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부자를 꿈꾼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부자가 되는 길에 완전히 목숨을 걸었지 싶다.
그러다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그 목적이요 결과인 경제적 부유함만을 쫓아
쉴 새 없이 뛰고 또 뛰고 있다.
그 부자를 향한 질주는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속도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달리고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는 그렇게 달리는 것이 더 편안하다.
뛰고 또 뛰어야 안심이 되고, 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질 것이고,
나는 곧 이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 불안감과 위기감 속에 되지 못한 부자를 마음속에 품으며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유함,
그 하나를 쟁취해 내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가.
수많은 구도자들은 현대인들에게 수없이 말해왔다.
욕망을 버리라.
소유를 버리라.
부유함을 버리고 가난을 택하라.
물론 그럼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죄의식에 얽매이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인들이 너무 부유함,
소유, 욕망에만 얽매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
다른 한 쪽을 강조한 것이다.
바로 그 점을 우리는 잘 살필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부자 되는 길에
나는 전적으로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또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부를 향한 속도전이 좀처럼 멈출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그것을 반대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죄의식에 휩싸이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부유함을 버리고 가난해 지라는 말이 아니다.
너도 나도 직장을 버리고, 가진 재산을 다 버리고
시골로 들어가라는 말은 아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물론 청빈하게 살고 싶다면 그것도 좋다.
다만 부자로 살든 가난하게 살든 중요한 것은
그 어느 한 쪽의 극단에 치우치지 않음으로써,
집착하지 않고 그 길을 걸음으로써
참으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스승들이 부를 쫓지 말라고 한 이유는
현대인들이 너무 부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는, 지금 이 사회는 부에 너무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부유함에 악착같이 집착해야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자가 되어야지만 잘 사는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부자가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잘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또 사람에 따라 잘 사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고,
종교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나름대로의 잘 사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대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학교 공부도 똑같은 과목에 똑같은 것을 공부해야 하고,
똑같이 일류대학 가는 것이 목적이 되고,
사회에서도 똑같이 대기업 취직이나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그 최종의 목적지에 무엇이 있는가.
바로 부(富)가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취직도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사람들은 부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이 목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조금만 눈여겨 이 세상의 흐름을 돌이켜보면
금방 자신도 깜짝 놀라고 말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가치가 전도되어
모든 것이 돈을 벌기 위한 것으로 귀결되고 있는 듯 하다.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돈을 벌지만
무슨 투자니 재테크니 복권 등으로 대박이 나는 순간
돈에 눈이 멀어 이혼을 하거나,
심지어 가족끼리 서로를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세상이라니
이 얼마나 가치가 전도된 일인가.
가치가 뒤바뀌면 안 된다.
온전하고 지혜로운 삶의 원칙에
마음의 중심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오직 돈을 위한 돈, 부자를 위한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자가 모두의 꿈이겠지만
부자 그 자체가 목적이기 위한 꿈이 아니지 않은가.
부자가 됨으로써 좀 더 행복하게 잘 살고자 함이 본질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부자가 되는 것을 막고자 함이 아니라
부자가 되고자 했던 삶의 본질,
근본이 무엇이었는가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자로 살되 지혜로운 삶의 원칙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서 말했듯이 먼저 집착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돈을 벌되 그 돈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면
부유함 속에 정말 잘 사는 길이 있는 것이다.
부에 집착하지 않으면, 더 벌더라도 혹 더 못 벌더라도 괜찮고,
사업이 좀 실패를 해도 성공을 해도 괜찮으며,
현재 있는 재산을 자유로이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더라도
괴롭지 않다.
집착이 없는 지혜로운 부자에게 있어
돈이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나를 나일 수 있게 해 주는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다.
있으면 있는 대로 나눌 수 있고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으니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절약하며 만족하고 살면 되니 그것도 좋은 것이다.
그런 정말 잘 사는 부자에게
재산은 그리 큰 의미가 아니다.
돈 보다는 삶 그 자체가 중요하며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소유가 많은 부자가 되기 보다는
만족이 많은 부자가 되라.
더 많이 소유하기 보다는 더 많이 존재하며,
더 빨리 달리기 보다는 더 많이 멈추라.
참된 행복이란,
정말 잘 사는 길이란
소유가 많은 것이 아니라 만족이 많은 것이며,
채움이 많기 보다는 비움과 나눔이 많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광적으로 달려 온
부를 향한 속도를 늦춰야 한다.
잠시 멈춰 설 수 있어야 한다.
멈춰 서야 비로소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전 직장을 중간에 그만 두게 된 한 가족이 있었는데
다들 퇴직을 걱정하는데
오히려 그 가족은 더 큰 것을 얻었다고 했다.
아내는 내 남편이 이런 사람이었는지 처음 알았다고 고백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났더니 아이들과 놀아주고 학교생활도 묻고
아내에게 사소한 관심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또 남편은 가족의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으로 가족이 여행도 떠나고 등산도 다닌다고 좋아했다.
그동안은 오직 직장과 일 밖에 모르던 사람이
이제 비로소 작지만 정말 중요한 것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런 깨달음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한생각 돌이킴으로 인해
작지만 소박한 행복에 눈 뜰 수 있다.
이렇듯 부자를 향한 우리의 질주를 멈출 때
비로소 나 자신의 본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곁의 가족들에게도, 이웃들에게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되고,
좀 더 가난한 이들을 향한 자비의 마음도 꽃처럼 피어난다.
그 뿐 아니라 대자연의 고요함과 경이로움 그리고 지혜에 눈 뜨게 되며,
내면의 깊은 존재 본연의 세계에도 눈을 돌리게 된다.
단순히 돈 많은 부자가 되지는 말라.
마음이 부유한 참된 부자가 되라.
참으로 잘 사는 부자가 되라.
못 사는 부자가 되지는 말라.
지금 이 세상에는 못사는 부자가 얼마나 많은가.
돈이 많지만 마음이 가난한 부자,
베풂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부자,
아직도 벌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부족한 부자,
마음을 비우지 못한 부자,
가족의 행복을 부유함 아래에 두는 부자,
꽁꽁 묶어두고 내보내지 못하는 부자,
있다고 펑펑 써대는 부자,
마음에 여유와 평화가 없는 부자,
기도와 명상과 고요한 사색이 없는 부자,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눈뜨지 못한 부자,
그런 부자가 되지는 말라.
돈은 없어도 마음이 풍요로운 부자,
이웃과 나눌 줄 아는 부자,
아끼고 절약할 줄 아는 부자,
마음에 평온과 여유가 있는 부자,
마음을 비우고 때때로 마음을 닦아가는 부자,
부유함이 언젠가는 떠나갈 것을 아는 부자,
돈과 재물에 집착하지 않는 부자,
기도와 명상으로 깨어있는 부자,
오직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부자,
그런 부자가 되라.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 도솔출판사, 법상 중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부자가 되는 길에 완전히 목숨을 걸었지 싶다.
그러다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그 목적이요 결과인 경제적 부유함만을 쫓아
쉴 새 없이 뛰고 또 뛰고 있다.
그 부자를 향한 질주는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속도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달리고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는 그렇게 달리는 것이 더 편안하다.
뛰고 또 뛰어야 안심이 되고, 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질 것이고,
나는 곧 이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 불안감과 위기감 속에 되지 못한 부자를 마음속에 품으며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유함,
그 하나를 쟁취해 내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가.
수많은 구도자들은 현대인들에게 수없이 말해왔다.
욕망을 버리라.
소유를 버리라.
부유함을 버리고 가난을 택하라.
물론 그럼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죄의식에 얽매이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인들이 너무 부유함,
소유, 욕망에만 얽매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
다른 한 쪽을 강조한 것이다.
바로 그 점을 우리는 잘 살필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부자 되는 길에
나는 전적으로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또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부를 향한 속도전이 좀처럼 멈출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그것을 반대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죄의식에 휩싸이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부유함을 버리고 가난해 지라는 말이 아니다.
너도 나도 직장을 버리고, 가진 재산을 다 버리고
시골로 들어가라는 말은 아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물론 청빈하게 살고 싶다면 그것도 좋다.
다만 부자로 살든 가난하게 살든 중요한 것은
그 어느 한 쪽의 극단에 치우치지 않음으로써,
집착하지 않고 그 길을 걸음으로써
참으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스승들이 부를 쫓지 말라고 한 이유는
현대인들이 너무 부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는, 지금 이 사회는 부에 너무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부유함에 악착같이 집착해야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자가 되어야지만 잘 사는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부자가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잘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또 사람에 따라 잘 사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고,
종교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나름대로의 잘 사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대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학교 공부도 똑같은 과목에 똑같은 것을 공부해야 하고,
똑같이 일류대학 가는 것이 목적이 되고,
사회에서도 똑같이 대기업 취직이나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그 최종의 목적지에 무엇이 있는가.
바로 부(富)가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취직도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사람들은 부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이 목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조금만 눈여겨 이 세상의 흐름을 돌이켜보면
금방 자신도 깜짝 놀라고 말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가치가 전도되어
모든 것이 돈을 벌기 위한 것으로 귀결되고 있는 듯 하다.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돈을 벌지만
무슨 투자니 재테크니 복권 등으로 대박이 나는 순간
돈에 눈이 멀어 이혼을 하거나,
심지어 가족끼리 서로를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세상이라니
이 얼마나 가치가 전도된 일인가.
가치가 뒤바뀌면 안 된다.
온전하고 지혜로운 삶의 원칙에
마음의 중심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오직 돈을 위한 돈, 부자를 위한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자가 모두의 꿈이겠지만
부자 그 자체가 목적이기 위한 꿈이 아니지 않은가.
부자가 됨으로써 좀 더 행복하게 잘 살고자 함이 본질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부자가 되는 것을 막고자 함이 아니라
부자가 되고자 했던 삶의 본질,
근본이 무엇이었는가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자로 살되 지혜로운 삶의 원칙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서 말했듯이 먼저 집착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돈을 벌되 그 돈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면
부유함 속에 정말 잘 사는 길이 있는 것이다.
부에 집착하지 않으면, 더 벌더라도 혹 더 못 벌더라도 괜찮고,
사업이 좀 실패를 해도 성공을 해도 괜찮으며,
현재 있는 재산을 자유로이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더라도
괴롭지 않다.
집착이 없는 지혜로운 부자에게 있어
돈이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나를 나일 수 있게 해 주는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다.
있으면 있는 대로 나눌 수 있고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으니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절약하며 만족하고 살면 되니 그것도 좋은 것이다.
그런 정말 잘 사는 부자에게
재산은 그리 큰 의미가 아니다.
돈 보다는 삶 그 자체가 중요하며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소유가 많은 부자가 되기 보다는
만족이 많은 부자가 되라.
더 많이 소유하기 보다는 더 많이 존재하며,
더 빨리 달리기 보다는 더 많이 멈추라.
참된 행복이란,
정말 잘 사는 길이란
소유가 많은 것이 아니라 만족이 많은 것이며,
채움이 많기 보다는 비움과 나눔이 많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광적으로 달려 온
부를 향한 속도를 늦춰야 한다.
잠시 멈춰 설 수 있어야 한다.
멈춰 서야 비로소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전 직장을 중간에 그만 두게 된 한 가족이 있었는데
다들 퇴직을 걱정하는데
오히려 그 가족은 더 큰 것을 얻었다고 했다.
아내는 내 남편이 이런 사람이었는지 처음 알았다고 고백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났더니 아이들과 놀아주고 학교생활도 묻고
아내에게 사소한 관심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또 남편은 가족의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으로 가족이 여행도 떠나고 등산도 다닌다고 좋아했다.
그동안은 오직 직장과 일 밖에 모르던 사람이
이제 비로소 작지만 정말 중요한 것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런 깨달음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한생각 돌이킴으로 인해
작지만 소박한 행복에 눈 뜰 수 있다.
이렇듯 부자를 향한 우리의 질주를 멈출 때
비로소 나 자신의 본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곁의 가족들에게도, 이웃들에게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되고,
좀 더 가난한 이들을 향한 자비의 마음도 꽃처럼 피어난다.
그 뿐 아니라 대자연의 고요함과 경이로움 그리고 지혜에 눈 뜨게 되며,
내면의 깊은 존재 본연의 세계에도 눈을 돌리게 된다.
단순히 돈 많은 부자가 되지는 말라.
마음이 부유한 참된 부자가 되라.
참으로 잘 사는 부자가 되라.
못 사는 부자가 되지는 말라.
지금 이 세상에는 못사는 부자가 얼마나 많은가.
돈이 많지만 마음이 가난한 부자,
베풂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부자,
아직도 벌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부족한 부자,
마음을 비우지 못한 부자,
가족의 행복을 부유함 아래에 두는 부자,
꽁꽁 묶어두고 내보내지 못하는 부자,
있다고 펑펑 써대는 부자,
마음에 여유와 평화가 없는 부자,
기도와 명상과 고요한 사색이 없는 부자,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눈뜨지 못한 부자,
그런 부자가 되지는 말라.
돈은 없어도 마음이 풍요로운 부자,
이웃과 나눌 줄 아는 부자,
아끼고 절약할 줄 아는 부자,
마음에 평온과 여유가 있는 부자,
마음을 비우고 때때로 마음을 닦아가는 부자,
부유함이 언젠가는 떠나갈 것을 아는 부자,
돈과 재물에 집착하지 않는 부자,
기도와 명상으로 깨어있는 부자,
오직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부자,
그런 부자가 되라.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 도솔출판사, 법상 중에서...
출처 : 부자보다는 잘사는 사람이 되라
글쓴이 : 은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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