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엄니와 강둑에 나가 돗자리를 깔고 별바라기를 하며 잠시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엄니 앞에 누워 솔솔 불어오는 강바람을 쏘이며 옛날이야기를 나눴다...카메라 후레쉬에 화들짝

            놀라 눈을 치켜뜨고...좀더 있다가 들어가자 해도 내맘을 몰라주고... 춥다고 자정무렵 들어왔다.


 

 

      * 느낌~!!! *

 

 

  " 엄마~, 바람쏘이러 갈까? 영화보러...'만남의 광장' 보러 가자 !! "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시던 엄니에게 귓속말로 들려드리자 엄니는 만면에 희색이 돌며 이내 옷을 찾아 입으려

하신다.

 

  올 여름은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려 밖에 나가는 것조차 고행이다. 세간의 소문으로는 '웰컴 투 동막골' 버

금가는 영화라고 들어왔던 터라 밤 시간 시원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더위를 피하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엄니의 정서를 고려해 함께 영화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지만 엄니가 좋아할만 한 내용의 영화라면 꼭 보여

드리려고 한다. 전에 ' 웰컴 투 동막골'도 엄니랑 함께 관람을 했다.

  엄니가 휠체어를 타고 영화관에 가면 가장 난감한 일이 지정된 좌석를 찾아가는 것이다. 관람석 사이를 비집

고 들어가는 것도 힘들고 통로도 계단으로 되어 있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엄니의 휠체어를 밀고 브라운 5번가 멀티 상영관 중 어느 한 상영관 입구에 다다르니 검표하는 직원이 친절하게 별도의 출입구를 열어 자리를 안내한다. 영화 내용은 엄니의 정서에 딱 맞을 것 같아 선택한 제목이다.

그 이름은......[만남의 광장]ㅎㅎㅎ

  영화는 삼청교육대로 끌려가다가 억세게 운이 나빠(?) 군용 트럭에서 굴러 떨어지는 남자 주인공(임창정)이 오지 마을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발에 채여 방향이 바뀌면서 시작된다.(이하 스토리 생략 ) 무더운 여름날 그냥 웃음으로 더위를 날려버리는 재미난 영화였다.

                                                                  

                                                                 


↗ 여름날 더위를 피해 강둑에 나가 별바라기를 하며 담았다. 돗자리 펴고 누워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엄니랑 옛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정을 넘길 때도 있어 이슬이 촉촉히 내린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여름 밤이면 마당에 멍

석을 펴고 밤하늘에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보며 달콤하고 쫀득쫀득한 옥수수를 길게 손으로 뜯어 먹으며 누

나들이랑 동요를 부르던 추억이 새록새록 난다.

                                                                  

    영화 줄거리에 졸지에 가짜 선생님 행세를 하게 된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오지 마을 이장님

처제(妻弟)와 맞선을 주선하게 된다. 맞선을 본 처제는 할머니에게 ' 느낌이 오질 않는다' 고 말하자

할머니(김수희) 왈~ (오른손 주먹을 쥐어 자신의 허벅지 사이를 안팍으로 오가며)

 " 야~ 느낌은 무슨 느낌~. 남자는 그저 몇번 들락날락해야 느낌을 알 수 있는 고야~. "

(탈렌트 김수희 특유의 억양으로 명대사가 흐르자 극장 안은 온통 웃음바다였다.ㅎㅎㅎ)

 

 흔히 어른들 말씀...^^

" 불끄면 다 똑같애! 똑같애, 그놈이 그놈이여 "

울엄니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린 시절 나에게 동

화처럼 들려주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이 이야

기는 어린 시절 엄니가 나에게 들려준 옛날이야

기 중 하나다.)

 

옛날에 아주 귀한 딸을 둔 아버지가 살고 있었

는데. 아버지는 딸의 혼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늘상 중매장이에게 딱지를 놓았단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가며 초조해진 딸이 하루는 아

버지에게 멋진 제안을 했다대. 딸은 아침 일찍

점심밥을 정성들여 싸 아버지에게 건네며 특별

히 당부를 했단다.

" 아버지 이 점심밥은 꼭 물 좋고 정자좋은 곳에

  가셔서 드셔야 해요. "

" 오냐~, 그러마. "

 아버지는 딸이 싸준 점심밥을 지고 길을 나셨는데 이곳 저곳 구경하며 점심 무렵이 되어가자 딸이 일러준 약속을 지키려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을 찾아 점심을 먹으려고 했지만 끝내 찾지  못하자 딸이 싸 준 점심밥을 먹지 못 하고 그냥 집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 어느 여름날 밤, 강둑산책로를 걷다가. 엄니가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실 때마다 강둑에 바람쏘이러 가곤 했다.


" 아버지 왜 밥을 잡숫지 않고 그냥 들고 오셨어요? "

" 네가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에서 먹으라고 했잖니.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곳은 없더구나. "

" 물이 좋으면 정자가 없고 정자가 좋으면 물이 없고. "

" 거봐요, 아버지. 그러니 웬만한 혼처가 들어오면 이젠 허락을 해 주세요. 아버지. "

 

  지금 생각하면 엄니는 어린 나(6남매)에게 중용(中庸)의 미덕을 깨우쳐주려고 하셨나보다. 14살 어린 나이에 3살 위인 아버지와 혼례를 치르고 '초야(初夜)'가 무서워 근 8개월을 버티셨단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할머니께서 무척 아껴주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주무시는 바로 윗방을 신방으로 꾸며주시고 할머니는 막내로 자란 아버지를 늘 단속(?) 하셨다고 한다. 엄니가 자꾸 초야를 미루니 아버지는 저녁만 먹으면 동네 학동들과 어울려 도방(글 공부하는 사랑방 같은 곳)에서 자고 새벽녘 들어오거나 아님 늦은 밤 들어와 할머니 곁에서 잠들곤 했다고 했다.ㅎㅎㅎ

 

  할머니는 아버지가 자꾸만 밖으로 도는 것을 눈치채고 어느 날 엄니를 따로 불러 '처음엔 다 그런 거란다'하시며 달래며 위안을 주시더란다. 결국 혼례 후 여덟 달(음 9월 스므날 혼례식을 올리고 이듬해 5월쯤)이 지나서야 초야를 치뤘다고 하셨다. 엄닌 초야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시며 애들한테 별소리를 다 한다고 하시며 웃으셨다. 실은 엄니가 기억력이 점차 떨어지면 마음속에 숨겨 둔 비밀이야기를 아주 잊어버릴까 봐 물어보았다.


2006년12월 초순, 엄니에게 안면 마비가 찾아왔다. 혹시 모를 위기감에 엄니만이 간직한 비밀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어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엄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엄니도 내가 이러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지 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셨지 싶다.

 

 

" 엄마~ 그때 느낌이 어땠어? "

" 어린 것이 뭘 아니! 그저 그런가보다 했지. "

" 그러고 나니 아버지가 달라졌어? "

" 그럼 달라지지.ㅎㅎ "

" 옛날 사람들은 참 좋았겠다. 그 좋은 시기에 혼

  례를 치르고 멋진 밤을 보낼 수 있었으니! "

" 음~ 아버지는 좋았겠다. 그 나이에 혼례를 치

  르고 각시랑 잠을 잘 수 있었으니. 요즘 사람들

  은 뭐람~ㅎㅎㅎ "

엄니가 ㅎㅎㅎ 하고 따라 웃으신다.

                                                                  





↗ 내 어린 시절 울엄니와 울아버지. 엄니는 내 바로 위 누나를 낳고 산후조리를 못 해 안면 마비가 왔다. 그 후유증으로 얼굴(특히 입) 한쪽이 약간 돌아갔다. 울 아버지는 내가 봐도 정말 멋지다.기골이 장대하여 중절모를 쓰고 나들이 할 때면 동네 사람들이 ㅇㅇ네 아버지는 멋쟁이라고 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들은 엄니가 직접 손으로 만들은 한복이다. 한복이 어쩜 저리도 잘 맞는지! 저고리 앞섶 동정 끝이 정확히 일치한다. 사극 드라마에서도 들죽날쭉 하던데. 음~ 울 아버지 멋쪄~! 나도 아버지만큼만 닮아 태어났다면 아직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을 텐데.ㅍㅎㅎ

 

 느낌~!!!

남여 관계에서 느낌이란 것이 과연 무엇을 말할까?

느낌이란 고정된 관념에서 때론 자신을 옭아매는 올가미로 작용하는 예도 적지 않다. 우리는 느낌이 좋다,란 말을 흔히 쓰면서도 정확한 개념을 정의하지 못한다. '느낌이 좋다'라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떠나서 그저 순간 마음에 비춰지는 일종의 상대적 자기만족이 아닐까? 도덕적 관념을 떠나서 가장 자유로운 남여 간의 느낌을 말한다면 외적인 모습에서 비춰지는 시각적 느낌에서 서로 일상에서 부대끼며 풍겨나오는 청각, 후각, 촉각 등 그 사람만이 지닌 향기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낌을 찾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완성된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닌 함께 그림을 그리듯 서로 상대에게 자신이 바라는 느낌을 하나하나 새롭게 불어넣고 조각하는 창조적인 작업이 아닐지 싶다.^^


           

  매미가 가로등 불빛을 보고 날아와 내 부드러운 허벅지에 앉아 느낌이 좋았는지 떠날 줄 몰랐다. 녀석 아직 순수한 내 몸을 마구 마구 감상하다니!  비나이다 바나이다 매미 날개 같은 옷을 걸치고 두레박을 타고 하늘을 내려와  나의 부드러운 속살을 마구마구 감상할 선녀를 주세효~ ㅋㅋㅋ

                                                                               


   2007년 8월 20일(일) 맑음(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 봄내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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