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방을 만들며/법정



 올 봄에 흙방을 하나 만들었다. 지난해 가을 도자기를 빚는 이당거사(利堂居士)의 호의로 흙벽돌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산골에 얼음이 풀리자 실어왔다. 4월 한 달을 꼬박 방 한 칸 만드는 일에 골몰했다. 산 아래 20리 밖에 사는 성실한 일꾼 두 사람과 함께 일을 했다.

  이전까지는 나뭇광으로 쓰던 자리에다 방을 들였는데, 이번에는 아궁이를 기존의 방향과는 정반대로 잡았다. 새로 만든 방의 위치도 위치지만 어떤 바람에도 방 하나만은 군불을 지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나는 이곳에 와 살면서 거센 바람 때문에 군불을 지피는 데 너무나 애를 먹어 왔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에 겪어 온 경험과 두뇌 회전이 빠른 일꾼의 솜씨로 이번에 만든 방은 불이 제대로 들인다. 나는 당초부터 에상한 바였지만, 처음 방구들을 놓아본다는 일꾼이 불이 제대로 들일지 내심 불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써 만들어 놓은 방에 불이 안 들이면 말짱 헛일이기 때문이다.

  방이 완성되어 처음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날 우리는 기대 반 불안 반이었다. 그러나 불길이 훨훨 소리를 내며 빨아들이는 걸 보고 함께 손뼉을 쳤다. 그때 일꾼은 장난말로 불이 잘 들이면 구둘장 놓는 '쯩'하나 써달라고 했는데, 형식적인 종이쪽지보다도 나는 그의 솜씨를 믿을 수 있게 됐다. 방이 고루 따뜻해졌으니 성공한 것이다.

  개울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은 불이 너무 잘 들여, 굴뚝으로 열기가 그대로 빠져나갈 염려가 있다. 그래서 굴뚝 위에 바닥 기왓장을 하나 엎어 놓았다. 방 안의 보온을 위해 필요한 장치다.

 이 방은 시멘트를 전혀 쓰지 않고 구들장을 비롯해 모두 돌과 찰흙으로만 되었다. 구둘장 위에 흙을 한 자쯤 덮었기 때문에 군불을 지핀 지 네댓 시간이 지나야 방바닥이 뜨듯해 온다. 이렇게 되면 사나흘 동안은 불을 지피지 않아도 방 안이 훈훈하다. 특히 이런 방은 추운 겨울철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구들장 위에 흙을 두텁게 깔지 않으면, 군불을 지피자마자 이내 더워진다. 아랫목은 프라이팬처럼 뜨거워 발을 디딜 수조차 없다. 아랫목 장판이 까맣게 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 안은 초저녁만 반짝 더워졌다가 새벽녘이면 식어 버린다. 한때 갑자기 뜨거워졌다가 이내 냉랭해지는 세상 인심처럼, 우리 모두가 어렵게 살던 지난날 나그네길에서 하룻밤 묵어 가던 여인숙 방들이 대부분 그랬었다.

  며칠 전 새로 만든 흙방에 도배를 했다. 찰흙으로만 다지고 발랐기 때문에 벽과 바닥 사이에 틈이 생겨 연기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초배를 하기 전에 질긴 닥종이를 오려 두세 겹씩 틈을 바른 후에 덧발랐더니 연기가 잡혔다. 연기와 물은 조그만 틈만 있어도 새어나온다.

  벽과 천장은 티가 섞인 한지로 바르고 바닥은 장판으로 발랐다. 장판 아홉 장 깔이 방이니 한 평 반쯤 될까. 빈 방에 방석 한 장 깔고 앉아 있으니 새로 중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거치적거리는 것 없어 홀가분해서 좋다.

  장판방이지만 시멘트를 쓰지 않고 흙으로만 발랐기 때문에 바닥이 매끄럽지 않고 우툴두툴하다. 그런데 이 우툴두툴한 질감이 나는 너무 좋다. 요즘은 어떤 방이든지 한결같이 매끄럽고 평탄하기만 한데, 오랜만에 이런 질박하고 수수한 방바닥을 대하니 마음이 참으로 느긋해진다.

  요즘처럼 닳아져 가는 세상에서는 '질박함'이나 '수수함'이란 말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다. 현재의 우리들 삶이 질박과 수수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쪽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하루 세 끼 먹는 음식만 하더라도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기름지고 걸쭉하고 느끼한 것만을 좋아하는 세태이므로, 담백하고 깔끔한 음식을 대하기가 어렵다. 이런 음식 문화 속에서 살아가노라면 학처럼  곱게 늙기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

  몸에 걸치는 옷도 질박하고 수수한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요란한 색상과 과장된 디자인,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몸짓도 살갗도 그 위에 바르는 화장도 그런 의상에 걸맞게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주거형태는 어떤가. 거의 규격화된 주거공간으로 인해 그 형태나 마찬가지로 삶의 내용도 두부모처럼 개성을 잃고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질박하고 수수한 것을 낡아빠진 옛것으로 물리친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의 미덕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미끈하고 반짝거리고 화려하고 화끈함이, 물건이건 인간관계이건 그것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우툴두툴한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씀다듬고 있으면 창밖으로 지나가는 미친 바람 소리도 한결 부드럽게 들린다. 이 방에 나는 방석 한 장과 등잔 하나말고는 아무것도 두지 않을 것이다. 이 안에서 나는 잔잔한 삶의 여백을 음미해 보고 싶다. 1997



 



 

윤동주 시에 나타난 종교적 상상력 - 유성호(문학평론가)

 

 

   1. 윤동주 시와 종교의 상관성

 

  우리가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주제적 양상을 추출하여 그것을 종교적 차원으로 의미 부여할 때, 특별히 그것이 특정 종교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질 때, 우리는 그 작품들을 통칭하여 ‘종교 문학’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신라의 향가 문학이나 한용운, 신석초 등의 시편에 나타나는 불교적 성격,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에서 역력하게 감지되는 유불선적 성격, 또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나 ?목공 요셉?, 김은국의 [순교자],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서 보이는 기독교적 성격 등 이른바 종교적 소재에 바탕을 두거나 종교적 이념의 육화에 집중적으로 착목한 작품들은 모두 그러한 ‘종교 문학’의 범주에 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문학의 하위 범주로서의 ‘종교 문학’이라는 범칭(汎稱)이 가능하다는 것은 우리 문학이 끊임없이 종교적 흐름과 교섭해왔다는 첨예한 예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기독교’는 우리 고대, 중세사와는 별 인연이 없었으나 근대 이후 폭 넓은 자장을 형성하면서 커다란 정신사적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선교사들의 포교 활동 이후 이 땅에 기독교가 이념적, 사상적, 제의적(祭儀的) 뿌리를 내린 데에는 수많은 투쟁과 견인의 역사가 있었고, 그 투쟁의 행간에 ‘전통과 보수/서구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거대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기독교라는 서양 종교의 유입과 착근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정신사는 그만큼 초유의 생산적 갈등과 변증법적 진보의 토양을 준비한 셈이 된다. 따라서 자생적인 것이 아닌 서구의 근대적 합리성을 토대로 이룩되기 시작한 우리 근대사에서 이 종교의 영향력은 매우 커다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종교 문학의 하나인 ‘기독교 문학’은 기독교라는 역사적, 이념적, 윤리적 기반과 문학이라는 감각적, 체험적, 형상적 양식이 하나의 작품으로 결합되어 현출한 것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마찬가지로 ‘불교 문학’이라든가 ‘이슬람 문학’ ‘샤머니즘 문학’이라는 종교 문학의 하위 범주의 설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은 딱히 과학적인 변별력을 갖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종교적 이념이나 사상이 우성적으로 작품 속에 나타날 경우 그것들을 편의적으로 부르는 개념일 뿐이다. 따라서 폭 넓은 기독교적 전통을 모태로 태어난 서구 문학의 경우 그것들은 말할 것도 없이 거의 기독교 문학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우리 문학에서는 짧은 역사로 말미암아 기독교 문학의 무게는 서구의 그것에 비해 일천하고 질량 양면에서 빈곤하기 짝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문학사에 ‘기독교 문학’이라는 범주에 실질적으로 해당하는 작가 또는 작품의 실례가 영성할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그러면 ‘기독교 문학’을 말할 때 그것의 필요 조건인 ‘기독교’라는 말이 갖는 실제적인 내포는 무엇인가 ?

 

  기독교에서 낙원의 창조와 상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그의 복원은 하나의 일직선상의 사관을 낳는다. 그것은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는 성경의 편집 사관과도 일치한다. 창조의 질서는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변환, 이행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역사관에서 배태되는 인간관, 우주관, 가치 중심, 이념 등이 ‘기독교’라는 수사에 응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실존적인 자기 각성이라는 메커니즘과 윤리적 완성이라는 또 하나의 목적을 가지게 되는데, 따라서 기독교 문학에서는 심미성이 부차화되고 종교가 지향하는 관념의 형상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사랑, 소명 의식, 희생 정신, 부끄러움, 죄의식, 구원, 소망, 종말론, 실존 의식 등이 이른바 종교적 상상력에서 배태될 수 있는 정서적 세목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의 ‘기독교 문학’이란 그러한 여러 성격이 담겨 있는 문학을 통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호교성(護敎性) 선전물이나 신앙 미담 및 간증류 또는 종교적 소재가 작품의 표면에 등장하는 것들을 모두 기독교 문학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높은 형상적 성취와 이념적 내재화를 이룬 경우 우리는 그것을 기독교 문학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기독교 시’ 또한 문학의 구조적 차이에서 정립된 장르적 개념이 아닌, 시인의 상상력, 가치관, 통찰력 등에서 기독교적 요소를 지니는 내포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종의 문학외적 요소가 중시되거나 문학을 선교 활동의 매질로 보는 도구적 개념은 우리의 입론에 해당되지 않음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원래 인간은 신적이며 세속적이고, 본체적인 동시에 현상적이라는 이중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본성 때문에, 세계는 모순되고 역설적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인 본성 때문에, 세계에서, 세속적인 성격에서, 인간의 비참함에서 보면 신은 부재하지만, 인간의 위대함과 의미, 정의, 진리에 대한 인간의 요구라는 면에서 볼 때면 그렇게 부재하는 신은 또 영원히 전체적으로 현존한다. 이렇듯 ‘부재하며 동시에 현존하는’ 신의 속성이 인간에게 이른바 ‘비극적 세계관’을 배태시킨다. 그러나 비극적 세계관이 이른바 ‘비관주의’로 곧바로 치환되지는 않는다는 데 삶의 비의(秘義)가 숨겨져 있다. 오히려 이러한 역동적인 비극적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는 서정적 주체들이 기독교의 또 하나의 속성인 ‘희망’의 세계관을 어김없이 가지고 갈등하며 고뇌하고 나아가서 그것들을 통합하여 살아 움직이는 형상으로 창조하려는 열정을 우리로서는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들을 일러 현대시의 ‘영적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는 기독교적 토대가 굳건했던 가정과 학교 그리고 죽음 때까지 자신을 그 범주 안에 살게 했던 신앙적 분위기로 하여 정신의 발생론이 비교적 투명하고 명징한 시인이다. 그에게는 생득적으로 기독교적 상상력을 모태로 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근본 토양이 있었던 셈이고, 그 같은 조건은 그로 하여금 신앙의 원근법 안에서 자기를 인식하고 현실적 고통을 초극할 수 있는 적극적 참여의 의지를 주기도 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신앙적 유토피아를 열망하는 파토스를 분출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의 시편들에 나타나는 종교적 상상력이 일정 정도 낭만주의적 성향에 빚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문예사조에 나타나는 낭만주의의 정신적 기조가 ‘동경(憧憬)’이고, 낭만주의 문학을 일러 ‘동경의 문학’이라고 극단적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그 같은 동경의 철학적 배경에는 ‘극성(極性)의 원리’ 곧 생의 이념을 양극적인 대립에서 완성을 기하는 운동, 대립을 고차원적인 제삼자로 극복하는 운동이 깔려 있고, 따라서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낭만주의의 중심 사상이 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유토피아적 열망을 토대로 통일을 지향하는 낭만주의적 상상력이 종교적 상상력의 근원이 되고, 여기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시적 파토스가 그의 시편에 나타나는 관념적 진실이 되는 것이다. 이 관념적 진실이야말로 기독교적 토대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그의 삶 자체가 작품 세계와 견실하게 결합할 수 있는 개연성을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다.

 

 

   2. 시를 통한 내적 성찰과 윤리적 자기 완성의 양상

 

  윤동주의 시적 지향이 기독교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는 사실은 그간의 윤동주 연구에서 늘 따라붙었던 일종의 관행적 전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기독교와 민족주의가 튼튼히 결합하고 있었던 간도의 정신적 풍토”가 윤동주의 시와 삶에 미친 영향은 족히 확인되고 남음이 있다. 그러나 윤동주의 작품 세계를 기독교라는 토대의 프리즘으로 읽어내는 것은 일견 전적으로 타당하지만 그의 복잡한 내면 세계를 응시하는 데 하나의 편견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로서는 윤동주가 기독교라는 하나의 세계를 시적으로 번안하거나 또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언표하려 했던 시인이라기보다는, 내적 가능성이자 삶의 자양으로 숨쉬고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시편의 곳곳에 삶의 고백으로 실어 보인 시인으로 보려고 한다. 따라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종교적 상상력은 의식적으로 언표되어 있다기보다는 내면화되어 숨어 있고, 적극적으로 추구되고 있다기보다는 배면에서 무의식적인 전제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내적 성찰의 기록이 그의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 전문

 

  어조와 시적 구성에서 다분히 자기 고백적인 이 시는 윤동주의 시정신과 내적 치열성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그의 대표작이다. 그 시정신이란 다름아닌 신실한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도덕적, 윤리적 결백성이다. 이 작품 역시 그런 면에서 어김없이 기독교적 사유 패턴에 기초하고 있다. 일견 맹자의 “仰不愧於天”을 연상시키는 유교적 지절(志節)이라든가 운명적 소명 의식 같은 것이 전면화되어 있지만, 그것은 광의의 기독교적 인생관, 윤리 의식에 포섭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에서의 사랑과 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사랑의 수직과 수평이 만나서 이루어진 아름다운 현장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 나타나는 자연 형상은 종교적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모든 자연은 우주적 신성성으로서 자신을 열어보일 능력을 갖는다는 사실 또한 체험케 한다. 하늘, 바람, 별, 또 바람 이런 것들이 조화와 길항의 세계를 열며 서정적 주체에게 우주적 신성성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아울러 매개하는 상징적 기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상당히 내면화되어 나타나던 그의 종교적 상상력은 다음 작품들에서 시적 모티프는 물론 주제 면에서 일정하게 표면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요.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요.

 

그리고 한 寢臺에

가지런히 잠을 재우시요.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요.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올 게외다.

 

― ?새벽이 올 때까지? 전문

 

  이 작품은 윤동주의 작품 중 기독교적 종말 의식을 명징하게 반영한 시편으로 주목된다. 종말론(Eschatology)은 ‘마지막 일들(ta eschata)’에 관한 가르침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역사는 무한히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에 따른 마지막이 있다는 일종의 사관으로서, 역사를 긴장하게 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관심과 동기를 부여하는 다이나믹한 역사관이다.

 

  불교적 역사관이 순환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라면, 기독교는 일직선적이고 신 중심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는데, 따라서 신의 심판과 더불어 인간에게는 윤리적인 것이 표나게 강조된다. 자연스럽게 윤동주에게 종말론적 관심은 윤리적 자기 강제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의 또 다른 시편 ?무서운 時間?에서는 죽음에 대한 근원적 관심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윤리적 의지와 종교적 사명감으로 극복해보려고 노력하는 시인의 인간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빨 - 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前날 밤에

그 前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毒은 어린 꽃과 함께.

 

― ?太初의 아침? 전문

 

  이 작품의 시각에 의하면, 세계는 근원적인 모순을 포함한 채 창조된 것이다. 태초의 아침에 세계는 이미 ‘사랑/뱀’ ‘독/어린 꽃’이라는 갈등의 세력들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진보적 사유나 실천 행위로 현실적 모순을 타개한다든가 진취적으로 열어 나간다든가 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전적으로 신의 의지에 달린 일이지 시인의 예지는 운명에 대한 긍정과 자기 자신의 윤리적 완성이라는 경로를 밟게 될 뿐이다.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電信柱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

 

무슨 啓示일까.

 

빨리

봄이 오면

罪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면

 

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 ?또 太初의 아침? 전문

 

  이 작품 역시 구약성서의 창조 신화가 시사하는 상징적 계시의 요체를 시대적 질곡과 함께 통합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원죄에 바탕을 둔 낙원 상실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계시)이 자신의 삶을 부끄럽게 하고, 고통스럽지만 땀 흘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일러준다. 이러한 윤리적 준거야말로 종교적 상상력이 일정하게 극점에 다다를 수 있는 ‘자기 희생’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것이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敎會堂 꼭대기

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

 

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鐘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十字架가 許諾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十字架? 전문

 

  단순한 하나의 이미지가 반복되고 집요하게 착근되어 지속성과 안정성을 얻을 때 그 독특한 의미는 상징의 영역까지 획득한다고 볼 때, 이 작품에 나타난 ‘십자가’의 이미지는 기독교의 상징적 의미를 넉넉히 함축하고 있다. 더불어 이 시편은 고통을 감수하고 그것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 속에서만 인간이 참다운 인간일 수 있다는 기독교적 가르침을 확인시켜주고, 그것의 확인을 우리가 윤동주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우리 시사에 기독교가 정착한 뚜렷한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윤동주 시의 저항 의식은 ‘부끄러움’과 ‘괴로움’을 주조로 하는 소극적, 자책적 저항 의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책감이 가장 높은 경지로 발전했을 때, 그것은 이 작품에서와 같이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자기 희생과 속죄양 의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의 익숙한 상징이다. 1, 2연에서 ‘십자가’는 구원에 다다르는 길로 표상되고 있다. 그것은 ‘尖塔’의 날카롭고 높은 이미지와 연결되어서 좀처럼 다다르기 힘든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정적 주체는 구원의 희망을 잃고 서성거릴 뿐이다. 그러나 4연에서 서정적 주체는 ‘십자가’의 상징적 의미를 변화시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모든 인류의 괴로움을 지고 괴로워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이미지와 연결된 것이다. 따라서 자신도 기꺼이 그리스도와 같은 속죄양이 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5연은 그 수난과 희생의 장면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와 같이 나타난 그의 속죄양 의식에는 튼튼한 역사적 종말관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종말적 신앙에 입각해서 씌어진 이 시는 훌륭한 하나의 예언시이기도 한데, 그 예언성은 다름아닌 민족의 수난과 영광 그리고 자기 자신의 개체적 삶에 대한 준열한 다짐과 의지로 표상된다. 그 수난과 영광의 이미지는 기독교적 부활 사상의 세계를 덧입어 다음 작품에서 전면화된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별 헤는 밤? 8-10연

 

  이상과 같이 윤동주에게 종교적 상상력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윤리적 자기 완성으로 치열하게 모아진다. 속죄양 의식, 종말론적 상상력, 부활 의식, 그리고 현실을 견뎌내는 견인과 의지의 목소리가 그의 시의 근본 추진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언표되는 소재적 기호로서의 종교성이 아니라 내적 기제로서, 숨겨진 삶의 원리로서, 그리고 자신의 시의 궁극적 파토스의 토대로서 그 종교성은 윤동주에게 오롯이 빛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종교란 “본질 그것(the substance)이고 터전 그것(the ground)”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적인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어떻게 한 시인의 생존 감각과 더불어 순수한 직관을 통한 창조성을 획득하느냐가 기독교 시를 이 땅에 성립시키는 요인”이라고 할 때 윤동주의 기독교 시편들은 진실한 신앙적 체험과 심미적 가치가 통합되어 형상화된 시편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를 기독교라는 정신사적 프리즘으로 보는 일은 그의 시적 정수를 살려내는 유용한 방법론이 되고 그와 같은 독법(讀法)은 좀 더 심화된 이론적 틀을 가지고 계속 발전해 나가야 하리라고 본다.

 

 

   3. 시와 종교적 상상력

 

  우리는 이제까지 윤동주의 시적 궤적을 그의 시에 나타난 ‘종교적 상상력’이라는 준거를 토대로 읽어왔다. 우리는 종교적 이념이라는 배타적 토대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자신의 인문적 상상력과 현실 인식으로 통합하여 균형 잡힌 서정을 고전적 격조 속에 보여준 그의 시사적 공적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문학이 시간적으로 경험을 초월하면서 그 심미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미의 형식적 요소가 경험적 내용으로부터 분리되어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내용을 기초로 하면서 이를 초월하는 이념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학에서 기독교적이라고 하는 것은 경험적 내용을 토대로 하는 소재적(stofflicher) 또는 주제적(motivisher)인 상태이지, 어떤 형식적인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문학은 현대인의 경험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는 이념을 통해 종교적 충동을 자극하고,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급진적 세계성과 절대적 신앙을 종합하기 위하여, 복음을 뒷받침해 주며, 기독교 정신을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속적인 세계관과 성서적 신앙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곳에 그리고 신앙에 대한 모든 역사적 편견과 외식들을 벗어버리는 데 아마도 참된 기독교 문학의 새로운 본질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같은 비의(秘義) 추구의 열정이 기독교 문학 또는 종교적 상상력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윤동주의 기독교 시편들은 이러한 속성을 높은 차원에서 충족시킨 전범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언어 양식으로 표상된다는 점에서 ‘종교’와 ‘문학’은 일정하게 동질적이다. 그것의 결합 형태인 ‘종교 문학’은 형상을 매개로 하는 미적 충동을 통해 잠재적인 종교적 충동을 현출시켜야 한다. 윤동주의 종교적 상상력은 이러한 가능성을 우리에게 소중하고도 다양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보여준 종교 문학의 위대한 자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도종환



강으로 오라 하셔서 강으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수천개 햇살을 불러내어 찬란하게 하시더니
산그늘로 모조리 거두시고
바람이 가리키는 아무도 없는 강 끝으로
따라오라 하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숲으로 오라 하셔서
숲속으로 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만나자 하시던 자리엔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를 대신 보내곤
몇날 몇밤을 붉은 나뭇잎과
함께 세우게 하시는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고개를 넘으라 하셔서 고개를 넘었습니다
고갯마루에 한 무리 기러기때를 먼저 보내시곤
그 중 한 마리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시며
하늘 저편으로 보내시는 뜻은 무엇입니까


저를 오솔길에서 세상 속으로 불러내시곤
세상의 거리 가득 물밀듯 밀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단 사라지고
떠오르다간 잠겨가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상처와 고통을 더 먼저 주셨습니다
상처를 씻을 한 접시의 소금과 빈 갯벌 앞에 놓고
어둠 속에서
이 세상에 의미없이 오는 고통은 없다고
당신은 그렇게 써놓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지금
풀벌레 울음으로도 흔들리는 여린 촛불입니다
당신이 붙이신 불이라
온몸을 태우고 있으나
제 작은 영혼보다
일만팔천 갑절 더 많은 어둠을 함께 보내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냉면을 주세요

유시경  
출판사 문예바다   발간일 2015.05.05

책소개 유시경 에세이 『냉면을 주세요』. 크게 5부로 나뉘어진 이 수필집은 제 1장 나쁜 커피의 기억, 제 ...


   유시경의 <냉면을 주세요>도 의례 문예수필의 한 특징인 신변잡사의 하나가 아닐까 반신반의 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밤을 꼬박 새웠다. 책을 읽는 내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도록 이야기는 흥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글이 살아 꿈틀거린다. 그녀는 어떻게 지금까지 가슴속에 숨겨진 응어리를 묻어놓은 채 참고 살아왔을까! 평범한 일상을 어쩌면 이렇게 맛갈스럽게 버무리고 무쳐냈을까! 평범한 작가가 평범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진정한 문예수필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는 본보기를 읽는 내내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눈물과 웃음으로 범벅이 된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또 수필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이런 수필이 대중적 사랑을 받는 순수문예수필의 좋은 '참고서'구나 하고 깨달을 듯하다.

   저자는 가식도 모른다. 그저 인간 내면세계에 흐르는 따스한 감성(인간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이 살아온 세계(월)를 피를 토하듯 풀어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속(?)이야기까지 처절하게 드러내어 까발린다. 그 속에 삶의 본질이 숨어 있고 왜 살아내야만 하는지 깨달음이 들어 있다. 글을 읽는 내내 잠시 쉬어가기를 거부한다. 소박하지만 편안하게 이어가는 유려한 묘사와 문체는 문예수필의 필수 요소인 재미와 읽은 뒤 개운한 뒷맛까지 두루 갖췄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오며 가슴속에 삭힌 문학적 열정과 무관하지 않다.

  일단 읽어보시라!

<만종>김영주

 

한적한 시골시장 오래 된 묵밥집에 백발의 할매 할배 나란히 앉아 있다.둥그런 엉덩이의자에 메뉴도 한가지뿐인

 

반 그릇도 남을 양을 한 그릇 씩 놓고 앉아 한 술을 덜어주려 반 술은 흘려가며 간간이 마주보면서 파아 하고 웃는다.

 

해는 무장무장 기울어만 가는데 최후의 만찬 같은 이승의 저녁 한 끼 식탁 밑 꼭 쥔 두 손이 풀잎처럼 떨고 있다.

 

 

※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김영주 시인은 59년 수원 출생으로 2009년 지천명의 나이로 늦깍이 등단하여 시집으로 <미안하다, 달>등을 펴냈다. 시인은 시낭송, 하모니카 연주 등 자신이 지닌 재능을 소외된 작은이웃들에게 나눔도 하는 이 시대가 필요한 참 이웃이다.

 

  김영주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서울디지탈대학 문예창작학과 현대비평론/유성호 교수 2015년 1학기) 기말고사 대체 과제를 준비하며 검색하던 중에 <만종>이라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서다. 그의 시를 읽으며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 감화되어 그만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 시(조)는 2015년 '올해의 좋은 시조'로 뽑힌 작품이기도 하다.

 

  <만종>은 시골 장터 한쪽 귀퉁이 작은 간이 음식점인 묵밥 집에서 노부부가 묵밥을 시켜놓고 주고받는 아름다운 정경을 3연에 걸쳐 소박한 언어로 꾸밈없이 따스한 인간애로 담아낸 작품이다.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는 곧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이다. 아니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다.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시며 평생을 해로하셨어도 어디 변변한 음식점에서 두 분이 오붓하게 식사 한번 하셨으랴!  그럼에도 노부부의 모습은 도시의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그 어느 젊은 연인들의 모습보다 아름답다.

 

 

한적한 시골시장 오래 된 묵밥집에 /

백발의 할매 할배 나란히 앉아 있다 /  둥그런 엉덩이의자에 / 메뉴도 한가지뿐인』

 

*1연에서는 시적 대상인 주제의 밑그림이 세심한 관찰로 포착된다.

  겨우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불편한 의자에 걸터 앉아 달랑 김치 하나뿐인 묵밥을 시켜놓고 노부부는 오랜만에 장터에 나온 부부애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당신들이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서로 아껴주고 챙겨주려는 마음이 가득 묻어나는 모습에 한 독자로서 슬며시 웃음을 짓다가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노부부의 모습은 바로 내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반 그릇도 남을 양을 한 그릇 씩 놓고 앉아 / 한 술을 덜어주려 /  반 술은 흘려가며 / 간간이 마주보면서 파아 하고 웃는다』

 

* 2연에는 주제를 부각하는 대상을 연민과 사랑의 눈빛으로 버무린다   

  당신들의 식사량이 적어 먹다 남을 것을 이미 알면서도 노부부는 떨리는 손으로 서로 더 먹으라며 숟가락에 묵밥을 떠서 건네주고 건네받다가 흘리기도 하며 속깊은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평생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던 애정어린 눈빛을 교환하며 부부는 결코 낯설지 않음에 함박 웃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랑은 결코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란 걸 우리는 이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노부부의 세세한 마음까지 오롯이 시에 담아냈다. 그것은 시인이 지닌 내면세계에서 울어나오는 인간애를 바탕에 두고 시가 출발했기 때문이다. 불과 오천 원 남짓한 묵밥을 시켜놓고 행복한 마음으로 마주 볼 수 있는 대상과 공간이 있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들만의 것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 해는 무장무장 기울어만 가는데 / 최후의 만찬 같은 이승의 저녁 한 끼 / 식탁 밑 꼭 쥔 두 손이 / 풀잎처럼 떨고 있다 』

 

  *3연에는 주제를 이끄는 시적 대상을 묘사와 작가의 진술로 구체를 통하여 승화시킨다. 

  황혼이 물드는 저녁 무렵과 인생의 황혼이 물드는 노부부와 시적 공간과 정서는 그림같이 잘 어울린다. 그 아름다운 수채화를 함께 그려가는 노부부는 시골 장터 한 귀퉁이에서 하잘 것 없는 묵밥 한 그릇으로 출출한 배를 채우며 무언의 사랑을 보낸다. 평생을 해로하며 서로 한쪽 수레바퀴가 되어 곁을 지켜준 세월이 그저 마냥 고맙고 감사하다. 어쩌면 이 식사가 마음으로 챙겨줄 수 있는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겐 고생만 시킨 지난날이 더욱 고맙고 좀 더 살뜰히 챙겨주지 못한 죄스러운 연민에 앙상하게 뼈마디만 남아 갈퀴처럼 거칠어진 두 손을 잡아주었지싶다. 그것도 부끄럽고 쑥스러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식탁 밑으로 손을 넣어 숨겨서 잡아주는 풍경은 100여 년이 훨씬 지난 세기의 명작 밀레의 '만종'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가슴 뭉클하게 그려지는 이유다.

   이처럼 김영주의 <만종>은 작가의 따스한 인간애와 예리한 관찰로 관념이나 감성이 아닌 구체를 통하여 밀도 있고 절제된 언어로 한국인들의 보편적 정서인 '보이지 않는 사랑'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시는 한국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쉽게 그림을 그리듯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주제와 잘 어울리는 훌륭한 작품이다.

                                                                                                             문학초보생(세아서문)

 

 

<사람들> 92세에 시집 낸 '소녀 시인' 오금자 할머니 

국내에서 90대 할머니가 시집을 낸 것은 처음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내 조국의 모국어인 한글로 나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체에 만족합니다."

강원 춘천시 서면 삼악산 기슭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92세 할머니가 시집을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강 상류 강촌역이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정착, 30년 동안 사는 오금자 할머니는 최근 첫 시집  '아흔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을 발간했다.

↑ 92세에 시집 낸 '소녀 시인' 오금자 할머니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강원 춘천시 서면 삼악산 기슭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92세의 오금자 할머니가 최근 펴낸 시집 '아흔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92세의 할머니가 시집을 낸 것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2013.12.11 <<지방기사 참조>> dmz@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dmzlife

↑ 92세에 시집 낸 '소녀 시인' 오금자 할머니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강원 춘천시 서면 삼악산 기슭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92세의 오금자 할머니가 최근 펴낸 시집 '아흔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92세의 할머니가 시집을 낸 것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2013.12.11 <<지방기사 참조>> dmz@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dmzlife

문단에 등단한 시인조차 90세가 넘어 시집을 내기 어려운 현실에 흙과 함께 살아온 할머니가 92세에 시집을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일제 강점기 때 어린 시절을 보낸 할머니는 학교에서 한글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했다.

광복 이후 한글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그 쓰임과 맞춤법을 놓고 여러 주장이 제기돼 혼돈을 겪었고, 대가족 시집살이와 6·25전쟁은 가정주부였던 할머니에게 재교육을 받을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항상 마음속에 한글을 배워야겠다는 꿈을 간직하던 할머니는 시댁 식구들 모르게 한글을 배우다가 들켜 호되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오 할머니는 82세가 돼서야 사슴 목장을 정리하고 자신을 찾으려고 평생교육원 문예반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뜻하게 않게 허리를 다치고 눈과 귀가 어두워 칠판의 판서가 잘 보이지 않아 다시 숲 속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시집 서문에서 "강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이웃 짝에도 폐가 되기도 해 결국 수강을 중단하고 숲 속 생활에서 본대로, 느낀 대로, 보고 느낀 대로 낙서하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주위에서 늙은이가 노망이라는 등 쑥덕공론도 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 핀잔과 서운한 마음에도 개의치 않고 나의 모국어인 한글로 나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체에 보람을 찾고 만족할 뿐이었다"고 밝혔다.
또 "나이 92세가 되니 남들은 듣기 좋은 말로 백수를 누릴 수 있는 망백이라고 칭찬해주지만, 그보다는 매일 매일 무조건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없다"며 "왜냐하면 천국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할머니의 시는 주변의 흙, 산, 숲, 꽃, 새, 별, 달, 구름 등을 소재로 하지만 험난한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인생 경험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6·25전쟁 당시 끌려간 남편을 찾아 나섰던 서울 시내에서는 시신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던 참혹한 모습을 목격했으며,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당시에는 정선에서 강릉으로 농촌계몽 강연을 하러 가다 여간첩으로 몰리기도 했다.

아흔두 살의 할머니가 시집을 내자 문단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시인인 송명호 중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고를 읽고 나서 아흔두 살의 연세답지 않게 소녀 시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했다.

송 교수는 "국내에서 90살 되신 분은 시집을 내는 것은 처음"이라며 "할머니의 시는 시학적으로, 미학적으로 마술을 부린 게 아니라 그대로의 마음을 썼기 때문에 더 글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할머니의 시는 나이 들어 일자리가 없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인들에게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종황제의 근위대 대장이자 을사늑약 후 군대가 해체되자 문맹퇴치 운동을 벌였던 아버지 오유영 씨의 6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할머니는 결혼하고 나서도 부녀자를 대상으로 20년 동안 농촌 계몽운동을 벌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68년 전국 새농민상을 수상했다.

할머니는 1978년 화전민이 버리고 간 삼악산 기슭의 황무지를 개간, 사슴 농장을 운영했다.
돌과 뱀밖에 없던 땅을 개간한 할머니는 사육하던 곰과 사슴에 양손을 물렸음에도 요즘도 이 손을 이용해 일하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 깃든다'는 아버지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한겨울에도 냉수욕을 즐기는 할머니는 지난봄에는 92세에 3·1절 기념 마라톤대회에 참가, 완주 메달과 상금을 받았을 정도로 정정하다.
할머니는 시집을 판매해 생기는 수익금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dmz@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dmzlife

(끝)

 

 ♡사진-2011년 현충일 연휴 - 엄니와 강원도 일주 여행하며 봉평 허브나라에서... 다락방이 그리워진다^^

     난 아직도 작은 다락방에서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을 청하거나 햇살의 눈부

     심을 받으며 파란 하늘 아래 떠가는 흰구름을 바라보고 한 줄 낙서를 끄적이는 꿈을 꾸고 있다.^^

 

   

 1%의 행복 

                         - 이 해인 -

 

 

사람들이 자꾸 묻습니다.
행복하냐고
낯선 모습으로 낯선 곳에서
사는 제가 자꾸 걱정이 되나 봅니다.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면

저울이 행복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겁니다.
어느 상품명처럼 2%가 부족하면
그건 엄청난 기울기입니다.

아마...
그 이름을 지은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2%라는 수치가 얼마나
큰지를 아는 모양입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1%가 빠져나가
불행하다 느낄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은 수치가 기울기 전에
약간의 좋은 것으로 얼른 채워넣어
다시 행복의 무게를 무겁게 해 놓곤 합니다.

약간의 좋은 것 1%
우리 삶에서 아무 것도 아닌
아주 소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 할 때의 평화로움
따뜻한 아랫목

친구의 편지
감미로운 음악
숲과 하늘과 안개와 별
그리고 잔잔한 그리움까지

팽팽한 무게 싸움에서는 아주
미미한 무게라도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단 1%가
우리를 행복하게 또 불행하게 합니다.
나는 오늘
그 1%를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행복하다고,,,

 

 ♡ 사진- 2010년 어느 가을날 집 앞 강둑산책로... 고운 할머니 할아버지의 우정이 아름다워보인다.

             행복은 결코 거창하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죠. 일상의 소소한 일 중 작은 1%의 만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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