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종>김영주
한적한 시골시장 오래 된 묵밥집에 백발의 할매 할배 나란히 앉아 있다.둥그런 엉덩이의자에 메뉴도 한가지뿐인
반 그릇도 남을 양을 한 그릇 씩 놓고 앉아 한 술을 덜어주려 반 술은 흘려가며 간간이 마주보면서 파아 하고 웃는다.
해는 무장무장 기울어만 가는데 최후의 만찬 같은 이승의 저녁 한 끼 식탁 밑 꼭 쥔 두 손이 풀잎처럼 떨고 있다.
※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김영주 시인은 59년 수원 출생으로 2009년 지천명의 나이로 늦깍이 등단하여 시집으로 <미안하다, 달>등을 펴냈다. 시인은 시낭송, 하모니카 연주 등 자신이 지닌 재능을 소외된 작은이웃들에게 나눔도 하는 이 시대가 필요한 참 이웃이다.
김영주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서울디지탈대학 문예창작학과 현대비평론/유성호 교수 2015년 1학기) 기말고사 대체 과제를 준비하며 검색하던 중에 <만종>이라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서다. 그의 시를 읽으며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 감화되어 그만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 시(조)는 2015년 '올해의 좋은 시조'로 뽑힌 작품이기도 하다.
<만종>은 시골 장터 한쪽 귀퉁이 작은 간이 음식점인 묵밥 집에서 노부부가 묵밥을 시켜놓고 주고받는 아름다운 정경을 3연에 걸쳐 소박한 언어로 꾸밈없이 따스한 인간애로 담아낸 작품이다.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는 곧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이다. 아니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다.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시며 평생을 해로하셨어도 어디 변변한 음식점에서 두 분이 오붓하게 식사 한번 하셨으랴! 그럼에도 노부부의 모습은 도시의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그 어느 젊은 연인들의 모습보다 아름답다.
『한적한 시골시장 오래 된 묵밥집에 /
백발의 할매 할배 나란히 앉아 있다 / 둥그런 엉덩이의자에 / 메뉴도 한가지뿐인』
*1연에서는 시적 대상인 주제의 밑그림이 세심한 관찰로 포착된다.
겨우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불편한 의자에 걸터 앉아 달랑 김치 하나뿐인 묵밥을 시켜놓고 노부부는 오랜만에 장터에 나온 부부애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당신들이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서로 아껴주고 챙겨주려는 마음이 가득 묻어나는 모습에 한 독자로서 슬며시 웃음을 짓다가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노부부의 모습은 바로 내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 반 그릇도 남을 양을 한 그릇 씩 놓고 앉아 / 한 술을 덜어주려 / 반 술은 흘려가며 / 간간이 마주보면서 파아 하고 웃는다』
* 2연에는 주제를 부각하는 대상을 연민과 사랑의 눈빛으로 버무린다
당신들의 식사량이 적어 먹다 남을 것을 이미 알면서도 노부부는 떨리는 손으로 서로 더 먹으라며 숟가락에 묵밥을 떠서 건네주고 건네받다가 흘리기도 하며 속깊은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평생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던 애정어린 눈빛을 교환하며 부부는 결코 낯설지 않음에 함박 웃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랑은 결코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란 걸 우리는 이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노부부의 세세한 마음까지 오롯이 시에 담아냈다. 그것은 시인이 지닌 내면세계에서 울어나오는 인간애를 바탕에 두고 시가 출발했기 때문이다. 불과 오천 원 남짓한 묵밥을 시켜놓고 행복한 마음으로 마주 볼 수 있는 대상과 공간이 있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들만의 것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 해는 무장무장 기울어만 가는데 / 최후의 만찬 같은 이승의 저녁 한 끼 / 식탁 밑 꼭 쥔 두 손이 / 풀잎처럼 떨고 있다 』
*3연에는 주제를 이끄는 시적 대상을 묘사와 작가의 진술로 구체를 통하여 승화시킨다.
황혼이 물드는 저녁 무렵과 인생의 황혼이 물드는 노부부와 시적 공간과 정서는 그림같이 잘 어울린다. 그 아름다운 수채화를 함께 그려가는 노부부는 시골 장터 한 귀퉁이에서 하잘 것 없는 묵밥 한 그릇으로 출출한 배를 채우며 무언의 사랑을 보낸다. 평생을 해로하며 서로 한쪽 수레바퀴가 되어 곁을 지켜준 세월이 그저 마냥 고맙고 감사하다. 어쩌면 이 식사가 마음으로 챙겨줄 수 있는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겐 고생만 시킨 지난날이 더욱 고맙고 좀 더 살뜰히 챙겨주지 못한 죄스러운 연민에 앙상하게 뼈마디만 남아 갈퀴처럼 거칠어진 두 손을 잡아주었지싶다. 그것도 부끄럽고 쑥스러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식탁 밑으로 손을 넣어 숨겨서 잡아주는 풍경은 100여 년이 훨씬 지난 세기의 명작 밀레의 '만종'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가슴 뭉클하게 그려지는 이유다.
이처럼 김영주의 <만종>은 작가의 따스한 인간애와 예리한 관찰로 관념이나 감성이 아닌 구체를 통하여 밀도 있고 절제된 언어로 한국인들의 보편적 정서인 '보이지 않는 사랑'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시는 한국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쉽게 그림을 그리듯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주제와 잘 어울리는 훌륭한 작품이다.
문학초보생(세아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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