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경계를 풀으면 웃음이 나오니...곧 마음을 비우고 나를 버리는 것이다.

     동자 스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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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걸으면서 오로지 그 숲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들.
나누어 가지기 좋은 것으로 웃음만한 보시가 있으랴.
 
▲ 수련중인 황룡·구봉·청룡 세 동승(왼쪽부터).
네 살배기 구봉스님의 얼굴은 그대로 '천진불'이다.
 
 
금성산 초막에 머리깎은 일가족 다섯 명
 
▲담양 금성산 숲속 초막 동자암에서 만난 웃음들.
청산·보리 스님과 황룡·청룡·구봉 스님의 티없이 맑은
삶이 거기 있었다.
 
 
 
‘무거운 짐 거세요’…죽은 나무가 부처 노릇


육신의 짐뿐만 아니라 마음의 짐까지도
죽은 나무가 그렇게 부처 노릇을 한다


 
‘거지처럼 살자!’

‘무소유’라는 고상한 말 대신 늘 하는 다짐이다.
전기 걸고 싶으면 내려가서 살 일.
전깃불 끌어들이자면 전봇대 들어올 테고,
그러면 자연이 싫어할 것이라는 걸 안다.

자연에 세들어 사는 사람이  주인 눈치 보지 않을 수 있나.
그럼! 주인 맘에 들어야지.”
억지로 사는 것보다 순리로 살고 싶다.
전기 쓸 일 없고,
물은 길어다 쓰고,
풀 뜯어먹으니 돈 들 일 없다.
밤하늘엔 별이 있고 달이 뜨면 사치,
더덕 한 뿌리면 호사다.
 다람쥐며 새들이 놀러오는 마당에 더 이상 무엇이필요하랴.

 
버리고 나올 수 있으면 된다.

 
 
마음의 경계 무너지면 웃음이 나와

“나를 내세우지 않으면 웃을 수 있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웃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무것도 내세우려 하지 않는 동자암이기에 그곳을 스쳐가는
산아랫사람들 저마다 빙그레 웃고 가는 것...
 
 
 
 
 
 
 
마음을 비우는 것은 곧 나를 비우는 것이니 그것이 우리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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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의 이름은 비비새라고 합니다 작은 무리를 짓거나 또는 홀로 외로이 작은

나무숲이나 덩쿨사이를 다니며 살고 있는 토종텃새 입니다.

그 모습이 아주 앙증맞고 몸집이 작아 귀엽습니다.

습성상 나무나 덩쿨에 매달려 사는 것을 좋아해 잠시 쉴 때도 매달려 쉬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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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새끼손가락 내밀어 봉숭아 꽃잎으로 물들이는 예쁜 추억이 그립습니다.

밤잠을 잘 때도 예쁘게 물이 들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마음 걱정을 하던 순수함

손톱에 물들이듯 그런 마음으로 사랑도 가꾸고 키워가는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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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베란다 예쁜 화단...
글쓴이 : 산아 원글보기
메모 :

이 그림은 어느 분의 플래닛에서 옮겨온 것인데... 제가 아주 좋아하는 정서입니다.

우리집도 아파트인데...창밖에 바로 강둑이 있어 자연과 늘 접하기에 아파트 테라스를 정원처럼 꾸미고

싶지만 마음만큼 잘 되지 않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꼭 아기자기하게 꾸며서 이웃들과 나누고 싶

은 마음이랍니다 ^&^


출근길...아파트 화단에 누군가 심어놓은 초롱꽃이 아주 소담스럽게 피었습니다.

어린시절 산에 오르면 간간히 볼 수 있었던 아주 귀한 꽃이었지요...우리 풍습 중

매파의 노력으로 혼사가 성사되면 청사초롱을 들고 신부가 사는 집으로 사주를

들고 찾아가는 미풍양속이 있는데...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나도 청사초롱을 따라 그곳(?)으로 갈 날은 언제일지...*^^


 

출처 : 청사초롱
글쓴이 : 봄내지기 원글보기
메모 :

이즈음 들녁을 걸으며 느낌을 마주하는 아주 친근한 꽃이 아닐까? 전 개인적으로

코스모스를 아주 좋아하는데...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가에 피어있고...또

화려함보다는 청초함과 수수함이 느껴지는 꽃이기에 더욱 좋아합니다 *^^

출처 : 코스모스 들판
글쓴이 : 봄내지기 원글보기
메모 :
[한겨레]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속’을 넘어 ‘승’으로 간 영자

찬바람이 불때마다 늘 깊은 회한에 젖게 하는 사람이 있다. 안 그래도 한 달 전, 새로운 곳으로 옮긴 작업실의 책장을 정리하면서 그 사람과 관련된 무엇을 펼쳐들곤 정리는 나 몰라라 한 채 너덧 시간이나 상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덕분에 책장 정리는 다음날로 미뤄지고 내 눈길은 망연히 허공만 붙잡을 뿐이었다. 그렇게 잊었다가 가을이 깊어지니 흩날리는 낙엽소리처럼 마음이 스산해지며 다시 그 사람이 생각이 난다.

그 사람은, 아니 지금은 어엿한 아가씨가 되고도 남았을 법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라고 불러도 될 만했다.


그녀는 지금껏 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중에 가장 어린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드물게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어엿한 아가씨라고는 했지만 그것을 세속에서 부르는 호칭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성숙한 아가씨라고 불리지도 않는다. 속(俗)을 넘어 승(僧)의 세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신이 보낸 사람…이지누”라는 쪽지

2001년 늦가을, 후배가 그쪽 언저리로 간다기에 그 집은 어떻게 됐는지 가보라고 했다.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다녀 온 후배는 불쑥 찢어진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곳에 그녀가 쓴 짧은 글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신이 보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이지누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한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경직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지금 도혜(道慧)라는 법명으로 불가에 귀의해 수행정진 중이지만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산골소녀 영자다.

그녀와 나의 인연은 이랬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영자가 15살 때였다. 도계읍의 육백산 말기에 있는 황새터와 같은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산골문화에 대한 조사를 할 때였다. 그 무렵 육백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무곡이라는 지명을 알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곳에 영자부녀가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해를 걸러서 서너 번 찾아갔을까. 그것이 전부다. 그리곤 그녀가 17살이 되던 1999년 이맘때에 모 잡지에 영자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의 주소지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고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그 집요한 사람들은 이내 그녀가 사는 곳을 알아내고 말았다. 그들은 기어코 그녀에게 텔레비전 카메라를 들이댔고 그녀의 집에 전기나 전화가 없다는 것이나 혹은 그 집에 가려면 오로지 걸어서만 가야 하는 불편함을 오히려 내세워가면서 말이다. 사람에 굶주린 도회지의 사람들은 그 모습에 열광하며 무방비의 그 아이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방영되기 전부터 나는 그 아이에게 책을 보내주고 있었다. 시인 신경림이나 기형도 그리고 소설가 이순원을 특히 좋아한다는 그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 했었고 또 잡지에 나간 기사를 보고 책이나 다른 것들을 보내 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그 아이의 주소를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보내려는 책을 모두 나에게 보내라고 했다. 도서목록을 만들어 서로 겹치는 것은 사양했으며 옷을 보내 주겠다는 것 또한 사양했다.

그렇게 작업실에 책을 쌓아 놓고는 한 달에 15권 이상을 보내 주지 않았다. 아무리 책 읽는 것을 좋아 한다고는 하지만 한 달에 15권 이상을 읽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러 학용품은 보내 주었지만 굳이 옷과 같은 생활용품들을 사양했던 것은 도회지의 옷이 그 산골에서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화란 자신의 생활환경이나 습관에 견주어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잘 어울리는 것이라야 한다. 차라리 몸에 걸쳐도 겉돌기만 할 도회지의 옷을 보내 줄 양이면 그 보다 그 아이가 날마다 끼고 사는 라디오의 건전지 하나를 더 보내 주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먼저 굳이 책 이외의 그 무엇들을 보내 주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보기에 영자는 별다른 아쉬움이 없는 아이였다. 아버지와 미미 그리고 꼬꼬라는 닭 두 마리면 충분히 행복했던 것이다. 간혹 아버지와 함께 도계읍이나 삼척으로 장도 볼 겸 나들이를 나가는 것만으로도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에게도 나름대로 존중해야 할 문화의 생산과 소비양태는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도회지 사람들 앞다퉈 책을 보내

그러나 도회지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저 자신들과 같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무엇이라도 그녀에게 나눠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한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양은 생각지도 못한 채 서로 앞 다투어 그녀에게 책을 보내기를 원했다. 문학을 꿈꾸는 소녀이었기에 텔레비전 덕분에 공개되어버린 주소로 무지막지하게 책은 배달되었고 이윽고 그녀의 방은 책으로 넘쳐 결국 마당 한쪽에 책을 보관하는 광을 따로 지어야 했다. 과연 그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책을 보내려던 자신을 위한 일이었을까. 자못 궁금한 일이다.

나는 그 작은 마당에 만들어진 책 광을 보고는 아연실색해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아직도 세상이 메마르지 않아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생각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녀가 광에 쌓인 책을 모두 읽으려면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십년은 족히 걸리고도 남음이 있을 만한 양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읽고 싶은 책과는 상관없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각종의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무리 모든 책이 삶의 양식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다 읽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던 것이다.

서로 도와가며 세상을 살아 갈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며 실행한다는 것은 더없이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나의 도움이 상대에게 지나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배려까지 할 수 있으면 그것은 보약이 될 수 있으되 그렇지 못하면 독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그녀에게 독을 선물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곤 그녀가 처했을 입장과는 상관없이 나도 그녀를 도왔다는 자족감에 젖어 만족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결국 내 삶의 풍족함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을 소비했다는 말과도 같다. 이 말이 지나치기 전에 우리들의 행동은 이미 지나쳤다. 나는 그녀가 텔레비전에 나오고부터는 더 이상 책을 보내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녀와 내가 나눴던 그 소박한 사랑의 마음들을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아야만 했다. 영자의 얼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나올 때나 그 후에도 영자의 순박한 미소는 압권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을 아는 나에게는 그것마저도 이미 달라진 것이었다.

자족감에 젖어 ‘독’을 선물한 꼴

처음 그녀를 만났던 날, 살가운 대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한나절이나 마당을 서성이자 그제야 곁을 주었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사진기에 대한 호기심을 영자가 견디지 못한 것이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대뜸 자기가 그것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사진기를 보기는 했지만 자기가 만져보기는 처음이라고 했었다. 조물조물 사진기를 만지던 그녀가 찍어도 되냐고 했고 이윽고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놀라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간혹 렌즈를 바꿔 끼워주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사진기를 이리저리 들이대다가 나를 보며 짓던 미소는 지금껏 내가 본 미소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날 영자는 좁은 마당을 이리저리 다니며 36장짜리 흑백필름을 예닐곱 통이나 찍고 난 후에야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그 후, 그녀에게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나침의 경계를 지키지 못한 우리들 탓으로 연이어 불행한 일들이 생겨났다. 2001년, 잡지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은 슬픈 소식 앞에서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망연히 밖을 보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앞에 놓고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외로웠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욕심으로 한 사람을 잔인하게도 난도질한 것이나 다르지 않으니 암담했으며 처연했다. 그 빌미를 제공한 사람이 나였다는 생각에 몸 둘 바를 몰라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지금에야 고백컨대 난 그 이후로 우리 땅 골골샅샅 헤매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아니 분명 만난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옳겠다. 그 이후,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거나 돌 혹은 나무이거나 풀과 같은 것들조차도 제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가 그들이 있는 곳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거나 문화적으로 다르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내 자리로의 이동이나 동참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두고 볼 뿐이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공짜가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사람을 배우며 치른 수업료 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되돌아보라. 당신들은 사람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말이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 거지와 창녀의 사랑 ♡ 30여 년을 길에서 구걸하며 살아온 걸인 총각은 어린 시절 집에서 내쫓긴 선천성 뇌성마비 환자이다. 그는 정확히 듣고 생각하긴 해도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걸 이외에는 어떤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번화가 길목에 앉아서 하루 동냥받는 것이 거의 4-5만원이라 해도 허기진 배는 채울 길이 없다. 음식점 문안으로 들어서기 전 쫓겨나기 때문이다. 구걸이 아니라 당당한 손님으로 화폐를 지불한다 해도 모든 식당들은 그에겐 영업사절이다. 그도 그럴것이 온 몸이 떨리고 뒤틀려 수저로 먹는다 해도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 밥이 더 많아 주위를 지저분하게 만들어 영업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이토록 문전박대를 당해 서럽고 배고픈 그가 예수의 기적을 염원하면서 성경 한 권을 다 외우기도 했다. 그는 30년 간 성당 주변을 떠나본 적이 없는 신실한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두터운 신앙심이 육체의 허기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 뿐 아니라 장가드는 일이란 상상조차 못해 볼 일이었다. 자신을 향해 문을 꼭꼭 닫은 지상에서 그가 갈 곳은 창녀촌 뿐이었다. 돈을 내놓으면 저들처럼 나를 문전박대하진 않겠지. 그는 창녀촌에 와서 어울리지도 않게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주문 한 가지를 더 했다. 먹여달라고....... 돈이면 독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한 창녀 여인이 밥 한 상을 차려 왔다. 그리고 먹여주기 시작했다. 걸인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나를 내쫓지 않고 영접해 준 저 여인이야말로 천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다... 당시인이 바... 바로 처... 천사야..." 창녀는 깜짝 놀랐다. '뭇 남성의 천대와 사회의 냉대만을 받던 내가 천사라니!' 걸인은 당신이 바로 천사라고 우겼다. 일생 처음 듣는 이 고상한 말에 창녀는 감격했다. 감격은 눈물이 되어 흘렀다. "창녀를 천사라고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천사..." 둘은 서로 고백했다. 나의 천사..." 두 사람은 성당에서 혼인식을 올렸다. 4백여 명의 축하객들의 눈물과 축복 속에서.. 그들은 지금 장사를 하고 있다.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고도 매일 밥을 먹여주는 아내가 있어 걸인은 이 세상은 에덴동산이라 찬양한다. 온갖 수모를 당하지 않고도, 살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 여인은 이제 남성들을 저주하지 않고 진심으로 남성을 사랑할 수 있어서 매일 축제로 살아간다. 그들을 이토록 새롭게 한 것은 누구일까? 걸인을 구한 것은 사회복지정책도 아니요, 자선도 아니요, 교회도 아니었다. 바로 창녀였다. 창녀를 구한 것은 윤락 방지법도 아니요, 성직자도 아니요, 상담자도 아니었다. 바로 걸인이었다. *이글은 실화라고 합니다. x-text/html; charset=iso-8859-1" hidden=true src=http://sky060.com.ne.kr/gio/gio-na.wma loop="-1">
어딘지 좀 엉성한 구석이 있으면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잔
두 개가 있습니다.

한 잔에는
맑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고,
다른 한 잔은 비워져 있습니다.


전자는 '순수' 라는 것이요,
후자는 '순진' 이라는 것이죠.


순수라는 놈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으니,
깨끗함 그 자체이고


순진은 비어 있으므로,
그 안에 순수처럼 깨끗한 물이 담길 수도 있고,
더러운 물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순수'와 '순진'에 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순수의 사전적 의미는
'잡것의 섞임이 없는 것
, 사사로운 욕심이
못된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진'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꾸밈이 없이 순박하고 참되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함 입니다.


그런데 보내온 글이
사전적 정의보다 훨씬 더
멋진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순진하다' 라는 말은
어리석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반면 '순수하다' 라는 말은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소신이 있고,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순진' 이란 말은 어릴 때만
간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순진하다면
세상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반면 순수는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순수한 사람이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거짓이 없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집니다.
순수한 사람은 주관이 뚜렷합니다.


순수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
흔들리지 않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겸손의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남의 잘못은 용서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합니다.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습관을 가지려
노력하면 순수해질 수 있습니다.


진정 순수해 누가 봐도 아름다워서
나를 닮고 싶어하는 사람 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누가 봐도 부담이 없는,
순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순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 단비 원글보기
메모 :

우리는 '순수' 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어쩜 아직 철부지같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맘속엔 '순수' 라는 단어 하나쯤 담고 살 수 있다면 하루하루 내면 세계를 정화시키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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