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전남 순천 낙양읍성]

 

 

 

동글 동글 초가지붕이 예쁜 낙양읍성에 가고싶었던곳인데

지난달에 사진동호회 출사에서 다녀왔다

 

주민들이 실제로 살고있고 관리나보존이 잘되있어서

관광지로 손색이 없어보였다

 

 

 

 

 

 

 

 

출처 : 예니포토갤러리
글쓴이 : 예니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대관령농업
글쓴이 : 대관령 원글보기
메모 :

 

 

 

 

 

 

                                      동강 할미꽃

 

 

                                             별과 달 그리고

                                             영원한 시(詩)의 숨결이 흐르는

                                             동강(東江) 기슭에

                                             곱다는 것 하나만으로

                                             함부로 꽃이라 부르지 말라

                                             시린 외로움 진한 고독속에서

                                             아프게 아프게 가파른 벼랑속에서

                                             비로소 피어오르는 슬픈 미소

                                             허공을 향해 굳센 힘살로 일어서는

                                             아름다운 백두옹(白頭翁) 꽃의 비밀이여!

 

 

 

 

 

 

 

 

 

 

 

 

 

 

 

 

 

 

 

 

 

 

 

 

 

 

 

 

 

 

 

 

 

 

 

 

 

 

 

 

 

 

 

 

 

 

 

 

 

 

 

 

 

 

 

 

 

 

 

 

 

 

 

 

 

 

 

 

 

 

 

 

 

 

 

출처 : 꽃을사랑하는사람들 (다육,화분)
글쓴이 : 불이가 원글보기
메모 : 옮겨온 곳- 카페, 불교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

 

 

 

제 608(2013-10)회차

 

 

대상지 : 지리산둘레길 탑동마을~황전(화엄사입구)마을 구간, 구례군

언 제 : 2013.4.4(목) 맑은 날씨

누구와 : 각시와 혁시 둘이서

코오스 :효동마을입구(07:40)--0.4km-->탑동마을(07:43)--1.1km-->산길시작(08:24)

--2.5km-->(지초봉,해발602m) 구릿재(09:40~간식타임~10:00)--3.4km-->난동마을(10:50)

--1.5km(화가마을 경유)-->당동마을(11:27)--대전리석불입상(11:34~중식~12:40)--2.4km-->

참새미마을(민박촌 14:00)--0.5km-->방광마을(14:05)--1.3km-->수한마을(14:45)---

숲길시작(14:51)--3.1km-->황전마을(화엄사입구 16:00)

 

 

<<총 16.2km / 중식시간 1시간 포함8시간20분소요>>

 

 

숙소 근처 음식점을 찿아 전날과 마찬가지로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다시 지리산 둘레길에 든다.

"오늘은 어떤 풍경이

어떤 풀꽃들이 반겨줄까?"

기대를하면서....

 

 

 

산골마을이니 주민들이야 부지런히 들일을 나가든지  했겠지만

새벽공기는 상기도 무겁게 내려앉아있다.

그림에도 그 무거운 공기가 느껴지려나?

 

 

 

 

 

 

 

 

 

무슨집일까?

둘레길 걷는이들을 상대로 할 펜션인가?

농사를 지으며 잘팔리고 비싸게 팔리는 작물에 너도나도 손을 대듯

숙박업소도 너무 많이 들어서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누군가 교통정리를 좀 해주면 좋으련만....

 

 

 

08:24

걷기 시작해 40분 여가 지나자 숲긿이 나타난다.

가파름 경사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포장길이 아닌 흙길에 드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숲길에 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내눈을 의심한다.

집 베란다에서 10여년 넘게 꽃을 피워주다가 작년에 그만 꽃을 보여주지 않았던 춘란

그 춘란 한촉이 꽃을 피워 올린 채 나를 보고 빙긋이 웃는 것 같다.

대박이다.

낙엽위에 나딩굴어본다.

키가작은  난이기에 결국은 옆으로 누운채로 간신히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눈을 맟추어본다.

못된 인간들에게 들키지 말고  잘 살아가렴!

 

 

 

 

 

 

 

 

종지나물(미국 제비꽃) 꽃이 아닌지?

제비꽃도 종류가 하도 많이

그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기가 만만치를 않으니 느냥 넘어가기로한다.

 

 

 

 

 

 

 

 

 

산버들강아지가 이젠 제대로다.

지난해  자손을 다 퍼뜨린  억새는

언제쯤이나 새 잎을   밀어 올리려나?

 

 

 

 

 

다시 임도를 한바탕 크게 휘돌아 오르니

구릿재라 불리는 고개마루에 오른다(09:40).

활공장이 있는 지초봉(해발602m) 턱 밑이다.

 

 

 

 

 

여태 산으로 다니는 동안  이렇듯 장식으로  멋을 부린 정자는 처음본다.

칠도 정성들인 흔적이 역력하고...

 

 

 

 

 

 

 

 

 

 

 

자생은 아니지만

산속에서 만나니 수선화에서도 색다른 느낌을 받는다.

 

 

 

 

 

길가 바위틈에서  제비꽃이 꽃을 피워올렸다.

아주 작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본다.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나는 제비꽃이기에 선자세로 담고 말았는데

각시가 뒤에 남아 쪼그려  앉았나보다.

꽃을 크게 담아 놓았다.

ㅎㅎ

 

 

 

 

 

아래 사진에 말풍선으로 표시를 하였지만

타원형으로  된 이 구간의 북쪽 갈림길이다.

우리부부는 왼쪽길을 택한다(10:54)

천변을 따라 걷는 길은 이곳 지리산 둘레길에서도 자주 만났던 길이고

우리부부에게는  미답의 길을 돌아보기에도 가진 시간이 넉넉치는 않으니 왼쪽길은 포기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배꽃

이화에 월백하고....

밤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ㅋㅋ

배를 먹을 때 배꽃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슬까?

뜬금없는 의문이든다.

누가 나이 먹었다고 안할까봐 그러나?

 

 

 

 

 

위 사진의 각시

이렇게 보면 그렇게 뚱뚱한 것 같지는 않은데...

요즘들어 몸무게가 늘어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몸무게는 남편이 늘었는데 어찌 자기가 고민을 하는게지?

 

 

 

 

 

화가마을이란다(11:20)

 계룡산에 도예촌이 있듯

이곳엔 화가촌을 형성하는 모양이다.

하기사 전문가들끼리 모여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면  서로 정보교환도 되고 좋은 점이 많겠지....

 

 

 

 

 

 

 

 

 

개불알풀꽃(일명 봄까치꽃)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 무리지어 피어있다.

얼핏 보면 꽃인 줄도 모르고 지나칠  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에게  뒤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는 꽃 같아보인다.

 

 

 

 

 

 

 

 

당동마을을 지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석불입상을 만난다.

정식 명칭은 대전리 석불입상이라고...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하고있는

비로자나 불상으로 통일신라때의 석불로 추정한단다.

 

 

 

 

 

 

 

석불을 떠나 몇걸음 옮기니  멋스런 다리를 놓고  정자를 하나 만들어 놓은 곳이 눈에 띈다.

우리 점심 장소로는 딱이다.

오늘도 누룽지라면정식이다.

(11:34~12:40)

한시간이 넘게 노닥거렸다.

ㅎㅎㅎ

 

 

 

양지꽃과

조팝나무꽃

 

 

 

 

 

 

 

 

 

 

 

청미래덩굴도 새순을 올린다.

언뜻보면 새순들이 개나리꽃을 연상케한다.

봄철 새 잎은 그래서 꽃들에 밀리지 않는 대접을 받나보다.

위 사진에서 새순 중간에  조그만 알맹이들이 보이는데 그것이 나중에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엄나무인가?

확실치는 않지만  각시가 찍어놓았다.

 

솜방망이꽃도 화사한 용모를 뽐내고...

 

 

 

 

 

 

 

고개를 하나 넘어 참새미마을이란

이름 좀 생소한 마을에 이른다(14:00)

들레길 민박체험마을이란다.

마을 뒤로 돌아들면  옛스런 마을길이 보인다.

 

 

 

 

 

 

 

 

 

 

 

방광마을(14:05)

지리산 숲길에서 나누어 놓기로는 이곳에서 한구간을 끊어놓았지만

 우리부부는 그에 구애받지 않는다.

새벽에 출발해서 식사시간 포함해 5시간20분쯤 걸렸지만  

내일 얼마라도 더 걷고 귀가에 시간을 넉넉히 가지려면 두어시간이라도 더 걷기로한다.

 

 

 

 

차타고 다니면서 보던 벚꽃길이 멀리보인다.

지난 주에 다녀가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잠시라도 다녀오겠지만

그냥 지나친다.

 

 

 

 

 

 

 

 

 

 

 

 

 

 

 

 

 

 

 

명자나무꽃의 주황빛깔이

한낮의 햇살을 받아 강렬하다.

 

 

 

 

 

 

 

"둘레길 도는 이들의 흔적을 받습니다."

라는 판인가보다.

아무리 쳐다 보아도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보이지를 않네....

 

 

 

 

 

 

 

 

 

 

다시 고개를 하나 넘는다.

그런데 현수막에 글씨가....???

갈대밭에서 숨어우는 바람소리는 들어보았지만

솔밭에서 숨어우는 바람소리는 들어보지 못하였는데....

ㅋㅋ

 

 

 

 

 

 

 

이럴거면 솔밭이 아니라 대밭에서 숨어우는 바람소리가 더 어울릴 듯...

내가 너무 참견을 많이 하는건가?

입다물어야지...

 

 

 

 

 

 

 

작기는 하지만 또 고개를 넘고...

 

 

 

 

 

 

 

또 고개를 넘는다.

그나마 진달래꽃이 옆에서 거들어주니 좀 수월한 것도 같고...

 

 

 

 

복면을 한 웬 여인이 돌계단을 뛰어 내려온다.

누구얏!

 

 

 

 

오르다 힘들어 진달래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던 이 고개가 오늘의 마지막 고개였다.

뒤에서 숨을 고르다가 각시에게 딱 걸렸다.

하기사 새벽무터 8시간을 넘게 움직였는데 힘이 드는건 당연지사 아닌감?

ㅎㅎ

 

 

 

 

지리산탐방안내소가 있는 황전마을(16:00).

오늘은 이곳에서 마무리를  하기로한다.

어제 저녁엔 흑돼지로 저녁을 먹었스니 오늘은  식물성으로...

음식은 역시 전라도 음식인게야.

정갈한 나물 반찬이  입맛을 돋운다.

 

 

 

 

오늘의 주메뉴인 송이버섯 전골이다.

사진에 이슬이는 넣지 않으려했는데 어느사이에 끼어들었다.

에이~ 하는 수 없지....

마시자!

한병을 둘이서 먹는데 어때...

 

 

 

 

 

 

 

 

 

 

 

 

 

저녁식사 후에  

계획에 없던 밤벚꽃 놀이까지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 내일을 준비한다.

오늘도 좋은 하루 !!!!

 

 

 

 

 

 

 

 

이정옥 - 숨어 우는 바람소리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출처 : 혁시와 각시의 산내들 이야기
글쓴이 : 혁시와 각시 원글보기
메모 :

 유년의 기억으로 찾아가는 고향  풍경들

  고향....!

  모든 사람들이 고향이라는 이름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닐진데...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라는 짐승들도 고향을 그리워 한다는데

  지금은 현대인들도 고향이라는 이름들을 가지고 그리워

  하기는 하는 것일까...?

 

  하물며..

 지금의 내 아이들한테서 고향이라는 것이 있기는 할까.?

 아니,

 고향이라는 단어는라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일까..?

 

 지가 그곳에서 나고 자라서,  깨복쟁이 유년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을 고향이라고  이름 할거면은

 분명, 요즘 아이들의 고향은 잊혀져가는 옛 단어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지 싶다.

 

 병원에서 태어나고 아파트 숲속에서 자라고 

 이사라는 것을 밥먹듯이 자주하는  작금의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생활방식들...!

 유년의 기억이라고 해봐야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만나는 또래들이 일시적으로 만나서 아파트 숲속 조그만

 놀이터에서 아옹다옹 놀았던 기억이 전부일텐데..ㅎㅎ

 예네들한테서 고향이라는 것을 운운한다는 것은

 나이묵은 아저씨들의 캐캐묵고 덜떨어진  촌시러운

 넋두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어쨌든 고향이라는 단어들도

 386 세대라고 하는 지금의 세대가 지나고 나면

 사라져갈 그런 잊혀지는 문화나 단어들이 되지 않을까.?

 

 유교적인 제사의식도...

 부모님 계시는 시골집을 찾아서 그 힘겨운 고향방문을 

 하게되는   정겨운 명절날들의 추억들도...!

 또

 유년의 기억을 되돌아 볼수 있는  고향이라는 이름들도..

 

 해서..

 오늘은 허물어져가는 폐허같은 고향마을 뒷 골목들을

 추억삼아 살방 살방 둘러 봅니다. 

  그 옛날 언제쯤에는 고모집이였는데...지금은 누가 살고 있을까...?


 

 

조그만 마을의 윗골목에는 이런 기와 얹힌 흙담길이 길게 이어졌었다.

마을 제일 윗집에 살았던 우리집이였을거면

윗길은 무던히도 많이 걸었겠지...!

 

이제 사람떠난 마을에는 허물어지는 담벼락도 무너져서 폐허가 되어가는 집들도

돌보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젊은 사람 찾아보기 힘든 농촌 조그만 마을 풍경이고 보면

이런 고상한 담벼락에 신경쓸 심적 여유도 체력도 없겠지...!

ㅎㅎ..!

철지난 새집이네..

아주 쪼맨한것이 조그만 뱁새집이나 되는 것일까..!

아슬아슬한 나무들을 기어 올라서 이 새집들을 털어서 알을 훔쳐 내려오곤 했었는데..

먹을것 없었던 시절..이 새 알들 훔쳐서 쌂아 먹기도, 또 너른 돌판에 후라이를 해먹기도..ㅎㅎ

어쩌다가는

비둘기 알이나 꿩 알들을 훔쳐올수 있는  거의 대박같은 횡재를 한 날들도 있었다는....ㅎㅎ

 

 

마을 공동우물이 몇군데 있었는데 이곳 삼화정은  마을 윗쪽 살던  사람들이 주로 사용을 했던 곳이다.

모든 일상생활이 다 이루어졌을 중요한 공간인 것이다.

대부분의 집들에서 개인적인 식수들을 해결할수 없었던 시절을 지나올 때였을 거면은

이 곳에서 각 집안들의 대소사가 전부 이루어 졌었던것은 당연 했겠지

단순한 샘물이 아닌 동네 어머니들의 중요한 생활의 필수공간으로서..

아마...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들어갔거나 들어가기 전부터서

이곳에서  양쪽으로 물통이 달린 물지게를 져 날랐던듯 싶다.... 물지게..ㅎㅎ

 

지금의 노모께서는 이곳에서 한겨울에도 맨손으로 늘상 빨래를 하시곤 했었는데...

 

강아지가 지키고 있는 멸공방첨 글귀가 써진 건물은 통샘이라는 샘으로 동네 목욕탕으로 변신을 한곳이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그때 박정희 정권시절에  새마을 사업 일환으로 정보 보조금으로 지어 졌다고 한다.

 

두 샘터들이 매워지고 허물어지질 않아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ㅎㅎ

     천년묵은 고목이 더없이 멋드러진 사찰...강진 화방

    화방사는 고려시대 1211년(희종 7년) 원묘국사가 백련사를 중창하면서 보은산 고성암과 함께 지은 화방암이 그 시초이다.

    화방암은 뒤에 화방사로 고쳤으며, <강진현지>에 기록된 나한사(羅漢寺)가 곧 지금의 화방사로 나한도량 이었다.

    또한 화방암은 1876년(고종 13년) 화주 경신스님이 새로 중창하고 다시 1888년에 화산 스님이 중수했다.

    그리고 1912년에는 태흥 스님이 삼존묘상과 16진용을 모셨는데, 당시 절의 모습이 지금과는 달리 자못 화려했다고 한다.

    최근 새로 지은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구조이며, 특기할만한 것으로 1917년에 세워진 천불산

    화암사 사적비가 있다. 이비는 대흥사 스님으로 초의선사 제자인 원응 계정(圓應戒定)스님이 지었는데 만덕산 백련사의

    연혁과 함께 화방암의 기록이 남아 있어 강진 불교 역사 연구에 귀중한자료가 되고 있다.

 

강진 화방사에 피여있는 황매화꽃이다.

절을 지키는 스님 한분없이 텅 비어버린 소담스런 절간

 

작년에 올때만 해도   폐허처럼  폐허처럼 나뒹굴던 스산함이 오늘은 말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강진군에서 문화재 보상차원에서 청소를 할것은 절대 아닐것이면

분명 초파일이 가까워졌음이 아닌지...!

이 소담한 절간을 지켜야 할 노(老) 스님..!

젊은날의 방탕을 뒤로하고 지금은 초로의 노스님이 되어서 이 소담스런 절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절터 벼랑밑에 컨테이너 박스 한 동 옮겨놓고서  칩거를 하고 계신단다.

 

이제 초파일이 되면은 그날에는 절간으로 올라 오겠지만...!

 

오늘도 스님 이야기는 여기까지만..ㅎㅎ

      

 

 

 

 

 

 

 

 

 

 

 

 

돌담길 따라가는 길 끝에는 만개한 함박꽃이 화려게 피였다.

한때는 이곳이 아버지의 누님집이였었는데...

지금은 누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지

그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이 돌담들과 감나무들이다.

빨간 양철지붕집은

한때 이마을의 모든 나락들을 찧었던 방앗간이면서 큰 아부지 집이였다.

그 어마어마했던 방앗간이 지금은 왜 이리 작고 초라하기만 한지..ㅎㅎ

 

 

 

 

 

        ▲ 함박꽃

 

살았던 집이 이 마을 가장 윗쪽에 자리를 했으니

이산은 완벽하게 우리집 뒷산이였네..ㅎㅎ

동네 꼬마녀석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이곳 싸가지 바위를 오르곤 했었는데

참..!

 싸가지바위..!

이름이 어떻게 해서 붙여진것인지는 안타깝게 잘 모른다.

괜히 붙여진 이름은 아닐텐데...

그때나 지금이나 늘 싸가지 바위라고 부른다.

 

그 오랜세월동안 한번도 불러보지 않았는데도

싸가지 바위라는  이름이 입에서 그 옛날처럼 불려져 나오는 것이 그저 신통할 따름이다.

 

이 바위를 기점으로 동네 아그들은 그들만의 숨은 아지트도 만들고

고작 꺽어진 나무가지를 총이랍시고 허리에 둘러차고서  총싸움 놀이에 열중 했었다.

장총도 만들고 따발총도 만들고 또 권총도 허리춤에는 하나씩 차야지

물론 대장도 , 소대장도 만들고  더 나이어린 동생들에게는  쫄병계급장도 만들어 주었다..ㅎㅎ

하긴...

활싸움도 했었네... 이 숲속에서..ㅎㅎ

대나무로  활을 만들고 수수깡 열매 줄기나 신우대로 살을 만들어서

싸가지 바위가 있던 산들을 온통 헤집고 다니곤 했었는데......

 

이싸가지 바위를 비롯한 마을 주변 산들이 작년에 마을 할머니의 실수로 이렇게 꼬실라져 부렀다

이제는 이  마을 뒷산을 헤집고 다닐 아이들이 한명도 없으니...

한없는 원시림 숲으로 변해 가는데...

어쩌면

불이라도 이렇게 난것이  잘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어온다.

 

 

 

 

 

 

마을 앞 너른 벌판에 푸른 목초지처럼 펼쳐져 있는 이것들

소먹이를 위한 여물로 변할 풀이란다.

예전이면 이곳에서 벌써부터 벼농사를 위한  물데기가 한창이였을텐데

그 기름졌던 논밭들이 쥔을 잃고 소들의  먹이를 위한 풀밭으로의 변신이라니..

 

그 여물들 가운데 붉은 꽃들은 자운영이다.

작년까지만해도 휴농기에 이 자운영을 권장 재배를 했던 모양이다.

그중 몇알의 씨가 남았던지 푸른 풀밭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너무 다가가지 않고서도 꽃들의 사진을 담아낼수 있는 생각의 전환쯤 ..ㅎㅎ

         ▲ 유체꽃

 

시골 장독대 옆에 곱게 자란 금창초란다.

그렇지 않아도 이것들을 눈여겨 보고 있는데

사진으로 담을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금창초는 땅바닥에 완벽하게 달라 붙어 있어서 뒷 배경처리를 깔끔하게 하거나

분리를 시키기가 힘이 드는 꽃이다.

 

이 장독대가 있는 조그만 집을 고향 그리울때 별장처럼 찾아볼수 있도록

구입을 해 두었으니...

 

앞으로는 이 촌시런 향수병으로부터 해방이라도 될른지..ㅎㅎ

▲ 대파 꽃

  

출처 : 돌머리의 산 길 헤매이기
글쓴이 : dolpak 원글보기
메모 : ㅎㅎ 넘 좋아요 특히 봄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언덕 위에 앉아 고향마을을 내려다보는 정취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년시절의 행복이었죠^^

  고향이라는 이름이 주는  유년의 기억들

  

   간만에 그것도 아주 간만에 유년의 기억들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시골 깡촌인 고향이라는 곳을 다녀 왔습니다.

   갈수록 인적 끊기고 사라지는 집들이 늘어나는 우리네 시골동네들...!

   내 고향이였던 마을에서도 어김없이 폐허같은  빈집들과 허물어진 골목 담벼락들만

   가슴 아린 허전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옛날 유년의 기억들을  되돌아보는 고향마실...!

  

   오늘은 사라져가는 고향 뒷골목들을 거닐면서 옛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습니다.

 

  고향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태어나 자라난 곳. 또는 제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 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지금의 내 아들 세대들에서는 이제 고향이라는 단어가 어떤 말인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짙은 추억들이 묻어나는 곳인지

  절대로 모를 단어, 잊혀지는 단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이라는 이름을 들먹일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지금의 내가 아니던가...!

 

   멸공방첩 포스터 :  삼천만이 살펴보면 오는 간첩 설땅없다.

Slow City ...?

가장 먼저 회자되는 곳이 완도의 청산도 일게다.

그리고는 담양의 덜 떨어진 허술한 담벼락마을인 창평..ㅎㅎ

적어도 Slow city 라고 하는것이 천천한 느림의 미학인지

아니면 소외되고 더딘 발전을 보였던 곳인지 구분하기가 애매할것이면...

분명

내고향의 시골마을도 느림의 미학을 담아낼수 있는 슬로 시티쯤 되지 않을까..ㅎㅎ

 

지금도 그렇지만

이곳 삼화마을이라는 곳은 문명의 발전이라는것이 해도 해도 더딘 곳이였던듯 싶다.

초등학교 다닐적에 이 마을에 전기라는 것이 들어 왔으니...

깡촌 중에서도 이런 깡촌이 또 있을까..ㅎㅎ

 

 

 

호랭이가 살고 있다던 화방산

 

마을 뒤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조그마한 산이다.

칡이나 다람쥐를 쫒아서 올라 다녔던 곳

어쩌다가 산 뒷편으로 넘어가면은 호랭이가 살았다는 깊은 동굴들도 만날수 있었는데

그곳은 우리들의 은밀한 숨은 아지트가 되곤 했었던듯 싶다.

시커먼 동굴속에서 느끼는 은밀한 공포감까지 더해서

우쭐하고 철없는 용맹스런 무용담까지 더해지곤 했었지...ㅎㅎ

 

지금은 정상적인 산행 등로들로 개발이 되어서 제법 찾는 산객들도 많은 모양인데...

정작 나이를 묵어버린 산꾼인 내가  아직껏 ...이곳이 미완의 등로라니..ㅎㅎ

 

 

 

 

 

아직도 고향이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허물어지고 누추한 시골집들도 더없이 정겹고 소중한  모양이다.

비록 유년의 기억들이 고스란이 남아있어야 하는 내 집들의 흔적들은

완벽하게 감춰지고 없다지만 고향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정겨운 모양이다.

이집은

고향이라는 끈을 연결하기 위해서  이번에 구입한 집이다.

귀농처럼 고향을 지키겠다는 거창한 객기도 아니고

유유자적한 노후를 텃밭을 가꾸면서 살아보겠다는 풍류의 계획도 아니다.

단지

어쩌다가 가끔은 고향에 들러서  하루쯤 유하고 싶을때 맘 편히 쉬어가고 싶을 뿐이다.

 

년중   ...몇번이나 갈런지는 미지수 이지만..ㅎㅎ

 

어쨌거나 기억마저 희미해져가시는 어머님한테는 더없이 좋은 쉼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앞에 보이는 것이 보리밭일까..?

 

예전같으면 지금쯤이면 보이는 모든 논들에서 보리들이 갈아져 있을텐데...

다른 농촌의 풍경들은 어떨런지 몰라도 지금의 내 고향에서는 한없이 푸르름을 보여야할 보리들이 보이질 않는다.

보이는 것은 소들에게 먹일 풀들 뿐이다.

이제는 애써 논밭에 보리를 갈지(심지) 않는다고 한다.

 

애써서 농사를 짖는것보다는

년중 수입을 창출할수 있는 공장으로 시골촌부들의 발길들이 옮겨버린 탓인게다.

강진읍내로  마을 아줌씨들이  농사들을 뒤로하고 미역공장 일을 하러 간다나...ㅎㅎ

 

그때는 단감이라는 것들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다.

온 동네를 뒤져도 몇구루 찾을수가 없었으니...!

떫디 떫은  땡감들이 먹을것들의 전부였을 것이면은 ...이 단감이라는 것은

이곳 아이들한테는 뿌리치기 힘든 대단한 유혹이였으리라..ㅎㅎ

차마 단물이 올라오기도 전에 몰래 숨어들어서 다 떠 먹어버리곤 했으니..ㅎㅎ

말이 단감나무이지 단감 지 맛을 보여준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싶다.

아마

그때는 단감보다는 이땡감을 소금물에 우려( 소금물에 담아 놓으면)놓으면 아주 무심한 맛들이 만들어 지는데

이게 우리들이 먹었던 가장 사치한 먹거리들이  아니였었는지...ㅎㅎ

 

 

 

366

그 옛날의 내 집터에서 보이는 동백들과 이름모를 방울꽃이다.

이동네의 가장 윗쪽에 터를 잡았던 어린시절의 우리집..!

지금은 애써 그 흔적들을 찾아 볼려 해도 결코  쉽지가 않다.

집 뒷에 거목처럼 버티고 있었던 땡감나무만이 간신히 찾을수 있을뿐...

이제는 완벽하게 자연으로 돌아가 버렸다.

 

사람이건 건물이건  찾는 흔적이 끊기고 세월을 묵으면 이렇게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것이거늘....!

 

왜 우리네 봉분들에서는 자연스레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토록 거역하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 이곳이 이마을의 윗골목이였구나...!

 

우에골목, 가운데골목, 아랫골목

이마을을 한복판으로 가르는 골목들이 이렇게 세군데나 되었던것을 보면

그때는 이 초라한 마을에서도 제법 사람들이 모여 살기는 했던 모양이다.

하긴 ...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30-40명쯤은 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것을 보면은....

그렇게 작은 마을만은 아니였던듯 싶기도 하다.

 

지금은 다들 떠나고 빈집들과 허물어지는 담벼락들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지만

그때는 이 골목길들에서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들이 떠나질 않았었는데......

딱지치기, 반란순경, 상수리로 구슬치기, ....!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같은 창고건물..!

신기할뿐이다.

고향 떠난지가 30년은 훌쩍 넘었을진데도...

이 장승같은 창고건물은 아직껏 그자리 그 모습으로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니..ㅎㅎ

그래도 지붕은 그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던지 무거운 기와에서 가벼운 양철지붕으로 바뀌였네..!

 

이곳은 한시간씩 걸어가야만 했던 국민학교 가는길의 1차 집합 장소이기도 했다.

늘상 이곳에서 동네 아그들이 모아지고 나면 그나마 고학년 형들의 인솔에 따라서

그 멀기만 했던 학교까지 쫄랑 쫄랑 따라가곤 했으니...ㅎㅎ

해서

이곳은  아그들의 가장 중요한 놀이터이도 했을뿐더러

놀이문화의 핵심공간이였던것은 당연했을터..

 

저 조그마한 처마밑에서 주머니에 코 묻은 딱지 가득 담고서 딱지치기할 다른 친구들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촌시런 한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다.

 아부지가 4남중 셋째이셨고...

고모들도 몇분 계셨던듯 싶은데..너무 어릴적 일이라서 그런지..기억이 선명치를 못하다.

그 큰아부지, 작은아부지들에서 태어난 형제들중 내가 가장 막내였다.

지금의 항렬이라는 잣대로 들이대면...

이곳 마을에서는 왠만한 사람들은 다 내 조카들이였는데..ㅎㅎ

그때 시절에는 나이묵은 할아버지 , 아저씨들이 

나한테서 " 당숙이니"   "아재니" 하는 소리들을  왜 하는지 도통 알수가 없는 거북함이였었다. 

 

사람흔적 떠난지 오래된 이 빈집은

어려서도 한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는 큰아부지 집이다.

사촌형을 큰아부지인줄 한참커서야 알았는데...

어쨌든

이곳 큰아부지 집은 장손집이면서 삼천석은 아닐지라도

이곳 마을에서 랭킹을 다투는 부자집이였다.


1

1

 


일년이면 셀수도 없을만큼 이어졌던 장손집의 제사들...!

제사가 한번 치뤄지는 날에는 3일 밤낮을 준비하고 일가 친척들을 맞았으니..ㅎㅎ

참... 그 장손의 며느리( 한참을 할머니가 되신 형수님이제...)...!

하긴...그때는 손님도 아닌것이 삼일 밤낮을 이곳으로 드다들면서

끼니를 해결하고  놀았으니...!

 

그 대단했던 부자집의 궁궐같은 집들도

인적 떠나고 발길 끊기니 폐허처럼 무너지는것은 아주 순신간의 일인  모양이다.

반들 반들하던 토방도 , 앉을 자리 없었던 마루들도

한없이 튼튼할것만 같았던 사랑체들에서도...

 

부엌이라는   지방 사투리가  정게, 정재 라고 했던가...!

이제는 그 옛날의 부엌들의 모습들도 찾아 보기 힘들지 않을까..!

이 조그마한 부엌에서 갈쿠나무, 석유곤로에 의지해서 그 많은 식솔들과 손님들의

삼일 밤낮의 식사들을 준비 했으니..ㅎㅎ

지금의 조그마한 집안 대소사를 치뤄내면서도 이러니 저러니 말들 많은

며느리들과 비하면...ㅎㅎ

 

하긴 그때는 그리들 살았으니까...!

 


 

 

 

 


초등학교를 다닐적에서야  이곳에 전기라는 것이 들어온 곳..!

어렸을적 초가집에서 호롱불이라는 것을 켜고 살았던  곳

낸중에 핸드폰 세상이 되어도 이곳 마을에 들어오면 늘상 불통이 되었던 곳

강진 읍내까지 나갈려면 군내버스를 타기위해 30분을 더 걸어나가야 했던 곳

바로 이곳이

내가 유년을 기억하는 고향이라는 마을이다.

 

지금에서야 이곳 깡촌 마을에도 도로 포장이 되었고

어쩌다가 조그마한 마을버스들도 드나드는 모양이지만...

 

그때는 이렇게 완벽하게 숨은 깡촌이  또 있었을까 싶은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자리가 한때는 잘나갔던 우리 아부지 집이였다는데...

멀리까지 펼쳐지는 들녁 어딘가에는 우리네 논댕이도 조금은 있었다는데...

 

사람 떠난 지금에서는 누가 이 많은 논댕이들을 벌어먹고 사는지...?

 

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가운데 골목과 마을 전경, 그리고 마을 뒷산들

 

해년마다 갈쿠나무( 소나무 마른 잎 )하러 저 뒷산을 오르내렸던 식구들...!

한뭉탱이씩 긁어모아서 머리에 이고 날랐던 갈쿠나무...ㅎㅎ

갈쿠나무 하러 온식구들이 떠난 빈집을 어린아들만 한없이 고픈배를 움켜쥐고 지키고 있었다는...!

 

그 갈쿠나무 산이 누군가의 불장난으로 온통 헐벗어서...아주 민망한 민둥산이 되어 버렸네

도데체 누가 그런거야..ㅎㅎ

이제는 갈쿠나무하던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 보까...!

강대바구

그 옛날 어느 시점에 갈갈이 사건이 있었다는 전설같은 괴담에 이곳 강대바구(지금은 광대바위, 큰바위얼굴이라고 함)에

갈때마다 왠지 등골에서 찬바람이 일곤 했던 곳이다.

사람 얼굴형상을 하고 있어서 성제바위(형제바위)라고도 불렀던 이곳들이

때아닌 산객들의 인기를 불러 일으키는 모양이다.

강진읍내로 가는길들과 마을어귀에서도 큰바위 얼굴에 대한 이정표들이 든실하게 붙여져 있는것을 보면..ㅎㅎ

 

그때는 이곳 광대바위 가는 길옆들에도 척박한 전답들이 많이 있어서

굼주린  나락 몇섬을 위해 힘겨운 언덕들을 오르내리곤 했었는데...ㅎㅎ

깨금과 산딸기가 유독 많았던 이곳

이제는 이 전답들도 사람떠난 집들과 마찬가지로 흔적없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싶다.

다만

화방산 산행 들머리로 알려지면서 그나마 몇몇의 산객들이 찾아오는 것이 전부일뿐

 

 

어쨌든

조만간 이 성제바위와 화방산에도 유년의 기억들을 내가 직접 더듬어 보아야 하는것은 아닌지...!

그 유년의 그리움들을 같이 했던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들을 하면서 지내는지...?

같이 했던 그리움들이  그 유년 이후로는 아무런 기억과 연락이 없으니...!

 

보고 싶다.... 내 어린 유년의 기억속의 친구들아...!

촌시런 멀마들이였던 춘현, 인구, 정순, 그리고 나..!

또 한없이 곱던 기집아들인,  애경, 경심이였었지..?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일게다.

 

고향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리움이

오늘따라 장황한 글들이  끝도없이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기보다는 나 자신의 유년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는 가슴 따뜻한 시간이였습니다.

 

공감하여 읽어주신 분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출처 : 돌머리의 산 길 헤매이기
글쓴이 : dolpak 원글보기
메모 :

[전남 구례] 산수유마을을 찾아서...

 

 

2013.03.24(일)

 

아랫녘 봄꽃소식에 길을 나섰습니다.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는 일정입니다.

아직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대부분 간직한 섬진강 강줄기와

주변의 봄을 느끼기 위함이었지요. 

 

남원에서 구례로 넘어가는 길입니다.

구례 지역에 들어서자 산수유가 먼저 반기네요.

 

 

산수유 시목지 마을이 보이는 풍경...

산수유 시목지에 들렀다 가자는 내 말을 무시하고 남편은 냅다 상위마을쪽으로 차를 몹니다. 

 

산수유 사랑공원이 보이네요.

 

복잡한 곳을 싫어하는 옆지기는 그냥 통과합니다.

 

밀려드는 차량 행렬 때문에 내리지 못하고 바로 상위마을로 가는 거지요.

반곡마을이나 하위마을 주변은 이미 차량이 가득하여서 주차가 어려웠거든요.

 

겨우 상위마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주차 걱정을 했는데, 그래도 운이 좋았네요.

 

주변을 돌아봅니다.

마을을 감싼 산수유꽃이 인상적인 풍경입니다.

 

온통 노란색의 물결이네요.

 

 

계단식 주차장

 

상위마을 전망대

 

전망대 주변에서 본 주차장과 마을의 모습

 

 

 

전망대 주변

 

 

돌담길 따라서...

 

 

 

 

 

 

 

 

돌아내려가는 길에 잠시...

 

 

 

 

아래 개울로 내려가서 사진을 찍는 분들도 보인다.

참 지극 정성이다.

 

지리산 온천랜드 앞을 지나며...

이곳 온천수가 좋다던데, 항상 스쳐가기 바빴고 들른 적은 없다.

 

2013.03.24(일)

 

출처 : ** 내 그리운 나라 **
글쓴이 : 낭만방랑자 원글보기
메모 :

            구례 오산에 자리잡고 있는 사성암을 돌아봅니다.

            산아래 주차장 셔틀버스매표소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가파른길을 올라갑니다.

            드라마 추노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서 인지 산행객들과 관광객들이 많네요.

            사성암경내에는 소원담은 연등이 석가탄신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사성암[四聖庵]은

            거대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멋스러움만큼은 으뜸이다.

            연기조사가 처음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사성암은 바위 사이에 박혀 있다.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약사전'과 바위 위에 살짝 얹어

            놓은 듯 단아한 '대웅전' 등 모든 구조물이 산과 하나되어 고운 자태를 뽐낸다.

            대웅전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돌면 아래로

           섬진강이 돌아 흐르고 구례읍과 지리산 노고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에는 도선국사가 참선했다는 '도선굴'과 암벽에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마애여래입상'도 보며 일상의 번민을 씻을 수 있다

           사성암 올라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를 쐬며 조금은 헉헉거리며

           산 정상까지 올라가면 기암절벽에 절묘하게 있는 절이 보여 저절로 감탄의 탄성이 나온다.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본사 화엄사를 창건하고 이듬해 사성암을 건립했다.

           사성암은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모습을 오롯이 볼 수 있으며,

           물줄기 너머로 들녘과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출처 : 한국관광공사)

 

 

 

 

 

 

 

 

 

 

 

 

 

 

 

 

 

 

 

 

 

 

 

 

 

 

 

 

 

 

 

 

 

 

 

 

 

 

 

 

 

 

 

 

 

 

 

 

 

 

 

 

 

 

 

 

 

 

 

 

 

 

 

                              
출처 : 내마음의 풍경을 찾아서.......
글쓴이 : 뚜벅이 원글보기
메모 :

 

 

 

 

매화마을 다녀오는길에

살짝들려본 하동 차밭입니다.

 

추운겨울을 이겨내고

새순을 올리고 있네요.

 

화개천따라 펼쳐지는

차밭의 풍경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립니다.

 

지금쯤은 벚꽃이 만개하여

어우러진 풍경이 더 멋진 풍경이 되겠지요.

 

따뜻한 봄볕받으며

초록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에서

은은한 차 향기가 느껴지는듯 합니다.

 

 

 

 

 

 

 

 

 

 

 

 

 

 

 

 

 

 

 

 

 

 

 

 

 

 

 

 

 

 

 

 

 

 

 

 

 

 

 

 

 

 

 

 

 

                               
출처 : 내마음의 풍경을 찾아서.......
글쓴이 : 뚜벅이 원글보기
메모 :

 

 

 

 

 

 

 

 

 

 

 

 

 

 

 

 

이렇게 아름다운 하얀 겨울 풍경에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렇게 다정하고 익숙한 눈이 덮인 풍경과

내 목덜미를 스쳐 가는 익숙한 바람을 품고 싶었습니다.

 

 

 

 

 

 

 

 

눈사람이 서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선명하게 떠오르던 환영...

남이섬 곳곳에 만들어진 많은 눈사람과 눈 맞춤을 하고

오래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 차오르던 ...

모든 풍경이 휘어져 굴곡이 생기던,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고

눈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저 눈빛을 누가 만들었을까?

맑은 눈으로

투명한 것들만 보는 것일까?

눈사람이 바라본 모든 색깔의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서 있을까?

문득 별생각을 다하는 내가 참 우습다는 생각을 하는 듯,

(눈사람이 사팔뜨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 눈빛에 웃음으로 화답하고

중얼중얼 이야기하는 내가 우습기만 했습니다.

눈사람에 닿고 싶은 내 마음은

그리움이었네.... 어린 날의 소회....

 

 

 

 

 

 

 

 

어린 날 눈을 뭉치던 작은 손이 떠오르고

눈사람에 눈썹을 붙여놓고

배를 움켜잡고 웃었던 날들...

그리운 날들이 떠올랐고

친구들이 눈이 쌓인 벌판을 우르르 달려 다니던

해맑은 웃음소리가 귓전에 환청이 되고

나는 아껴두었던 추억 속을 걸어 다녔습니다

남이섬의 눈사람이 있는 풍경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동화 속 그리움의 세상이었습니다.

 

 

 

 

 

 

 

 

 

 

 

 

 

 

 

 

 

 

 

 

 

 

 

 

 

 

 

 

 

 

 

 

 

 

 

 

 

 

 

 

 

 

초록빛 꿈을 꾸는 많은 나무를 바라보며

겨울의 마지막임을 감지하는 촉수를 보는 듯

눈이 쌓인 나무들도 화색이 도는 듯 느껴져

봄이 멀지 않았음을 보았습니다.

 

 

 

 

 

 

 

 

 

 

 

 

 

 

 

 

 

 

 

 

 

 

여기저기 서 있는 눈사람을 만나러

기웃기웃 떠돌며

프레임에 가두어 눈사람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심장이 없는 눈사람들이

마치 심장을 가진 것 같은...

엉금엉금 내 곁을 걷는 것 같은.....

 

 

 

 

 

 

 

 

 

 

 

 

 

 

 

 

 

 

 

 

 

 

 

 

 

 

 

 

 

 

 

 

 

 

 

 

 

 

무시로 흔드는 바람에

가지 위에 쌓인 눈이 흩날리는 풍경은 사진에 담기지 않았지만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아직은 겨울이 깊은 남이섬...

눈이 쌓인 남이섬을 걸으며

나는 몇 편의 바람을 만나고

몇 편의 추억을 만나고

몇 편의 사랑을 더듬었습니다

나는 보이는 풍경만으로

말할 수 없는 한 편의 시도 완성하지 못하고

온몸은 흠뻑 겨울에 빠져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린 추억 속 눈사람을 만나듯 반가웠던 시간이어서 좋았답니다

정말 많은 눈사람을 만나고

함께 했던 시간이었지 싶습니다

남이섬의 겨울은 보이는 장면마다

 한 폭의 풍경화를 제대로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언제 찾아가도 아름다운 남이섬의 겨울 풍경은

제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출처 : 아름다운 詩사랑..그리고 여행...
글쓴이 : 초희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