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그 꽃들
정 호 경
요즘에는 꽃가게나 꽃박람회에 가보면 온통 이름도 생소한 외래종 꽃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들은 몸집이 커서 가까이하기에 어쩐지 부담스럽고 색깔도 진하고 자극적이어서 얼른 정이 가지 않는다. 장미나 튤립 등이 그런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나에게는 어쩐지 꽃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공장 생산품으로서의 장식품으로 끝나고 만다. 이는 왜소한 나의 체구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꽃이라고 하면 역시 깜찍하고 귀여운 맛이 나는 앙증스러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의 기억에서는 언제나 이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옛날 시골집에 무슨 화단이 있었겠는가. 그저 장독대 주변에 이런저런 꽃들이 피어 있는 정도다. 거기에는 맨드라미를 비롯하여 봉숭아. 채송화 그리고 접시꽃, 나팔꽃 등이 시골 소녀들의 예쁘고 앳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을 뿐이다. 학교 숙제도 하지 않는 개구쟁이들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꽃들이지만, 나에게는 여태껏 잊혀지지 않는 어린 시절의 꿈을 키워준 꽃들이다.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김상옥(金相沃)의 <봉선화>를 비롯하여 정훈(丁薰)의 <춘일(春日)> 등의 현대시조는 새삼스럽게 어린 시절의 고향으로 나를 데려가 시들어가는 마음을 포근한 정서로 어루만져 준다.
노란 장다리 밭에 나비 호호 날고
초록 보리밭 골에 바람 흘러가고
자운영 붉은 논둑에 목매기는 우는고.
요즘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는 그 지방의 특색을 알려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대단하다. 이런저런 꽃 축제도 많지만, 특이한 예로는 전남 구례에서의 자운영 꽃이 잊혀져가는 봄날의 새로운 시골풍경을 만들어 대도시들의 치솟는 아파트 값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는 우리의 마음을 포근한 윤기로 어루만져 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주변에는 많은 꽃들이 말없는 가운데 피고 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 인간에게 속삭여 주는 삶의 의미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왜냐 하면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밥이 되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시인들이 꽃의 의미를 노래함으로써 삶의 올가미에서 풀어 주려고 애쓰고 있지만, 시가 어려워서 무슨 뜻인지를 몰라 머리가 더 어지럽기만 한다. 우리는 구태여 그 어려운 시를 이해하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시골의 장독대나 아파트 베란다 한쪽 모서리에라도 한 포기의 봉숭아나 채송화를 심어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바라보면 너도나도 사람이 되고 시인이 되지 않겠는가. 요즘 들어 자꾸만 어린 시절 장독대 주변의 봉숭아며 채송화 그것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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