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너무 어렵게 쓰니 팔리지 않지"

[인터뷰] 꽃 시 220여 편 묶어 낸 나태주 시인과 <별처럼 꽃처럼>

16.11.24 11:15  최종 업데이트 16.11.24 11:15l


    

지난 6일 풀꽃문학관(충남 공주시)에 갔다. 꽃 시 220여 편을 모아 최근 <별처럼 꽃처럼>(푸른길 펴냄)이란 시집을 낸 나태주 시인(1945~)을 뵙고 싶어서였다. 요즘에는 책도 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국에 답답하다. 뉴스로만 눈이 간다. 당연하다. 여하간 인터뷰 가는 마음이 복잡하기만 했다.


 책표지.
 책표지.
ⓒ (주)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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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몇 년 전 가을 '와우북 페스티벌' 한 부대 행사에서 잠깐 뵌 적이 있다. 당시 함께 만났던 지인이 시인이 관장으로 있는 공주문화원과 풀꽃문학관에 함께 가자고 몇 번 제안했다. 그런데 번번이 함께 갈 사정이 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워낙 유명하나 잘 알지 못하는 분이라 마음이 썩 내키지 않기도 했다.

나태주 시인은 1971년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서울신문), 등단했다. 지금은 등단할 수 있는 방법도 많고, 신춘문예 당선자수도 많지만 당시에는 딱 여섯 사람만 당선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별처럼 꽃처럼>은 꽃 좋아한다고 동생이 내게 선물한 책이다. 저자 프로필을 보니, 현재 37권의 시집과 13권의 산문집, 2권의 동화집, 여러 권의 시선집과 시전집을 냈다. 꽃 시만 간추려 낸 책이라고 하지만 왜 비슷비슷한 책을 자꾸 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궁금함을 못 참고 출판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

"선생님의 책을 너무 많이 내는 것 아닌가? 묻기도 해요. 저희에게 중요한 필자지만, 선생님이 공유 정신이 강해서 쉽게 허락하시다보니 다른 출판사에서도 많이 냈거든요. 또, 아무리 좋아도 흔하면 식상함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아 우려도 되고. 그런데 주신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미소 짓게 되고, 그래서 어떤 믿음(글이 주는 위로와 힘)도 생기고. 결국 '아, 이게 나태주 선생님의 글 매력이구나. 독자들도 그렇겠구나!'까지 이르게 되죠. 그래서 이렇게 다시 내게 되고요. 그 책이 그 책 같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자세히 보면 책마다 나름의 특성이 있어요. 그걸 알아채는 독자들은 반가울 것이고요. 그리고 한번 쓰기 시작하면 쉬지 않고 10시간 넘게 쓰시는 등 여전히 많은 글을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독자들이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책들이 자꾸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가 유독 마음을 잡아끌었다. 내 보잘 것 없는 무명의 삶을 응원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풀꽃·3' 전문)

 나태주 시인(2016.11.6. 공주 풀꽃문학관)
 나태주 시인(2016.11.6. 공주 풀꽃문학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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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마음에 두고 있던 풀꽃문학관에 가보자 생각했다. 마음이 설렜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찾게 된 풀꽃문학관이었다.

오전 7시 무렵에 출발, 10시 조금 지나 만나 오후 2시 무렵 헤어졌다. 4시간 남짓,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시간이다. 한편의 글로 다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풍금을 치며 풀꽃과 오빠생각 등 노래 몇 곡을 불러주시기도 했다. 그중 이번에 출간한 시집과 관련된 이야기만을 전한다.

- 참 많은 시를 써오셨는데요. 젊은 시절 시 쓰기와 나이 들어서 시 쓰기, 차이가 있나요?
"젊은 시절 시에는 앞서 쓴 누군가의 시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같은 표현이 들어가거나 언급되진 않지만 어딘가 비슷한. 좋아하는 시인이거나 좋아하는 시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는 거라 모방이나 표절이라고 할 수 없지만 위작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요. 여하간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죠. 아주 유명한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도 자주 보게 되는데(유명한 시인의 고백을 예로 들었다)...

<별처럼 꽃처럼>으로 이야기할게요. 최근에 쓴 시는 앞에, 뒤로 갈수록 오래전에 쓴 시가 나옵니다. 초기에 쓴 시중에는 시 형식을 잘 갖춘 시들이 많아요. 하지만 누군가 쓴 시 영향을 많이 받은 것들이라 어떤 면에서 내 것이라 말하기 좀 뭣하기도 하죠. 앞으로 올수록 시가 좀 허술하고 간결해지는데, 나만의 뭔가가 훨씬 많이 담겨 있어서 온전한 내 시라고 할 수 있죠.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영향 그에 머물러 있지 말고 깨고 나와 스스로 성장하려는 노력, 그러니까 자신만의 무엇을 담아내는 자신과의 싸움을 끝없이 해야 한다는 겁니다."

덧붙이면, 책은 출간 과정에서 제목을 고민하며 쓴 시로 시작해 신춘문예 당선 이전인 1970년에 쓴 '감꽃'으로 끝난다. 뒤에서부터 쓴 순으로 실었다. 그러니 이 책은 뒤에서 앞으로 읽어나가며 지난 40여 년 수많은 꽃들을 시로 전해온 풀꽃 시인의 꽃에 대한 변화나 흐름을 느끼거나, 삶의 연륜 따라 달라지는 표현과 느낌을 의식하며 읽으면 훨씬 좋겠다 싶다.

- 얼마 전 "지난 몇 년 시집 코너를 없앤 서점들이 많았다. 최근 시집 코너를 다시 만드는 서점들이 늘고 있어서 다행이다"고 한 서점 관계자에게 들었는데요. 코너를 없앨 만큼 시집이 그렇게 안 팔리나요?
"그래요. 맞아요. 시인들이 시를 너무 어렵게 쓰니까 독자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죠. 시인 같지 않은 시인들이 많은 것도 문제고. 이런 말은 좀 뭣하기도 한데, 시인으로 등단시켜준다고 시인을 꿈꾸는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그 대가로 시를 써서 등단시키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도 있으니 문제죠.

글 쓰는 것보다, 글을 쓴 덕분에 얻게 된 것들로 문학인들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나, 상 같은 것을 주는 그런 권한이나 명예, 감투에 욕심 부리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들끼리 패를 지어 등단시키거나 상을 주는 그런 결과로 나오는 시집들도 있고... 독자들이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어요. 큰일이죠. 정말로 이젠 맑은 물을 지키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 모란꽃으로 표현한 방송인 이금희씨를 비롯하여 몇 사람에게 준 꽃 시들이 인상 깊은 시집이기도 해요. 시로 표현된 사람들은 선생님께 어떤 존재들인가요?
"풀꽃문학관 행사 진행자로 이금희씨를 초대했습니다. 수고비를 드렸는데, 자기는 받지 않아도 된다. 받을 수 없다. 풀꽃문학관에 써 달라며 거절하더군요. 저라고 쓸 수 있나요. 내 뜻을 말했더니 그럼 좀 더 가치 있는데 써줬으면 하는 겁니다. 결국 이금희씨와 뜻을 맞춰 훨씬 유용하게 쓰일 다섯 분께 나눠드렸습니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생각도 깊고, 참 아름다운 분이란 생각에 시까지 쓰게 됐고. 이름을 밝힌 사람들은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기보다 나름 아름답고 어여쁜 분들입니다. 내게 정말 특별한 분은 꼭꼭 숨겨놓고 혼자 보고, 생각하고, 시로 쓰죠."

기사 분량 때문에 해주신 이야기 반절조차 전하지 못함이 끝내 아쉽다. 덧붙이면, 나태주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시를 들려주면 "아하! 그 시 쓴 사람!"이라며 감탄할 정도로 우리에게 유명한 '풀꽃'은 원래 3편으로 된 시, 그 첫 번째 시란다. 그러니까 '풀꽃'의 원래 제목은 '풀꽃·1'인 것이다. 이 시집에는 원래 제목으로 실려 있다. '풀꽃·2', '풀꽃·3'과 함께.

4시간 가량 같은 꽃들을 보고, 향기를 맡고 감탄하면서, 꽃과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꽃들이 시인에게서 제대로 인정받는구나. 제대로 사랑받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풀꽃문학관 일부(2016.11.6)
 풀꽃문학관 일부(2016.11.6)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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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쓰신 워낙 많은 시들 중에는 습관처럼 나온 시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 생각이 죄송스러웠다. '삶 자체가 시구나. 시에 삶이 들어 있구나. 가슴으로 쓰시는 거구나. 이래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구나!'란 생각과 함께.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도 실감했다. 특히 좋은 사람을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음은 매우 소중한 선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으로 허덕이며 살아낸다고 시인의 그 유명한 풀꽃이란 시조차 모르던 남편도 함께 한 몇 시간이 좋았나 보다. 그날 사인 받아온 책을 가끔 펼쳐보곤 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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