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두령과 진고개 중심의 드라이브 코스 둘
고개에 오르니 운무 속에 두메산골이 잠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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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낀 진고개 가는길. 오대산에서 강릉으로 곧바로 넘어가는 길이다. | |
오대산국립공원 일대는 월정사와 상원사 등 유서깊은 사찰과 방아다리,상봉,송천 등 이름난 약수, 운두령 넘어 내린천으로 이어지는 두메산골의 정취, 최고 피서지 소금강이 어우러져 가족을 동반한 여행지로 손색 없는 곳이다. 길 또한 웬만한 곳은 포장이 되거나 다듬어져 있어 승용차로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진부를 기점으로 운두령 방면의 오대산 서부와 진고개 방면의 오대산 중북부의 드라이브 코스를 집중 소개한다.
여행 길잡이
확장 공사후의 영동고속국도는 체증이 풀린 듯 시원스럽다. 평일이라 날아갈 듯 질주하는 차들과 섞여 진부로 달린다. 원주, 둔내, 가산 이효석의 생가가 있는 봉평으로 통하는 장평인터체인지도 지난다. 몇 년 전인가 메밀꽃이 흐드러지던 9월, 봉평에 갔던 차에 가산 선생의 생가를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휴가철 6번 도로의 체증을 해소한다며 생가 앞은 4차선 도로 확포장 공사로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지금쯤은 시골의 한가로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겠지. 상념에 빠지는 동안 이내 속사인터 체인지다. 오대산지척에 와 있다.
오대산을 처음 올랐던 게 벌써 15년 전인가. 기억이 희미하다. 오대산 종주가 목적이었던 그때 월정사와 상원사까지 먼지 날리며 걷던 일과 태풍 속에서 강행한 위험천만한 소금강 하산길 장면만 퇴색한 사진처럼 떠오른다. 운두령에 올라보면 먼빛으로 오대산이 보일까. 70년대 초중학생 '문화영화'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이승복'기념관을 지난다. 운두령 가는 길은 감자밭과 하얗게 꽃 핀 감자꽃 천지다. 그런 강원도의 풍경에 넋을 잃어 갈쯤 '감자꽃 필 무렵'이란 간판을 붙인 카페가 나타나 난데없는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하지만 뭐 어떠랴. '메밀'이 '감자'로 둔갑하는 것쯤이야 손님을 끌기 위한 애교로 봐줄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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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약수로 가는길의 56번 국도의 꽃길. 저 꽃이 외래종인 멕시코해바라기 대신 우리 들국화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
식당과 민박집이 띄엄띄엄 보이는 운두령 가는 길은 고즈넉하다. 해발 1089미터의 운두령. 오늘도 역시 비가 온다. 이번엔 소나기다. 운두령쉼터의 팔각정에 앉으니 고개를 향해 '적군처럼 진주해오는' 운무에 온몸이 움츠려진다. 기실 운두령에서는 오대산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저 오대산 물 먹고 둥지를 튼 산골 동네를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 오대산이 베푸는 안온함을 느낄 수 있으면 족하다. 운두령이 살가운 느낌을 주는 이유는 어쩌면 오대산을 닮은 두여인이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움막 같은 운두령쉼터. 비포장의 세월부터 11년째 이 고개에 소박한 쉼터를 낸 그이들은 비온 날에 만나면 더욱 온기가 느껴진다. 고개 넘어 홍천의 자운리에 사는 쉼터 주인에게서 이 골짝 저 골짝 내력을 듣다 보니 어느새 비가 멎고 운무가 걷히기 시작한다. 평창과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둔 홍천땅은 훨씬 한가롭다. 그 풍경은 꼭 하루중 가장 나른한 3~4시 무렵, 닭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이랄까. 어서 빨리 내린천에 가서 발을 담가야겠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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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일주문. 일주문을 마주 대하면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그런 다음 걷는 전나무숲길은 사색의 길이다. |
56번과 446번이 갈라지는 내린천 드라이브 코스의 입구. 내린천은 이제 끝장났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았던 내린천의 제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특히 그렇다. 도로가 열리지 않고 걸어서야 당도할 수 있었던 강가 비포장길. 인제 상남으로 이어지는 446번 도로가 바리케이드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에 이르면 개인산의 높다란 턱이 눈 앞을 가로막는다. 그곳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꺾으면 중세의 그림 같은 살둔산장이 서있다. 어떤 이는 일년에 꼭 며칠씩 들어와 그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도회지로 돌아가곤 한다고 한다. 이끼를 덮어놓은 듯 청록빛 함석지붕 안에서 하염없이 내린천을 바라보며.
포장이 되고 멋없는 민박집이 들어섰어도 내린천은 여직 아름답다는 데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다. 구불구불 흐르는 사행천이 빚은 뼝대. 영월의 동강에 못지 않은 비경을 간직한 내린천 저 건너편으로 강마을 야현골이 유혹한다. 발을 돌리기가 서운하다면 지척인 삼봉약수는 다음날로 미뤄도 괜찮다. 한가로운 내린천 가를 배회하고 이 골짝 저 골짝을 기웃거리다 산골의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잠들어 보는 것이 어디 아무때나 할 수 있는 일일까.
운두령 ~내린천 ~삼봉약수 코스에서 두메산골의 한가로움을 느껴본다면, 오늘 월정사와 상원사를 거쳐 진고개 넘어 소금강까지는 사람이 제법 복작거리는 관광지이다. 그러나 이곳을 보지 않고서는 오대산을 다녀갔다고 할 수 없으리라. 방아다리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마음을 가다듬고 월정사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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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두령에서 내려다본 홍천 창촌리의 전경.꽃밭이 이채롭다. |
강원도의 구황채소였던 감자. 6~7월이면 새하얀 감자꽃이 피어 들판을 가득 메운다. | |
일주문을 마주 대하면 늘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전나무 숲길을 사색에 잠겨 걸어가게 된다. 요즘 절은 어디를 가나 불사로 어수선하다. 월정사 역시 마찬가지다. 걷기를 마다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대웅전 앞까지 차로 드러갈 수 있도록 하자니 여기저기 손볼데가 많아지는 것이다.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을 본 후 성보박물관에 들어가 본다. 대개의 박물관들이 그러려니 했던 선입견과는 달리 월정사와 상원사의 내력을 상세히 알 수 있어서 들러보길 참 잘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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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로 드는 그윽한 전나무숲길. 숲길 중 25미터 구간에 400~500년생 나무가 아홉 그루가 있었다는 아홉수에 관한 안내문도 만날 수 있다. |
상원사는 외부인 출입금지 안내판이 곳곳에 서 있는걸 보면 하안거에 들어간 듯하다. 상원사로 가는 동안 내내 지허스님의 '산중일기'를 생각했다. 서울대 출신의 지허스님이 상원사에 1년을 머무르면서 선방의 생활과 정진의 고뇌를 담담히 기록한 일기를 엮은 그 책은 6.25 후의 상원사의 모습을 얼핏 다큐켄터리처럼 전해주었다. 그러나 개울을 수없이 건너고 독가촌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는 옛 상원사 가는 길의 정취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상원사에서 처음 만나는 것은 주차장 입구에 선, 세조대왕의 옷을 걸쳤다는 관대걸이다. 스님에게 예불시간을 알려주었을 종소리는 어떠했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천상 조각미가 극치라는 이 동종은 애석하게도 바람도 통하기 힘든 어두컴컴한 비각에 갇힌 신세다. 영산전에 올라서면 연꽃 형상의 오대산 산세가 눈에 들어오니 상원사가 870미터 가량 되는 높고 깊은 산중의 절임이 실감난다. 높은 곳에 있어 겨울이 더 빨리오고 유독 길고 추웠던 상원사에서는 '김장울력'이야말로 겨울 채비의 가장 큰 일거리였다니.
세조대왕이 친견했다는 문수동자상을 모신 청량선원도 출입금지다. 스님두분이 기지개를 펴며 선방에서 나온다. 공양과 역간의 휴식 시간, 취침시간을 빼면 죽비소리에 맞춰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는 하안거중인 스님들. 상원사는 지금도 이름난 참선도량이다. 상원사를 내려오는 길에는 오를 때 지나친 부도밭을 꼭 들러볼 일이다. 6.25전쟁때 진화 될 뻔한 상원사를 몸으로 막아 지킨 방한안스님을 비롯해 탄허스님, 의찬스님 등 상원사를 살찌운 스님들의 자취를 이곳에서나 더듬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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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산골 풍경을 간직한 내린천의 비경. |
청량한 마음 되어 이제 오대산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6번 도로를 따라 소금강으로 향한다. 진고개에 다다르자 또다시 운무가 몰려온다. 역시 백두대간은 백두대간이다. 오대산 첫산행때, 우리 동료들은 폭우를 뚫고 비로봉에서 동대산을 지나 이 진고개를 넘었다. 한창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던 진고개 산장에 짐을 풀고 코펠에 빗물을 받아 밥을 지어 먹었던 15년전.
그리고 그 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폭우 속의 소금강으로 하산을 감행했던 것이다. 때로 기억은 여행을 더 즐겁게 한다. 그때 폭우속에서 본 구룡폭포는 잘 있는지. 소금강을 거슬러 오른다. 소금강을 계곡은 축축하다 못해 냉기가 감돈다. 그리고 저 계곡끝 노인봉산장을 지키는 성량수 노인의 껄걸 웃음이 들리는 듯해 고개를 드니 어느새 구룡폭포가 눈앞에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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