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2회. 정이현 작가와의 만남,"쓸 수 없는 시간을 지나, 다시 쓴 소설."
- 등록일2016.12.13
『낭만적 사랑과 사회』, 『달콤한 나의 도시』 등을 출간해온 ‘도시기록자’ 정이현이 9년 만에 선보이는 단편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 소설집으로는 통산 세 번째인 이번 소설집은 저자가 단편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부단하게 고민해온 흔적이자, ‘그래도’ 소설로 세계를 이해하고 써낼 수밖에 없어 끊임없이 노력해온 증거다. 2013년 겨울부터 발표한 소설들 가운데 미소 없이 상냥하고 서늘하게 예의 바른 위선의 세계, 삶에 질기게 엮인 이 멋없는 생활들에 대하여 포착한 자취들이 가득 담긴 일곱 편의 작품을 모아 엮었다. 허희 : 말하자면 좋은 사람 이후로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출간하셨습니다. 여러 매스컴에서 인터뷰를 하고 계신데요. 짧은 엽편소설로 독자를 만났을 때와 일종의 정규앨범 형태로, 단편의 형태로 독자를 만날 때 마음가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정이현 : 솔직히 말씀 드리면 마음 가짐이 다르죠. 물론 말하자면 좋은 사람도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긴 한데 정식 소설집이 아니라 등단 이후로 썼던 짧은 소설들을 묶었던 책이고요. 하지만 그 책이 나왔을 때 세월호 참사와 시기가 겹쳐서 저한테도 여러 가지 의미로 남아 있는 책입니다. 처음의도와 달리 독자들에게 위로의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이고요. 그런데 이번 소설집은, 제가 소설 공부를 한국적 단편으로 하고 이런걸 써오고 읽어와서 그런지 저는 이런 단편의 형식이 너무너무 좋아요. 우스운 말이지만 문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거의 유일한 행위가 제가 단편을 쓰고 있을 때더라고요. 저한테는 오랫동안 못썼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고 그 시기를 지나와서 이렇게 편수가 많지는 않지만 이렇게 다시 단편집으로 묶을 수 있게 되어 무척 좋습니다. 허희 : 한국식 단편이, 전통으로 자리잡은 것 같기도 한데요. 단편 안에 온 우주를 담아내려고 합니다. 단편이라는 게 서양에서는 스케치 하는 느낌으로, 어떤 감정을 포착해내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수인데 한국에서는 이 단편에 삶의 비의를 응축해서 담아야 한다는 겁니다.(웃음) 그렇다고 굳이 세계화 추세에 맞춰 단편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요. 이게 한국의 단편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면 좋을 것 같아요. 정이현 : 저 역시 작가이기 전에 한국 문학의 독자잖아요. 요즘 저의 동료 소설가들, 후배 소설가들, 선배 소설가들 말할 것도 없이 단편들을 너무 잘 쓰세요. 세계적 수준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정말 단편을 잘 쓰신다는 걸 느끼고 많은 독자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박경환 : 단편소설 전문 팟캐스트 하면 안됩니까. 꼭 읽기 쉬워서 그런 건 아닙니다.(웃음) 책을 접하고 이 제목,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비롯해서 안에 실려 있는 작품들의 네이밍 센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영 여름', '서랍 속의 집' 제목만으로 끌어 들이는 힘이 있어요. 허희 : 특히 책의 제목이 그렇죠.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을 주는데 뒤에 '폭력'이 붙으니까. 충돌하는 지점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독자들도 눈치를 챘을 것 같은데, 우리가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걸 명확하게 '상냥한 폭력'이라고 정의를 해주니까 이 책이 나왔을 때 이게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인데 하고 쉽게 집어 드시는 것 같더라고요. 정이현 : 소설적으로는 '상냥한 폭력'이 느낌적으로 더 와 닿는 것 같은데. 정말 이 느낌이 뭘까를 이렇게 저렇게 분석을 해보면, '상냥한' 일수도 있고 '예의 바른' 일수도 있고 '친절한' 일수도 있고 혹은 '거리가 있는' 일수도 있어요. 여러 느낌들이 그 안에 다 담겨 있다고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허희 : 『모멸감』이라는 책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김찬호 선생님의 『모멸감』이란 책에 대해서 언급하신 인터뷰를 많이 봤습니다. '모욕'과 '모멸'의 차이에 대해 많이 설명해 주셨고요. 저희 낭만서점에서도 『모멸감』을 다룬 적이 있죠. 이 책 속의 '상냥한 폭력'을 설명하는데 '모멸'이라는 개념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이현 : 『상냥한 폭력의 시대』 이야기를 하면서 『모멸감』 이야기를 하면 어울리는 짝이 되더라고요. 현대인들 특히 한국사회를 사는 우리가 느끼는 이런 감정,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다 가슴속으로 느끼고 있는 이 감정. 부끄러움, 모욕과는 다른 어떤 감정인데 이걸 뭐라고 하지? 그 책에서 이런 감정을 '모멸'이라고 정리를 해줬고요. 이 소설집 안에도 그 모멸을 서로 주고 받고 혹은 상대에게 서로 전가하는 이런 유형들이 있습니다. 상냥한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제가, 저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냥한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상냥한 폭력이라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할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그동안 얼마나 상냥함이라는 이름으로, 뭔가 세상은 이런 것이다 라고 가르쳐주고 싶었는지, 그것이 선의였더라도. 사실은 우리가 아닌 나의 선의를 통해 폭력이 더 많이, 더 아프고 치명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굉장히 주관적이고 어떻게 보면 편협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식의 반성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 본문은 오디오에서 발췌 후 일부 편집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
출처: 교보문고 이메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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