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님, 감사합니다.김점선 화가의 작품 잘 보았습니다.오늘 하루 복권이 당첨된 기분이네요.그러나, 재능있는 분을 잃어서 슬픕니다.피아노 선율과 함께 그 분의 그림을 보면서그 분을 생각해 봅니다.김 점선 화가님, 하늘에서구름 사이를 힘차게 걸으세요.
2009.04.08 (14:28:07
이서종
리처드님
화가 김점선님의 순수와 정열을 사랑합니다.
우리 고유의 민화를 보는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아이들이 낙서를 한것 같기도한 그의
작품의 원색의 강렬함에 이끌립니다.
그림을 보면서 유키 구라모토의 잔잔한
피아노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2009.04.19 (13:47:38)
리처드
임님, 이목자님
두분께서 마음에 드셨다니 기쁩니다.
화가 김점선님은 윤복순님의 글을 대하고
비로소 그분의 작품을 찾아 재조명 해 보았습니다.
동화속의 그림을 그린 색채의 화가 샤갈을
연상하면서 님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샬롬!
2009.07.23 (23:47:29)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네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복순님의 글을 읽고
어인 까닭인지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화가 김점선.. 자료를 찾아보겠습니다.
2009.03.28 (13:20:07)
*
화가 김점선
윤복순 2009.06.16 01:47:08 | 조회 : 963
"나는 내 머릿속을 다스리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머릿속이 편안하면 아무리 좁은 공간에 박혀서 지내도
우주를 다 가진듯이 자유로울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물리적인 공간을 갈망하는 것은
미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협소 공포증은 상상력의 부족 즉 두뇌의 힘이 부족한 사람이
걸리는 정신병이라고 행각했다
철학 책을 읽는 것은 머리의 힘을 기르는 데
아주 좋은 두뇌체조라고 생각했다
철학 책뿐만 아니라 독서는 인간이 발명한 행동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생활 방식이라고 행각했다
책을 쓸 때 인간은 최선의 상태에 있는 자신을 불특정
다수의 인간에게 전달하려는 의지에 불탄다
이것이 최선의 인류애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는 자들은 이미 천 년 전에 죽은 다른 민족의 조상에게서까지
은총을 받아 들이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비록 인류문명의 오지에서 태어난 약소국 국민이지만
머리속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몸은 무대에 서 있지 못하지만 머리만은
지구의 중심에서 숨 쉰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면서 지독한 독서가로도 유명한 김점선
얼마전에 세상을 떠나 아쉬움이 크다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가도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구도자의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학창시절은 많은 책을 섭렵했고 고전 음악에 심취했으며
두뇌를 회전하는 힘을 기르고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그이 심안이 이렇듯 아름다운 그림들을 남기고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의 저서 점선뎐을 읽는 동안 온몸에 소름이 돋듯
정신이 오롯이 솟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끼게도 한다
삶이란 때로
광기를 부려보며 이 세상에 살다 간다는 몸부림 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열정도 느껴 본다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치열하게 살다간 김점선
그분의 삶 또한 참 예술인의 혼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삶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 선지자 적인
자세가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다
한동안 행복한 책읽기에 빠져 지내게 해 주신
공주대학교 중앙도서관 심인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심인선
벌써 읽으셨네요.(^^)
눈에 무리가지 않게 천천히 천천히 읽으셔요.
윤복순님도 역시 즐기는 독서가!
... 감사합니다.
화가 김점선님, 김수환 추기경님 그립습니다.
이해인 수녀님, 법정 스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PS
윤복순님!
그 때 말씀하신 책이 이문구님의 『관촌수필』아닌가요?
저자의 자전소설인가 봅니다.
'북에는 홍명희, 남에는 이문구' 라는 찬사를
듣게한 아름다운 문체라고 합니다.
2009.06.17 (17:16:38)
리처드
윤복순님,
[화가 김점선님]이라고 두번째 올리신 글에 잠시 머물어
님의 마음 텃밭에 왔습니다.
밑줄 그으며 강한 메시지를 주는 말들에 혹합니다.
머릿속이 편안하면 아무리 좁은 공간에 박혀서 지내도
우주를 다 가진듯이 자유로울수 있다고 생각했다
글을 쓸 때 인간은 최선의 상태에 있는 자신을 불특정 다수의 인간에게
전달하려는 의지에 불탄다
이것이 최선의 인류애라고 나는 생각한다
삶이란 때로
광기를 부려보며 이 세상에 살다 간다는 몸부림 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열정도 느껴 본다
심인선님,
삶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의 참된 의미를 윤복순님의 [점선뎐]독후감을
통해 간접이나마 느낌을 갖게됨을 감사드립니다. 나마스떼!
2009.06.18 (08:48:59)
윤복순
화가 김점선님의 명복을 빌며
말 그림을 유난히 많이 그리던 화가 김점선님이 22일 별세 하셨습니다
동화처럼 때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꽃이며 말이며 오리를 그려대시더니
난소암이 발병하여 함암치료와 투병을 했었는데 끝내 끈을 놓으셨습니다
그분의 책 일부분을 발취해 봅니다
(1)
사춘기를 거치면서 여러 나라 시인들이 쓴 시를 읽고 그들의 생애를 알게 됐다.
수많은 시인들이 후대가 없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언제부턴가, 명절날 차례를 지낼때면 그들이 문득 생각난다.
죽은 시인들이 한없이 가엾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아르튀르 랭보가 제일 불쌍했다.
그러던 어느해, 아버지 몰래 불어와 한자가 섞인 지방을 썼다.
그렇게 몇번 차례를 지내고 나서는 붓으로 정성드려 써보기도 했다.
그 랭보의 지방을 식구들 몰래 차례상 뒷다리 안 보이는 곳에 붙였다.
'랭보씨 음식 먹는 시간입니다. 어서 드십시오.'
(2)
범죄자들을 보면서 나는 늘 미안해했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넘치는 에너지는 그들이나 나나 똑같았어.
그런데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가지런한 영혼으로 다듬어졌는데
그들은 바람 부는 벌판에 버려져 있었던거지.
헝클어지는 영혼을 그대로 놔둔 채 몸은 자라난거야.
몸은 힘이 넘치고 정신은 막힘이 없어.
여기까지는 예술가와 범죄자가 똑같아.
(3)
어느 날 엄마가 날 조용히 불렀다.
내 남동생이 여자가 생겨서 곧 혼인시킬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날더러 집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는 시어머니가 되는데 시집 안 간 시누이가 집에 있으면
며느리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했다.
깊은 슬픔이라는 말은 이런 때 써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른도 넘은 나이에 일어난 일이다.
며느리 눈치 안 보려고 날 내치다니,
얼마 후 집 나왔고 지금까지 집엘 안 들어갔다.
(4)
개울가의 버드나무들은 각각 다른 나무라고 그들 스스로 생각하고 있고
그 곁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그렇게 느낀다.
개울이라는 물 덩어리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개울물로 생명을 유지하는 한
덩어리의 생명체가 그 버느나무들이다.
개울이 영영 말라버리면 버드나무는 다 죽어버린다.
그때 그 물을 버드나무의 무의식이라고 나는 부른다.
(5)
여행을 가지 않고 여행 대신 머릿속을 정리하는 독서를 선택하는 생활습관은
그때부터 평생 동안 이어졌다. 나는 늘 내 머리속을 다스리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머리속이 편안하면 아무리 좁은 공간에 박혀서 지내도 우주를 다 가진 듯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물리적인 공간을 갈망하는 것은
미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협소공포증은 상상력의 부족, 즉 두뇌의 힘이
부족한 사람이 걸리는 정신병이라고 생각했다.
철학책을 읽는 것은 머리의 힘을 기르는데 아주 좋은 두뇌체조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그는 초연했습니다
곧 그것은 나의 정신과 일치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며
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책
말미에는 “죽음도 삶의 마지막 부분일 뿐 삶과 동떨어진
괴물이 아니다”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의 삶을 접하면서 참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예술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영롱한 이슬처럼 맑기도 했었구요
살아가는 일상들을 관조할수 있는 역량도 있으신 분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번 우리 살사방 모임에서도 금송 이다겸님을 뵈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이런분들이 계시기에 매말라 가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여
늘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것이겠지요
가신분의 명복을 빕니다
2009.03.26 03:15:54 | 조회 : 816
김소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덕분에 짧은 글에서도 그 분의 일생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수있어서 더 애절한 마음이 듭니다.
늘 좋은 소식, 슬픈 소식, 세상 인간살이 두루...
열심히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2009.03.26 (15:24:28)
박상길
아픈 영혼을 예술로 승화시켰지만,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그 분의 생이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젠 편안한 안식을 누리겠지요 ㅠㅠ
2009.03.26 (17:38:34)
윤복순
리처드님 감사합니다 가신분을 애도하며 듣는노래 평화와 안식을 얻습니다
2009.03.26 (20:10:12)
윤경숙
가신분의 명복을 빕니다
부지런한 복순님 고맙습니다
2009.03.27 (11:49:04)
봄내지기
학교에서 김점선 선생님의 작품을 공부하다가 이곳까지 오게되었습니다.
자료 옮겨가서 공부하려합니다. 감사합니다.^^
2015.10.16 22:07
봄내지기님,
김점선님의 그림을 좋아하신다니 반갑습니다.
그림이 담고있는 메시지와 구도와 색채가 특별합니다.
원본 그림들을 어느 전시회에서 볼 기회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2015.11.14 23:58
버드나무와 꽃과 오리
잠자는 숲속의 천사
그림은 내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
/ 김점선
나는 말 위에서 죽었다.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죽어가는 나를 태운 채 말은 달리고 있었다. 그때 말과 나는 구별이 되지 않았다. 말이 내 자신인지 내가 말인지…… 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났다. 화가가 되었다. 말을 그린다.대학을 졸업하고,
나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하는 때가 되었을 때,
나는 죽음 밖에는 떠오르는 말이 없는,
낙오자가 되어 있었다.
머릿속에는 잡념과 잡지식 만이
썩은 지푸라기처럼 쑤셔 박혀 있는
아웃사이더가 되어 있었다.
학교 다니는 일 외에는,
아무 준비가 안된 미숙아인 채로 졸업을 당했다.
나는 그런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공부를 더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외쳐댔다.
그리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한숨을 쉬면서 등록금을 줬다.
그렇게 큰소리 치고 들어간 대학원에서
한 학기만에 제적당했다.
맘에 안 드는 과목을 수강 거부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나를 가르치던 미국인 선생님이
나의 제적을 안타까와하면서
동료와 일할 기회를 주었다.
통역 일을 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받았지만 모으지 않았다.
다시 죽음과 마주섰다.
나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 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림!
그림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그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림 그리는 일뿐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행복했다.
제대로 된 길을 찾은 기쁨을 느꼈다.
다시 회화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때 내 나이는 27살이고 지금부터 31년 전 일이다.
아버지는 나를 금치산자 취급을 했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나는 헝클어진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럴 때 엄마가 나섰다.
무조건 나를 지원했다.
열심히 그림 그리고 학교 다니는데
그것만으로는 예술가가 안 된다고 했다.
결혼을 해서 인생의 쓴맛을 이겨내고 나서야
진정한 예술가가 된다고 했다.
맞는 소리 같아서 결혼했다.
집 나온 청년과 이름도 나이도 묻지 않은 채 결혼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의 행동에 경악했다.
아이도 생겼다.
매우 가난했다.
우리가 굶는다고 해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굶는 줄 알았다. 재미나 멋으로.
그럴 때 사는 길은 극도로 아끼는 것이다.
어쩌다 5만원 주고 그림 한 점을 팔면
정부미만 사고 반찬 사는 데는 돈을 한푼도 안 썼다.
동네에서 얻은 된장에
산에서 캐온 풀을 넣고 끓여서 먹었다.
그림 그릴 캔버스도 돈을 아끼려고
광목을 사다가 합판에 붙여서 그렸다.
그런 그림을 모아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림이 꽤 팔렸다.
일년 먹을 쌀을 사고
물감과 광목을 살만할 돈이 생겼다.
작업실이 따로 있을 리가 없다.
지붕에서 물이 새는 좁은 셋방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 그린 그림은 제일 큰 게 30호를 넘지 않는다.
100호 짜리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게 꿈이었다.
비만 오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고인 물을 버리느라고 밤을 새야 했다,
그럴 때 멍히 물을 바라보느니
그림 그리면서 밤을 샜다.
내가 살던 마을의 산과 들에 대해서 환하다.
어디에 무슨 나물이 있는지
언제 어떤 먹을 만한 풀이 나는지를.
그 마을에서 산을 식량창고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그림 그리다가도 하루에 한시간 쯤 은
산을 헤메면서 반찬감을 구해야 했다.
그렇게 살면서도 해마다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꼭 일년을 버틸 만큼씩의 돈을 벌었다.
내 행동은 변함이 없는데 차츰 그림이 더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100호 캔버스를 100개나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해마다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는 내가 먹고살 돈을 버는 길이면서
또한 그림을 보여주는 기회이다.
그림은 경건한 예배다.
자신의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다.
내 영혼은 하늘이 내게 내린 숙제다.
평생 풀어나가야 할 대상이다.
내 영혼 속에는 가깝게는
나와 나의 부모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멀리는 구석기시대의 내 조상의 경험까지도
흔적으로 남아있다.
나는 내 영혼의 시각화에 몰두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그린다.
나팔꽃
생나무 울타리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
나팔꽃이 피어 있는 남쪽 철책 담 앞에 한참 서서
꽃송이 수를 센다 . 한 송이 , 두 송이 , 세 송이 ...
마흔 여덟 송이 .
세상에 ! 연한 하늘색 꽃들이
맑은 하늘색 하늘 속에서 빛나고 있다 .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그들을 바라보고
한참 동안 서 있는다 .
교회 옆 전봇대 쇠줄을 타고 오르는 나팔꽃들은
무려 10미터도 넘게 하늘 높이 피어 있다 .
그렇게 높은 데까지 넝쿨이 올라가고 ,
그렇게 높이 꽃이 매달려 있으면서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다 .
나팔꽃은 하늘이 집인가 보다 .
풀숲 눕기
나는 풀숲에 누워 있다 .
하늘을 보고 누웠다 .
모든 것을 비운 듯이 가볍게 누워 있다 .
이따금 눈 속에는 하늘이 보인다 .
땅의 물기가 풀잎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
나도 잎맥을 따라 조금씩 하늘 속으로 들려 오려진다 .
나는 꼭 떠오를 것이다 .
몸 바로 위는 하늘이고 몸 바로 밑은 땅이다 .
나는 살아 있다 .
나는 편안히 누워 휴식할 뿐이다 .
오리
오리는 내가 무지하게 좋아하는 동물이다 .
어릴 때 이가 아파서 치과엘 다녔다 .
약솜을 꽉 눌러 아물고 터덜터덜 걸으면서
오리를 부러워했다 . 오리가 되면 좋겠다 .
오리는 이빨도 없고 아무거나 먹고 ,
헤엄도 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
매일 물 속에서 노니까 목욕탕에 안 다녀도 되고 ,
급하면 날기도 하고 ,
좀 커서는 오리가 좀 둔하고 튼튼해서 좋았다 .
다른 새들은 연약하고 가볍고 만지면
죽을 것같이 위태롭게 보이는데.
오리는 궁둥이를 퍽퍽 때리고 내려놔도,
금방 씩씩하게 달려가는 게 좋았다 .
암투병 중에도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씩씩하게
인사동 갤러리를 드나들고 있다. 병석에서 낸 이 시화집엔
병마의 그림자는 조금도 없고, 오히려 살아 있다는
‘기쁨’이 넘친다. 전화 통화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서도 예전과
달라진 것을 별로 느낄 수 없다. 여전히 유쾌하고 즐겁다.
“아파도 계속 그림 그리고 글 썼어요.
항암제 때문에 머리는 타조새끼처럼 됐는데,
머리카락만 빼면 나머지는 옛날보다 나아요.
예전에는 오히려 바쁘면 끼니도 거르고 했는데, 요즘은 하루 세 끼
꼭꼭 잘 챙겨먹으니까 살이 더 쪘어요. 항암 치료 받으면
메스꺼워 잘 못 먹고 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나는 그런
증세가 없어요. 의사가 그러는데 1만 명 중 한 명꼴로
나 같은 환자도 있다고 해요. 내 성격상
병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글귀 마다 세상에 대한 놀라움과 환희가 가득하다. ‘…나는
오로지 여름을 기다리면서 산다…바다는 뒤집어 지고, 거리의
먼지가 모두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헌 집에서는
비가 줄줄 새고, 해진 운동화 속에도 물이 쿨럭쿨럭거리고,
우와 무지 재밌다’(여름하늘), ‘한 무리의 패랭이꽃을 보고는 가슴이 뛰었다…
입꼬리가 확 벌어지면서 올라가고, 세상은
금방 환희로 찬다. 느슨하던 몸이 갑자기 팽팽한 기쁨으로 차오르고’(패랭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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