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주중엔 이른새벽, 주말과 휴일이면 시간나는대로 운동삼아 뛰거나 걸어서 다녀오는 서울인근의 사찰이 하나 있다. 운동효과 중 가장 좋다는 빠른 걸음으로 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1시간 30분 정도 걸어서 이곳 사찰에 도착하면 잠시 머물다가 다시 뛰거나 걸어서 돌아오곤 한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조용한 공간이 잠시 머리를 식히기에도 좋은 곳이어서 꾸준히 운동삼아 다니는 곳이다.
운동을 하면서 반환점으로 생각하는 이곳에 머무는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 특별한 습관은 이곳 연못가에 놓여있는 커피자판기에서 꼭 커피 한잔을 빼서 마신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마시는 300원의 자판기 커피는 어느 자판기 커피보다 그 맛이 살아있다.
아무래도 운동 중에 마시는 커피 맛이라 평소 때 마시는 커피 맛보다는 그 맛이 진할 수 밖에 없다. 땀 흘린 후 커피를 마셔 본 사람이라면 동감할 느낌이다. 게다가 이곳 자판기에 사용되는 물은 이곳에서 나는 약수물이니 그 맛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자판기가 내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 다른 것에 있다. 가끔 커피를 빼 마시다가 발견하는 동전반환구내에 있는 100원짜리 동전들이다. 누군가가 1000원짜리 지폐로 커피를 빼마시다가 그 잔돈을 남겨 둔 것이다.
1000원짜리 지폐를 넣고 남은 700원(500원 1개/100원 2개)과 누군가 남겨놓은 400원
가끔 남겨지는 동전들은 많게는 700원에서 적게는 400원까지다. 1000원짜리 지페를 넣고 300원짜리 커피나 율무차 한 잔이나 두 잔 값을 지불하고 남겨진 금액인 셈이다. 처음에는 사찰을 다녀가는 불자나 등산객들이 잔돈이 남은 것을 모르고 그냥 놓고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몇 차례 이같은 똑같은 상황을 접하고는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평소에도 자판기 커피를 자주 마셔 본 경험상으로 볼 때 이렇게 자주 동전이 남겨진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동네 근린공원에 있는 자판기나 체육센터에 있는 자판기를 주로 이용해 본 경험으로 볼때 이렇듯 작은 횡재(?)를 자주 겪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이같은 작은 궁금증은 작년 가을무렵에야 비로서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도 변함없이 운동삼아 다녀 온 길에 들른 커피자판기 앞에서 한 중년부부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된 것이다. 불자들로 보이는 이 부부들은 커피값으로 남은 잔돈의 존재를 알면서도 일부러 그냥 놔두고 가는 것이었다.
사찰 앞에 놓여있는 자판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보시(布施)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대상은 사찰을 오고가는 불자일수도 있고, 등산객일수도 있으며 내 경우처럼 운동을 겸해 다녀가는 일반대중도 되는 셈이었다.
자판기 커피값 300원의 보시(布施)는 비단 이들 중년부부만의 습관은 아닌 듯 싶었다. 운동중에 이곳에서 커피를 빼마시다 가끔 발견하게 되는 100원짜리 동전을 보면 어느 특정한 사람만의 행실은 아니라는 판단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주간 이른새벽에 운동삼아 다녀오던 길에 다시금 발견한 커피자판기 300원의 보시를 생각해 보았다. 보이지 않는 남을 배려하고, 작은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이렇듯 작은 마음씀씀이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느낀다. 300원의 보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동네에서 자주 이용한 커피 자판기들 (위, 근린공원내/아래, 체육센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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