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산책>-우리가 외로운 이유/혜민 스님 2016.10.28 중앙일보 오피니언
사람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같이 살고 있는 부모나 배우자 · 아이들이 있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매일 보는 직장 동료도 있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문자로 대화를 주고받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 살아도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돈이나 권력, 유명세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있으면 있을수록 사람을 더 의심하고 더 외로워하는 것 같다. 마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한 시인의 표현처럼 우리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왜 그럴까?
인간 중심 치료 아버지라라고 할 수 잇는 미국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우리가 외로운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을 때 상대가 수용해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만약 그랬을 때 상대가 자신이 나를 따뜻하게 지지해 주는 게 아니라 내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평가하고 상처 내고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한다. 진짜 자기 모습을 감춘 채 사회적 시각에서 봤을 때 비난받지 않을 수준에서 안전하고 피상적인 만남만을 가진다. 그런 만남은 깊은 유대감이나 연결감을 느끼게 하지 못하고 누굴 만나도 마음은 공허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믿지 못해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남도 아닌 가족한테까지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고립돼 외로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왜 부모 · 자식 사이나 부부 사이, 형제자매 간에도 심리적인 벽이 생기는 것일까?
칼 로저스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에게 안전한 분위기에서 긍정적 지지와 조건 없는 사랑을 주지 못한 경우에서 비롯된다는 한다. 부모도 자신의 부모로부터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는 경우 본인도 모르게 자기 아이의 생각이나 결정을 마음대로 평가하고 컨트롤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행동해 줬을 때만 인정해 주면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자기 스스로의 느낌이나 결정을 신뢰하기보다는 부모의 바람이나 결정을 더 살피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는 자기감정을 부모 앞에서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는 게 일상화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감정을 숨기고 모든 것이 문제가 없는 듯 가면을 쓰게 된다.
부부 사이나 형제자매 간에도 비슷하다. 가까운 사이이니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이미 다 안다는 생각에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솔직한 민낯의 모습을 보여줬을 때 배우자나 형제자매가 내 편이 돼 내 마음을 알아주고 푸근하게 나를 수용해 주길 바라지만 그렇게 해 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보다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지고 긴밀하게 소통하지 못하니 서로에 대해 점점 잘 모르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가까운 주변 친지와 속마음을 나누고 더 친밀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부모나 형제, 가까운 친구가 내 모습을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존중해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칼 로저스에 따르면 만약 그런 사람이 우리 곁에 있다면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가면 뒤에 숨길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만한 것이구나, 소중한 것이구나 하는 자각이 들면서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한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존중을 받아 본 사람만이 다른 이도 존중할 줄 알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존중받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가 성장하면 아이는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가능성을 마음껏 발휘해 인생의 꽃을 피우려 한다는 점이다. 자기의 선택을 긍정하며 다른 이들의 의견에 끌려다니지 않고, 실패를 해도 책임지려 하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곧 회복한다. 만약 자라면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존중해 주는 부모나 형제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런 사람을 찾아 만나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좋은 인생 선배나 자비한 친구, 아니면 심리상담 선생님도 좋으니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수용하고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나 보길 권한다.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고 심리적 부담감도 줄어들 것이다.
사람은 외로운 존재다. 특히 자기의 진실된 속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 가을에 혹시라도 친한 이가 자기 마음의 문을 열고 이야기를 한다면 내 기준으로 섣불리 재단하지 말고 따뜻하게 경청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이야기한다면 상대도 역시 자기 속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좀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2016년 10월 28일 중앙일보 오피니언에서 발췌 옮김
옮긴이:meister59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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