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아파트 화단에 누군가 심어놓은 초롱꽃이 아주 소담스럽게 피었습니다.

어린시절 산에 오르면 간간히 볼 수 있었던 아주 귀한 꽃이었지요...우리 풍습 중

매파의 노력으로 혼사가 성사되면 청사초롱을 들고 신부가 사는 집으로 사주를

들고 찾아가는 미풍양속이 있는데...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나도 청사초롱을 따라 그곳(?)으로 갈 날은 언제일지...*^^


 

출처 : 청사초롱
글쓴이 : 봄내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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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들녁을 걸으며 느낌을 마주하는 아주 친근한 꽃이 아닐까? 전 개인적으로

코스모스를 아주 좋아하는데...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가에 피어있고...또

화려함보다는 청초함과 수수함이 느껴지는 꽃이기에 더욱 좋아합니다 *^^

출처 : 코스모스 들판
글쓴이 : 봄내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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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속’을 넘어 ‘승’으로 간 영자

찬바람이 불때마다 늘 깊은 회한에 젖게 하는 사람이 있다. 안 그래도 한 달 전, 새로운 곳으로 옮긴 작업실의 책장을 정리하면서 그 사람과 관련된 무엇을 펼쳐들곤 정리는 나 몰라라 한 채 너덧 시간이나 상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덕분에 책장 정리는 다음날로 미뤄지고 내 눈길은 망연히 허공만 붙잡을 뿐이었다. 그렇게 잊었다가 가을이 깊어지니 흩날리는 낙엽소리처럼 마음이 스산해지며 다시 그 사람이 생각이 난다.

그 사람은, 아니 지금은 어엿한 아가씨가 되고도 남았을 법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라고 불러도 될 만했다.


그녀는 지금껏 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중에 가장 어린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드물게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어엿한 아가씨라고는 했지만 그것을 세속에서 부르는 호칭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성숙한 아가씨라고 불리지도 않는다. 속(俗)을 넘어 승(僧)의 세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신이 보낸 사람…이지누”라는 쪽지

2001년 늦가을, 후배가 그쪽 언저리로 간다기에 그 집은 어떻게 됐는지 가보라고 했다.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다녀 온 후배는 불쑥 찢어진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곳에 그녀가 쓴 짧은 글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신이 보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이지누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한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경직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지금 도혜(道慧)라는 법명으로 불가에 귀의해 수행정진 중이지만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산골소녀 영자다.

그녀와 나의 인연은 이랬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영자가 15살 때였다. 도계읍의 육백산 말기에 있는 황새터와 같은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산골문화에 대한 조사를 할 때였다. 그 무렵 육백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무곡이라는 지명을 알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곳에 영자부녀가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해를 걸러서 서너 번 찾아갔을까. 그것이 전부다. 그리곤 그녀가 17살이 되던 1999년 이맘때에 모 잡지에 영자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의 주소지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고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그 집요한 사람들은 이내 그녀가 사는 곳을 알아내고 말았다. 그들은 기어코 그녀에게 텔레비전 카메라를 들이댔고 그녀의 집에 전기나 전화가 없다는 것이나 혹은 그 집에 가려면 오로지 걸어서만 가야 하는 불편함을 오히려 내세워가면서 말이다. 사람에 굶주린 도회지의 사람들은 그 모습에 열광하며 무방비의 그 아이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방영되기 전부터 나는 그 아이에게 책을 보내주고 있었다. 시인 신경림이나 기형도 그리고 소설가 이순원을 특히 좋아한다는 그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 했었고 또 잡지에 나간 기사를 보고 책이나 다른 것들을 보내 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그 아이의 주소를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보내려는 책을 모두 나에게 보내라고 했다. 도서목록을 만들어 서로 겹치는 것은 사양했으며 옷을 보내 주겠다는 것 또한 사양했다.

그렇게 작업실에 책을 쌓아 놓고는 한 달에 15권 이상을 보내 주지 않았다. 아무리 책 읽는 것을 좋아 한다고는 하지만 한 달에 15권 이상을 읽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러 학용품은 보내 주었지만 굳이 옷과 같은 생활용품들을 사양했던 것은 도회지의 옷이 그 산골에서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화란 자신의 생활환경이나 습관에 견주어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잘 어울리는 것이라야 한다. 차라리 몸에 걸쳐도 겉돌기만 할 도회지의 옷을 보내 줄 양이면 그 보다 그 아이가 날마다 끼고 사는 라디오의 건전지 하나를 더 보내 주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먼저 굳이 책 이외의 그 무엇들을 보내 주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보기에 영자는 별다른 아쉬움이 없는 아이였다. 아버지와 미미 그리고 꼬꼬라는 닭 두 마리면 충분히 행복했던 것이다. 간혹 아버지와 함께 도계읍이나 삼척으로 장도 볼 겸 나들이를 나가는 것만으로도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에게도 나름대로 존중해야 할 문화의 생산과 소비양태는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도회지 사람들 앞다퉈 책을 보내

그러나 도회지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저 자신들과 같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무엇이라도 그녀에게 나눠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한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양은 생각지도 못한 채 서로 앞 다투어 그녀에게 책을 보내기를 원했다. 문학을 꿈꾸는 소녀이었기에 텔레비전 덕분에 공개되어버린 주소로 무지막지하게 책은 배달되었고 이윽고 그녀의 방은 책으로 넘쳐 결국 마당 한쪽에 책을 보관하는 광을 따로 지어야 했다. 과연 그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책을 보내려던 자신을 위한 일이었을까. 자못 궁금한 일이다.

나는 그 작은 마당에 만들어진 책 광을 보고는 아연실색해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아직도 세상이 메마르지 않아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생각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녀가 광에 쌓인 책을 모두 읽으려면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십년은 족히 걸리고도 남음이 있을 만한 양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읽고 싶은 책과는 상관없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각종의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무리 모든 책이 삶의 양식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다 읽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던 것이다.

서로 도와가며 세상을 살아 갈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며 실행한다는 것은 더없이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나의 도움이 상대에게 지나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배려까지 할 수 있으면 그것은 보약이 될 수 있으되 그렇지 못하면 독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그녀에게 독을 선물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곤 그녀가 처했을 입장과는 상관없이 나도 그녀를 도왔다는 자족감에 젖어 만족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결국 내 삶의 풍족함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을 소비했다는 말과도 같다. 이 말이 지나치기 전에 우리들의 행동은 이미 지나쳤다. 나는 그녀가 텔레비전에 나오고부터는 더 이상 책을 보내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녀와 내가 나눴던 그 소박한 사랑의 마음들을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아야만 했다. 영자의 얼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나올 때나 그 후에도 영자의 순박한 미소는 압권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을 아는 나에게는 그것마저도 이미 달라진 것이었다.

자족감에 젖어 ‘독’을 선물한 꼴

처음 그녀를 만났던 날, 살가운 대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한나절이나 마당을 서성이자 그제야 곁을 주었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사진기에 대한 호기심을 영자가 견디지 못한 것이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대뜸 자기가 그것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사진기를 보기는 했지만 자기가 만져보기는 처음이라고 했었다. 조물조물 사진기를 만지던 그녀가 찍어도 되냐고 했고 이윽고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놀라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간혹 렌즈를 바꿔 끼워주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사진기를 이리저리 들이대다가 나를 보며 짓던 미소는 지금껏 내가 본 미소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날 영자는 좁은 마당을 이리저리 다니며 36장짜리 흑백필름을 예닐곱 통이나 찍고 난 후에야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그 후, 그녀에게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나침의 경계를 지키지 못한 우리들 탓으로 연이어 불행한 일들이 생겨났다. 2001년, 잡지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은 슬픈 소식 앞에서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망연히 밖을 보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앞에 놓고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외로웠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욕심으로 한 사람을 잔인하게도 난도질한 것이나 다르지 않으니 암담했으며 처연했다. 그 빌미를 제공한 사람이 나였다는 생각에 몸 둘 바를 몰라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지금에야 고백컨대 난 그 이후로 우리 땅 골골샅샅 헤매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아니 분명 만난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옳겠다. 그 이후,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거나 돌 혹은 나무이거나 풀과 같은 것들조차도 제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가 그들이 있는 곳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거나 문화적으로 다르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내 자리로의 이동이나 동참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두고 볼 뿐이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공짜가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사람을 배우며 치른 수업료 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되돌아보라. 당신들은 사람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말이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 거지와 창녀의 사랑 ♡ 30여 년을 길에서 구걸하며 살아온 걸인 총각은 어린 시절 집에서 내쫓긴 선천성 뇌성마비 환자이다. 그는 정확히 듣고 생각하긴 해도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걸 이외에는 어떤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번화가 길목에 앉아서 하루 동냥받는 것이 거의 4-5만원이라 해도 허기진 배는 채울 길이 없다. 음식점 문안으로 들어서기 전 쫓겨나기 때문이다. 구걸이 아니라 당당한 손님으로 화폐를 지불한다 해도 모든 식당들은 그에겐 영업사절이다. 그도 그럴것이 온 몸이 떨리고 뒤틀려 수저로 먹는다 해도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 밥이 더 많아 주위를 지저분하게 만들어 영업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이토록 문전박대를 당해 서럽고 배고픈 그가 예수의 기적을 염원하면서 성경 한 권을 다 외우기도 했다. 그는 30년 간 성당 주변을 떠나본 적이 없는 신실한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두터운 신앙심이 육체의 허기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 뿐 아니라 장가드는 일이란 상상조차 못해 볼 일이었다. 자신을 향해 문을 꼭꼭 닫은 지상에서 그가 갈 곳은 창녀촌 뿐이었다. 돈을 내놓으면 저들처럼 나를 문전박대하진 않겠지. 그는 창녀촌에 와서 어울리지도 않게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주문 한 가지를 더 했다. 먹여달라고....... 돈이면 독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한 창녀 여인이 밥 한 상을 차려 왔다. 그리고 먹여주기 시작했다. 걸인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나를 내쫓지 않고 영접해 준 저 여인이야말로 천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다... 당시인이 바... 바로 처... 천사야..." 창녀는 깜짝 놀랐다. '뭇 남성의 천대와 사회의 냉대만을 받던 내가 천사라니!' 걸인은 당신이 바로 천사라고 우겼다. 일생 처음 듣는 이 고상한 말에 창녀는 감격했다. 감격은 눈물이 되어 흘렀다. "창녀를 천사라고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천사..." 둘은 서로 고백했다. 나의 천사..." 두 사람은 성당에서 혼인식을 올렸다. 4백여 명의 축하객들의 눈물과 축복 속에서.. 그들은 지금 장사를 하고 있다.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고도 매일 밥을 먹여주는 아내가 있어 걸인은 이 세상은 에덴동산이라 찬양한다. 온갖 수모를 당하지 않고도, 살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 여인은 이제 남성들을 저주하지 않고 진심으로 남성을 사랑할 수 있어서 매일 축제로 살아간다. 그들을 이토록 새롭게 한 것은 누구일까? 걸인을 구한 것은 사회복지정책도 아니요, 자선도 아니요, 교회도 아니었다. 바로 창녀였다. 창녀를 구한 것은 윤락 방지법도 아니요, 성직자도 아니요, 상담자도 아니었다. 바로 걸인이었다. *이글은 실화라고 합니다. x-text/html; charset=iso-8859-1" hidden=true src=http://sky060.com.ne.kr/gio/gio-na.wma loop="-1">
어딘지 좀 엉성한 구석이 있으면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잔
두 개가 있습니다.

한 잔에는
맑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고,
다른 한 잔은 비워져 있습니다.


전자는 '순수' 라는 것이요,
후자는 '순진' 이라는 것이죠.


순수라는 놈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으니,
깨끗함 그 자체이고


순진은 비어 있으므로,
그 안에 순수처럼 깨끗한 물이 담길 수도 있고,
더러운 물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순수'와 '순진'에 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순수의 사전적 의미는
'잡것의 섞임이 없는 것
, 사사로운 욕심이
못된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진'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꾸밈이 없이 순박하고 참되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함 입니다.


그런데 보내온 글이
사전적 정의보다 훨씬 더
멋진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순진하다' 라는 말은
어리석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반면 '순수하다' 라는 말은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소신이 있고,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순진' 이란 말은 어릴 때만
간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순진하다면
세상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반면 순수는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순수한 사람이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거짓이 없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집니다.
순수한 사람은 주관이 뚜렷합니다.


순수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
흔들리지 않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겸손의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남의 잘못은 용서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합니다.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습관을 가지려
노력하면 순수해질 수 있습니다.


진정 순수해 누가 봐도 아름다워서
나를 닮고 싶어하는 사람 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누가 봐도 부담이 없는,
순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순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 단비 원글보기
메모 :

우리는 '순수' 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어쩜 아직 철부지같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맘속엔 '순수' 라는 단어 하나쯤 담고 살 수 있다면 하루하루 내면 세계를 정화시키지 않을까 ^&^

 

옮겨온 글

이 그림은 지난 추석연휴 강원도립화목원에 나들이 갔다가 넘 웃겨서 담아왔습니다 ^^

 

 

쌍둥이를 기르는 엄마아빠인가 봅니다...한 방에 투런 홈런을 치다니...부럽삼~*^^

 

전 쌍둥이 유모차는 처음보았는데...참 살기 편리한 세상입니다.

문제는 타석에 틀어서지 못하는데 있군요...나두 안타는 칠 수 있는데...ㅋㅋㅋ

대타 기용도 안 되다니...흐흐흑 슬포~ ㅎㅎㅎ 

 

 

 

* 그것은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

 

 

기대한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믿음과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한다고 애태우지 마십시오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지금 슬픔에 젖어있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하지마십시오

우리가 흘리는 눈물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파하면서 용서를 생각하는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비우면서

괴로워하는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빨리달리지 못한다고

내 발걸음을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내 모습 그대로 부지런히 걸어가는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세상의 모든꽃과 잎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습니다

자기이름으로 피어난 거기까지가

꽃과 잎의 한계이고

그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입니다.

 

         ***좋은글 중에서***

울~회원님 !  화덕하나  소개합니다






앞 마당에 화덕 설치하여, 즐거운 삼겹살 파티 하세요...물론 쐬주 한잔 하시며~^*^

출처 : 전원주택에 필요한 화덕
글쓴이 : 시간과공간 원글보기
메모 :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풍경이라 옮겨왔습니다 ^^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의 암자에는 스님과 어린 동자가 살고 있었다.
어린 동자는 스님이 마을에 갔다가 부모를 잃고 헤매는 것을 불쌍히 여겨 데려온 소년이었다.
겨울의 어느 날, 스님은 겨울 준비를 하기 위해 동자를 암자에 남겨두고 마을로 내려갔다.
스님은 허겁지겁 준비를 했지만 겨울 하루해는 짧기만 했다 그런데 스님이 산을 내려온 뒤
산에는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해 저녁 무렵에 이르러서는 눈이 한길이나 쌓이고 말았다.
도저히 스님은 암자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스님은 오직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암자의 어린 동자는 눈이 많이 와서 스님이 못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직 어린 동자는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며 마을로 내려간 스님을 이제나저제나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동자는 며칠을 스님이 내려간 언덕만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앉은 채로 얼어죽고 말았다.
그후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쌓였던 눈이 녹기 시작했다. 그래서 스님은 서둘러 암자를 향 해 길을 떠났다.
암자에 도착한 스님은 마당 끝에 우두커니 앉아서 죽은 동자를 발견했다.
스님은 죽은 동자를 바로 그 자리에 곱게 묻어 주었다. 그해 여름이 되자 동자의 무덤가에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났다.
그리고 한 여름이 되니 꼭 동자의 얼굴같은 붉은빛의 꽃들이 마을로 가는 길을 향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죽은 동자를 생각해 이 꽃을 동자꽃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들/꽃/시/인

출처 : #동자꽃이야기
글쓴이 : 들꽃시인 원글보기
메모 :

 

 

 

 자기답게 사는것 - 법정스님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의 매서운 스승 노릇을 해야한다.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한 다 나눌 것은 있다.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물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풍요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라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서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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