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낙엽을 바라보면 인생의 사계를 생각하게 되고 그릇된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음으로 자기성찰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가을 집 앞 강둑산책로에서...)
 
      * 마음은 그런데 *
 
산같이 물같이 살자 

텅빈 마음엔 한계가 없다
참 성품은 텅빈 곳에서 스스로 발현된다

산은 날보고 산같이 살라하고
물은 날보고 물같이 살라한다

빈 몸으로 왔으니
빈 마음으로 살라고 한다

집착, 욕심, 아집, 증오 따위를 버리고
빈 그릇이 되어 살라고 한다

그러면 비었기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수행은 쉼이다

이것은 내가 했고 저것은 네가 안 했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항상 마음이 바빠서는 도무지 자유를 맛볼 수 없다

내가 내 마음을
" 이것 " 에 붙들어 매어 놓고
" 저것 " 에 고리를 걸어 놓고 있는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항상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다
수행은 비움이다

내가 한다 내가 준다 내가 갖는다
하는 생각
또는,
잘해야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따위의 생각을 버리고
한 마음이 되는 것이 수행이다

 

 

- 불교의 말씀에서 옮김 -


 

   * 삶 *

    
친구여!

나이가 들면 설치지 말고 미운소리,우는소리,
헐뜯는 소리,그리고 군 소리,불평일랑 하지를 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적당히 아는 척,어수룩 하소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오.

친구여!

상대방을 꼭 이기려고 하지마소.
적당히 져 주구려
한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
그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친구여!

돈,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친구여!

그렇지만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 돈은 놓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 하오.

옛 친구를 만나거든 술 한 잔 사주고
불쌍한 사람 보면 베풀어주고
손주 보면 용돈 한푼 줄 돈 있어야
늙으막에 내 몸 돌봐주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오.

우리끼리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이라오.
옛날 일들일랑 모두 다 잊고
잘난체 자랑일랑 하지를 마오
우리들의 시대는 다 지나가고 있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봐도
가는 세월은 잡을 수가 없으니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마음씨 좋은 이로 살으시구려
멍청하면 안되오.

아프면 안되오.
그러면 괄시를 한다오.
아무쪼록 오래 오래 살으시구려.

친구여!

- 법정 스님-
 

♡ 드넓은 호수가 잠잠히 모든 도랑물을 끌어안듯 삶의 중심 세계는 일상의 자잘한 일에

넘 감정적으로 다가가면 맘은 화(火)를 담아 몸은 삭정이가 되는 것이 조물주의 선물 ^^

(위에 글을 읽으며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분노는 자신의 몸을 녹슬게 하는 독이죠) 

 

* 화(火)가 풀리면 인생이 풀린다 *
 
 
화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화를 안고 사는 것은 독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
화는 타인과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하며
인생의 많은 문을 닫게 한다.

따라서 화를 다스릴 때
우리는 미움, 시기 절망과 같은 감정에서 자유로와진다.
타인과의 사이에 얽혀 있는 모든 매듭을 풀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과 사랑, 즐거움과 희망과 긍정의 씨앗이 있는가 하면
미움, 절망, 좌절, 시기, 두려움과 같은 부정의 씨앗도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나 실제로 행복을 만끽하면서 사는 사람은 드물다.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표정에서 알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은 늘 미소 짓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얼굴을 찌푸리며 찡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화를 내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일까?

시기, 절망, 미움, 두려움 등은
모두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독이다.
이 독은 하나로 묶어 "화(anger)" 이다.

마음 속에서 화를 해독하지 못 하면
우리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
화는 평상시 우리 마음속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외부로 부터 자극을 받으면
갑작스레 마음 한가득 퍼진다.

화는 예기치 못한 큰일에서 올 때가 있지만
대개는 일상에서 부딪히는 자잘한 문제에서 온다.
따라서 화를 다스릴 때마다
우리는 일상에서 잃어버린 작은 행복들을 다시금 찾을 수 있다.

화를 다스리기 위해 유용한 도구가 있다.
의식적인 호흡, 의식적으로 걷기, 화를 끌어안기,
나의 내면과 대화하기...등
이러한 도구들을 사용하면
우리는 마음 속에 화가 일어날 때마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부정적인 씨앗이 아닌
긍정적인 씨앗에 물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평화의 길이며 행복을 만드는 법칙이다
 
* 늘 일상에서 부딪치며 느끼는 일이지만 실상 마음을 다스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조금만 비울 수 있다면 이 또한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래 짧은 덧글은 봄내지기 생각이었습니다 )

★ 마음 가꾸기(458) : 마음이란(덕운거사님 글 담음)



마음이란...

 

향기로운 마음
향기로운 마음은 남을 위해 기도 하는 마음 입니다
나비에게 벌에게 바람에게 자기의
달콤함을 내주는 꽃처럼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베풀어 주는 나눔 입니다 


 

 

여유로운 마음
여유로운 마음은 풍요로움이 선사 하는
평화 입니다 바람과 구름이 평화롭게 머물도록
끝없이 드넓어 넉넉한 하늘처럼 비어 있어
가득 채울 수 있는 자유 입니다

 




 사랑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은 존재에 대한 나와의
약속입니다 끊어지지 않는 믿음의 날실에
이해라는 구슬을 꿰어놓은 염주처럼
바라봐 주고 마음을 쏟아야 하는 관심 입니다

 



 

정성된 마음
정성된 마음은 자기를 아끼지 않는 헌신입니다
뜨거움을 참아내며 맑은 녹빛으로 은은한
향과 맛을 건내주는 차처럼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실천입니다




 

참는 마음
참는 마음은 나를 바라보는 선 입니다
절제의 마디를 그어서 오릇이 자라며
부드럽게 마음을 비우는 대나무 처럼
나와 세상 이치를 바로 깨닫게 하는 수행 입니다



 

노력하는 마음
노력하는 마음은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투지입니다
깨우침을 위해 세상의 유혹을 떨치고
머리칼을 자르며 공부하는 스님처럼
꾸준하게 한 길을 걷는 집념입니다 
 



 

강직한 마음
강직한 마음은 자기를 지키는 용기입니다
깊게 뿌리내려 흔들림 없이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 처럼
변함없이 한결같은 믿음 입니다

 


선정된 마음
선정된 마음은 나를 바라보게 하는
고요함 입니다
싹을 틔우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하며
보람의 열매를 맺게 하는
햇살처럼 어둠을 물리치고
세상을 환하게 하는 지혜입니다

-원성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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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에서 말하는 건강 十訓

 

첫째, 소육다채 

육식을 적게 하고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육식을 금기하고 있지만, 재가의 불교신자들은 가능한 한 육식을 피하고, 먹는다 하더라도 적게 먹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 대신 채소를 많이 먹어서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할 것을 권하고 있다.

둘째, 소식다작



가능한 한 적게 먹고 잘 씹어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장수의 비결이 바로 적게 먹는 소식이다.
주역에서도 '복육분천수'라 하여 자기 식량의 6할만 먹으면 하늘이 준 수명까지 살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적게 먹되, 그것도 소박하게 고기없이 식사하라고 권하고 있다.
적게 먹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성인병도 예방할수 있다는 것이 현대의학의 원리이다.

셋째, 소염다혜



염분을 적게 먹고 식초는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소금은 만병에 해롭다는 현대의학적 해석으로 염분의 섭취를 줄일 것을 권장하고 있다.
염분을 적게 쓰고도 먹을 수 있게 하려면 식초를 조금 섞어 주면 염분이 적어도 간이 맞는다는 말이다. 염분을 적게 먹는 방법을 일러주고 있다. 재미나는 이야기이다.

넷째, 소의 다욕



옷은 가능한 한 적게 입고 목욕은 자주 하라는 말이다.
옷을 많이 입으면 질병을 방어하는 면역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한 적게 입되, 가능하면 목욕을
자주 하여 혈액순환을 촉진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다.

다섯째, 소번다면



근심은 적게 하고 잠은 푹 자라는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좋은 일도 많겠지만, 어려운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근심, 걱정,불안, 초조 등의
스트레스를 빨리 풀지 않으면 그것이 병을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한 근심을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는 충고이다. 그 대신 피로를 회복하는 데는 잠 이상 없다는 사실이다.

여섯째, 소욕다시



욕심을 적게 하고 남에게 많이 베풀라는 말이다.
욕심은 끝이 없다. 욕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근심과 불안이 따라 다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건강
장수의 비결로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 않던가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어차피 빈손으로 갈 운명인데, 먹고 살 만큼만 가지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부처님의 자비가 그렇고, 예수님의 사랑이 그렇다.
무조건 남에게 베풀면 그것이 하늘에 닿아 복록수를 준다는 이야기이다.

일곱째 소당다과



설탕은 적게 먹고 과일은 많이 먹어야 좋다는 말이다.
설탕은 비만 등 만병의 근원이기 때문에 설탕을 적게 먹되, 과실을 많이 먹음으로써 우리에게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의 섭취를 충분히 공급하라는 이야기이다.

여덟째, 소차다보



가능하면 차를 적게 타고 많이 걸어다니라는 말이다.
운동이 따로 있나. 걸으면 운동이지.
결국 차를 적게 타고 많이 움직이라는 말로서 걷기운동을 권장하고 있다.

아홉째, 소언다행



가능하면 말은 적게하고, 행동으로 실행을 많이 하라는 말이다. 우리속담에 침묵은 금이라고 했다. 말이 많이면 실수하기 쉽고, 사람이 가볍다는 인상을 준다.
그대신 말보다는 실천에 중점을 두고 일상생활을 하면 실수가 적고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열째, 소분다소



화는 적게 내고, 많이 웃으라는 말이다.
화를 내면 남에게도 피해를 주겠지만, 자신의 건강을 해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대신 많이 웃으면 건강에도 좋고, 가정도 화목하여 직장도 밝아질 것이다.


 


 

전 이 길을 걸으며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그 참뜻에 고개숙이고 마음을 비우며 또다른 나를 채우곤 합니다 ^^

마음의 주인이 되라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드는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 들이다가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 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 법정스님 에세이집《무소유》중에서 -

 

108배  


 
 
- 모든 생명을 지극히 내 안에 모시고 살림의 장을 확산해 나가는
  생명과 평화를 위해 . 108배를 올립니다 -


1.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하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

2.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3.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4. 나의 진정한 얼을 찾기 위해 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5. 나의 몸과 영혼의 귀중함을 생각하며 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6. 나의 영혼과 육체의 건강함을 위해서 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7. 내가 원하는 진정한 삶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8. 나부터 찾고 나부터 다스릴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 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9. 오늘 여기 살아 있는 목숨이 귀중함을 생각하며 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 나의 생존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열 번째 절을 올립니다.



11. 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열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12. 가족 간에 항상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열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13. 사랑 속의 강함과 기쁨의 성장을 체험하기 위해 열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14. 오로지 사랑 속에서만 기쁨을 찾기 위해 열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15. 하나의 사랑이 우주 전체에 흐르고 있음을 알기 위해 열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16. 길을 잃어 헤매는 나에게 환한 빛으로 길을 열어준 스승님에게 열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17. 내가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내 안에 살아있음을 느끼며 열일곱 번재 절을 올립니다.

18. 나의 스승이 내 안에 살아계심을 생각하며 열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19. 내 생명의 생물과 우주 뭇 생명의 기원이 내 안에 살아있음에 열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20. 항상 모든 조상과 모든 신령이 지금 여기 내 안에 살아계심을 알고 믿으며
    나를 향하여 스무 번째 절을 올립니다.



21.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에게 용서를 빌며 스물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22. 진실로 자신을 생각하여 나쁜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스물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23.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않으며 스물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24.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않으며 스물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25. 남의 찬한 일은 드러내고 허물은 숨기며 스물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26. 중요한 이야기는 남에게 발설하지 않으며 스물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27. 남에게 원한을 품지 않으며 스물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28. 남에게 성내는 마음을 두지 않으며 스물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29. 듣지 않은 것을 들었다 하지 않으며 스물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30.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하지 않으며 서른 번째 절을 올립니다.



31. 일을 준비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서른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32.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서른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33.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않으며 서른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34. 매 순간이 최선의 시간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서른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35. 세상을 정의롭게 살기 위해 서른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36. 작은 은혜라도 반드시 갚을 것을 다짐하며 서른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37.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아니하며 서른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38. 남에게 지나치게 인색하지 않으며 서른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39. 이익을 위해 남을 모함하지 않으며 서른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40. 조그만 것을 투기하여 더욱 큰 것을 얻으려는 사행심에 마흔 번째 절을 올립니다.



41. 모든 탐욕에서 절제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며 마흔 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42. 생존의 가치가 물질의 노예로 떨어지지 않기를 빌며 마흔 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43.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이 괴로움의 근본임을 알며 마흔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44. 내가 파놓은 구덩이에 내가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매함에 마흔 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45. 나약하고 비겁하지 않은 지혜의 힘을 기르며 마흔 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46. 참는 마음과 분한 마음을 이겨 선행 할 수 있게 하며 마흔 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47. 강한 자와 결탁하여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마흔 일곱 번재 절을 올립니다.

48. 아첨하지 않고 정직을 근본으로 삼으며 마흔 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49.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떳떳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마흔 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50. 행복, 불행, 탐욕이 내 마음 속에 있음을 알며 쉰 번째 절을 올립니다.



51.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드는 것임을 알며 쉰 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52. 평범한 것이 소중한 것임을 깨달으며 쉰 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53. 지나간 일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근심하지 않으며 쉰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54. 소유하되 일체의 소유에서 벗어나기 위해 쉰 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55. 인내는 자신을 평화롭게 하는 것임을 알며 쉰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56. 참회하는 마음이 으뜸이 됨을 알며 쉰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57. 지혜를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기 위해 쉰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58. 마음을 쫓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길 쉰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59. 자신을 닦는데 게을리 하지 않으며 쉰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60. 나를 강하게 하는 시련들에 대하여 감사하며 예순 번째 절을 올립니다.



61. 시간이 흘러도 처음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며 예순 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62. 모든 것에 감사하는 충만한 마음속의 기도를 위해 예순 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63. 침묵 속에서 나를 발견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예순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64. 자신의 삶에 충실 할 수 있는 고귀한 순수를 모시며 예순 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65.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모시며 예순 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66. 가난으로 굶주리고 힘겨운 생활을 하는 빈민을 모시며 예순 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67. 우리의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땀 흘리는 농민을 모시며 예순 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68. 많이 가졌든 적게 가졌든 남을 위해 나누는 마음을 모시며 예순 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69. 내 몸을 밀어 귀한 생명으로 태어난 자식을 모시며 예순 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70. 나와 더불어 사랑으로 하나 된 배우자를 모시며 일흔 번째 절을 올립니다.



71.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장애우들을 모시며 일흔 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72.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길을 가는 친구를 모시며 일흔 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73. 누릴 수 있으나 절제하는 자발적 가난을 모시며 일흔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74. 자신을 낮추어 낮은 곳으로 자리하는 겸손을 모시며 일흔 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75. 항상 나보다는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양보심을 모시며 일흔 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76. 지구, 자연이 병들어 감을 생각하며 일흔 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77. 사람의 생명과 지구 자연의 모든 생명은 공동체임을 자각하며 일흔 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78. 인간의 욕심에 파괴되어 고통 받고 신음하는 생명들을 위해 일흔 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79. 병들어 가는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 일흔 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80. 천지에 충만한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여든 번째 절을 올립니다.



81. 생명은 영혼의 율동임을 깨달으며 여든 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82. 생명은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임을 알고 느끼며 여든 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83. 맑은 시냇물 소리에 정신이 맑아짐을 느끼며 여든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84. 맑고 고운 새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여든 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85. 시원한 바람소리에 내 몸을 맡기며 여든 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86.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며 여든 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87. 항상 제자리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들꽃에 여든 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88. 좌우를 품고 침묵하며 바람과 눈으로 일러주는 산과 들에 여든 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89. 모든 식생을 살리고 언제나 생명들을 살리는 대지에 여든 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90. 모든 생명들을 키워주는 하늘에 감사하며 아흔 번째 절을 올립니다.

 

 

91. 나 자신의 평화를 기원하며 아흔 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92. 뭇 생명들과 함께하는 평화를 기원하며 아흔 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93. 나와 더불어 사는 이웃들의 평화를 위해 아흔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94. 의미없이 나뉘어진 지역과 지역간의 평화를 위해 아흔 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95. 정치적 이해로 다투는 국가과 국가간의 평화를 위해 아흔 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96.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종교 간의 평화를 위해 아흔 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97. 산 것과 죽은 것의 평화를 위해 아흔 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98. 사람과 자연의 평화를 위해 아흔 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99. 깨달음으로 충만한 마음의 평화를 위해 아흔 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0.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손잡음을 위해 백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1. 건강한 자와 병든 자의 손잡음을 위해 백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2. 배운 자와 못 배운 자의 손잡음을 위해 백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3. 어두운 그림자에 사로잡혀 본래의 모습을 잃은 삶을 위해 백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4. 나로 인해 어지러워진 모든 인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백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5. 나를 사랑하고 돌보아 주는 사람들에 감사하며 백 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6. 내가 누리는 모든 선과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감사하며 백 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7. 나의 생존의 경이로움과 지금 여기 끊임없이 생성하는 생존에 대해 감사하며
백 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8. 이 모든 것을 품고 하나의 우주인 귀하고 귀한 생명인 나를 위해 백 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가져온 글]
 

 

 * 나는 그냥 나 자신이면 됩니다 (법정스님)*

 

    비교하는 마음만 놓아 버리면
    이 자리에서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모든 바람이나 욕망들도 비교하는
   마음에서 나오고, 질투나 자기 비하
   또한 비교에서 나옵니다.

   비교하는 마음이 없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린 더 이상
   나아가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에서 어떤 분별심이 일어나고
   판단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거의가
   비교에서 나오는 겁니다.

   또한 그 비교라는 것은 과거의
   잔제입니다.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나
   자신과 대변하고 서 있으면
   거기에 그 어떤 비교나
   판단이 붙지 않습니다.

   이 순간에 무슨 비교가 있고,
   판단이 있겠어요.

   오직 이 순간일 뿐!
   그저 지금 이대로 온전한
   모습이 있을 뿐이지,
   좋고 싫은 모습도 아니고,
   행복하고 불행한 모습도 아니며,
   성공하고 실패한 모습도 아닌 것입니다

   누구보다 더 잘나고 싶고,
   누구보다 더 아름답고 싶고,
   누구보다 더 잘살고 싶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들...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상대를
   세워 놓고 상대와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비교 우위를 마치 성공인 양,
   행복인 양,
   비교 열등을 마치 실패인 양,
   불행인 양 그러고 살아가지만,
   비교 속에서 행복해지려는 마음은
   그런 상대적 행복은 참된
   행복이라 할 수 없어요
   무언가 내 밖에 다른 대상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나 자신만을 가지고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 행복이 아닌
   절대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없어도 누구보다 잘나지 않아도
   그런 내 밖의 비교 대상을 세우지 않고
   내 마음의 평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나는 그냥 나 자신이면 됩니다.
   누구를 닮을 필요도 없고 누구와
   같이 되려고 애쓸 것도 없으며,
   누구처럼 되지 못했다고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우린 누구나 지금 이 모습
   이대로의 나 자신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 법정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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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백의 아름다움 *

 

 

지난 연말 조계사에서 종권을 둘러싼 못된 중들의 상상을 초월한 난동이 벌어졌을 때,

불교신자와 일반 사회인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와 환멸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같은 옷을 걸친 인연으로,

산중에서 안거 정진 중인 무고한 스님들도 깊은 상처와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마다 보도되는 라디오 뉴스를 들으면서 내 자신도 참괴의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사흘동안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중국 흑룡강성과 유럽과 미주에 있는 신자들이 보내온 편지에도 한탄과 분노의 소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같은 중으로서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어 한동안 바깥출입을 자제했었다.

먹물옷을 걸치고 있다는 사실에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가 수행자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온갖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을 청정하게 지키고

남을 보살펴 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뛰어난 자질이 아니면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길이다.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저질들이 종교집단을 이루면 동서고금을 물을 것 없이

그 조직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마음에 입은 상처가 심할 때 더러는 옛 사람의 서화에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무심히 서체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옛 사람의 그 기개와 인품이 함께 들여다 보인다.

허균이 엮은 「한정록(閑情錄)」에는 왕휘지에 대한 일화가 몇 가지 실려 있다.

중국 동진 때 그는 산음(山陰)에서 살았다.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한밤중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자 사방은 눈에 덮여 온통 흰빛이었다.

그는 일어나서 뜰을 거닐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외다가 갑자기 한 친구 생각이 났다.

이때 그 친구는 멀리 섬계라는 곳에 살았는데, 서둘러 작은 배를 타고 밤새 저어가서 날이 샐 무렵

친구집 문전에 당도했다. 그러나 그는 무슨 생각에선지 친구를 부르지 않고 그 길로 돌아서고 말았다.

어떤 사람이 이상하게 여기고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흥이 나서 친구를 찾아왔다가 흥이 다해 돌아가는데, 어찌 꼭 친구를 만나야만 하겠는가."

흥이란 즐겁고 좋아서 저절로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러기 때문에 흥은 합리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득실이 아니다.

그때 그곳에서 문득 일어나는 순수한 감정이 소중할 따름이다.

매사를 합리적으로만 생각하고 손익계산을 따지는 요즘 사람들은

눈이 내리는 날 밤을 새워 친구를 찾아 나선 그 흥겨운 기분과 마음을

삶의 향기로운 운치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때 만약 친구집 문을 두드려 친구와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며 아침을 얻어 먹고 돌아왔다면,

그 흥은 많이 소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시와 산문의 세계가 다른 점이 바로 이런 데에 있다.

왕휘지가 서울을 떠나 시골에 있을 때다.

그전부터 환이(桓伊)라는 사람이 피리의 명인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서로 만나지 못했는데,

때마침 수레를 타고 둑 위로 지나가는 그를 보았다.

왕휘지는 이때 배를 타고 가던 중인데, 동료 중에 그를 아는 이가 있어 환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는 사람을 시켜 서로 알고 지내기를 바라면서 피리 소리를 한번 들려 줄 수 없느냐고 청했다.

피리의 명인인 환이는 평소 왕휘지의 인품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즉시 수레에서 내려 의자에 걸터앉아 세 곡조를 불었다.

그리고 나서 급히 수레에 올라 떠나갔다.

이와 같이 나그네와 주인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피리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이에게 피리를 들려 주고, 듣고 싶었던 소리를 듣는 것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었다.

피리를 불고 나서 번거롭게 수인사를 나누지 않고

그대로 떠나간 환이의 산뜻한 거동이 피리의 여운처럼 우리 가슴에까지 울려온다.

전통적인 우리네 옛 서화에서는 흔히 '여백의 미'를 들고 있다.

이 여백의 미는 비록 서화에서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끼리 어울리는 인간관계에도 해당될 것이다.

무엇이든지 넘치도록 가득가득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여백의 미가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두루 헤아려 보라.

좀 모자라고 아쉬운 이런 여백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삶에 숨통이 트일 수 있지 않겠는가.

친구를 만나더라도 종일 치대고 나면,

만남의 신선한 기분은 어디론지 새어나가고 서로에게 피곤과 시들함만 남게 될 것이다.

전화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우정의 밀도가 소멸된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바쁜 상대방을 붙들고 미주알 고주알 아까운 시간과 기운을 부질없이 탕진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고 자신의 삶을 무가치하게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에는 그립고 아쉬움이 받쳐 주어야 한다.

덜 채워진 그 여백으로 인해 보다 살뜰해질 수 있고,

그 관계는 항상 생동감이 감돌아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될 수 있다.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웠더니 심지를 줄여도 자꾸만 불꽃이 올라와 펄럭거린다.

가득 찬 것은 덜 찬 것만 못하다는 교훈을 눈앞에서 배우고 있다.

 

               * 법정스님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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