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이콘은 어떻게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나

책에서 만난 사람 - 최진실의 삶과 예술이 남긴 유산


사진제공 : 조선DB ·문화다북스
“남편 퇴근 시간은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1988년 삼성전자의 제품 광고 모델로 나온 최진실은 이 말 한마디로 스타가 되었다. 스무 살에 ‘귀엽고 사랑스러운 새댁’으로 등장한 그는 1990년대 광고·영화·드라마의 ‘시청률 보증’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경제적으로는 고성장, 정치적으로는 여권의 신장과 민주화의 흐름을 타고 있던 90년대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젊은 여성들은 최진실의 패션을 따라 했고, 남성들은 그를 아내로 맞고 싶어 했다. 결혼 연령대의 아들을 둔 부모들은 최진실을 며느리 삼기 바랐고 청소년들은 말이 통하는 누나나 언니로 받아들였다.

  한때 모든 연령대의 ‘워너비’였던 그는 결혼 후 불행한 사생활이 거의 실시간으로 언론에 공개되면서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안티팬들은 드라마 속 ‘똑순이’ 이미지와 다르게, 정작 본인의 가정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는 그에게 무지막지한 돌을 던졌다.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문화다북스)
  2008년 탤런트 안재환이 사채 문제로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시중에서 안재환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채업자가 최진실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최진실은 이를 부인하며 경찰에 조사를 요청했다. 결국, 근거없는 소문으로 밝혀져 소문을 낸 당사자가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최진실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최진실을 기억하지만 불행한 그의 사생활에 가려 대중문화예술인으로서 그가 남긴 성과에 대한 평가는 미흡하다. 추모 7주기를 맞아 최진실의 삶과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책이 나왔다. 문화평론가 10명이 공동 작업한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문화다북스)은 최진실이 출연한 광고·영화·드라마 비평을 통해 그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 책을 기획한 최강민 주간은 “최진실이라는 기억의 지도를 통해 지나온 1990년대와 2000년대라는 문화적 기억의 지형을 둘러보려 한다”고 밝혔다.


스타가 된 ‘수제비 소녀’

최진실이 출연해 히트한 작품들.
왼쪽부터 드라마 〈질투〉,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최진실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직업이 없었던 아버지는 최진실이 고등학생 무렵 새 살림을 차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버렸다. 이후 세 식구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아버지의 부재는 그에게 상실감, 배신감의 형태로 다가왔다. 어머니는 포장마차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역부족이었다. 최강민 주간은 “유년시절 최진실의 의식과 무의식을 사로잡았던 것은 버려짐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었다”며 “아버지를 부정할수록 성공을 향한 욕망이 커졌다”고 평했다.

  10대 시절 최진실은 가난해서 학교 등록금도 제때에 내지 못했고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 값싼 수제비는 최진실 가족에게 식사 대용이었다. 최진실은 선일여고에 다니면서 연예인이 되거나 미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꿨지만 대학 진학은 불가능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동생인 최진영과 육촌인 탤런트 최재성의 도움으로 모델 일을 시작했다. 1988년 한국화장품 CF 조연으로 출연하며 광고계에 데뷔한 최진실은 삼성전자 관계자의 눈에 띄어 신제품 VTR의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광고 모델료도 3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뛰었다. 이렇게 번 돈으로 지하 셋방을 벗어나 빌라로 주거 공간을 옮겼다.


  CF광고로 유명해진 최진실은 드라마 섭외 1순위자였다. 1992년 시청률 50%대를 기록하며 그해 최고의 화제가 된 드라마 〈질투〉는 최진실에게 ‘신세대 청춘’이라는 아이콘을 선사했다. 〈질투〉는 당대 젊은이들의 사랑 풍속도를 감각적으로 보여준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였다. 최진실은 드라마에서 똑똑한 직장 여성으로, 남자친구에게는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적극적인 신세대 여성을 연기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에서 착용한 머리띠와 수영복이 완판되었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한 시나 단행본도 여러 권 나왔다. 시인 유하는 시 〈수제비의 미학, 최진실론〉을 썼고 한 일간지에 공개적으로 최진실을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정미의 《최진실 신드롬》, 이요나의 《최루탄 같은 여자 최진실 서정시 같은 남자 서태지》, 이호규의 《신데렐라는 없다》 등은 최진실의 인기에 힘입어 발간된 단행본들이다. 90년대 최진실은 남성들에게 애교 만점의 요정으로, 여자들에게는 현모양처의 신세대 주부로 인식됐다. 영화에서도 이런 이미지가 흥행의 요소로 작용했다. 생전에 모두 18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마누라 죽이기〉에서 능력 있고 당찬 신세대 여성을 연기했을 때 대중은 호응했다. 1997년 출연한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는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최초의 한류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30대 중후반이 된 최진실은 〈장미빛 인생〉을 통해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 드라마였던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는 첫사랑과의 사랑에 성공하는 아줌마 역을 연기하며 ‘줌마렐라’(아줌마와 신데렐라의 합성어)라는 신조어의 원조가 되었다.


연기와 삶의 불일치가 품은 비극


   최진실은 서른두 살이던 2000년 야구스타 조성민과 결혼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결혼은 3년 9개월 만에 막을 내린다. 이혼 과정 중에 알려진 남편의 외도와 폭력은 최진실을 가정폭력 피해자로 인식시키기보다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와 불일치함에 대한 확인과 냉소로 이어졌다. 인터넷에는 안티카페도 생겼다. 한 누리꾼은 “이혼 문제로 진실성이 없고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사람이 천연덕스럽게 활동하는 게 싫다”고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최진실은 그동안 연기자의 모습뿐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저축왕을 수차례 수상한 덕에 알뜰하고 야무진 여성으로 비춰졌었다. 그의 이미지는 결혼 후 파경과 이혼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급속히 힘을 잃고 말았다. 2005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사랑받았던 그 이유가 지금 내게 오히려 상처가 되고 있다”며 “이혼녀란 말이 너무 싫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수없이 맹세했지만, 어느새 나도 엄마가 걸어간 길 위에 서 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안티팬들은 그의 절규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최진실은 어느새 가정폭력과 이혼의 대명사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를 찾는 드라마 제작자가 줄었다. 광고 섭외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한 광고주는 최진실을 상대로 30억5000만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사생활 관리를 잘못해 기업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사업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소송은 우여곡절 끝에 소속사가 1억원, 최진실 가족이 1억원을 광고주에 배상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법원이 광고주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연예인의 사생활이 광고주의 소유물’임을 법적으로 인정한 사례로 남았다.


  문화평론가 김혜연은 최진실의 죽음이 남긴 결과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했는데 가장 큰 변화는 친권법 개정이었다.

  기존 친권법에 따르면 최진실의 사망에 따라 조성민이 자동으로 아이들의 친권자가 되었다. 조성민이 엄청난 유산과 함께 친권을 넘겨받고, 두 자녀는 전 남편의 새 아내와 같이 살게 될 수도 있었다. 당시 인터넷에 ‘조성민 친권 반대 카페’가 생겼다. ‘아이들의 법적 권리를 위한 실천 모임’은 친권법 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료 배우, 여성학자, 문화인류학자, 법조인, 국회의원 등이 모임에 참여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친권자가 사망할 경우 법원이 다음 친권자나 후견인을 심사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친부모라 해도 법원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친권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부적절한 친권자가 아이들이 물려받은 유산을 탕진하는 상황도 막을 수 있게 됐다.

  이혼 후 최진실은 여러 차례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애쓰는 여성 단체들이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돕고 싶다”고 밝혔다. 죽기 전날에도 친한 친구에게 “이제 연예계 은퇴하고 아프리카 같은 데서 오드리 헵번처럼 봉사하면서 살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만약 그가 계속 살아 있었더라면 소외당한 사람들을 돕는 인권운동가가 되지 않았을까.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이 마흔에, 악성 루머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스타의 죽음이 아쉬울 뿐이다.

출처:탑클라스

2015.09.23 22:21 문화다 스타 산책

[추천 텍스트]『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문화다북스, 2015)

                  스타 최진실이 죽은 지 벌써 7년의 세월

 

  2008년 10월 2일. 스타 최진실이 세상을 갑작스럽게 떠났다.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최진실의 죽음을 슬퍼했다. 스타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칠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최진실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녀가 한국대중문화에 남긴 유산은 적지 않은 편이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및 광고를 남겼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높은 시청률과 흥행을 기록했다. 이 같은 사실만으로도 스타 최진실의 존재감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최진실의 삶과 예술을 기억하는 것은 불꽃같은 삶에 대한 열망이자 그리움이다
우리는 최진실이라는 타임머신을 통해 1990년대와 2000년대 시간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아쉽게도 최진실의 삶과 예술세계를 정리한 책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최진실의 자서전과 어머니 정옥숙의 회고록은 있었지만, 정작 제3자의 시선에서 최진실의 삶과 예술 세계를 정리한 책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최진실이 급작스러운 죽음이 남긴 충격과 아픔이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웹진 《문화 다》는 점차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혀져가는 최진실의 삶과 예술세계를 다시 재조명하고자 했다. 배우 최진실의 삶과 예술에 대한 조명은 단순한 복고 취미가 아니다. 우리의 작업은 최진실이라는 기억의 지도를 통해 지나온 1990년대와 2000년대라는 문화적 기억의 지형을 둘러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을 통해 최진실의 드라마틱한 삶과 그녀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제1부는 신데렐라 최진실의 삶과 예술・CF 광고를, 제2부는 최진실이 출연한 영화를, 제3부는 최진실이 출연한 드라마를 분석했다.

 

다양한 입장과 최진실에 대한 재조명
최진실을 기억한다는 것은 지난 청춘의 시절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성찰이다
스타 최진실의 삶과 예술을 읽어내면서, 우리는 인생의 모든 맛을 처절하게 경험한다

 

  10명의 필자들은 최대한 자신의 관점과 개성을 유지하면서 최진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하고자 했다. 어쩌면 우리는 최진실을 매개로 ‘자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진실이라는 실재(實在)를 어떻게 언어로 붙들어둘 수 있겠는가. 다만 그녀를 통해 망각하고 있었던 우리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이 책이 배우이자 탤런트로 활동했던 최진실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는 최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그녀가 자살했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롤러코스터의 인생 속도를 경험하고 싶다면 최진실의 삶과 예술을 엿보기만 하면 된다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은 웹진 《문화 다》에서 기획한 '문화 다 스타 산책' 시리즈 중 제일 첫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 문화평론가 최강민은 최진실의 성공신화, 버려짐의 트라우마, 자살, 버터플라이 효과, 최진실 죽음의 의미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최강민은 최진실의 자살이 25억 사채설과 동료들의 외면, 이혼 후 우울증, 적자생존의 연예인 스트레스와 팬들의 외면, 영화와 드라마에서 간접적인 죽음의 체험 등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해 어느 순간 증폭되어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특히 이 다양한 자살 원인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바로 버려짐에 대한 트라우마라고 진단한다.

 

  최진실과 관련된 사람 중 자신을 포함해 모두 5명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신의 저주였을까? 아니면 우연의 연속이었을까? 누가 이 비극의 행진을 점화시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최진실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에 버금가는 한국판 비극을 연출한 감독이자 주연 배우가 되었다. (최강민)

 

  문화 칼럼니스트 김혜연은 신데렐라 신화의 시작이었던 최진실의 CF 광고를 분석했다. 최진실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CF 광고로 무명의 모델에서 최고의 신데렐라 스타로 등극했다. CF 광고로 시작된 최진실의 성공신화는 드라마와 영화로 파급되면서 계속 확장되었다.

 

  소비가 행복이었던 시대, 여자는 신나게 물건을 사들이고 남자는 웃으면서 결제해주는 모습이 행복의 아이콘이었던 시대, 최진실은 그 한가운데에서 빛나고 있었다. (김혜연)

 


      사랑스러운 신부와 가족을 사랑하는 신세대 엄마의 이미지
      최진실을 기억하는 것은 일종에 타임머신을 통한 삶의 회고와 성찰이다

 

  제2부는 영화배우로서 활약했던 최진실의 예술 세계를 집중 조명했다. 최진실이 출연한 첫번째 개봉 영화는 <남부군>이었다. 그 후 그녀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고스트 맘마>, <편지> 등에서 주목할 만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국민배우가 되었다. 

 

  최진실이 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시기는 그녀의 빛나는 청춘 시절인 20대였다. 영화평론가 김필남, 지승학, 송효정, 박우성은 최진실이 출연한 초기작부터 가장 마지막까지 출연했던 영화를 소재와 이미지로 나눠 분석했다. 영화평론가 김필남은 최진실이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이기도 했으며, 아내도 매혹적이고 사랑스러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당대의 아이콘이었다는 것을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베이비 세일> <마누라 죽이기>, <고스트 맘마>, <마요네즈> 분석을 통해 말해준다.

 

   최진실은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이기도 했으며, 아내도 매혹적이고 사랑스러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당대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물론 현실 속 최진실은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었던 그 다양한 엄마의 모습과 달리 엄마의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지만 말이다. (김필남)

 

   영화평론가 지승학은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꼭지딴>, <단적비연수> 등의 영화를 통해 최진실의 개인적 책임감이 사회적 책임감으로 확장되어 최진실의 비극적 자살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영화평론가 송효정은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미스터 맘마>, <베이비 세일> 등의 영화를 분석했다. 송효정은 이 영화 분석을 통해 사랑스러운 신부와 그악스러운 악처, 남성의 보호 하에 놓인 순종적 여성과 사회적 성공을 열망하는 직장여성(워킹맘), 이 사이에 1990년대 영화배우 최진실이 놓여 있었다고 말한다.

 

  최진실의 이미지는 기성세대에게는 가난을 딛고 성공한 ‘또순이’의 서민친화적인 이미지로, 젊은 세대에게는 상품경제의 첨단에 있는 감미로운 이미지로 어필되었다. 폭넓은 세대에게 서민생활과 소비문화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모순적인 문화적 아이콘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송효정)

 

  영화평론가 박우성은 최진실이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상대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많지 않다고 안타까워한다. 최진실이 새신부 혹은 야무진 아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시대적 한계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현한다.

 

  광고 이미지로 각인된 최진실의 새신부 혹은 야무진 아내의 이미지가 최진실의 스타 이미지라고 했을 때, 그것이 이후의 그녀가 등장하는 작품들 여기저기에서 자연인 최진실 고유의 것인양 당연시 되는 현상을 우리는 자주 목격했다. (박우성)


드라마의 여왕이 되다
최진실의 삶과 예술을 읽는다는 것은 급상승과 급하강의 반전 드라마를 감상하는 일이다

 

  제3부는 최진실이 출연한 드라마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논하고 있다. 독자들은 드라마를 평한 글들을 통해 최진실이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최고의 인기를 얻은 드라마의 여왕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최진실은 1992년에 출연한 드라마 <질투>를 통해 최고의 청춘스타가 되었다. 최진실은 1990년대에 영화와 드라마 모두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주면서 1997년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드라마 칼럼니스트 송치혁은 최진실이 출연한 초기 드라마인 <질투>, <아스팔트 사나이>, <째즈>를 중심으로 최진실의 신드롬을 진단한다. 최진실은 귀엽고 똑소리나는 신세대 청춘에서, 성숙하고 지혜로운 어른에 이르는 이미지를 통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송치혁은 최진실의 신드롬이 삶을 직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용기 있게 추구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최진실이 보여주었던 이미지들은 1990년대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야했던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단지 외모의 아름다움과 교태가 실린 아양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최진실 신드롬은 삶을 직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용기 있게 추구하는, 그리하여 자기 앞에 놓인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했던  그녀의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송치혁)

 

   드라마 평론가 김태희는 최진실의 중기 드라마인 <별은 내 가슴에>, <그대 그리고 나>, <추억>, < 장미와 콩나물>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김태희는 대중들이 이 시기에 최진실의 드라마를 보며 시집간 우리 언니(혹은 딸 같은 피붙이)를 보는 심정으로 최진실을 응원했다고 본다. 당대 대중들은 각박한 현실이 지속될수록 최진실이 행복하기를 바랐고, 최진실이 드라마에서 지켜낸 가정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신세대 며느리의 상징이었던 최진실은 1990년대에 대중과 가까운 곳에서 빛나는 별이었다고 말한다.

 

  최진실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IMF라는 시대적 배경은 대중들이 최진실의 이미지 변신을 응원하도록 만들었다. 현실에서나 드라마에서나 고난과 역경을 온몸으로 버텨내는 그녀를 보며, 가정을 지키겠다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그녀를 보며, 대중은 시집 간 ‘우리 언니’(누나나 혹은 딸 같은 피붙이)를 보는 심정으로 그녀를 응원했다. (김태희)

 

  드라마 칼럼니스트 최영희는 최진실의 후기 드라마인 <장밋빛 인생>, <나쁜 여자 착한 여자>,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을 꼼꼼하게 분석한다. 이것을 통해 최영희는 귀여움의 아이콘이었던 최진실이 결혼의 실패 속에 기존의 이미지를 모두 버리고 억척 아줌마로, 줌마렐라로 변하는 과정을 말해준다. 최영희는 후기 드라마를 분석하면서 이 작품들이 최진실의 연기 인생에서 절정기에 도달했다고 평한다. 최진실이 귀여운 여인의 이미지를 버리고 오직 연기 그 자체에만 집중해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완벽하게 변신했다고 평한다. 

 

  영화평론가인 심우일은 드라마 <질투>, <별은 내 가슴에>, <장미빛 인생>을 통시적으로 논하면서 최진실의 드라마 세계에 접근한다. 심우일은 최진실이 귀엽고 밝은 여성에서 억척스러운 여성으로 변신하였으며 말년에는 두 이미지를 결합하려 시도했다고 평한다. 최진실은 배우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구축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여성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기하고 고민했던 그녀의 작품 세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심우일은 주장한다.  

 

  2015년, 다시 그녀가 남긴 작품들을 살펴보는 작업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회상하는 일이며 여전히 떠나보낼 수 없는 그녀를 애도하는 일이다. 영화 <편지>(1997)에서 정인(최진실 분)은 환유(박신양 분)가 보내온 편지를 받고 진정으로 그를 떠나보낼 수 있었듯, 고인의 작품 세계에 관해 정리된 글을 쓰는 작업도 일종의 애도를 표하는 방식이리라. (심우일)


출처: 문화디북스

  뜰에 해바라기가 피었네/법정



  자다가 깨어나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다가 이내 털고 일어나 이 글을 쓴다. 일어날 시간이 되지 않았더라도 일단 깨어났으면 뭉갤 필요가 없다. 눈이 떠졌는데도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면 게으른 버릇밖에 길러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 다음 고이 잠들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 살 만큼 살다가 신체적인 동작이 멎었을 때, 친지들이 검은 의식을 치르면서 '고이 잠드소서' 어쩌고 하면서 작별의 인사를 할 것이다. 그때 가면 평생에 모자라던 잠을 온몸이 다 삭아질 때까지 실컷 잘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깨어 있는 맑은 정신으로 보다 유용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기상나팔'은 이만 불고, 오늘 마음에 고인 말을 풀어놓으려고 한다. 며칠 비워두었다가 오두막에 돌아오니 뜰가에 해바라기가 피어있었다. 손수 씨를 뿌려 가꾼 보람이 해바라기로 피어난 것이다. 부풀어오르는 이런 기쁨은 스스로 가꾸어보아야만 누릴 수 있다.

  이 해바라기의 고향은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이다. 해바라기를 즐겨 그린 태양의 화가,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나오다가 매점에서 파는 씨앗을 샀다. 내가 이 오두막에 들어와 살면서부터 해마다 꽃이 피는 해바리기인데, 처음 피어난 꽃을 대하면 마음이 사뭇 설렌다. 철새들의 첫소리를 들을 때처럼. 나는 이런 사소한 일에서, 살아가는 잔잔한 기쁨을 누리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부터 해질녘이면 커다란 떡두꺼비 한 마리가 섬돌에 엉금엉금 기어나와 내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오, 네가 또 왔구나'하고 아는 체를 한다. 낮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해질녘이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나는 이 두꺼비한테 '너는 무슨 재미로 이 산중에 혼자 사느냐'고 두러두런 이야기를 한다. 두꺼비는 아무 대꾸도 없이 내 말을 끔벅끔벅 들어주기만 한다. 이렇게 지내온 사이에 우리는 한집안 식구처럼 길이 들었다.

  두꺼비는 내가 바싹 다가서도 나를 경계하지 않는다. 나는 두꺼비에게 먹을 것을 주고 싶은데 그의 식성을 몰라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땅에 엎드린 채 그 동작이 굼뜬 이 두꺼비도 파리나 물것을 잡아먹을 때만은 그 입놀림이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넙죽넙죽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한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가만히 엎드려 미동도 하지 않다가 파리나 물것이 가까이 오면, 날름 혀를 내밀어 순식간에 잡아먹는다. 굼벵이도 뒹구는 재주가 있다더니, 이 두꺼비한테도 물것을 잡아먹는 재주가 아주 비상하다. 모든 생물은 저마다 살아가는 묘기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산중은 아침 저녁으로 많이 서늘해졌다. 이제는 거르지 않고 날마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야 할 때가 되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영롱하게 돋아나고 은하수도 선명하게 흐른다. 숲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도 가을임을 알려오고 있다.

  별밤 아래서 나는 밤이 이슥하도록 노래를 불렀다. 곁에 들을 사람도 없으니 마음놓고 18번,19번을 죄다 쏟아 놓았다.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즉흥적으로 작사, 작곡을 해서 부른다. 그날 일어났던 일을 오페라 가수처럼 노래로 부르고 있으면 아주 즐거워진다. 반주는 시냇물 소리가 알아서 해준다.

  이런 별밤이 아니라도 나는 설거지를 할 때 곧잘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흥에 겨우면 목청을 돋워 오두막이 들썩거리도록 창을 부르기도 한다.

  영화 <서편제>를 보고 나서 한때는 입버릇처럼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는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구나......'로 시작되는 <사철가>를 불렀다. 한참을 부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슬퍼져서 목소리가 촉촉이 젖을 때도 있었다.

  슬플 때는 슬픈 노래로 위로를 삼고, 기쁠 때는 기쁜 노래로써 그 기쁨을 드러낸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은 저마다 노래를 지니고 있다. 사람과 새들만 아니라 나무도 풀잎도 바람을 타고 노래를 한다.

  인간의 입에서 살벌하고 비릿한 정치와 경제만 쏟아져 나오고 시와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그의 가슴은 이미 병들기 시작한 것이다. 먹고 마신 그 입에서 꽃향기 같은 노래가 나와야 한다.

  사는 즐거움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 즐거움은 누가 가져다 주는가. 즐거움은 우리 스스로 만들고 찾아내야 한다. 사는 일이 재미없고 시들하고 짜증스럽고 따분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한 대로 그 삶은 재미없고 시들하고 짜증스럽고 따분한 일로 가득 채워진다.

  우리들의 일상이 따분할수록 사는 즐거움을 우리가 몸소 만들어내야 한다. 즐거운 삶의 소재는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곁에 무수히 널려 있다. 우리가 만들고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지 않고 털고 일어나 이 '글 쓰는 숙제'를 식전에 마치고 나니 아주 개운하다. 이 개운함이 오늘 하루의 내 삶을 받쳐줄 것이다.

  당신은 사는 일이 즐겁지 않은가. 1996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 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해설> 1978년 [문학사상]에 발표하였으며,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수록되어 있다.

정희성은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가 처한 노동 현실을 통해 삶의 궁극적 가치를 묻는다. 정희성은 도시 근로자의 지친 삶과 무거운 비애를 노래한 시를 많이 발표한 시인이다. 여기에서도 그러한 면이 부각되고 있다.

이 시는 물의 이미지와 화자의 세계 인식이 병행되어 전개되고 있다. 강물의 이미지는 곧바로 화자의 세계관을 대변한다.

'강'은 도회를 흐르고 있으며, 시간적 배경은 저물녘이다. 맑게 흐르는 강이 아니라 무겁게 흐르는 강물이다. 이 샛강은 썩어서 흐른다. 그 강물은 스스로 썩어간 것이 아니다. 썩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은연중 산업화, 도시화라는 문명적 속성의 부정성을 암시한다. 문명 이전의 청정과 정체성은 산업화에 의해 침해를 받고 오염되며 그 부정성은 누적되어 간다.

물이 흐르듯이 소외 받은 소시민의 삶도 정체성을 지니지 못하고 유동적으로 흘러간다. 삶의 애환을 가슴에 가득 안은 채 강물처럼 흘러간다. 하루의 노동이 끝난 뒤 삽을 씻으며 삶의 슬픔 또한 삽을 씻듯 씻어 본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씻겨 나가는 아픔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일시적 현상도 아니다.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생활고이며, 쉽사리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애감은 강물처럼 무겁게 드리우는 것이다.

저녁 무렵, 강물이 깊어만 보이는 배경은 애상을 충분히 자아낸다. 달은 어둠과 대조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면서도 서러운 정감을 더해 준다. 어두운 강물 위에 달이 뜨듯 생화의 희망을 잃지는 않아야 한다. 삶이 비록 서럽더라도 삶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괴로움과 절망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야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서러움이다. 가난한 마을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도시 빈민의 서글픈 삶이 애상적 분위기 속에 드러난다.

(현대시 작품, 인터넷)

* 이 시는 소외된 도시 노동자의 서글픈 삶이 애상적 분위기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부정적인 현실에 대해 느끼는 분노와 고통을 격앙된 비판의 목소리가 아닌, 절제되고 관조적인 독백으로 일관하는 화자의 태도에서 인생에 대한 성찰의 자세를 느낄 수 있다.

이 시의 화자인 중년의 노동자는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과 현실을 돌아보고 있다. 화자는 생계의 수단인 삽을 강물에 씻으며 삶의 슬픔도 함께 씻어버리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쉽게 씻겨 나가는 것이 아니다. 화자는 고되게 일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노동자로서의 삶을 '썩은 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삶이 비록 서럽더라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괴로움과 절망 속에서도 삶은 지속해야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서러움이다. 그리하여 가난한 마을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권에 잡히는 현대시)

 

 

 

 

 

 

 

 

 

 

                            

 

 

                     

                              <정희성(鄭喜成) : 1945 - >

 

* 1945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출생. 용산고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 1970년 군제대 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 1974년 첫시집 [답청(踏靑)]을 출간하였다.

* 1978년 <새벽이 오기까지는>, <쇠를 치면서>(1978), <이곳에 살기 위하여>(1978) 등을 발표했다. 두번째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출간하였다.

* 1991년 세번째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를 펴냈으며,

* 2001년 <시를 찾아서>와 <술꾼>, <첫고백>, <세상이 달라졌다> 등을 비롯해 43편의 신작시가 실려 있는 네번째 시집 [시를 찾아서]를 출간했다.

* 2002년 숭문고교 국어교사로 재직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및 대기고등학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시집으로 [답청],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시를 찾아서] 등이 있으며, 번역서 [몽유왕국을 위한 음악]과 김태형과 공저인 이론서 [한국시의 이해와 감상]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1981)과 시와 시학사상(1997)을 수상했다.



출처:유투브 (카톨릭문화원 아트센터 공연)

제목[특집·기획] 선재 스님 - 사찰음식 대중화의 원조년/호2012/2
소제목특집 ● 생명의 속삭임, 사찰음식 ● 현장에서 만난 대가들의 삼색삼미三色三味호수448
글 : 유철주


  선재 스님은 하루하루가 바쁘다. 매주 화, 수, 목, 금요일에 서울 전국비구니회관에서 오전,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사찰음식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쇄도하는 특강 요청에 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전국비구니회관 사찰음식 강좌는 현재 대기자만 4,000여 명에 이른다. 스님은 강의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에게 감사하면서도 미안해 ‘대기자를 위한 특강’을 시시때때로 열어주고 있다. 지난 1월 20일부터는 8일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현지 언론의 초청으로 ‘사찰음식과 김치’ 특강을 다녀오기도 했다.



사찰음식은 약이다
  전국비구니회관을 찾은 날, 오전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스님에게 달려갔다. 최근 들어 스님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기 때문에 잠깐의 틈을 이용
한 것이다.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서인지 입술이 터 있었다. 그래도 스님은 언제나 미소로 사람들을 만난다.
  “무채두부찜을 추천할게요. 무의 비타민C는 세포의 노화를 억제하고 몸의 독소를 풀어줍니다. 또한 무에는 소화효소인 디아스타아제도 많아 손상된 위 점막을 복구해주고 소화를 도와주어 ‘천연 위장약’이라고도 합니다. 두부와 무를 함께 먹으면 무가두부의 뭉친 기운을 풀어주고, 무에 없는 두부의 단백질 등을 섭취할 수 있어요. 콩 속의 제니스틴 성분은 암을 비롯한 당뇨병과 고혈압 등의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구요.”
  평소 ‘사찰음식은 약’이라고 강조해왔던 스님은 대표음식을 추천하면서도 ‘의학적 기능’을 덧붙여 설명했다. 스님은 배추된장찜과 팥죽도 함께 추천했다. “최고의 웰빙음식, 항암식품으로 손꼽히는 된장은 아토피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습니다. 자극적인 인스턴트 음식에 길든 아이의 입맛을 돌릴 수 있는 배추찜을 해주면 아주 좋아요. ‘100가지 채소가 배추만 못하다’는 중국 고어가 있을 정도로 배추는 맛도 있고 영양도 풍부합니다. 또 팥은 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설사를 멈추게 하며 지방의 축적을 막아주기도 해요. 팥의 섬유질, 사포닌 성분은 변비 치료에 좋을 뿐만 아니라 포만감을 느껴 과식을 방지할 수 있어 다이어트에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사찰음식에 깃든 생명존중의 정신
  스님이 추천한 음식은 모두 늦가을과 겨울에 나는 재료들로 만든 것이었다. 평소에도 ‘제철음식’을 강조하는 스님다웠다. “제철음식은 치료약이자 예방약입니다. 계절에



무채두부찜
● 무 1/2개, 두부 1모, 마른 표고버섯 3개, 홍고추 1개, 미나리 5줄기, 소금, 고춧가루 1큰술, 집간장 2큰술, 포도씨유, 들기름, 통깨 약간씩 1 두부는 1cm로 썰어 소금을 약간 뿌려 팬에 지지고, 마른 표고버섯은 불려서 채 썰어 들기름에 볶는다. ● 2 무는 곱게 채 썰고 홍고추도 반으로 갈라 채 썬다. 미나리는 줄기만 4cm로 썬다. ● 3 무채에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 고춧가루 물을 들인 후 볶은 표고버섯, 미나리, 홍고추를 넣어 집간장으로 간해서 골고루 버무린다. ● 4 달구어진 냄비에 무채를 깔고 그 위에 두부를 얹고 다시 무채를 얹은 후 뚜껑을 덮어 무채가 아삭할 정도로 살짝 익힌다.



배추된장찜
● 배추 1/2통, 물 3큰술, 들기름 1큰술, 집 된장 2큰술, 다시마 2장 ● 1 배추는 한 장씩 뜯어서 깨끗하게 씻는다. ● 2 냄비에 다시마를 넣고 배추를 넣은 후 물을 붓고 뚜껑을 덮어 김을 올린다. ● 3 김이 올라 배추가 익으면 들기름과 된장을 넣어 배추에 골고루 간이 배게 배추를 위아래로 뒤적여준다. ● 4 배추에 살짝 간이 배면 불을 끈다.



팥죽
● 붉은팥 1컵, 물 10컵, 불린 멥쌀 1컵, 찹쌀가루 1컵, 소금 양간 ● 1 쌀을 씻어서 두 시간 이상 물에 불려놓고, 팥은 씻어서 물을 붓고 한번 끓어오르면 그 물을 버리고 넉넉하게 물을 붓고 푹 무르도록 삶는다. ● 2 팥이 다 익으면 앙금만 걸러 가라앉히고, 찹쌀가루를 반죽해서 옹심이를 만든다. ● 3 팥물의 앙금이 가라앉으면 웃물만 따라서 쌀을 넣어 퍼지게 끓인다. ● 4 쌀이 퍼지면 앙금을 조금씩 넣어가며 농도를 맞추고, 맨 마지막에 빚어 놓은 옹심이를 넣어 옹심이가 떠오르면 불을 끈다.

따라서 병이 오고 계절에 따라서 치료제가 와요. 그래서 계절에 따른 음식을 먹으면 병도 치료됩니다.” 스님이 이렇게 제철음식을 강조하는 것은 과거 의 경험 때문이다. 한때 간이 안 좋아 고생을 했는데, 그때 제철 사찰음식을 먹으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그래서 사찰음식을 대하는 스님의 마음가짐은 흐트러짐이 없다.
“사찰음식에는 생명 존중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요. 내 먹을 것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녹아있는 것입니다. 사찰음식은 모든 생명이 나와 하나라고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생명들이 함께 공존하는 길이 특히 선식禪食에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사찰음식 연구와 강의를 통해 나 자신의 불성을 깨달아가고, 다른 사람의 수행을 돕고, 건강과 영혼을 맑히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을 계속하려 합니다.”
사찰음식 역시 철저하게 부처님 말씀에 근거해만들어야 한다는 선재 스님은 몸이 맑아지고 마음이 건강해지는 사찰음식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한 길에 이렇게 서 있다.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사찰음식 책


선재 스님,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불광출판사)
지난 30년간 사찰음식을 연구하고 강의해 온 사찰음식의 대가 선재 스님이 11년 만에 새 책. 책에서 스님은 사찰음식을 통해 마음을 맑히고, 몸속의 독소를 배출해 병고를 녹여내는 방법을 일러준다. 스님은 또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제철 음식 재료와 요리를 소개하고, 22가지 요리법과 그 효능을 알려주고 있다.

대안 스님, 『열두 달 절집 밥상』(웅진리빙하우스)


대안 스님은 책에서 특별한 양념도, 희귀한 재료도, 복잡한 조리법도 없이 간단하게 무치고, 삶고, 볶고, 끓여 만드는 절집 음식을 소개한다.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도 만들기 쉬운 사찰요리의 세계가 펼쳐진다. 음식의 기본 재료가 되는 장과 맛국물, 맛가루 만드는 법부터 1년 12달, 계절에 맞는 밥상 차림까지를 모두 만날 수 있다.

적문 스님, 『전통사찰음식』(우리출판사)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전통 사찰음식 요리 안내서. 옛부터 전승해 온 맛깔스러운 사찰음식을 사계절로 나누고, 4인 기준 정량을 표기해 요리에 자신이 없는 초보자들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소개했다. 책의 중간 중간에는 ‘영양상식’ 코너와 사찰음식 문화의 이면에 깃든 구수한 옛이야기를 곁들였다.

일운 스님, 『불영이 감춘 스님의 비밀레시피』(담앤북스)


울진 불영사에서 오랫동안 내려오던 스님들의 음식관, 건강관, 가치관을 담은 책. 건강요리법을 좀 더 쉽게 일반인에게 알리기 위하여 펴낸 책으로 요리법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재료 하나하나의 특징과 건강 상식은 물론이고 불영사에서 실제 일어나는 재미있는 절집 이야기와 음식 이야기가 맛깔스럽게 담겨 있다.


출처: 월간 '불광'

제목[특집·기획] 선재 스님 - 사찰음식 대중화의 원조년/호2012/2
소제목특집 ● 생명의 속삭임, 사찰음식 ● 현장에서 만난 대가들의 삼색삼미三色三味호수448
글 : 유철주


선재 스님은 하루하루가 바쁘다. 매주 화, 수, 목, 금요일에 서울 전국비구니회관에서 오전,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사찰음식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쇄도하는 특강 요청에 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전국비구니회관 사찰음식 강좌는 현재 대기자만 4,000여 명에 이른다. 스님은 강의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에게 감사하면서도 미안해 ‘대기자를 위한 특강’을 시시때때로 열어주고 있다. 지난 1월 20일부터는 8일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현지 언론의 초청으로 ‘사찰음식과 김치’ 특강을 다녀오기도 했다.



사찰음식은 약이다
전국비구니회관을 찾은 날, 오전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스님에게 달려갔다. 최근 들어 스님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기 때문에 잠깐의 틈을 이용
한 것이다.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서인지 입술이 터 있었다. 그래도 스님은 언제나 미소로 사람들을 만난다.
“무채두부찜을 추천할게요. 무의 비타민C는 세포의 노화를 억제하고 몸의 독소를 풀어줍니다. 또한 무에는 소화효소인 디아스타아제도 많아 손상된 위 점막을 복구해주고 소화를 도와주어 ‘천연 위장약’이라고도 합니다. 두부와 무를 함께 먹으면 무가두부의 뭉친 기운을 풀어주고, 무에 없는 두부의 단백질 등을 섭취할 수 있어요. 콩 속의 제니스틴 성분은 암을 비롯한 당뇨병과 고혈압 등의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구요.”
평소 ‘사찰음식은 약’이라고 강조해왔던 스님은 대표음식을 추천하면서도 ‘의학적 기능’을 덧붙여 설명했다. 스님은 배추된장찜과 팥죽도 함께 추천했다. “최고의 웰빙음식, 항암식품으로 손꼽히는 된장은 아토피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습니다. 자극적인 인스턴트 음식에 길든 아이의 입맛을 돌릴 수 있는 배추찜을 해주면 아주 좋아요. ‘100가지 채소가 배추만 못하다’는 중국 고어가 있을 정도로 배추는 맛도 있고 영양도 풍부합니다. 또 팥은 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설사를 멈추게 하며 지방의 축적을 막아주기도 해요. 팥의 섬유질, 사포닌 성분은 변비 치료에 좋을 뿐만 아니라 포만감을 느껴 과식을 방지할 수 있어 다이어트에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사찰음식에 깃든 생명존중의 정신
스님이 추천한 음식은 모두 늦가을과 겨울에 나는 재료들로 만든 것이었다. 평소에도 ‘제철음식’을 강조하는 스님다웠다. “제철음식은 치료약이자 예방약입니다. 계절에



무채두부찜
● 무 1/2개, 두부 1모, 마른 표고버섯 3개, 홍고추 1개, 미나리 5줄기, 소금, 고춧가루 1큰술, 집간장 2큰술, 포도씨유, 들기름, 통깨 약간씩 1 두부는 1cm로 썰어 소금을 약간 뿌려 팬에 지지고, 마른 표고버섯은 불려서 채 썰어 들기름에 볶는다. ● 2 무는 곱게 채 썰고 홍고추도 반으로 갈라 채 썬다. 미나리는 줄기만 4cm로 썬다. ● 3 무채에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 고춧가루 물을 들인 후 볶은 표고버섯, 미나리, 홍고추를 넣어 집간장으로 간해서 골고루 버무린다. ● 4 달구어진 냄비에 무채를 깔고 그 위에 두부를 얹고 다시 무채를 얹은 후 뚜껑을 덮어 무채가 아삭할 정도로 살짝 익힌다.



배추된장찜
● 배추 1/2통, 물 3큰술, 들기름 1큰술, 집 된장 2큰술, 다시마 2장 ● 1 배추는 한 장씩 뜯어서 깨끗하게 씻는다. ● 2 냄비에 다시마를 넣고 배추를 넣은 후 물을 붓고 뚜껑을 덮어 김을 올린다. ● 3 김이 올라 배추가 익으면 들기름과 된장을 넣어 배추에 골고루 간이 배게 배추를 위아래로 뒤적여준다. ● 4 배추에 살짝 간이 배면 불을 끈다.



팥죽
● 붉은팥 1컵, 물 10컵, 불린 멥쌀 1컵, 찹쌀가루 1컵, 소금 양간 ● 1 쌀을 씻어서 두 시간 이상 물에 불려놓고, 팥은 씻어서 물을 붓고 한번 끓어오르면 그 물을 버리고 넉넉하게 물을 붓고 푹 무르도록 삶는다. ● 2 팥이 다 익으면 앙금만 걸러 가라앉히고, 찹쌀가루를 반죽해서 옹심이를 만든다. ● 3 팥물의 앙금이 가라앉으면 웃물만 따라서 쌀을 넣어 퍼지게 끓인다. ● 4 쌀이 퍼지면 앙금을 조금씩 넣어가며 농도를 맞추고, 맨 마지막에 빚어 놓은 옹심이를 넣어 옹심이가 떠오르면 불을 끈다.

따라서 병이 오고 계절에 따라서 치료제가 와요. 그래서 계절에 따른 음식을 먹으면 병도 치료됩니다.” 스님이 이렇게 제철음식을 강조하는 것은 과거 의 경험 때문이다. 한때 간이 안 좋아 고생을 했는데, 그때 제철 사찰음식을 먹으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그래서 사찰음식을 대하는 스님의 마음가짐은 흐트러짐이 없다.
“사찰음식에는 생명 존중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요. 내 먹을 것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녹아있는 것입니다. 사찰음식은 모든 생명이 나와 하나라고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생명들이 함께 공존하는 길이 특히 선식禪食에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사찰음식 연구와 강의를 통해 나 자신의 불성을 깨달아가고, 다른 사람의 수행을 돕고, 건강과 영혼을 맑히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을 계속하려 합니다.”
사찰음식 역시 철저하게 부처님 말씀에 근거해만들어야 한다는 선재 스님은 몸이 맑아지고 마음이 건강해지는 사찰음식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한 길에 이렇게 서 있다.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사찰음식 책


선재 스님,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불광출판사)
지난 30년간 사찰음식을 연구하고 강의해 온 사찰음식의 대가 선재 스님이 11년 만에 새 책. 책에서 스님은 사찰음식을 통해 마음을 맑히고, 몸속의 독소를 배출해 병고를 녹여내는 방법을 일러준다. 스님은 또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제철 음식 재료와 요리를 소개하고, 22가지 요리법과 그 효능을 알려주고 있다.

대안 스님, 『열두 달 절집 밥상』(웅진리빙하우스)


대안 스님은 책에서 특별한 양념도, 희귀한 재료도, 복잡한 조리법도 없이 간단하게 무치고, 삶고, 볶고, 끓여 만드는 절집 음식을 소개한다.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도 만들기 쉬운 사찰요리의 세계가 펼쳐진다. 음식의 기본 재료가 되는 장과 맛국물, 맛가루 만드는 법부터 1년 12달, 계절에 맞는 밥상 차림까지를 모두 만날 수 있다.

적문 스님, 『전통사찰음식』(우리출판사)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전통 사찰음식 요리 안내서. 옛부터 전승해 온 맛깔스러운 사찰음식을 사계절로 나누고, 4인 기준 정량을 표기해 요리에 자신이 없는 초보자들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소개했다. 책의 중간 중간에는 ‘영양상식’ 코너와 사찰음식 문화의 이면에 깃든 구수한 옛이야기를 곁들였다.

일운 스님, 『불영이 감춘 스님의 비밀레시피』(담앤북스)


울진 불영사에서 오랫동안 내려오던 스님들의 음식관, 건강관, 가치관을 담은 책. 건강요리법을 좀 더 쉽게 일반인에게 알리기 위하여 펴낸 책으로 요리법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재료 하나하나의 특징과 건강 상식은 물론이고 불영사에서 실제 일어나는 재미있는 절집 이야기와 음식 이야기가 맛깔스럽게 담겨 있다.


출처: 불광출판사

출처 :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서울디지털대학 문예창작학과(세아서문
글쓴이 : 세아서문 원글보기
메모 :


출처: 유투브

법정 스님의 육성을 직접 들으니 지금도 우리곁에 살아계시는 듯합니다.

스님께서 우리와 이승에서의 인연을 내세에서도 다시 잇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인디언 '구르는 천둥' 의 말/법정


  여기저기서 꽃이 피고 잎이 열린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귀에 익은 새소리들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난다. 자연의 질서, 순환의 흐름은 이렇듯 어김없다.

  먼지와 소음과 온갖 공해로 뒤덮인 번잡한 길거리에서, 그래도 철을 어기지 않고 꽃과 잎을 펼쳐 보이는 나무들을 보면 반갑고 기특하면서도 안스럽기 그지없다. 누가 피어나라고 재촉한 것도 아니지만 때가 되니 스스로 살아 있는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다 생명의 신비다.

  대지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그 모진 추위 속에서도 얼어죽지 않고 살아 있다. 겉으로 보면 깊은 잠에라도 빠져 있는 것 같지만, 뿌리와 줄기는 그 침묵 속에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을 한다. 흙을 의지해 서서 햇볕을 받아들이고 바람을 받아들이고 물기를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은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나무만의 일이 아니다. 사람도 이 '지, 수. 화, 풍'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 흙과 물과 햇볕과 공기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원천이다. 이런 고마운 은혜를 우리는 얼마나 인식하고 있고 또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흙大地 이 없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마실 물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또 햇볕을 전혀 볼 수 없고, 숨쉴 공기가 없다고 가정해 보라.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니 지, 수 , 화, 풍, 즉 우리 환경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인가.


  잔인한 백인들에 의해서 현재는 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지만, 지혜로운 영혼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일찍이 물질문명에 눈이 먼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우려와 두려움을 나타내 왔다.

  체로키족의 추장, '구르는 천둥'은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이 한 장소를 더럽히면 그 더러움은 전체로 퍼진다. 마치 암세포가 온몸으로 번지는 것과 같다. 대지는 지금 병들어 있다. 인간들이 대지를 너무도 잘못 대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많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큰 자연재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현상은 대지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대지 위에 세워진 많은 것들은 대지에 속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신체에 침투한 병균처럼 대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이물질들이다. 당신들은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대지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시도로 크게 몸을 뒤흔들 것이다."

  요 근래에 이르러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진과 기상이변으로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는 자연의 재해는 무엇을 뜻하는가. 짐승들은 뭄에 물것이나 이물질이 달라붙으면 온몸을 움직여 그걸 털어 버린다. 그건 일종의 자기정화 활동이다. 커다란 생명체인 이 지구도 자정 활동의 일환으로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구르는 천둥'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보자.

 "지구는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다. 지구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의지를 가진, 보다 높은 차원의 인격체다. 따라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가 있고 병들 때가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지구도 마찬가지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 상처를 주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며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가하는 것은 곧 지구에게 상처를 가하는 일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뿌리를 잊어버리고 가지에만 매달린 병든 문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우주적인 눈을 가진 사람만이 이런 경고에 공감한다.

  올바른 이해는 책이나 선생으로부터 얻어듣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움튼다.  인디언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위대한 정령을 존중하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위대한 정령이란 무엇인가. 풀이나 바위나 나무 또는 물과 바람 등 세상 만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 그 자체이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의 느낌이나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온전한 삶의 방식이고, 우리 자신과 우리 둘레의 수많은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문명인들이라고 자처하는 현재의 우리들 삶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비정하고 냉혹한 일들을 경쟁이란 논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무한경쟁시대'니 '일류가 아니면 살아 남지 못한다'는 주장의 배후에는 남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파괴적인 폭력이 잠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제일주의에 도취된 오늘의 우리들은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자연의 방식이 아닌,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 만 급급한 나머지 요즘 같은 지구 환경의 위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삶의 기본적인 진리는 이웃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람뿐 아니라 온갖 형태의 생명이 포함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 남을 간섭하고 통제하고 지배해서는 안 된다.

  개체와 전체의 관계는 조화와 균형으로 이뤄질 때 가장 바람직하다. 이 조화와 균형이 깨지면 거기 이변이 생긴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조화와 균형이 무너져 오늘날의 지구는 온갖 환경 재난에 시덜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거듭거듭 흙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물에 대해서, 따뜻한 햇볕에 대해서, 그리고 공기에 대해서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은덕으로 숨을 쉬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1996



<마음 산책>-우리가 외로운 이유/혜민 스님        2016.10.28  중앙일보 오피니언


  사람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같이 살고 있는 부모나 배우자 · 아이들이 있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매일 보는 직장 동료도 있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문자로 대화를 주고받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 살아도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돈이나 권력, 유명세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있으면 있을수록 사람을 더 의심하고 더 외로워하는 것 같다. 마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한 시인의 표현처럼 우리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왜 그럴까?


  인간 중심 치료 아버지라라고 할 수 잇는 미국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우리가 외로운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을 때 상대가 수용해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만약 그랬을 때 상대가 자신이 나를 따뜻하게 지지해 주는 게 아니라 내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평가하고 상처 내고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한다. 진짜 자기 모습을 감춘 채 사회적 시각에서 봤을 때 비난받지 않을 수준에서 안전하고 피상적인 만남만을 가진다. 그런 만남은 깊은 유대감이나 연결감을 느끼게 하지 못하고 누굴 만나도 마음은 공허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믿지 못해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남도 아닌 가족한테까지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고립돼 외로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왜 부모 · 자식 사이나 부부 사이, 형제자매 간에도 심리적인 벽이 생기는 것일까?


  칼 로저스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에게 안전한 분위기에서 긍정적 지지와 조건 없는 사랑을 주지 못한 경우에서 비롯된다는 한다. 부모도 자신의 부모로부터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는 경우 본인도 모르게 자기 아이의 생각이나 결정을 마음대로 평가하고 컨트롤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행동해 줬을 때만 인정해 주면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자기 스스로의 느낌이나 결정을 신뢰하기보다는 부모의 바람이나 결정을 더 살피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는 자기감정을 부모 앞에서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는 게 일상화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감정을 숨기고 모든 것이 문제가 없는 듯 가면을 쓰게 된다.


  부부 사이나 형제자매 간에도 비슷하다. 가까운 사이이니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이미 다 안다는 생각에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솔직한 민낯의 모습을 보여줬을 때 배우자나 형제자매가 내 편이 돼 내 마음을 알아주고 푸근하게 나를 수용해 주길 바라지만 그렇게 해 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보다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지고 긴밀하게 소통하지 못하니 서로에 대해 점점 잘 모르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가까운 주변 친지와 속마음을 나누고 더 친밀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부모나 형제, 가까운 친구가 내 모습을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존중해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칼 로저스에 따르면 만약 그런 사람이 우리 곁에 있다면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가면 뒤에 숨길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만한 것이구나, 소중한 것이구나 하는 자각이 들면서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한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존중을 받아 본 사람만이 다른 이도 존중할 줄 알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존중받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가 성장하면 아이는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가능성을 마음껏 발휘해 인생의 꽃을 피우려 한다는 점이다. 자기의 선택을 긍정하며 다른 이들의 의견에 끌려다니지 않고, 실패를 해도 책임지려 하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곧 회복한다. 만약 자라면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존중해 주는 부모나 형제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런 사람을 찾아 만나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좋은 인생 선배나 자비한 친구, 아니면 심리상담 선생님도 좋으니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수용하고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나 보길 권한다.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고 심리적 부담감도 줄어들 것이다.


  사람은 외로운 존재다. 특히 자기의 진실된 속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 가을에 혹시라도 친한 이가 자기 마음의 문을 열고 이야기를 한다면 내 기준으로 섣불리 재단하지 말고 따뜻하게 경청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이야기한다면 상대도 역시 자기 속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좀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2016년 10월 28일 중앙일보 오피니언에서 발췌 옮김

옮긴이:meister5959@hanmail.net



 

(독자 감상- 박재식 ) <하필이면 / 장영희 >

                                   


❍ 머리말 작자인 장영희(張英姬, 1952~2009)는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이다. 역시 영문학자로 서울대 교수를 지낸 부친 장왕록(’91년 작고) 박사와 소아마비로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앉지 조차 못한 그를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등에 업고 통학시킨 평생의 보호자였던 어머니, 이길자 여사 사이 1남 5녀 중 둘째 딸로 서울에서 태어난다. 두 다리를 못 쓰는 1급장애자로 평생을 목발에 의지하여 산 그는 ’75년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77년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쳐 ’85년에는 미국 뉴욕주립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같은 해 모교인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로 취임 재직중에 향년 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09년 5월 간암으로 서거하자 국내 매스 미디어는 일제히 그의 생애에 대한 자취를 기리며 애도하는 기사를 대서 특필로 보도했다. 그러나 그의 남다르게 두드러진 생애 행적은 이미 생전에 장애우의 귀감으로, 또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안겨 주는 지성의 메신저로 늘 밝은 웃음을 띤 초상과 함께 널리 세인에게 알려진 터이기도 하다. 미상불 장영희의 남다른 생애는 마치 부실한 꽃대가 피운 한 송이 아름다운 꽃과 같은 기적의 삶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1급 장애의 부실한 신체적 조건을 이기고 깔축 없는 학업 과정과 박사 학위까지 마치고 대학의 유수한 영문학 교수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한층 돋보인 것은 이런 기특한 성취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일찍부터 국내 여러 일간지를 통해 에세이성 칼럼을 연재하여 빼어난 문필적 소양을 드러내고, 특히 ≪샘터≫지에 <새벽 창가에서>라는 표제의 고정 칼럼을 통해 주로 부정적인 운명을 극복해 온 자신의 정신적인 체험을 기조로 하여 참다운 인생이 갖는 행복과 희망 의 의미를 주제로 한 수필을 연재함으로써 독자의 공감과 심금을 울린 문학적인 작품활동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01년 유방암을 시작으로 척추암, 간암을 차례로 앓은 9년간의 가혹한 투병생활 중에도 의연히 붓을 놓지 않고 이전에 못지 않은 왕성한 저작활동을 지속한 초인적인 행적은 세인의 마음을 숙연케 한 바가 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이같은 초인적인 힘의 연원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의지나 노력의 소산이 아닌 “본능의 힘”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대학 2학년 때 읽은 헨리 제임스의 ≪미국인≫이라는 책에서, 한 남자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라고 표현한 문장이 있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그의 마지막 저서이자 유작집이 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이것은 바로 그의 생애를 통해 일관된 삶에 대한 철학의 고백이자 그의 작품 세계를 형성 한 모티브와 주제의식의 실체를 말해 준 것과 다름 아니다. 그가 남기고 간 저서는 숱하게 많다. 전공인 영문학의 소양을 바탕으로 낸 영미 문학작품 번역과 해설서는 말할 것도 없고, 김현승 시집을 영역하여 ‘한국문학번역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중적인 성가를 모은 책은 두 권의 수필집이다. 2000년 첫 수필집으로 낸 ≪내 생애 단 한번≫(‘샘터사’ 간)은 이미 50쇄를 넘어설 만큼 장기간 베스트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그의 운명 직후에 발간된 유작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09년 ‘샘터’사 간) 도 지대한 인기 속에 쇄를 거듭할 기세이다. 감상할<하필이면>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수필적인 형식과 기지가 돋보인 글로 서 ≪내 생애 단 한번≫의 첫머리에 수록된 수필이다.


❍ 해설


  이 글은 ‘하필이면’이라는 부사가 사용되는 이율배반적인 의미를 통해 자아상自我像의 정체를 해학적으로 모색한 철학성 수필이다. 작자는 짓궂은 운명의 조화를 ‘하필이면"이라는 표현례表現例에 잡고 10대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 가사를 화두로 삼는다. “화장실이 있으면 휴지가 없고, 휴지가 있으면 화장실이 없고, 미팅에 가도 하필이면 제일 맘에 안 드는 애랑 파트너가 되고, 한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가도 하필이면 그 날이 정기 휴일이고.” 등등 무슨 일이든 어차피 잘못되게 마련”이라는 ‘머피의 법칙’을 코믹하게 묘사한 노래말이다.

  이 노래에 나오는 ‘하필이면’이란 말은 분명히 ‘왜 나만?’이라는 의문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남의 인생은 별로 큰 노력 없이도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갈 뿐더러 가끔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오는 것 같은데, 왜 ‘하필이면’ 내 인생만은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걸핏하면 일이 꼬이고, 그래서 공짜 호박은커녕 내 몫도 제대로 못 챙겨 먹기 일쑤냐는 것이다.

  소외감이나 패배의식은 상대적인 비교에서 오는 자격지심이다. 그런데 내가 남만 못하고 불행한 것은 내 탓이 아니라 순전히 불평등한 외적 조화의 탓이라고 여길 때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사회적인 부조리에 기인한다고 보면 계급의식이나 혁명사상으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자기 혼자만의 개인적인 문제로 국한시킬 때 “왜 하필이면 나만” 하고 팔자소관으로 돌려 한탄할 밖에는 없다.

  ‘머피의 법칙’은 이런 운명론자의 심리를 꼬집은 운수 타령에 불과하다. 미상불 작자도 살아가면서 ‘머피의 법칙’을 생각하게 하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한 예로 내 열쇠고리에는 겉으로는 구별이 안 되는 열쇠가 두 개 달려 있는데, 하나는 연구 실, 또 하나는 과 사무실 열쇠이다. 열쇠에 유성 펜으로 방 번호를 표시해 놓으면 그만이지 만, 그러기도 귀찮고 또 그냥 재미도 있고 해서 내 방에 들어갈 때마다 둘 중 아무거나 꽂아 본다 .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수학적으로 따져 볼 때 확률은 분명히 반반인데, ‘하필이면’ 연구실 열쇠가 아니라 거의 과 사무실 열쇠가 먼저 손에 잡혀 두 번씩 열쇠를 돌려야 하는 일이 열이면 아홉이다.

  확률을 크게 벗어나는 일은 운수의 불공정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그뿐이 아니라 모처럼 큰 맘 먹고 세차한 날은 맑은 하늘에서 비가 오는가 하면, 무엇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 다리면 바로 자기 앞에서 매진된다. 한번은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어깨에 새똥이 떨어지는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다. 작자는 어이가 없어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1천만 서울 인구 중에 새똥 맞아 본 사람은 아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텐데 ‘하필이면’ 그게 나라니!” 하고 망연자실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머피의 법칙’에 견주어 ‘무슨 일이든 어차피 잘못되게 마련’인 운수의 조화로 치부할 수 있지만, 작자에게는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하필이면’ 이 있다. 남들은 멀쩡히 잘도 걸어다니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목발에 의지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펜만 잡으면 멋진 글이 술술 잘도 나오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이 짤막한 글 하나 쓰면서도 머리를 벽에 박아야 하는가. 그렇다고 다른 재주가 있느냐 하면 노래, 그림, 손재주 그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재능을 골고루 나눠 주 신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필이면’ 나만 깜빡하신 듯하다. 물론 “깜빡하신” 것은 아니다.  

  현실로 작자는 잘 팔리는 월간 잡지의 포퓰러 작가로 글을 연재하는 필재의 소유자이지만, 다른 어떤 유능한 작가처럼 펜을 잡으면 일기가성으로 글을 쓰는 재능을 갖지 못했다고 자신을 비하한다. 이것은 그만큼 자기의 글쓰기가 신중을 기한다는 간접적인 표현이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천부의 장애자가 된 불공평한 운명의 조화와 연쇄하여 그 사실을 강조하는 대구적對句的인 구실을 한다. 그리고는 어느 여배우가 화장품 광고의 출연료로 3억 원을 받았다는 여성지의 기사를 읽고 불공평한 세 태의 거품 현상을 꼬집는다. 3억 원이면 교수인 작자가 목이 쉬어라 가르치고 밤새워 페이퍼에 매달려 읽고 쓰며 10년 쯤 일해야 버는 돈인데, 그 돈을 여배우는 단 하루 만에 벌었다는 것이다. 그건 재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타고난 생김새 때문인데, 그렇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일이다.

  '나는 내가 잘빠진 육체는 가지지 못했어도 그런대로 꽤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하 만, 아마 내 아름다운 영혼에는 3억 원은커녕 3백 원도 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둘 다 못 가지고 태어날 바에야 아름다운 몸뚱이를 갖고 태어날 일이지 왜 ‘하필이 면’ 3백 원도 못 받는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태어났는가 말이다.'

  그래서 작자에게는 ‘하필이면’이라는 말은 한심하고 슬픈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작자 장영희는 평소 천형天刑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할 만큼 자신의 신체적인 장애에는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사랑’과 ‘희망’이라는 정신적인 지표를 보람 삼아 언제나 긍정적인 삶을 지향하는 정서와 지성의 소유자이다. 그러므로 ‘하필이면’이라는 말이 갖는 운명의 부정적인 속성의 나열은 그와 같은 자아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설정한 역설적인 전주곡에 불과하다. 아무튼 작자가 하필이면 ‘하필이면’이라는 제재로 글을 쓰게 된 아이러니컬한 동기는 외국에서 살다 와 우리말이 아직 서투른” 초등학교 2학년짜리 조카 아름이가 ‘하필이면’이라는 말을 부적합하게 쓴 사건에 있다.

  작자가 길거리에서 귀여운 팬더 곰 인형을 하나 사서 주자 눈이 똥그래진 아름이가 “다른 형제나 사촌들도 많고, 암만 생각해도 특별히 자기가 받을 자격도 없는 듯한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는 나름대로의 고마움의 표시로 “그런데 이모, 이걸 왜 하필이면 내게 주는데.” 한 것이다. 그래서 작자는 아름이처럼 ‘하필이면’을 좋은 상황에 갖다 붙이자, 나의 ‘하필이면’ 의 운명도 갑자기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누리는 많은 행복이 참으로 가당찮고 놀라운 것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하고 짓궂은 운명의 악몽에서 깨어나 홀연히 진정한 자아의 긍정적인 세계로 돌아온다.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기에,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내가 훌륭한 부모님 밑에 태어나 좋은 형제들과 인연 맺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있는가. 아무리 노력 해도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무슨 권리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편하게 살고 있는가.' 이렇게 가정적으로 혜택받은 행복한 운명을 필두로, 세상에는 “나보다 머리 좋고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하고 많은데 왜 ‘하필이면’ 자기가 “똑똑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교수로서의 지체에 대한 충만감을 섬기고, 게다가 하는 짓이 어쭙잖기만 하고 남을 위해 하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자기를 “‘하필이면’ 왜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사랑해 주는가.” 하고 따뜻한 세정 속에서 소외감 없이 살아가는 행운을 꼽으면서 그것이 “양순하고 웃기 좋아하는 나의 성격 때문”이라는 어머니의 견해를 좇아 “그렇다면 잘빠진 육체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일찍이 3억짜리 여배우의 ‘잘 빠진 육체’에 견주어 3백 원짜리로 폄하한 ‘아름다운 영혼’의 평가를 절상한다.

  그리고는 하 필이면’의 이중적 의미를 생각하니 내가 지고 가는 인생의 짐이 남의 짐보다 무겁다고 아우성쳤던 좁은 소견이 새삼 부끄럽다. 하고 깨치면서, 문득 '창문을 여니, 우리 학생들이랑 일산 호수공원에 놀러가기로 한 오늘, ‘하필이면’ 날씨가 유난히 청명하고 따뜻하다. ' 하고 단원을 맺는다.


❍ 후평


  문학 장르 중에서도 특히 수필을 두고 말할 때 ‘글은 곧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글을 읽으면 인간 장영희의 참모습을 그 생애와 함께 바로 가까이에서 보는 느낌이 드는 수필이다. 글의 중심 포인트가 되는 ‘하필이면’이란 말은 ‘달리 하거나 달리 되지 않고 어찌하여 '꼭’의 뜻을 갖는 부사이다. 보편적인 기대나 예상에서 어긋나는 현상이 생겼을 때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작자의 조카가 다른 조카들을 두고 자기에게만 주어진 선물을 받고 다소 ‘부적합한’ 대로 뜻밖에 기쁨 표시로 사용한 경우처럼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이렇게 ‘하필이면’이라는 표현이 갖는 이중적인 의미 속에 작자는 자신이 타고난 운명과 삶의 모습을 투사하여 묘사한 글이 수필 <하필이면>이다. 정작 작자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성한 몸으로 운신하는 가운데 ‘하필이면’ 불구의 몸으로 태어나 목발에 의지해 살아가는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세상에는 빈곤과 무지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유복한 가정에서 명석한 두뇌와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로 태어나 유수한 대학의 교수와 문필가로 행세하며 추앙받는 이중의 운명적인 환경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작자는 그 두 운명에서 전자의 불행을 사상 捨象하고 후자의 행운을 취하여 삶의 본질로 삶고 그것을 글로 써서 희망과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메시지가 한층 감명적인 진실로 리얼하게 와닿는 요인은 여느 필자의 경우와는 달리 전자의 불우한 운명과 더불어 작용하는 상승 효과에 있는 사실도 배제할 수 없지만, 거의 완벽한 경지로 구상된 수필적 기법이 자아내는 문학성에 힘입은 바가 더 크다. 전자의 부정적인 명운을 다루면서도 마치 남의 얘기라도 하듯 담담하게 엮어가는 문장 속에 번득이는 기지와 해학기법은 가히 수필가로서의 장영희의 진면목을 과시하고도 남음이 있는 작품이다. ("수필과 비평" 2010년 1월호)


※ 장영희 교수님의 글을 좋아하고 애독하던 한 독자로서 일찍이 우리곁을 떠난 아쉬움이 크다. 장영희 교수님이 쓴 에세이집을 거의 다 읽어보고 소장하고 있다. 하늘에서도 또다른 이웃들과 따스한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지 싶다. 부디 천상에서도 아름다운 이야기 많이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훗날 저도 그곳에서 교수님의 애독자가 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오자와 탈자, 띠어 쓰기 수정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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