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1절  특집 - 윤동주  ① ]  유일한  혈육  윤혜원 씨

윤동주  육필 원고  갖고  월남한  여동생
"당시엔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몰랐죠"
 

 

그렇다. 시인은 모국어로 생각하고, 모국어로 시를 쓴다. 모국어와 함께 태어나서 한 세상을 살다가 죽는다. 시인에게 모국어는 '또 하나의 목숨'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 모국어(한글)로 시를 쓰면 죄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죄로 감옥에 가고, 급기야 죽음까지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다. 일본 유학 중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2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옥사한 윤동주 시인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지난주 2월 16일이 그의 62주기였다.

 

   죽은 다음에 시인으로 불린 윤동주

  1945년 2월, 조국의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조선 출신의 한 젊은이가 일본 후쿠오카 감옥의 차디찬 마룻바닥에서 뜻 모를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숨을 거두었다. 윤동주 시인이었다. 정확하게 27년2월의 짧은 생애였다. 그리고 그는 영원히 늙지 않는 '청년 시인' 윤동주로 한국인의 가슴에 또렷이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가 생존할 당시엔 아무도 그를 시인이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입을 꼭 다문 고등학생 교복차림으로, 학사모를 쓴 대학생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윤동주가 시인의 호칭을 얻은 것은 옥사하여 무덤에 묻히는 순간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살아생전에 시인으로 등단한 적이 없는 그의 묘비에 '시인 윤동주 지묘(詩人 尹東柱 之墓)'라고 새겨진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 윤하현(1875-1948)이 "내 손자, 동주의 일생이야말로 진정한 시인의 삶이었다"고 평가하면서 그런 묘비를 만든 것이다.

 

    이렇듯 윤동주 시인의 갑작스런 죽음과 비극적인 생애는 그의 고고한 시편들과 함께 윤동주를 순교자적인 이미지로 깊게 각인시켰다. 그가 시인으로 데뷔한 일도 없고 시집 한 권 남기지 않았지만 한국현대시 100년을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명이 됐다. 또한 그의 시비가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세워질 정도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시인이 됐다.
  윤동주 시인이 시집을 출간하려고 시도했던 적은 있다. 본격적인 유학생활이었던 연희전문 4년을 졸업한 윤동주는 졸업 기념으로 19 편의 자작시를 묶어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을 내려 했다. 그러나 은사인 이양하 교수 등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하자, 자진해서 시집출간을 포기했다. 대신 원고지에 펜으로 써서 3부를 묶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다. 바로 그 시 묶음의 서문 격으로 쓴 시가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애송시가 된 <서시(序詩)>다.

 

 

 윤동주의 이미지는 왜 순결할까?

   스치는 바람 한 줄기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 그의 순결한 이미지가 그가 죽은 지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될 당시까지 세상사에 물들지 않은 학생 신분이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윤동주 시인의 순절(殉節)한 이미지를 오랫동안 명토 박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유일한 혈육으로 남아있는 여동생 윤혜원(84, 시드니 우리교회 권사)씨 한테 있다.

 

 

 

윤동주의 <서시> 육필 원고↗

                                                                                                                                           

 

  북간도 룽징(龍井)에서 짧은 기간 초등학교 교사를 역임했던 윤혜원 씨는 1948년 12월, 해방공간의 혼란스런 시기에 북간도에서 한국으로 내려오면서 고향집에 남아있던 윤동주 시인의 원고와 사진을 가져온 장본인이다.
  거기엔 윤동주 시인의 초기와 중기의 작품들이 대부분 포함되고 있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시 원고를 가져온 윤혜원 씨의 노력은 윤동주의 시세계가 더욱 풍성해지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주오빠 방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대학노트 3권을 아버지의 권유로 가져왔는데, 그 당시엔 그 노트에 담긴 시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몰랐다"고 윤씨는 회상한다.
  그 대학노트에 담긴 윤동주의 걸작들이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1948년 초간본 31편에 들어 있지 않은 시편들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 116편

이 게재되어 있는 증보판의 시편들 중 절반 이상이 윤혜원 씨의 품에 안겨 월남했던 것이다.


  이렇듯 큰일을 한 윤혜원 씨는 그동안 언론과의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피하면서 한평생을 살았다. "동주오빠는 나의 오빠이기도 하지만 그의 시를 사랑하고 그의 꼿꼿한 정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형님이요 오빠이기 때문에 공연한 말들로 그의 '티 없는 초상'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게 일관된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윤혜원 씨는 동갑내기 남편 오형범(84.시드니 우리교회 장로)씨와 함께 서울에서 부산-필리핀-호주 등으로 계속 남하했다. 그들이 피했던 대상은 언론뿐만 아니라 수많은 윤동주 연구가들도 포함된다. 1986년, 시드니에 정착해서 21년째 살고 있는 윤씨는 호주에서조차 은둔생활을 계속했다.

침통한 표정의 윤동주 "그 분이 글쎄..."

    윤혜원 씨는 1924년 생으로 동주오빠와는 일곱 살 터울이다. 윤혜원 씨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오빠의 가장 어린 모습은 동주 오빠랑 문익환 오빠, 고종사촌인 송몽규 오빠 등이 외삼촌 김약연 목사가 시무하던 명동교회당의 맨 앞줄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다. 다음은 윤혜원 씨의 회고다.    나중에 할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인데,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서 젖이 부족하자 같은 해에 출생한 동주 오빠와 문익환 오빠가 문익환 오빠의 어머니 김신묵 여사의 젖을 함께 먹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은진중학교에 진학한 동주오빠는 뭐가 그리 바쁜지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늦은 밤까지 등사용지에다 글을 써서 등사를 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오빠의 손가락엔 늘 등사 잉크가 묻어 있었다.

  이건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얘기인데, 동주오빠는 11살 때부터 <아이생활>이라는 어린이 잡지를 서울로부터 정기구독 했으며 명동소학교에서 <새명동>이라는 등사판 학교잡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빠의 단짝이었던 문익환 오빠는 광명학교 시절 명동교회의 유년주일학교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 당시 유년주일학교 학생이어서 문익환 오빠의 지도로 성경이야기도 듣고 찬송가도 배웠다. 또한 오빠가 아주 쓸쓸한 표정을 짓던 때가 기억난다. 오빠의 방에는 책이 상당히 많이 꽂혀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광수의 소설 <무정>을 재미있게 읽은 내가 그분의 소식을 물어본 적이 있다.. 오빠가 갑자기 침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분이 글쎄..."하면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 은진중학 시절. 뒷줄 맨오른쪽이 윤동주, 가운데가 문익환 목사.
 
 

 



 
▲ 교토 우지강에서 열린 윤동주(앞줄 왼쪽에서 두번째)의 송별회 사진. 사진속 도시샤대학 동창들은 윤동주를 꿈 많고 수줍음타는 청년으로 회고했다.
 
 
 

윤동주가 부른 마지막 노래는 '아리랑'

  2006년 10월 어느 날, 기자는 윤혜원 씨의 남편 오형범 씨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가 "윤동주 시인의 최후의 사진이 공개됐다. 한국에서 발간되는 <현대문학> 9월호에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 재학시절에 찍은 윤동주 사진과 사진 설명을 쓴 일본 여성의 기고문이 함께 실렸다"고 전해주었다.

  사진의 배경이 되는 우지강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오형범 씨와 함께 기사를 읽어보니, 우지강의 아마가세 구름다리 앞에서 윤동주 시인이 도시샤대 영문과 동기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보던 윤혜원 씨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리랑이 오빠가 부른 마지막 노래일 것 같다. 그 후엔 체포되어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었으니..."라며 윤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은 사진에 대해서 설명한 기타지마 마리코(83)의 글이다.

'사진은 1943년 초여름, 교토 우지강의 아마가세 구름다리 위에서 윤동주와 함께 도시샤대학에 다니던 남학생 일곱 명과 여학생 두 명이 담긴 기념사진이다. 그 중에 수줍은 듯 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학생이 있다. 이 남학생이 한국에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윤동주 시인이다.

  강변에서 식사를 한 후 바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노래 한 곡 불러주지 않겠어?'라는 급우의 부탁에 윤동주는 '아리랑'을 불렀다. 조금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애수를 띤 조용한 목소리가 강물 따라 흐르고, 모두들 조용히 듣고 있다가 노래가 끝나자 모두 박수를 쳤다. 윤동주가 주저하지도, 사양하지도 않고 노래를 불렀던 것은 급우 전원이 자신의 송별회에 참석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윤동주는 이 기념사진을 찍은 후 약 한 달 뒤인

1943년 7월 14일,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됐다. 한글로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2년 형을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윤동주의 사망 원인은 아직도 의문에 싸여 있다, 그해 같은 혐의로 같은 형무소에서 고종사촌 형인 송몽규(교토제대 재학 중 윤동주와 비슷한 시점에 체포되어 1945년 3월 10일 사망)도 윤동주의 뒤를 따라 옥사했다.
죽기 직전 친척들에게 전한 송몽규의 증언에 의하면, 두 사람 모두 매일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윤동주의 유해는 북간도에서 달려온 아버지의 손에 의해 화장되었다. 유골함에 다 담지 못한 윤동주의 유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한일해협에 뿌려졌다고 한다.

 
▲ 윤동주의 고향 룽징에서의 장례식 장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윤동주의 시들

  윤혜원 씨에게 "오빠의 시 중에서 어떤 시를 제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아무 망설임 없이 <서시(序詩)>를 꼽는다. "나라를 잃은 젊은이의 깊은 고뇌와 성찰이 순수한 모국어로 담겼고, 거기에다 시인의 결연한 의지가 읽혀서 늘 숙연해진다"고 말한다.

  윤씨는 이어서 "오빠가 시를 쓰면서 의도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적절한 시어를 골라 썼겠지만, 오빠와 함께 생활했던 내 기억으로는 오빠의 시와 삶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어떤 책에는 그걸 윤동주 시의 시적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일치한다고

썼더라. 맞는 말이다"면서 좀처럼 하지 않는 윤동주 시에 대한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광명학교 시절, 윤동주 시인과 2년 동안 한 방에서 기거했던

김태균

(전 경기대 교수, 현재 캐나다 거주)씨의 다음과 같은 언급도 윤혜원 씨의 소견과 일맥상통한다.

"윤동주의 시 전반을 걸쳐서 볼 때 그는 '조선독립운동'이라는 죄명으로 죽었지만 그의 시에는 육사에게서 볼 수 있는 칼날 같은 투지라든가, 만해에게서 볼 수 있는 강철 같은 주의사상은 보이지 않는다. 윤동주의 시는 그것이 곧 그의 생활이고, 그리고 그것들의 바탕은 서정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서는 무슨 사상이나 무슨 주의주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를 읽으면 사랑이 생기고, 눈물 나는 참회가 생기고, 그리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이 생긴다. 그의 시어는 대단히 평이하지만 그의 시심에 한 발짝 접근하면 우리는 옷깃을 여미게 된다."

 

ⓒ 2007.2.28.  OhmyNews. 윤여문기자

 

 출처: http://blog.daum.net/kdk99/15401286(다음 블로그: 들꽃따라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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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youtube.com/embed/vb_leRv2Eu0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1954∼ ):충북 청주.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시 '고두미 마을에서' 발표. 시집 『접시꽃 당신』 산문집 『꿈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외 다수,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충남대 대학원. 현 국회의원

  삶은 끊임없는 연단을 거치며 나아간다는 것. 이 인생론은 역경이 바로 우리네 평생의 동력임을 일깨운다. 그리하여 아무런 훼방이 없고 굴곡도 없는 삶이라면 얼마나 무미 건조할 것인가. 꽃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면서 아름답게 피어난다. 그대여! 무수한 담금질로 강철이 단련되듯 아픈 메질이라고 애써 피하지만 말자! 어느새, 봄바람 분다. 속절없이 흔들리며 살아야겠다. <김명인·시인>


  이 시를 읽으며, 시인은 누구나 시련을 겪으며 살아가는 과정을 꽃에 비유하고 있다. 그렇다, 시련이 없는 삶은 무미건조할 뿐 아니라 삶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어디 인생뿐이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그들 나름의 시련을 받아드리며 성장하고 발전해가는 것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공부하며 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학교에서 파직을 당하고도 그는 당당하게 다시 학생들 앞에 섰고 국회에 입성하여 의회민주주의를 꽃피우는 한 송이 꽃이 되었다. 그가 살아온 세월이 곧 흔들리는 꽃이었다. (옮긴이 추가)

편집 옮김: meister5959@hanmil.net




출처: https://www.youtube.com/embed/4EL4lsMhUHc




출처: https://www.youtube.com/embed/Zsrpsm0MatE 

학교에서 <영화와 문학> 과목을 수강하며 교수님과 재밌게 공부한 추억이 어제 같은데... 그립습니다.

이 아름다운 영화가 탄생하기까지 문학적인 배경을 설명해주시는 순간이 마냥 행복했는데....



게시일: 2017. 3. 15.

우정과 사랑, 성장을 담은 한 폭의 시
“시가 내게로 왔다”
작은 섬 칼라 디소토에 오게 된 시인 네루다,
어부의 아들 마리오는 그의 도착으로 인해 불어난 우편물량을 소화하고자 우체부로 고용된다. 로맨틱 시인 네루다와 가까이 지내면서 섬마을 여자들의 관심을 끌고자 했던 마리오는
그와 우정을 쌓아가면서 시와 은유의 세계를 만나게 되고,
아름답지만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베아트리체 루쏘와 사랑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의 내면에 자라고 있던 뜨거운 이성과 감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원작 소설-'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죠. 학교(문창과)에서 <문학과 영화>라는 과목을 수강하며 이 영화를 강의 시간에 다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몇 번을 봤습니다. 이번에 다시 개봉하기 때문에 한글 자막을 제공하는 영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개봉관에서 가족들과 보아도 괜찮습니다. 부부동반 연인들끼리 보면 더욱 좋겠죠. 꼭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출처: https://youtu.be/MteFoj0i23A


  한국현대문학사에 김홍신 작가는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서슬퍼런 전두환 정권 아래 <인간시장> 이라는 부제를 붙여 당대의 어둡고 폭압적인 정권 실세들을 실날하게 비판하고 힘 없는 사람들의 억눌린 마음을 후련하게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에세이/시 에세이 ,   인문/사회/역사 예술/문화

부탄에서 내 영혼을 만나다/노미경

대한민국 최고 세계여행가 노미경의 영혼여행기                                                                                                                                    도서정보 초록인 출판 | 2015년 12월 31일 출간

                                                                                                                                  


책소개

<부탄에서 내 영혼을 만나다>



『부탄에서 내 영혼을 만나다』는 대한민국에서 세계를 가장 많이 여행한 사람으로 공인 받은 여행가 노미경이 세상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부탄에서 그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동시에 체험한 후 들려주는 여행기이다. 노미경은 마치 어린시절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듯 부탄을 떠난 후부터 부탄앓이를 한다. 세계의 화려한 선진국들을 수없이 드나든 그녀가 가장 먼저 추천한 여행지가 부탄이며 그 곳의 여행기가 바로 그녀의 처녀작품집이다. 이제 여행가 노미경과 함께 “우리의 행복을 위해” 정신적인 여행을 함께 할 시간이다.


 

출판사 서평

『부탄에서 내 영혼을 만나다』는 우리나라에서 세계여행을 가장 많이 함으로써 2015년 7월 8일 한국의 기네스북이라 할 수 있는 “도전 한국인 인증본부”가 수여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세계탐험ㆍ세계여행 전문가”상을 받는 노미경의 최초수필집이다. 왜 여행전문가의 책에 여행서가 아닌 수필집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는지 이 책을 읽는 순간 독자들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노미경은 ‘저자의 말’에서 “세 바퀴하고도 반”이나 지구를 돈 저자가 왜 하필 부탄여행에 대한 책자를 제일 먼저 냈는지 밝히고 있다. 몸으로 답사한 여행지들은 그동안 이 여행전문가에게 즐거움을 주었을지언정 깊은 영혼의 울림을 준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탄은 달랐다.

“그 어떤 여행지라도 한 걸음만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면 익숙한 스타벅스가 있고 루이뷔통이 있고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 있다. 내가 제의하는 여행은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나와 잠시 빌딩 숲 사이에 거닐도록 만들어 놓은 도심 공원을 산책하는 듯한 그런 것이 아니다. 처절할 정도로 낯설게 하기. 불을 피워 샤워할 물을 데우고 무거운 짐을 덜어줄 수단은 조랑말이 가장 사치스러운 교통수단이며 가진 것은 모두 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영혼의 여행, 갇힌 영혼을 구해내는 그런 여행이다. 이것이 지금부터 내가 독자여러분께 나와 함께 하는 부탄으로의 정신적인 여행에 초대하는 이유이다.”

여행전문가인 저자가 부탄에 가기로 결정하는 과정도 결코 쉽지는 않았다. 이 조그맣고 이름 없는 나라에 간다고 하자 모든 사람이 말리고 나선 까닭이다. 그러나 그녀는 투철한 전문가의식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부탄을 향해 나아가게 되고 거기에서 “영혼여행”이라는 특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한 편의 소설이다. “부탄”이라는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심지어는 여행과정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고까지 먼 여정을 지치게 하는 갈등을 끊임없이 일으킨다. 부탄이라는 목표는 만년설에 뒤덮인 히말라야의 칸첸중가 봉우리처럼 멀리서 하얗게 빛나고 있고 그녀는 그곳에 가기 위해 콜카타(캘커타의 힌디어 발음)에서 다르질링으로, 다르질링에서 시킴으로, 시킴에서 칼림퐁으로 분투하며 소걸음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국경도시인 푼촐링에 다다랐을 때 마침내 큰 희열을 느낀다.

부탄은 그녀를 포함한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충격이다. 근대에 쇄국정치를 실시한 대원군을 우리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나라는 아직도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자신들의 풍속이 오염될까 봐 그들은 여행객 수를 1년에 8만명으로 제한하고 있고 일인당 하루에 200~280달러를 지불해야 입국할 수 있으며 자신들에게 배정된 가이드와 함께 다녀야만 한다. 그리고 왕을 비롯한 남자들은 고를, 여자들은 키라라는 전통의상을 똑같이 입어야 한다. 옷차림만으로 그들은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을 구분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차별의 요소를 원천 차단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 아니었다면, 히말라야 산맥처럼 뼈를 깎는 고통을 참고 고행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내야 하는 척박한 곳이었더라면 세계열강들이 그렇게 우리나라를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었었을까? 대원군이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지금처럼 비판을 받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착잡했던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 가다보면 독자들은 계속해서 놀라게 될 것이다. 전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나라 부탄.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낮은 나라 부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출생률이 OECD 국가 중 끝에서 1위인 우리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국왕이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와 투표의 중요성을 역설해서 정책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도록 독려하는 나라, 국왕에게 정년이 있는 나라, 국왕이 빈곤층을 위해 자신의 땅을 나눠주는 나라, 의사건 변호사건 모두 공무원이며 부패방지 위원회가 모든 공무원을 감시해 정부청렴도 1위인 나라, 전 국민이 하나의 종교를 믿는 나라…. 부탄에 대한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발자국과 생생한 증언을 따라 가십처럼 부탄에 대해 떠도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검증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차지다.(요즘은 ‘찰지다’라고들 말하지만 ‘ㅈ’ 앞에서 ‘ㄹ’탈락 현상이 일어나 ‘차지다.’로 표기해야 한다. ‘찰지다’는 경남, 전남 지방의 사투리다. 부적합(不適合)을 불적합이라고 읽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적어도 하나의 개념을 놓친다면 독자들은 이 책의 알맹이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논자는 기꺼이 스포일러가 되고자 한다. GNP는 어떤 말의 약자일까? Gross National Product? 이렇게 대답한 독자는 이 알맹이를 놓칠 리가 없다. 이 책의 핵심은 GNP와 대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GNH라는 개념이다. 이 말이 어떤 단어의 첫머리를 따 만들어진 글자인지는 독자들이 책에서 찾아야 한다. 힌트 하나. 부탄의 제4대 국왕이었던 지그메 싱예 왕추크가 즉위식에서 국민들에게 내 건 공약이다. 저자는 이 공약을 검증하기 위해 부탄의 보통 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국왕의 그 공약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그 때마다 저자는 국왕을 너무나 사랑하는 그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그가 공약을 지켰음을, 그리고 대를 이어 지금도 지켜나가고 있음을 증언하는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그리고 모든 여행이 끝났을 때 저자는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잊어버렸던 먼 옛날 어느 시점으로의 시간여행 말이다. “빨리 빨리”라는 한류 단어를 유행시킨 우리들에게 부탄여행은, “느림”의 철학으로, 정지용의 향수가 지닌 애틋한 아름다움으로 ‘우리가 빨리빨리 달리는 동안’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깨닫게 해 준다. 저자 노미경은 그것을 찾기 위한 여행을 인도하기 위해 먼저 자기자신이 경험한 시간여행의 에피소드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는 순간, 이집트의 스핑크스 앞에서 찍은 자신만만한 노미경의 프로필 사진, 여행지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찍은 사진 속, 전형적인 ‘차도녀’ 노미경의 얼굴에 “노마”의 얼굴이, “노랑저고리”, “분홍저고리”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것은 논자에게만 일어난 현상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 책의 소개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논자는 저자 노미경과 똑같은 말을 독자들에게 제의하게 된다. Shall we…? [동화작가․소설가 최정원]


 

저자 프로필

 

노미경

  • 출생 1966년 1월 14일
  • 학력 가톨릭대학교 글로벌융합대학원 석사
    덕성여자대학교 심리학 학사
  • 경력 사단법인 숲힐링문화협회 이사
    월곡중학교 심리상담 교사
    인구보건복지협회 성교육 전문강사
    부산교육대학교 외래교수
    서울랜드 성교육관 팀장
    한국 성폭력 상담소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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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7 업데이트 저자 정보 수정 요청

대표저서

 
 

 

저자 소개

이 글의 저자, 노미경은?



▣ 학력
덕성여자대학교심리학과졸업
▣ 경력
· 세계여행전문가 세계150개국 이상 (세계일주 3회 반)
· 인구보건복지협회 성교육 전문강사
· 월곡 중학교 심리상담 교사
· 프랑스 꼬뜨뒤론 와인 기사 작위 수여
· 현재 사단법인 숲힐링문화협회 이사
▣ 수상
·보호관찰소 보호위원회 선도위원포상(주최법무부)
· 2015년 7월 8일, "도전 한국인인증본부"에서 대한민국 최고 세계 탐험여행 전문가로 수상
▣ 주요강연/ 방송 이력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 부부관계 안녕하십니까?(1~4)
·글로벌리더쉽 강의 연사 역임.

목차

목차

* 작가의 말_왜 하필 부탄인가

I. 부탄을 묻다

ㆍ언제부터인가 난 여행가가 되어 있었다.

ㆍ결혼도 쟁취해야 할 꿈이다.

ㆍ다시 단단해 진 발걸음을 내딛다.

ㆍ부탄? 부탄이 어딘데?

ㆍ주옥같은 친구, 주민선 씨

II. 부탄을 향해 발을 내딛다

ㆍ1월 9일 금요일, 출발의 아침

ㆍ인천공항, 케세이 퍼시픽 CX411.

ㆍ타고르의 나라 그리고 기도의 시

ㆍ늦은 밤, 공항 불빛이 들려주는 이야기

ㆍ1월10일 토요일: 인도의 다이내믹한 아침

ㆍ가이드 미날

ㆍ세계적인 차 산지 다르질링의 슬픈 역사

ㆍ인도 속의 영국, 엘긴 호텔(The Elgin Hotel)

ㆍ1월11일 일요일. 토이트레인을 타다

ㆍ한 끼 식사가 주는 행복과 절제의 미덕

ㆍ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토이트레인

ㆍ약이 되는 쇼핑, 히말라야를 피부로 느끼다

ㆍ시킴,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닌 곳

ㆍ이방에서 바치는 연서(戀書), 석남꽃 전설

ㆍ시킴의 주도 갱톡 리포트

ㆍ룸택사원

ㆍ히말라야 향기에 취하다

ㆍ엔치곰파

ㆍ남걀 티베트문화연구소

ㆍ1월14일, 칼림퐁에서 맞은 수요일

III.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부탄

ㆍ드디어 부탄이다

ㆍ부탄의 문 푼촐링

ㆍ여행가의 조건

ㆍ행복을 입다.

ㆍ아리랑과 강남스타일

ㆍ다시 찾은 핸드폰에서 부탄의 양심을 보다

ㆍ1월 15일, 카르반디 사원에서

ㆍ부탄의 수도 팀푸

ㆍ느닷없이 찾아오는 축복-국왕 전하와의 랑데부

ㆍ살아있음을 즐기는 부탄 사람들.

ㆍ일산에 묻은 일상

ㆍ부탄에서 다시 만난 한국의 얼굴들

ㆍ부탄 카페의 "솔저 업 포츈(Soldier of Fortune)"

ㆍ방심이 부른 아찔한 사고

ㆍ무료의료혜택의 허와 실

ㆍ전통 라이브 음악 카페에서 만난 부탄인심

ㆍ1월 16일, 치미라캉에서 들은 쇼킹한 전설

ㆍ“작렬하는 지혜의 벼락”

(The Flaming Thunderbolt of Wisdom)

ㆍ비나이다 비나이다

ㆍ호랑이 둥지, 탁창사원

IV. 부탄에서 내 영혼을 만나다.

ㆍ파로공항에서

ㆍ데자뷔, 처음으로 찾아온 향수

ㆍ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정읍

(Once upon a time in Jeongeup)

ㆍ부탄을 떠나고 부탄을 그리다

ㆍShall we…?

* 부탄 다이제스트

 

 

 


출처: https://youtu.be/91pUpRMtdV4



출처: https://youtu.be/KwfgWo-J8xQ


연잎의 지혜/ 법정 스님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이다가
또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이런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면서,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리는구나" 하고
그 지혜에 감탄했었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中에서
   법정 잠언집 / 류시화 엮음

 


  탐욕으로 눈이 어두운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평생 언행일치로 종교인의 올곧은 삶을 보여주신 법정스님. 그가 불교에 귀의하고 설파했던 '무소유' 정신을 중생들의 가슴에 오롯이 심어줄 수 있었던 것은 물질적인 풍요로움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보단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되 정신적으로 충만한 온전한 '나'를 채우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말빚'도 짐이 된다며 사 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모든 책은 더이상 출판하지 말라,고 하셨던 법정스님. 세상사 마음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간직하고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실할 수 있다면 삶은 좀 더 충만해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편집 겸 옮긴이:meister5959@hanmail.net 추가


 

 


 


이미지 출처:독서클럽(책으로 만나는 세상) http://cafe.daum.net/liveinbook/PMZ/5008






 

                              출처: 유튜브(https://youtu.be/NRP2PbTe6WM )


  가난한 황지우 시인이 우려낸 이 시는 한국인의 정서를 잘 드러내고 있다. 말보다는 속마음으로,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어 그저 눈빛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랑하고 이해하며 아껴주고 아파하고 있다,는 한국인의 정서를...나는 안다. 공혜경 낭송가의 목소리 연기를 타고 시가 갖는 참맛이 더욱 애절하게 가슴을 울린다.

  결핍을 모르고서는 결코 이런 시는 태어날 수 없다. 가난했기에, 궁핍한 생활속에서 아내에게 못다 한 마음을 감춰야 했던 아픔이었기에 지아비의 못난 모습을 시로 승화시켰지 싶다.

  회원님들도 이 시를 응용(패러디해도 됨)하여 사랑하는 옆지기를 위해 시 한 편 지어 쪽지에 옮긴 뒤, 어느 날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여 막걸리 한잔 주고받으며 시를 읊어준다면 아마 그동안 서로의 마음속에 쌓여 있던 아쉬운 감정들이 봄눈 녹듯이 사라질 거라고...나는 믿는다.^^

  내가 이 시를 읽으며 더욱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난, 쪽지에 시를 써도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슬프게 하기 때문이다. 흑흑흑


편집 겸 옮긴이:meister5959@hanmail.net





 

  출처: 유튜브 (https://youtu.be/rLijebfHn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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