아버지 잘 고쳐졌어요 그냥 가져가셔서 잘 타세요 "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맡긴 자동차를 다시 손보기 시작하는데 마당 저편에서 할아버지는 길을 떠날 줄 모르고

주춤주춤 내곁으로 다가오신다 나는 다시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 왜 할아버지 다른 문제라도 있으세요? "
" 그게 아니고...내 그냥 가기가 미안해서... "  

하시며 웃저고리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권 한 장을 꺼내어 내게 떨리는 손으로 내미신다.

울퉁불퉁 굵어진 손마디에 허름한 옷차림새,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하며,

순간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간다.

몇몇 카센타를 다니시며 문전박대를 받으셨다니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셨으면 저렇게 길을 못 떠나실까?

코끝이 찡함을 느끼며 다시 웃움띤 얼굴로 맞이했다.


" 할아버지...경운기는 고치는데 부품이 안 들어서 그냥 맘편히 가셔도 괜찮아요..어여 빨리 가세요 "

그래도 한사코 받으라고 하시는 할아버지의 끈질김 때문에...
" 그럼 오늘 할아버지 주신 돈으로 짜장면 사먹게 3천 원만 주세요 " 하자 그럼 5천 원만 받으란다.  

 결국 주유소에서 잔돈을 바꿔 5천 원을 내게 주신다.
" 할아버지 또 경운기 문제가 있으면 이리로 오세여~ "
" 그려~ 정말 나같은 늙은이를 생각해줘 고맙수... "

 

퉁퉁거리며 떠나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내 두 눈에는 또 다시 눈물이 흐른다.

이궁~ 저 하늘에 계신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랑 무엇이 다르랴...ㅠㅠ

 

농촌인구의 노령화로 다 큰 자식들 밖으로 내보내고 아직도 힘에 부친 농기계를 다루고 계신 할아버지.

평균 수명을 바라보는 연세임에도 당신의 천직이요 업(應報)으로 생각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는다.

 

    2004년 4월 중순경 어느 따스한 봄날
                ***봄내지기***

이 글은 당시 써놓았다가 감정 조절이 안 되어...
묻어 두었다 다시 꺼내어 읽어보다 올립니다.
오늘 고향에 계신 부모님게 안부전화라도 꼭 드려보심이...^^

출처 : 경운기 할아버지 ^^
글쓴이 : 스타카센타 원글보기
메모 :

이 글은 울업소 홈피에서 발췌하여 옮겨온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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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에 있는 한 식물원에서 핀 높이 2.94m 타이탄 아룸.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이 불과 48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번에 핀 이 꽃이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이라고 합니다.

출처 : 시체꽃(corpse flower)
글쓴이 : 설탕소년 원글보기
메모 :

 

 

저도 외국생할할 때 언뜻 본 느낌도 드는데... 참 진귀한 식물이 세계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군요^^

 

 - 봄내지기-

타이어의 외관은 홈이 패어있는 간단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에 비해 많은 기능을 갖고 있다.
자동차의 하중을 지탱하는 기능을 기본으로 구동력과 제동력을 노면에 전달하는 기능, 노면으로부터 충격을 완화하는 기능, 자동차의 진행방향을 변환하거나 유지하는 기능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4 가지의 기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동그란 타이어 안에는 자동차의 진정한 과학이 숨어있다.










출처 : 부산 불꽂 축제~~~
글쓴이 : 은하수 원글보기
메모 :

 

 

잘 아는 지인께서 불꽃축제 때 어머니 모시고 놀러오라 햇는데...기회가 되려나... ^^

 

밤하늘에 솟아 하늘을 수놓는 불꽃은 정말 장관이죠 ^^

 

        -봄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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