츌처: 유투브


출처: 유투브


은유는 편법의 미학이다

 

 

가쁜 순간을 보내고 난 후

서린 입김처럼

그렇게 운무가 눈앞을 가린 날

강물은 말없이 넓고

넉넉하고 따뜻하여

나는 그만 울고 말았네

 

담쟁이 넝쿨 칭칭 담을 에워싸 듯

당신이 내려준 운명의 끈을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부둥켜 안았네

열망이 간절해서 슬프고

세월의 무게가 버거워서 서러운

그 찬란한 눈물방울로

물빛 따라 짙어가는 울창한 숲길에

황백의 밤꽃 빽빽하게 피웠네

 

밤나무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네 그루…

 

―곽혜란 시, 강가에 밤꽃 피우고 [전문]

 

이를테면 은유는 직선거리를 나두고 돌아가는 방법이다. 길을 갈 때 더러운 것을 피해가듯 하고자하는 말을 드러내놓고 하기에는 상대방에 혐오감을 주거나 또는 부끄러운 말을 하기가 쑥스러울 때 하고자하는 말을 돌려서 할 수 있는 언어가 은유 방법의 적임이다.

밤꽃의 의미를 알고 부연해서 시를 썼다면 [강가에 밤꽃 피우고]라는 제목 자체만 보더라도 남녀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은유법을 도입했기 때문에 자세히 시를 꿰뚫지 않으면 뜻도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어법이다.

 

가쁜 순간을 보내고 난 후

서린 입김처럼

그렇게 운무가 눈앞을 가린 날

 

가쁜 순간을 보내고 난 후는 남녀의 관계를 끝낸 후 황홀함과 피곤함이 겹칠 때 젖어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흐름을 적절하게 안개 또는 구름을 개입시켜 능숙한 솜씨로 경험을 노출시킨 공감대의 산물이다. 성을 드러내놓고 노골적으로 쓴다면 읽은 독자들도 낯 뜨거운 장면에 당혹해 할 수 있다. 이것을 방지하고 음미할 수 있는 은유법의 매력이다.

[가쁜 순간]은 언어의 짜임새가 적절한 표현의 연결고리이다. 앞에 도입 부분부터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참 쑥스러웠으리라. [가쁜 순간]이 이 시에 안성맞춤이다. 섹스라고 하기도 뭣하지 않은가. 우리말을 갖다 집어넣어도 부자연스럽다. 시인의 타고난 끼라할까. 재능이다.

 

강물은 말없이 넓고/넉넉하고 따뜻하여/나는 그만 울고 말았네

 

2연에서는 모든 것을 맡기고 조선여인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의 고정관념은 지조이다. 습관화 되어버린 타성은 한국의 고전적 인습이다. 영육까지 맡기고 평상심으로 돌아가니 평안함이 믿음으로 영글고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나도록 희열에 감사한다.

 

담쟁이 넝쿨 칭칭 담을 에워싸 듯

당신이 내려준 운명의 끈을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부둥켜 안았네

 

3연을 보라. 2연에서 사랑을 바치고 마음까지 다 내준 상태에도 꺼지지 않는 의욕까지 불태우며 담쟁이 넝쿨에 비유하여 매달리는 여자의 바침을 운명적으로 이끌고 가 사랑을 전달하는 의지가 적나라하게 힘을 준다.

 

열망이 간절해서 슬프고

세월의 무게가 버거워서 서러운

그 찬란한 눈물방울로

 

사랑은 해도 항상 슬프다. 사랑의 바람은 간절해서 사랑을 줄기차게 해도 못 다한 사랑이 있다. 사랑은 주어도 주어도 부족하고, 사랑은 받아도 받아도 모자란다는 말이 있다. 안달하며 살겠끔 만들어진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활활 타오르다 사그라지는 장작불과 같다. 그래서 항상 힘이 들게 버거운 생활을 한다. 믿음이 강하면 그만큼 사랑은 신뢰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정신의 줄기가 없는 것인가. 사랑에 믿음이 부족하다. 사랑의 무게는 믿음이다. 저울에 달수는 없지만 시인에게서 사랑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물빛 따라 짙어가는 울창한 숲길에

황백의 밤꽃 빽빽하게 피웠네

 

관계를 나눈 자리는 물이 흐르는 울창한 숲에서 열정으로 이루어졌다. 사랑이 밤나무 숲에 퍼져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관계를 무수히 가졌다면 지나친 것일까. 필자도 꽃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밤꽃이 황백의 꽃이라면 남녀관계의 분비물을 표현하였으리라. 이런 정황을 살펴보건대 시인은 자기의 경험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밤꽃의 상징화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성교에서 열정적으로 뜨겁게 뜨겁게 사랑을 나눈 것을, 빽빽하다는 표현으로 의미하는 것이 상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밤나무/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네 그루…

 

[강가에 밤꽃 피우고]의 시는 시인이 여행을 하다가 강변 등에 밤나무 군락지를 보고 꽃의 의미를 알고 대비시켜 착상한 작품으로 보고 싶다. 밤꽃은 남자 생식기의 정액 냄새를 의미한다. 시인은 밤꽃에 관한 이야기를 상징화하고자 은유법을 도입시켜 감추어 두고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도록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 수준 높은 은유의 맛을 적절히 잘 소화해 냈다. 이 시를 쓴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세부적인 쓰고자한 의도의 표현은 모르지만 여성이 성관계를 묘사한 작품을 내놓기는 쉽지가 않았으리라. 필자가 판단한 짧은 평을 대신해서 용기를 찬양한다.

 

출처: http://blog.daum.net/gawoul/16140352

 

 



daichung 의 강원사랑

[사진인을 찾아서⑫] 조문호론 '사람이다'

[오마이뉴스 글:이광수, 편집:김지현]


  사진이 보여주는 모양새를 서로 나눠 보고, 그 안에 담긴 뜻을 서로 헤아려 보고, 그 안에서 내 세계를 그려보고, 그로부터 지적 유희를 즐기고, 그것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그런 평가가 있었으면 한다. 그 안에는 주류도 없고, 패거리도 없는 그런 평가가 있었으면 한다. 재미있게 말하자면, 이 땅에 숨겨진 고수를 찾아서 놀이를 하자는 것이다.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허물고, 패거리도 없고 갑과 을의 관계도 없는 대동의 사진 세계에서 한 세상 멋지게 놀 수 있는 이 땅의 고수를 찾는 놀이다. 2016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⑫ '조문호론'은 12월 10일부터 12월 20일까지 전시된다. - 기자 말.


  사진가 조문호는 올해 칠순이니 얼추 잡았을 때 인생 40여 년 가까이를 사진판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굴지의 사진 저널의 편집장이나 심사위원 등 웬만한 직함도 몇 가져보기도 했고, 위로는 사진계 1세대와 아래로는 사진계 2세대에 낀 세대의 사진가이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 사람 자체도 무골호인이라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술을 좋아하고, 형식이나 의례를 따지지 않아 그를 좋아하는 사진계 선후배가 들끓는다.

  그런데 그가 40년 가까이 가진 사진에 대한 태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미지가 그저 그렇고, 독창성이 어떻고, 그래서 직품이라 하기에는 어쩌고 하는 말을 할 뿐, 그가 사진으로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그것을 배우려고 하는 이는 없다.

  어떤 인터뷰에서 조문호의 아내이자 동지인 사진가 정영신은 그를 이렇게 말 한다. "사람에 대해서는 포기라는 게 없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믿는다. 정말 어떤 일을 하던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진가... 이 말보다 그를 더 잘 묘사할 수 있는 말을 난, 찾지 못했다.


1. 사진, 실존으로서의 행위

  그는 사진의 생명력은 널리 공유돼 소통되는 데 쓰임새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진가다. 자신의 사진이 여러 군데 많이 걸리고, 그 사진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통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작품값을 비싸게 책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사진을 찍어서 높은 가격으로 한두 점만 팔려 돈을 벌 수 있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좀 더 자주 좀 더 많이 보고 즐겼으면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진으로 작품을 만들거나, 사진으로 예술을 하기 위해 창의적 발상을 하거나 독창성을 계발하려 하거나 깊은 관념을 집어넣어 어렵게 해석하려 하거나 하는 따위의 작업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도,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두메산골 사람들, 2003
ⓒ 조문호
 두메산골 사람들, 2003
ⓒ 조문호
 두메산골 사람들, 2003
ⓒ 조문호
  그가 인물 사진(portrait)을 주로 찍는 것은 이렇듯 사진 찍는 일을 실존적으로 행위 하는 결과다. 그의 <두메산골 사람들>은 이러한 사진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애초에 그는 환경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강원도 동강에를 갔다.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처음 계획은 동강 댐 건설에 반대하면서 그 일을 다큐멘터리로 작업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일을 위해 정선에 머물렀으나, 정작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곳 두메산골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아후 그는 그곳에 사는 두메산골 사람들을 찍기 위해 정선에서 6년간 눌러앉아 그곳 사람들을 찍었다. 사회 문제로 출발하였으나 결국 돌아온 것은 사람에게로 이었으니, '사람'은 사진가 조문호에게 지남철에 끌리는 쇳가루다.

  그가 사람 자체에 매료당한다는 것은 그의 사진 스타일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널리 하는 내러티브 만들기 같은 것을 그리 중요하게 신경 쓰지 않는다. 원경도 잡고, 중경도 잡고 근경도 잡으면서 중간 중간에 이야기를 연결시켜주는 오브제 같은 것도 집어넣는 것이 대개들 하는 방식인데, 그는 그런 방식에 별로 집중하지 않는다.

오로지 꽂히는 것은 인물뿐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극(劇)이 아니고 사실(事實)이기 때문이다. 농부가 도리깨질을 하고 있으면 그냥 그 도리깨질 하는 그 자리를 찍어 보여주면 될 일이다. 화전민이 밭을 태우면 그냥 그 불 탄 밭에서 그를 찍을 뿐이다. 방도 부엌도 마루도 모두 있는 그대로다.

  그곳에서 일하며 사는 사람들 모습만 보여주면 되지, 굳이 사진가가 어떤 이야기를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 더 보태거나 뺄 필요도 없고, 순서를 짤 필요도 없다. 기록자로서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자 해서이기도 하고, 사진가의 존재보다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그들 개개를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그의 사진 찍는 행위는 예술이나 진보운동과 같은 어떤 본질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가 조문호가 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의 실존적 행위는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하는 행위다.

  행위자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다. 그런데 사진가 조문호의 그러한 실존 행위는 그를 소유의 존재로서 멀리 떨어지게 했다. 사람과의 소통과 그 안에서의 능동적 주체성을 찾으면서 사진을 하다 보니 먹고 사는 문제에 소홀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래서 일곱 살 박이 아들의 눈물을 가슴에 묻으면서 가난에 몸서리치면서 아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에서 그가 남긴 말 한 마디가 가슴을 후빈다.

'사람을 생각한다면서 가족을 등한시 하는 것에 대한 고뇌가 평생 무겁습니다.'

2. 사람, 세계의 중심

  사람들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것이, 사진가 조문호는 영락없는 예술가다. 그 누구한테도 규제받지 않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는 쓴 소리를 마구 던지는, 돈은 없지만 '가오'는 있는, 그런 가난한 예술가 말이다.

조문호는 비록 한 평생 물질적으로는 가난하고 힘들게 살면서 허기진 뭔가를 그 인사동 사람들을 통해 메웠다. 그 인사동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할 때, 그가 카메라를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한둘씩 세상을 떠나 그 때 그 사람들이 없어져 갈 때 그들과 나눴던사람 냄새를 보존하기 위해 그들을 사진으로 박제해두고 싶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지천으로 깔렸던 그 정(情)과 우애를 담아놓고 싶었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어 기억하게 하고, 가난한 예술인들은 사진에 남아 서로를 기억하도록 하고, 그래서 모두 '소풍' 마치고 하늘로 돌아가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나누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조문호, 민주 항쟁, 1987
ⓒ 조문호
 조문호, 민주 항쟁, 1987
ⓒ 조문호
 조문호, 민주 항쟁, 1987
ⓒ 조문호
 조문호, 민주 항쟁, 1987
ⓒ 조문호
 조문호, 민주 항쟁, 1987
ⓒ 조문호
  사진가 조문호가 사진 평생을 사람에 꽂혀 카메라를 처음 들었던 때부터 사람을 중심으로 찍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1980년대의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그리 하였듯, 사회 비판에 목소리를 냈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을 치열하게 작업하기도 했고, 사라져 가는 강원도의 산하를 아름답게 남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꼭 사람이었다. 그 시절 데모하는 현장을 많은 사진가들이 찍어댔지만, 조문호만큼 사람 한 사람 인물을 슬프면서도 재밌고, 웃기지만 뭉클한 사람 사진을 많이 찍은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방독면을 쓰고 일에 지쳐 기대어 있는 청소부 아저씨, 매운 최루가스에 콧구멍을 종이로 틀어막은 근엄한 수녀님과 경찰 젊은이, 박종철 열사의 사진을 가슴에 달고 십자가를 한 손에 높이 들며 연신 눈물을 흘리는 명동성당 앞의 '박종철  어머니', 역촌동 가는 버스에서 창문을 열고 힘껏 박수를 치면서 시위 부대를 격려하는, 이를 앙다문 어떤 아저씨... 그는 민주화운동 현장에서도 보이는 것이 사람밖에 없는 모양이다. 사람에 웃고 울고, 천상 사람 앓이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팔자일 것이다.

  역시나 그랬다. 그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사진가 최민식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젊었을 때 음악을 좋아해서 고향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마을의 정미소를 개조해 음악 감상실을 차려 음악에 흠뻑 빠져 살다가 부산으로 올라가 남포동에서 국악 주점을 하였다.

그때 사진가 최민식과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찍은 최민식의 사진에 조문호는 완전히 빠져들었고, 가산을 거덜 내는 대가도 치렀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며 낮은 자들의 삶을 목도하는 도리를 최민식으로부터 배웠다. 그렇지만 사진 찍는 스타일은 최민식과는 많이 다르다. 최민식은 대상에 대해 사진가가 개입하지 않는 채 사진을 찍는다. 소위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것이다.

그렇지만 조문호는 결정적 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상의 움직임을 고정시키고 시선을 렌즈에 고정하도록 찍는다. 눈동자란 마음의 거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이미지를 인위적으로 자르거나 후보정을 과하게 하는 따위 또한 하지 않는다. 사진에 나오는 지금은 별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나중에는 다 역사를 보여주는 기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사동 사람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다 그러한 그의 사람과 사진에 대한 관점이 깊게 반영된 것들이다. 천상병, 김영수, 신경림, 김언경, 심우성, 공윤희... 그들이 박힌 저 사진은 그들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이 그토록 웃고 울고 떠들었던 술집, 찻집, 골목, 담벼락, 거리들이 있다.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루었고, 그 중심에 사람이 있었는데 ... 지금은 다 사라져버렸다. 조문호의 사진은 그 슬픔을 머금는다.

 인사동 사람들, 1985~2013 (신경림)
ⓒ 조문호
 인사동 사람들, 1985~2013 (신우성)
ⓒ 조문호
 인사동 사람들, 1985~2013 (김언경)
ⓒ 조문호
 인사동 사람들, 1985~2013 (무세중)
ⓒ 조문호
 인사동 사람들, 1985~2013 (천상병)
ⓒ 조문호
사진가 조문호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사진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대해 날선 비판을 거침없이 하는 어른이다. 2015년도 사진계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제2회 최민식 사진상 부정심사 문제 때도 조문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사진가라면 그 거대 권력 앞에서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는 평소에 자신에게 많은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원로 사진가 선배들에게조차도 거리낌 없이 비판의 메스를 가했다. 한국의 사진계가 인맥과 학맥에 휘둘려 그 썩고 문드러짐이 극에 달했고, 그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는데 그렇데 된 데에는 당신들 원로 사진가들이 자기 제자들을 챙기기만 하지 옳지 못한 일을 한 데에 대해 따끔하게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지 못해서였기 때문이라는 일갈이다. 가히 죽비 소리다.

그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진계가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금도를 지켜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것이 최민식 사진상이라면 '사람'이 그 사진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적어도 최민식 사진을 폄하하는 자들이 '최민식'이라는 이름 석 자를 더럽히는 짓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 홍보에 혈안이 된 협성재단은 최민식의 이름을 빌어 최민식 정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저 유명한 사진가에게 상을 주기로 운영위원장과 짜고 부정한 짓을 했음이 드러났다. 사진가란 사람을 존중하고, 작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최민식 정신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음에 대해 사진가 조문호는 분노한 것이다. 일부 심사위원은 그 돈과 권력에 노예가 되어 사진가에게는 심장과 같은 '눈'을 스스로 파버린 것에 대해 그가 분개한 것이다.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말이다.

3. 따뜻함, 대상과의 거리

조문호 사진이 다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사진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 아마 이구동성으로, '따뜻하다'라고 하지 않을까? <청량리 588>은 그 따뜻함이 가장 잘 드러난, 사진가 조문호의 첫 작품이자 최고의 작품이다. <청량리 588>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83년부터 1988년까지 그곳에서 아예 눌러 붙어 살면서 작업한 서울시 전농동 홍등가에 대한 기록이다.

사진을 찬찬히 보고 있자면 느낌이 아련해진다. 언젠가 만난 적 있었던 듯한, 그 아련한 우리들의 과거 그 시절에 내 친구였고 내 누이였던 그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청량리 588 안에서 사진가 조문호는 직업여성들의 행위를 보지 않았고, 그 시공간 속에 살던 사람을 봤기 때문이다. 사진가가 따뜻해서가 아니고 그에게 사진을 찍히는 그 대상들이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따뜻해진 것은 사진가가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따뜻한 사진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얼마나 메워지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돈으로도 힘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 그것밖에 없다. 그래서 사진가 조문호의 사진에는 겉모습이 찍히는 것이 아니고, 속마음이 찍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자들은 그 마음을 보고서 감동을 받는 것이다.

 인사동 사람들, 청량리 588, 1985
ⓒ 조문호
 인사동 사람들, 청량리 588, 1985
ⓒ 조문호
좋은 사진은 사진가와 대상이 교감에서 나온다는 그 명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이란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이란 순간적 찰나를 포착하는 것이 아닌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이 이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이다.

그가 처음에 이곳을 찍으러 갔을 때 그는 사회적 공간성의 의미로 이곳을 찍고자 했다. 그러다가,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서 '사람'을 찾아버렸다. 그래서 그는 소외라는 이념이나 588이라는 공간의 사회사적 의미를 말하지 않고, 그 안에서 우리와 똑같이 돈 벌면서 웃고 울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의 사진집은 몸을 팔아 돈을 버는 그 여인들의 행위를 사회악으로 규정해서 일소의 대상으로 삼는 정부의 시책에 저항하는 몸짓인 셈이다. 그들은 윤리를 타락시키는 '윤락'녀가 아닐 뿐더러 우리가 구원해줘야 할 '악의 무리'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누이였을 뿐이다. 그것을 사진가 조문호는 사진으로 말을 한 것이다.

 동자동 쪽방 사람들, 2016
ⓒ 조문호
 동자동 쪽방 사람들, 2016
ⓒ 조문호
지금 사진가 조문호는 70 나이에 또 하나의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다. 2016년 추석 무렵 그는 홈리스들이 사는 서울 동자동 쪽방촌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사진 행위를 통해 그들에게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는 자존감을 갖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곳은 지금은 다 잃어버린 정(情)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들과 한 식구(食口)가 되었다. 얼마 후 동료 사진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서 작은 사진전을 열고, 사진을 한 장씩 그들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다. 사진이 잘 나오거나 못 나오거나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못 나왔다고 사진을 삭제해버리면 그 찍힌 사람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 돼버리기 때문에 차마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이 사진을 보면서 스스로 누군가로부터 사람대접을 받고 있다는 거, 그거 하나만 느끼게 되면 더 이상의 바람이 없다. 그는 '동자동 사람들' 작업이 사진가로서 하는 마지막 작업이 될 것이라 했다.

그렇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그 사람으로부터 섬김을 받으니 힘이 생기고 에너지가 충만해진다. 그 작은 콤팩트 카메라 들 힘만 있으면 그는 또 어딘가 힘없고 무시당하지만 사람 사는 맛이 있는 그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리라. 그리고 그들과 함께 웃고, 울고, 나누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출처: 오마이 뉴스






 

    출처: 유투브  (약 16분 동안 이어지는 영상입니다. 시간이 없는 분은 아래 원문을 읽어보세요.^^)



* 가난한 삶 * (법정스님 생전 특강)

  신앙생활은 끝없는 복습이다. 신앙생활에는 예습이 없다. 하루하루 정진하고 익히는 복습이다. 영적인 체험은 복습의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 종교적인 체험이란 하루하루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복습의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 복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어제의 정진은 어제로써 끝나고, 오늘은 오늘대로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한다. '사바세계'가 무슨 뜻인가?  참고 견디어 나가는 세상이란 뜻이다.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거기에 삶의 묘미가 있다.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된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삶의 묘미는 사라진다. 

  '보왕삼매론'은 말하고 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병고로서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병을 앓을 때 신음만 하지 말고 그 병의 의미를 터득하라는 말이다. 몸이 건강했을 때 생각해보지 못했든 일들을 병을 앓을 때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내가 하루 하루를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나는 얼마나 충만하게 살아왔는가?  스스로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허약한가? 옛날, 농사를 지으며 흙을 딛고 살던 시절에는 흙으로부터 많은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흙의 교훈을 몸소 익힐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허약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가진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으며 여러 가지 편리한 시설 속에 살고 있는데 체력과 의지력은 자꾸 떨어진다. 그것은 흙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대지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허약해지는 것이다.

  이 세상을 고해라고 하지 않는가. 고통의 바다라고, 사바세계가 바로 그 뜻이다. 우리가 이 고해의 세상, 사바세계를 살아가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어려운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떤 집안을 놓고 보더라도 밝은 면도 있고, 어두운 면도 있다. 삶의 곤란이 없으면 자만심이 넘치게 된다. 잘난 체하고 남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게 되고 마음이 사치해진다. 그래서 보왕삼매론은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일깨우고 있다. 또한 근심과 곤란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자신의 근심과 걱정을  밖에서 오는 귀찮은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삶의 과정으로 숙제로 생각해야 한다. 자신에게 어떤 걱정과 근심거리가 있다면 회피해서는 안 되고 그걸 딛고 일어서야 한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이런 불행이 닥치는가? 이것을 안으로 살피고 딛고 일어서야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이 세상에 나올 때에 남이 넘겨다 볼 수 없는 짐을 지고 있다. 그것이 그의 인생이다. 따라서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있다고 회피해서는 안 된다. 그 어려움을 통해서 그걸 딛고 일어서라는 우주의 소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인이 말씀하기를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고 했다. 장애가 없는 건 어디에도 없다. 한평생 세상을 살다보면 무수한 장애물이 있다. 우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헤치고 왔는가, 그러므로 인생이란 일종의 장애물 경주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러한 경주이다.  해탈이란 무엇인가?  그런 장애물을 넘어서 안으로나 밖으로나 자유로워진 상태, 안팎으로 홀가분해진 상태, 이것을 해탈이라 부른다. 그러니 장애라는 것은 해탈에 이르는 디딤돌이요, 그 발판이다. 그와 같은 장애가 없으면 해탈도 있을 수 없다. 

  또 성인은 말씀하기를  작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고 하셨다. 작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행복의 비결은 결코 크고 많은 데 있지 않다. 오늘날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모두가 입만 열면 경제 타령만 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경제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그런 일에만 치우쳐 있다. 오늘날 경제가 어려운 것은 일찍이 우리가 큰 그릇을 만들어 놓지 않고 욕심껏 담기만 하려고 한 결과이다. 이 불황은 우리들 마음이 그만큼 빈약하다는 증거이다. 그릇을 키우려면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지 말고  마음을 닦아야 한다. 개체를 넘어서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소욕지족'  
  적은 것으로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넉넉해진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꽃이 있다. 각자 그 꽃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옛 성인이 말했듯이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 꽃을 피워낼 수 없다. 하나의 씨앗이 움트기 위해서는 흙 속에 묻혀서 참고 견디어내는 그와 같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바세계, 참고 견디는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에 감추어진 삶의 묘미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사바세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기 바란다. 극락도, 지옥도 아닌 사바세계, 참고 견딜만한 세상, 여기에 삶의 묘미가 있다.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전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막다른 길이라고 낙담해서는 안 된다. 우리 전 생애의 과정에서 볼 때 그것은 마땅히 통과해야 할 하나의 관문이다. 한 생애를 두고 그런 관문이 한두 개 있는 것이 아니다. 몇 고비가 있다. 그와 같은 관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정신적인 연륜이 쌓여간다. 육체적인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어려운 관문을 거칠 때마다 정신적인 나이가 쌓여 가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눈이 열린다. 그래야 인간이 성숙해진다. 눈앞 일만 가지고 너무 이해관계를 따져서는 안 된다. 전 생애의 과정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고뇌에서 벗어나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행복은 큰 데 있지 않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조그만 데 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자작나무의 잎에도 행복은 깃들어 있고, 벼랑 위에 피어있는 한 무더기의 진달래 꽃 속을 통해서도 하루에 일용할 정신적인 양식을 얻을 수 있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 속에 행복의 씨앗이 깃들어있다. 빈 마음으로 그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가 필요할 때 하나로써 만족해야지, 둘을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건 허욕이다. 그러니 하나로써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그 하나 속에 있다. 둘을 얻게 되면 행복이 희석되어서 그 하나마저도 마침내 잃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그러다 언제 잘 살겠느냐고 하겠지만 이런 어려운 시대에는 작고 적은 것으로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죄악 중에서도 탐욕보다 더 큰 죄악은 없고, 재앙 중에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이 없으며, 허물 중에서도 욕망을 다 채우려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죄악이라는 게 무엇인가? 분수에 지나친 욕망인 탐욕에서 온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탐욕이 생사윤회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탐욕은 자기 분수 밖의 욕심이다. 노자는 뒤이어서 말한다. 따라서 넉넉할 줄 알면 항상 풍족하다. 결국은 만족하면서 살라는 가르침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일도, 어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함께 일뿐이다. 한 생애를 통해서 어려움만 지속된다면 누가 그것을 감내하겠는가? 다 도중에 하차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이 한때이다. 좋은 일도 늘 지속되지 않는다. 좋은 일만 있다면 사람이 오만해진다. 어려울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라. 덜 가지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인간관계도 더욱 살뜰히 챙겨야 한다. 검소하고 작은 것으로서 기쁨을 느껴라.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어 보라. 이런 어려운 시기를 당했을 때, 도대체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직위나 돈이나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서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 만족할 줄 모르고 마음이 불안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의 한 부분이다. 저마다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전체의 한 부분이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한 부분이다. 세상이란 말과 사회라는 말은 추상적인 용어이다. 구체적으로 살고 있는 개개인의 구체적인 사회이고 현실이다. 우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혈연이든 혈연이 아니든 관계 속에서 서로 얽히고 설켜서 이루어진다. 그것이 우리 존재이다.

  따라서 한 마음이 청정하면 온 법계가 청정해진다는 교훈이 있다. 한 송이 꽃이 피어나면 수천, 수만 송이의 꽃이 잇따라 피어난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을 추상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한 집안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자식 한 사람의 마음이 지극히 평온하면 메아리가 되어 모든 식구가 다 평온해진다. 그러나 가정의 중심인 어머니의 마음이 불안하다고 해 보라, 그 마음은 그대로 아버지한테 전달되고 또 자식들에게도 옮겨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 가지에 이상이 생기면  나무 전체에 이상이 생기게 마련이다. 


 편집 겸 옮긴이:meister5959@hanmail.net

※ 요즘 우리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보고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직접 자판으로 옮겨 보았습니다.  

    법정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벌써 만 7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립습니다.

2016년 12월 07일(수) 어지럽고 우울한 대한민국 사회만큼이나 하늘도 재빛으로 가득한 날



 


"시를 너무 어렵게 쓰니 팔리지 않지"

[인터뷰] 꽃 시 220여 편 묶어 낸 나태주 시인과 <별처럼 꽃처럼>

16.11.24 11:15  최종 업데이트 16.11.24 11:15l


    

지난 6일 풀꽃문학관(충남 공주시)에 갔다. 꽃 시 220여 편을 모아 최근 <별처럼 꽃처럼>(푸른길 펴냄)이란 시집을 낸 나태주 시인(1945~)을 뵙고 싶어서였다. 요즘에는 책도 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국에 답답하다. 뉴스로만 눈이 간다. 당연하다. 여하간 인터뷰 가는 마음이 복잡하기만 했다.


 책표지.
 책표지.
ⓒ (주)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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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몇 년 전 가을 '와우북 페스티벌' 한 부대 행사에서 잠깐 뵌 적이 있다. 당시 함께 만났던 지인이 시인이 관장으로 있는 공주문화원과 풀꽃문학관에 함께 가자고 몇 번 제안했다. 그런데 번번이 함께 갈 사정이 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워낙 유명하나 잘 알지 못하는 분이라 마음이 썩 내키지 않기도 했다.

나태주 시인은 1971년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서울신문), 등단했다. 지금은 등단할 수 있는 방법도 많고, 신춘문예 당선자수도 많지만 당시에는 딱 여섯 사람만 당선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별처럼 꽃처럼>은 꽃 좋아한다고 동생이 내게 선물한 책이다. 저자 프로필을 보니, 현재 37권의 시집과 13권의 산문집, 2권의 동화집, 여러 권의 시선집과 시전집을 냈다. 꽃 시만 간추려 낸 책이라고 하지만 왜 비슷비슷한 책을 자꾸 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궁금함을 못 참고 출판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

"선생님의 책을 너무 많이 내는 것 아닌가? 묻기도 해요. 저희에게 중요한 필자지만, 선생님이 공유 정신이 강해서 쉽게 허락하시다보니 다른 출판사에서도 많이 냈거든요. 또, 아무리 좋아도 흔하면 식상함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아 우려도 되고. 그런데 주신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미소 짓게 되고, 그래서 어떤 믿음(글이 주는 위로와 힘)도 생기고. 결국 '아, 이게 나태주 선생님의 글 매력이구나. 독자들도 그렇겠구나!'까지 이르게 되죠. 그래서 이렇게 다시 내게 되고요. 그 책이 그 책 같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자세히 보면 책마다 나름의 특성이 있어요. 그걸 알아채는 독자들은 반가울 것이고요. 그리고 한번 쓰기 시작하면 쉬지 않고 10시간 넘게 쓰시는 등 여전히 많은 글을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독자들이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책들이 자꾸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가 유독 마음을 잡아끌었다. 내 보잘 것 없는 무명의 삶을 응원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풀꽃·3' 전문)

 나태주 시인(2016.11.6. 공주 풀꽃문학관)
 나태주 시인(2016.11.6. 공주 풀꽃문학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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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마음에 두고 있던 풀꽃문학관에 가보자 생각했다. 마음이 설렜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찾게 된 풀꽃문학관이었다.

오전 7시 무렵에 출발, 10시 조금 지나 만나 오후 2시 무렵 헤어졌다. 4시간 남짓,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시간이다. 한편의 글로 다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풍금을 치며 풀꽃과 오빠생각 등 노래 몇 곡을 불러주시기도 했다. 그중 이번에 출간한 시집과 관련된 이야기만을 전한다.

- 참 많은 시를 써오셨는데요. 젊은 시절 시 쓰기와 나이 들어서 시 쓰기, 차이가 있나요?
"젊은 시절 시에는 앞서 쓴 누군가의 시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같은 표현이 들어가거나 언급되진 않지만 어딘가 비슷한. 좋아하는 시인이거나 좋아하는 시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는 거라 모방이나 표절이라고 할 수 없지만 위작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요. 여하간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죠. 아주 유명한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도 자주 보게 되는데(유명한 시인의 고백을 예로 들었다)...

<별처럼 꽃처럼>으로 이야기할게요. 최근에 쓴 시는 앞에, 뒤로 갈수록 오래전에 쓴 시가 나옵니다. 초기에 쓴 시중에는 시 형식을 잘 갖춘 시들이 많아요. 하지만 누군가 쓴 시 영향을 많이 받은 것들이라 어떤 면에서 내 것이라 말하기 좀 뭣하기도 하죠. 앞으로 올수록 시가 좀 허술하고 간결해지는데, 나만의 뭔가가 훨씬 많이 담겨 있어서 온전한 내 시라고 할 수 있죠.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영향 그에 머물러 있지 말고 깨고 나와 스스로 성장하려는 노력, 그러니까 자신만의 무엇을 담아내는 자신과의 싸움을 끝없이 해야 한다는 겁니다."

덧붙이면, 책은 출간 과정에서 제목을 고민하며 쓴 시로 시작해 신춘문예 당선 이전인 1970년에 쓴 '감꽃'으로 끝난다. 뒤에서부터 쓴 순으로 실었다. 그러니 이 책은 뒤에서 앞으로 읽어나가며 지난 40여 년 수많은 꽃들을 시로 전해온 풀꽃 시인의 꽃에 대한 변화나 흐름을 느끼거나, 삶의 연륜 따라 달라지는 표현과 느낌을 의식하며 읽으면 훨씬 좋겠다 싶다.

- 얼마 전 "지난 몇 년 시집 코너를 없앤 서점들이 많았다. 최근 시집 코너를 다시 만드는 서점들이 늘고 있어서 다행이다"고 한 서점 관계자에게 들었는데요. 코너를 없앨 만큼 시집이 그렇게 안 팔리나요?
"그래요. 맞아요. 시인들이 시를 너무 어렵게 쓰니까 독자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죠. 시인 같지 않은 시인들이 많은 것도 문제고. 이런 말은 좀 뭣하기도 한데, 시인으로 등단시켜준다고 시인을 꿈꾸는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그 대가로 시를 써서 등단시키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도 있으니 문제죠.

글 쓰는 것보다, 글을 쓴 덕분에 얻게 된 것들로 문학인들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나, 상 같은 것을 주는 그런 권한이나 명예, 감투에 욕심 부리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들끼리 패를 지어 등단시키거나 상을 주는 그런 결과로 나오는 시집들도 있고... 독자들이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어요. 큰일이죠. 정말로 이젠 맑은 물을 지키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 모란꽃으로 표현한 방송인 이금희씨를 비롯하여 몇 사람에게 준 꽃 시들이 인상 깊은 시집이기도 해요. 시로 표현된 사람들은 선생님께 어떤 존재들인가요?
"풀꽃문학관 행사 진행자로 이금희씨를 초대했습니다. 수고비를 드렸는데, 자기는 받지 않아도 된다. 받을 수 없다. 풀꽃문학관에 써 달라며 거절하더군요. 저라고 쓸 수 있나요. 내 뜻을 말했더니 그럼 좀 더 가치 있는데 써줬으면 하는 겁니다. 결국 이금희씨와 뜻을 맞춰 훨씬 유용하게 쓰일 다섯 분께 나눠드렸습니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생각도 깊고, 참 아름다운 분이란 생각에 시까지 쓰게 됐고. 이름을 밝힌 사람들은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기보다 나름 아름답고 어여쁜 분들입니다. 내게 정말 특별한 분은 꼭꼭 숨겨놓고 혼자 보고, 생각하고, 시로 쓰죠."

기사 분량 때문에 해주신 이야기 반절조차 전하지 못함이 끝내 아쉽다. 덧붙이면, 나태주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시를 들려주면 "아하! 그 시 쓴 사람!"이라며 감탄할 정도로 우리에게 유명한 '풀꽃'은 원래 3편으로 된 시, 그 첫 번째 시란다. 그러니까 '풀꽃'의 원래 제목은 '풀꽃·1'인 것이다. 이 시집에는 원래 제목으로 실려 있다. '풀꽃·2', '풀꽃·3'과 함께.

4시간 가량 같은 꽃들을 보고, 향기를 맡고 감탄하면서, 꽃과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꽃들이 시인에게서 제대로 인정받는구나. 제대로 사랑받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풀꽃문학관 일부(2016.11.6)
 풀꽃문학관 일부(2016.11.6)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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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쓰신 워낙 많은 시들 중에는 습관처럼 나온 시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 생각이 죄송스러웠다. '삶 자체가 시구나. 시에 삶이 들어 있구나. 가슴으로 쓰시는 거구나. 이래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구나!'란 생각과 함께.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도 실감했다. 특히 좋은 사람을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음은 매우 소중한 선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으로 허덕이며 살아낸다고 시인의 그 유명한 풀꽃이란 시조차 모르던 남편도 함께 한 몇 시간이 좋았나 보다. 그날 사인 받아온 책을 가끔 펼쳐보곤 하는 것이.





             ♡ 법정스님이 남기고 가신 아름다운 말씀 ♡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 무소유-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 홀로 사는 즐거움 -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 오두막 편지-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 물소리 바람소리-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 산방한담 -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 홀로 사는 즐거움 -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 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 오두막 편지-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 산에는 꽃이 피네 -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산에는 꽃이피네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 버리고 떠나기-

 

메모 : .


  자기 관리/법정


  가을이 짙어진다.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개울가에는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성급한 나뭇잎들은 서릿바람에 우수수 무너져내린다. 나는 올 가을에 하려고 예정했던 일들을 미룬 채 이 가을을 무료히 보내고 있다.

  무장공비 침투로 영동지방 일대는 어디라 할 것 없이 긴장되어 뒤숭숭하다.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을 못 막는다'는 옛말이 새롭게 들리는 요즘의 시국이다. 내 거처는 작전 지역과는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그래도 같은 영동지방이라 긴장된 분위기를 나우어 갖지 않을 수 없다.

  길목마다 바리게이트를 치고 군인과 경찰들이 검문검색을 하는 바람에 될 수 있는 한 바깥 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오고 가는 길에 혹시라도 내 '비트'가 노출될까 봐 나는 각별히 신경을 쓴다.

  요즘에 와서 나는 새삼스럽게 자기 관리에 대해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우리처럼 단신으로 사는 출가 수행승의 경우, 자기 자신에 대한 관리가 소흘하면 자칫 주책을 떨거나 자기 도취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를 망각한 채 나설 자리 안 나설 자리, 설 잘 앉을 자리를 가리지 못하면 추해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세속적인 상업주의에 편승하게 되면 그의 말로는 물을 것도 없이 처량해진다.

  전에 큰절에서 여럿이 어울려 살면서 나이 든 노스님들의 처신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그때마다 그분들은 후배들에게 깨우침을 준 선지식인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자취를 되돌아보면, 그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순례의 길처럼 여겨진다. 지나온 과거사는 기억으로 의식속에 축적된다. 대개는 망각의 체에 걸려져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어떤 일은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하다.

  그러나 지나온 과거사가 기억만으로는 현재의 삶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사를 자신의 의지로 소화함으로써 새로운 눈이 열리고 귀가 트인다. 그래서 그 과거사에서 교훈을 얻는다. 망각은 정신위생상 필요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 망각 때문에 어리석은 반복을 자행하는 수도 있다.

  보다 바람직한 자기관리를 위해서는 수시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남의 눈을 빌어 내 살림살이를 냉엄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자기를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작은 이익에 눈을 파느라고 큰 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탐욕스런 사람들은 눈앞의 이해관계에만 매달려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누가 내 면전에서 나를 존경한다는 말을 할 때 나는 당혹감으로 몸 둘 바를 몰라한다. 그리고 그런 말에 내심 불쾌감을 느낀다. 참으로 존경한다면 면전에서 말로 쏟아 버릴 일이 아니다. 그런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타인으로부터의 존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굴레요, 덫이다. 그 존경이라는 것이 언제 비난과 헐뜯음으로 바뀔지 모른다. 자기 관리에 방심하면 이런 굴레에 갇히고 덫에 걸려들기 십상이다.

  내 솔직한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내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최근에 나는, 평소에 나를 믿고 따르는 한 동료에게 실망과 서운함을 안겨준 일이 있다. 텔레비젼 출연과 책 만드는 일을 두고, 내 처지와 분수를 곰곰이 헤아린 끝에 그 일들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내 불찰은, 안으로 깊이 헤어려보기도 전에 미적미적 미루다가 자기 관리에 정신이 번쩍 들자 뒤늦게 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대개 그 나름의 결백성을 지니고 있다. 세속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득이 될 일도 그 결백성 때문에 단호히 사양하고 물리치게 된다.

  단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삶의 규범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홀로 사는 맛은 혼자서 안으로 조용히 새기며 누릴 것이지 세상을 향해서 내세우거나 떠벌릴 일은 못 된다. 사람은 각기 인생관을 달리하고 있어, 어떤 개인의 삶이 보편적인 삶이 될 수는 없다. 각자 몸담고 살아가는 그 자리에서 삶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면서 그 자신답게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한 몫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개체의 삶은 어떤 비약을 거쳐 근원적인 삶에 도달해야 한다. 비약을 거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근원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는 영원한 방랑자로 처지고 만다.

  수피즘(회교 신비주의)의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강물이 있었다. 이 강물은 깊은 산 속에서 발원하여 험준한 산골짜기를 지나고 폭포를 거쳐 산자락을 돌아서 들녘으로 나온다. 세상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흘러다니다가 어느날 모래와 자갈로 된 사막을 만나게 된다. 사막 너머에는 강물의 종착지인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그 바다에 이를지 강물은 당황하게 된다.

  바다로 합류하려면 기필코 그 사막을 건너야만 한다. 강물은 마음을 가다듬고 사막을 향해 힘껏 돌진해 간다. 그러나 사막과 마주치는 순간 강물은 소리없이 모래에 빨려 들어가고 만다.

  강물은 정신이 번쩍 든다. 어떻게 하면 이 사막을 무난히 건널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이때 문득 사막 한가운데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 네 자신을 증발시켜 바람에 네 몸을 맡겨라. 바람은 사막 저편에서 너를 비로 뿌려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는 다시 강물이 되어 바다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에도 거넌야 할 사막은 여기저기 무수히 널려 있다. 일상적인 타성의 수렁에서 벗어나 존재의 변신인 그 비약을 거치지 않으면 장애물에 걸려 근원에 도달할 수 없다. 사막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바로 우리 내심의 소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바깥 소리에 팔릴 게 아니라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정한 스승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깃들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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