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벽은 문이다/정호승



  영화 '해리포터'를 떠올리면 결코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열한 살 고아 소년 해리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런던 킹스크로스역 벽을 뚫고 들어가던 장면입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차단된 벽 속으로 해리가 성큼 발을 내디뎌 들어서자 벽 속에는 마법학교로 가는 특급열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승강장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저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것은 벽이 문이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고 모든 벽 속에는 문이 존재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벽은 항상 굳게 막혀 이곳과 저곳을 차단함으로써 그 존재가치를 지니는 것인데,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내 인생의 벽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에게도 '해리포터 시리즈'는 인생의 벽 앞에서 작가 자신이 연 용기의 문이었습니다. 이혼 후 어린 딸을 데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벽 앞에 서 있었지만 그녀는 해리포터를 씀으로써 벽을 문으로 만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제 인생의 벽 앞에서 돌아서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벽을 문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적은 있었습니다. 내 인생의 꿈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어서, 내 인생이라는 시간을 내가 주인이 되어 오로지 시를 쓰는 일에 사용하게 되는 것이어서, 잘 다니던 직장을 두 번이나 스스로 그만둔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사회에 나와 국어교사 생활을 3념 넘게 하다가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남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 갈수록 큰 고통으로 다가와 아무런 대책 없이 그만둬버린 일이 그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오랫동안 잡지사 기자 생활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그만둔 일입니다. 당시 제 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가장으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늘 생계라는 벽에 가로막혀 번번이 되돌아서곤 했습니다. 좀처럼 그 벽을 뚫고 나갈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마흔한 살 되던 해에 사라져가는 그 꿈을 찾고 싶어 친지들 모두가 한사코 말리는데도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나마 벽을 뚫고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기 때문에 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류 중에는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가 삶의 벽 앞에서 문을 여는 존재입니다. 독소리의 평균 수명이 인간과 비슷한 까닭은 늙음과 죽음의 벽 앞에서 독수리가 스스로 새 삶의 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30년 좀 넘게 살게 되면 무뎌진 부리가 자라 목을 찌르고 날개의 깃털이 무거워져 날지 못합니다. 날카롭게 자란 발톱마저 살 속을 파고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때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뼈를 깍는 고통의 과정을 밟아 새롭게 태어날 것인가 선택하게 됩니다. 만일 새 삶을 선택하면 6개월 정도 먹는 것도 포기하고 그 과정을 견뎌내야 합니다. 높은 산정에 둥지를 틀고 암벽에 수도 없이 부리를 쳐 깨트리는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새 부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부리가 나면 발톱을 모두 뽑아내고 새 발톱이 자랄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고는 그 새 부리로 낡은 날개의 기털도 뽑아내고 새 깃털이 자라 날개짓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의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때 독수리의 몸은 피범벅이 됩니다. 그런데도 독수리는 그 고통의 벽 앞에서 자신을 전부 새롭게 갈고 새 삶의 문을 엽니다. 만일 독수리가 벽 속에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면 결코 인간과 같은 수명을 누리는 새 삶을 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벽 앞에서 내일이라는 새로운 삶을 위해 독수리처럼 선택과 결단의 문을 열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독수리와 같은 고통과 인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2007년에 말기암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마지막 강연'이라는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던진 미국의 랜디 포시 교수는 인생의 벽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 벽이 있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가르쳐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멈춰 서라는 뜻으로 벽은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인생의 벽을 절망의 벽으로만 생각하면 그 벽 속에 있는 희망의 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벽을 벽으로만 보면 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능한 일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결국 벽이 보이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보면 결국 문이 보입니다. 벽 속에 있는 문을 보는 눈만 있으면 누구의 벽이든 문이 될 수 잇습니다. 그 문이 굳이 클 필요는 업습니다. 좁은 문이라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넓은 희망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작은 문 하나 지니고 있어도 그 문을 굳게 닫고 벽으로 사용하면 이미 문이 아닙니다.


  문 없는 벽은 없습니다. 모든 벽은 문입니다. 벽은 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벽 없이 문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제가 쓴 시 '벽'을 함께 읽으면서 내 마음의 벽에 있는 문을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벽 / 정호승


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
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
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
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
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
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을 수 있고
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
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


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한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벽이 되었다
나와 함께 망치로 벽을 내리치던 벗들도
결국 벽이 되었다
부술수록 더욱 부서지지 않는
무너뜨릴수록 더욱 무너지지 않는
벽은 결국 벽으로 만들어지는 벽이었다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
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
따스하게 벽을 쓰다듬을 뿐이다
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
물 한잔에 빵 한 조각을 먹을 뿐이다
그 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원문 발췌 자판 옮김: meister5959@hanmail.net



                   

                    출처: https://www.youtube.com/embed/GGuvK00DEIE(노래 듣기)


  이 노래가 90년대 초반에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부초'를 듣는 순간 노랫말에 들어 있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혼절할 만큼 열창하는 박윤경에게 영혼을 내줄 만큼 빠졌었다. 풋풋하고 앳된 얼굴에 처음 얼굴을 알리는 가수로는 가요 팬들의 마음을 빼앗을 만큼의 미모와 당대 최고의 반열에 오른 이선희와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가창력으로 '박윤경'이란 이름을 음악팬들에게 각인시키며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지 싶다.

  그가 혜성처럼 나타나 가요대상을 타고 음악팬들의 가슴을 울리며 사랑받게 된 밑바탕에는 지방에서 여고생 신분으로 서울에 올라와 작곡가 임종수 선생 밑에서 1년간은 발성 연습만을, 3년간 음악 공부를 한 뒤 이 곡을 데뷔곡으로 받아 불렀다고 한다.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일정한 거처도 없이 떠도는 한 여인의 이미지가 아릿하게 그려진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충격에 집을 뛰쳐나와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남자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이자 눈물일지도 모르는 노랫말이 드라마처럼 가슴을 싸하게 울리기도 한다. 어찌 됐든 부초의 노랫말은 또 다른 상상력을 갖게 하는 한 편의 시처럼 느껴져 아직도 뭇 사람들이 잃버버린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명곡이다. (편집 겸 옮긴 이 추가)


박윤경-부초

화려한 불빛 그늘에 숨어 사랑을 잊고 살지만 / 울고 싶은 밤이면 당신 생각합니다

진정 나 하나만 사랑한 당신 / 강물 같은 세월에 나는 꽃잎이 되어

떠다니는 사랑이 되어 / 차가운 거리를 떠돌다 가지만 / 당신 모습 따라오네요.

2 .바람이 불어 쓸쓸한 거리 / 어둠을 먹고 살지만 / 외로워진 밤이면 당신 생각합니다

진정 소중했던 나만의 당신 / 눈물 같은 세월에 나는 꽃잎이 되어 /

떠다니는 슬품이 되어 / 차가운 거리를 떠돌다 가지만 / 당신 모습 따라오네요.


편집 옮김: meister5959@hanmail.net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앗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다섯살 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속에 준비해 둔 다섯살 대신

일곱살이 튀여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나서 물 속으로 텀벙 뛰여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 차마

자식에게 볼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기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

 

 

 

[아버지의 추억] <20> 시인 손택수

아들과 대중탕 못 간 이유, 이제서야…
40년간 지게일로 시커멓게 죽은 등…병수발 때 드러나

아버지의 추억 

  누가 물으면 여섯 살이라고 해야 한다. 알았지? 어머니는 목욕탕에 갈 때마다 꼭 이렇게 신신당부를 했다. ‘싫어요.’ 목젖까지 올라오는 소리를 간신히 누르며 내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네” 하고 시무룩하게 대답을 해도 안심이 되질 않았던지 정색을 하고 거듭 확인 절차를 거치곤 하셨다. 너, 몇 살이니? 여섯 살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목욕가방을 챙기셨다. 그러면 옆에서 또랑또랑한 두 눈을 깜박이며 가만히 듣고 있던 누이동생들이 마구 놀려대기 시작했다. 오빠는 거짓말쟁이래, 거짓말쟁이. 우리 오빠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대요.
  주말마다 한 번씩 목욕탕에 가는 게 나는 죽기보다 싫었다. 어머니와 공범이 되는 것도 싫었고, 앙큼한 누이들에게 매번 꿀밤을 먹이면서 싸우는 것도 싫었다. 속으론 여섯 살, 여섯 살 하고 몇 번이나 되새겼는데 잔뜩 긴장한 목에서 내 의지와는 정반대로 저번처럼 갑자기 여덟 살이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내 고추를 잡고 의심 어린 눈빛으로 ‘정말 여섯 살 맞니?’ 하고 묻던 그 돼지 같은 아줌마를 또 만나면 안 되는데, 이런 공포감에 떠는 것도 싫었다. 다른 애들처럼 내놓고 뛰어놀지도 못하고 조마조마하게 목욕탕 한 귀퉁이에 웅크려 앉아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온갖 찜부럭이 다 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게 아버지 탓이야.’ 급기야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따라다닐 수 없을 만큼 커버린 뒤론 하릴없이 혼자서 목욕을 다녀야 했다. 여탕의 악몽에서 해방된 게 나는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행복감도 잠시뿐이었다. 여탕을 벗어난 것까진 좋았는데 남탕에 혼자 앉아 있는 것도 결코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손이 닿지 않는 등을 끙끙거리며 때를 밀 때마다 함께 와서 등을 밀어주는 부자(父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매번 등 밀어줄 사람을 탐색해야 하는 내 처지란 것이 생각하면 참 딱한 것이었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졸시 ‘아버지의 등을 밀며’ 중에서). 그랬다. 아버지는 목욕탕을 가지 않는 이상한 위인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꽤 오랫동안 적대감을 부러 숨기지 않았다. 하라는 공부는 않고 뭔 놈의 소설 시 나부랭이냐 이놈아, 늬 애비가 시장에서 지게질 하고 번 돈이 어떤 돈인데! 거의 매일 술을 드시고 오셔서 하는 푸념을 나는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긋지긋한 술주정을 대놓고 저주하곤 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건 일종의 직업병이라는 걸, 술힘을 빌리지 않곤 지게를 질 수 없을 만큼 당신이 노쇠했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알코올성 간경화 말기로 아버지가 쓰러져 누웠을 때 나는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보았다. 40년 가까운 지게 짐에 화인처럼 찍힌 자국이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자국이었고, 아들에겐 더군다나 어떤 식으로든 물려주고 싶지 않은 상처와 같은 것이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관장을 하고 아버지가 아기 때의 내게 그랬듯 나는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았다. 그리곤 아버지를 업고 병원 욕실을 찾았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아버지의 적막한 등짝이 드러났다. 아버지,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이 지게 자국이 제겐 그 무엇보다 귀한 보물과 같아요. 나는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아버지의 등을 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등에 지고 온 삶의 무게들을 비로소 쓰다듬기 시작했다.

▲ 손택수는…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경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당선돼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호랑이 발자국』『목련 전차』등이 있다.

 

출처: 아버지 학교

편집 겸 옮김: meister5959@hanmail.net

 

   이 시는 한국전쟁을 치른 뒤 폐허가 된 대한민국이 산업사회로 탈바꿈하기까지 이어진 아버지 세대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시를 읽을 때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생각에 가슴엔 싸한 아픔이 밀려온다. 평생 지게를 지고 농사일에 파묻혀 새우등이 되도록 허리 한번 마음껏 펴보지 못한 채 어느 날 홀연히 찾아온 중풍으로 3년 9개월 동안 기어 다니셨던, 육 남매 낳아 기르며 고생하시다가 생의 끝자락을 그저 안쓰러운 마음에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하셨던 아버지. 몸이 무거우면 하늘로 오르지 못하실까 봐 그러셨을까. 끝내는 누워서 자신의 몸뚱이까지 어린 새끼들에게 다 나눠주고 떠나는 거미처럼 살가죽이 뼈에 맞닿은 뒤에야 벽제 승화원에서 지게 자국을 지우고 하늘로 떠나신 나의 아버지.ㅠㅠ

 

  어린 시절 여름날, 아버지가 집 뒤 울 옆으로 흐르는 도랑 가에 엎드려 누나들이 씻겨드리는 등목을 하실 때면 등과 어깨엔 평생 숙명처럼 짊어져야 했던, 농경사회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지게질로 피부가 혈액순환이 안 돼 마치 검은 참깨를 뿌려놓은 듯이 6남매를 거느린 가장이 진 삶의 무게가 참혹하게 그려져 있었다. 

아~! 나의 아버지, 그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지 못한 철부지 막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깨닫습니다.

' 내가 아버지의 짐이었다고...' (봄내지기 추가)

 

이 자료는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손택수 시인의 여러 자료들을 모아 다시 편집한 것임을 알립니다. 하여 일부 정보의 오류가 있을수 있으니 읽고 참고만 하시길 바랍니다.(편집 겸 옮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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