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미학 / 장영희
이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감정의 기복이 심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크게 웃어 남의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또 주책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잘한다. 특히 우는 버릇은 어렸을 적부터 고질적이어서, 어머니는 아직도 가끔씩 “자식 여섯 키우면서 너같이 울음 끝 질긴 애는 처음 봤다. 도대체 한번 울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자지도 먹지도 않고 울어댔으니... ” 하고 혀를 내두르신다. 내가 기억하기에도, 어렸을 때 나는 꽤 자주 울었고, 일단 울기 시작하면 빨리 그치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우는 이유야 여러 가지였겠지만 한번 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왜 우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순전히 울기로 한 나의 결정에 충실하기 위해 일부러 슬픈 생각까지 해가며 우는 일에 열중했었다.
어머니는 항상 “넌 한평생 흘릴 눈물을 어렸을 때 다 흘렸으니 네 팔자에 이제는 울 일이 없을 거다” 라며 말씀을 맺곤 하신다. 그러니 이제는 ‘웃는 일만 남은‘ 내 팔자지만, 그리고 이제는 체면 때문에 드러내놓고 잘 울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사는 게 그게 아닌지 여전히 찔끔거리기를 잘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어렸을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정말로 어른답게, 그리고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답게,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나누는 연민의 눈물이나 세상의 불의를 보고 흘리는 비탄의 눈물 아니면 내가 범한 잘못을 뉘우치는 통회의 눈물이 아니다. 그저 갑자기 발작처럼 사는 게 슬퍼져서 우는 감상의 눈물이거나, 삶을 내 맘대로 휘두르지 못해 억울해서 우는 오만의 눈물이거나, 아니면 문득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낯설어서 우는 두려움의 눈물이다. 또 감상적인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속으로는 ’참 웃기지도 않네, 사람 울리려고 별 짓 다 하네‘ 하고 욕하면서도 어느새 눈에 맺히는 그저 습관적인 눈물일 뿐이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 떽 쥐베리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야 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숨어 있는 보석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의 눈물은 그저 눈물을 흘리기 위한 눈물이요, 순전히 자기 연민의 의미 없는 눈물이니 보석은커녕 아마 버려도 아깝지 않은 자갈쯤 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나는 진정 보석 같은 눈물을 흘리는 세 사람을 보았다. 얼마 전 ‘체험, 삶의 현장’ 이라는 텔레비전 프로에는 유진 박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흑염소 농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염소에게 먹이를 주고, 우리의 배설물을 치우고, 염소를 몰고 다니며 바이올린도 켜고 , 목동이 하는 여러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때가 되자 농장으로 트럭 한 대가 왔고, 유진 박은 트럭에 실리기 위해 철창에 갇힌 염소들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미국에서 자라나 우리말이 어눌한 그는 목멘 소리로 “잘 가, 친구“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떠나는 트럭 뒤에 대고 유진 박은 ”도망가, 너네들 다 도망가 !” 하고 소리쳤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는 어떤 기준으로 바이올린 연주를 평가하는지 잘 모르지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을 보고 가슴 아파 눈물 흘리는 그 마음이야말로 그의 연주를 아름답게 해 주는 게 아닐까 싶다.
출처: 장영희 팬 카페 ( The Puppet Show / Victor Gabriel Gilbert)
또 한 사람, 우리 과 조교 은주는 자원봉사로 고아원에서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어느 날 한 살 난 어린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몸을 비비 꼬며 심하게 경련을 했다. 너무 놀라고 겁이 난 나머지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렀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은주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울었다. 마침내 수녀님이 와서, 그저 아이가 간질 증세의 발작을 보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 저는 아이가 죽는 줄 알았어요. 그 아이만 살려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기도했어요. 태어나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해 본 적이 없어요.” 내게 얘기하면서도 은주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렀고, 그런 은주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마지막으로,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에서 말기 암 환자인 한 젊은 엄마의 마지막 몇 달을 취재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엄마가 아홉 살과 일곱 살짜리 아들들에게 남긴 유언은 “언제나 씩씩하고, 아빠가 새엄마를 모시고 오면 새엄마에게 잘 해 드려라." 라는 것이었다. 엄마를 묻고 온 날 밤 두 어린 형제는 아빠에게 편지를 썼다. ‘아빠, 우리 항상 씩씩할게요. 그러니 제발 새엄마 데리고 오지 마세요‘
며칠 후 기자가 다시 형제를 찾아갔을 때 아홉 살짜리 형은 웃는 얼굴로 “안녕하세요?” 하며 기자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엄마 보고 싶지 않니?” 기자가 묻자 아이는 갑자기 군인처럼 손을 양옆에 붙이고 꼿꼿이 서더니 목이 터져라 소리질렀다. “넷, 보고 싶어요. 그렇지만 저 씩씩해요.!” 순간 나는 분명히 카메라가 흔들렸다고 생각했다. “그래 참 씩씩하구나.” 대답하는 기자의 목소리도 떨렸다. 군인 같은 자세로 고함 지르는 것이 아이가 생각하는 ‘씩씩함’이었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오래전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했지만 거꾸로 눈물은 사랑의 씨앗이 아닌지, 진정 남을 위해 흘리는 이들의 눈물이 자갈밭같이 메마른 내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
※ 장영희 교수님이 쓴 <내 생에 단 한 번>에서 직접 자판으로 옮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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