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92세에 시집 낸 '소녀 시인' 오금자 할머니
국내에서 90대 할머니가 시집을 낸 것은 처음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내 조국의 모국어인 한글로 나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체에 만족합니다."
강원 춘천시 서면 삼악산 기슭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92세 할머니가 시집을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강 상류 강촌역이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정착, 30년 동안 사는 오금자 할머니는 최근 첫 시집 '아흔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을 발간했다.
문단에 등단한 시인조차 90세가 넘어 시집을 내기 어려운 현실에 흙과 함께 살아온 할머니가 92세에 시집을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광복 이후 한글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그 쓰임과 맞춤법을 놓고 여러 주장이 제기돼 혼돈을 겪었고, 대가족 시집살이와 6·25전쟁은 가정주부였던 할머니에게 재교육을 받을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항상 마음속에 한글을 배워야겠다는 꿈을 간직하던 할머니는 시댁 식구들 모르게 한글을 배우다가 들켜 호되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오 할머니는 82세가 돼서야 사슴 목장을 정리하고 자신을 찾으려고 평생교육원 문예반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뜻하게 않게 허리를 다치고 눈과 귀가 어두워 칠판의 판서가 잘 보이지 않아 다시 숲 속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시집 서문에서 "강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이웃 짝에도 폐가 되기도 해 결국 수강을 중단하고 숲 속 생활에서 본대로, 느낀 대로, 보고 느낀 대로 낙서하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주위에서 늙은이가 노망이라는 등 쑥덕공론도 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 핀잔과 서운한 마음에도 개의치 않고 나의 모국어인 한글로 나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체에 보람을 찾고 만족할 뿐이었다"고 밝혔다.
또 "나이 92세가 되니 남들은 듣기 좋은 말로 백수를 누릴 수 있는 망백이라고 칭찬해주지만, 그보다는 매일 매일 무조건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없다"며 "왜냐하면 천국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할머니의 시는 주변의 흙, 산, 숲, 꽃, 새, 별, 달, 구름 등을 소재로 하지만 험난한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인생 경험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6·25전쟁 당시 끌려간 남편을 찾아 나섰던 서울 시내에서는 시신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던 참혹한 모습을 목격했으며,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당시에는 정선에서 강릉으로 농촌계몽 강연을 하러 가다 여간첩으로 몰리기도 했다.
아흔두 살의 할머니가 시집을 내자 문단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시인인 송명호 중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고를 읽고 나서 아흔두 살의 연세답지 않게 소녀 시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했다.
송 교수는 "국내에서 90살 되신 분은 시집을 내는 것은 처음"이라며 "할머니의 시는 시학적으로, 미학적으로 마술을 부린 게 아니라 그대로의 마음을 썼기 때문에 더 글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할머니의 시는 나이 들어 일자리가 없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인들에게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종황제의 근위대 대장이자 을사늑약 후 군대가 해체되자 문맹퇴치 운동을 벌였던 아버지 오유영 씨의 6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할머니는 결혼하고 나서도 부녀자를 대상으로 20년 동안 농촌 계몽운동을 벌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68년 전국 새농민상을 수상했다.
할머니는 1978년 화전민이 버리고 간 삼악산 기슭의 황무지를 개간, 사슴 농장을 운영했다.
돌과 뱀밖에 없던 땅을 개간한 할머니는 사육하던 곰과 사슴에 양손을 물렸음에도 요즘도 이 손을 이용해 일하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 깃든다'는 아버지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한겨울에도 냉수욕을 즐기는 할머니는 지난봄에는 92세에 3·1절 기념 마라톤대회에 참가, 완주 메달과 상금을 받았을 정도로 정정하다.
할머니는 시집을 판매해 생기는 수익금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dmz@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dmzlife
(끝)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내 조국의 모국어인 한글로 나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체에 만족합니다."
강원 춘천시 서면 삼악산 기슭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92세 할머니가 시집을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강 상류 강촌역이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정착, 30년 동안 사는 오금자 할머니는 최근 첫 시집 '아흔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을 발간했다.
↑ 92세에 시집 낸 '소녀 시인' 오금자 할머니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강원 춘천시 서면 삼악산 기슭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92세의 오금자 할머니가 최근 펴낸 시집 '아흔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92세의 할머니가 시집을 낸 것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2013.12.11 <<지방기사 참조>> dmz@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dmzlife
↑ 92세에 시집 낸 '소녀 시인' 오금자 할머니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강원 춘천시 서면 삼악산 기슭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92세의 오금자 할머니가 최근 펴낸 시집 '아흔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92세의 할머니가 시집을 낸 것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2013.12.11 <<지방기사 참조>> dmz@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dmzlife
일제 강점기 때 어린 시절을 보낸 할머니는 학교에서 한글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했다.
광복 이후 한글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그 쓰임과 맞춤법을 놓고 여러 주장이 제기돼 혼돈을 겪었고, 대가족 시집살이와 6·25전쟁은 가정주부였던 할머니에게 재교육을 받을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항상 마음속에 한글을 배워야겠다는 꿈을 간직하던 할머니는 시댁 식구들 모르게 한글을 배우다가 들켜 호되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오 할머니는 82세가 돼서야 사슴 목장을 정리하고 자신을 찾으려고 평생교육원 문예반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뜻하게 않게 허리를 다치고 눈과 귀가 어두워 칠판의 판서가 잘 보이지 않아 다시 숲 속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시집 서문에서 "강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이웃 짝에도 폐가 되기도 해 결국 수강을 중단하고 숲 속 생활에서 본대로, 느낀 대로, 보고 느낀 대로 낙서하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주위에서 늙은이가 노망이라는 등 쑥덕공론도 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 핀잔과 서운한 마음에도 개의치 않고 나의 모국어인 한글로 나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체에 보람을 찾고 만족할 뿐이었다"고 밝혔다.
또 "나이 92세가 되니 남들은 듣기 좋은 말로 백수를 누릴 수 있는 망백이라고 칭찬해주지만, 그보다는 매일 매일 무조건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없다"며 "왜냐하면 천국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할머니의 시는 주변의 흙, 산, 숲, 꽃, 새, 별, 달, 구름 등을 소재로 하지만 험난한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인생 경험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6·25전쟁 당시 끌려간 남편을 찾아 나섰던 서울 시내에서는 시신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던 참혹한 모습을 목격했으며,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당시에는 정선에서 강릉으로 농촌계몽 강연을 하러 가다 여간첩으로 몰리기도 했다.
아흔두 살의 할머니가 시집을 내자 문단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시인인 송명호 중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고를 읽고 나서 아흔두 살의 연세답지 않게 소녀 시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했다.
송 교수는 "국내에서 90살 되신 분은 시집을 내는 것은 처음"이라며 "할머니의 시는 시학적으로, 미학적으로 마술을 부린 게 아니라 그대로의 마음을 썼기 때문에 더 글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할머니의 시는 나이 들어 일자리가 없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인들에게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종황제의 근위대 대장이자 을사늑약 후 군대가 해체되자 문맹퇴치 운동을 벌였던 아버지 오유영 씨의 6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할머니는 결혼하고 나서도 부녀자를 대상으로 20년 동안 농촌 계몽운동을 벌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68년 전국 새농민상을 수상했다.
할머니는 1978년 화전민이 버리고 간 삼악산 기슭의 황무지를 개간, 사슴 농장을 운영했다.
돌과 뱀밖에 없던 땅을 개간한 할머니는 사육하던 곰과 사슴에 양손을 물렸음에도 요즘도 이 손을 이용해 일하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 깃든다'는 아버지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한겨울에도 냉수욕을 즐기는 할머니는 지난봄에는 92세에 3·1절 기념 마라톤대회에 참가, 완주 메달과 상금을 받았을 정도로 정정하다.
할머니는 시집을 판매해 생기는 수익금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dmz@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dmzlife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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