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넘는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긴 대시인이 전하는 시의 정수를 가슴속에 아로새기다!
고은 시선집 『마치 잔칫날처럼』. 세계적 시인 고은이 평생에 걸쳐 쓴 작품들 가운데 240편의 명시를 모아 엮은 책이다. 이시영, 김승희, 고형렬, 안도현, 박성우 등 다섯 명의 시인이 시기별로 나누어 우선 수록작을 뽑고, 문학평론가 백낙청이 최종 선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공동 작업을 통해 질적, 양적 균형감을 맞추고자 했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왕성한 창작열을 수십 년간 지속해오고 있는 고은 시인의 55년 문학인생을 작품들을 읽으며 천천히 따라가 볼 수 있다. 탐미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초기 시들에게 특유의 분위기와 함께 감각적이고 유려한 면모를 엿볼 수 있으며 히말라야 고행을 비롯한 해외에서의 경험을 통해 녹여낸 순례자로서의 시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저자 고은
1958년 등단한 이래 시, 소설, 수필, 평론 등 130여 권의 저서를 간행. 특히 1995년 호주에서 영문 시선집 <아침 이슬(Morning Dew) : 페이퍼 바크 출판사(Paper Bark Press)>이 출간되자마자 매진되었고 그 결과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작가들이 초청되는 시드니작가축제(Sydney Writers' Festival)에 1996년 주빈으로 초대되었다. 시드니작가축제에 참가한 고은 시인은 많은 청중 들 앞에서 한국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경기대학교 대학원 교수, 미국 하버드대학교 하버드옌칭스쿨 연구교수, 미국 버클리대학교 초빙교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의장, 세계 시 아카데미 한국대표 등을 역임했다.
시인의 말
『어느 바람』시인의 말
일러두기
제1부
폐결핵
천은사운
심청부
다어
시인(時人)의 마음
초파일날
.
.
(중략)
.
.
길을 물어
내 변방은 어디 갔나
밤길
부탁
『어느바람』발문│백낙청
편자 후기
연보
작품 출전
엮은이 소개
세계적인 시인 고은, 55년 문학인생의 결정판!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 시인 고은의 시선집 『마치 잔칫날처럼』이 출간되었다. 『마치 잔칫날처럼』은 1933년에 태어나 1958년에 문단에 등장한 이래 올해로 팔순의 나이와 55년의 시력(詩歷)에 이른 고은 시인이 평생에 걸쳐 쓴 작품들 중에서 가려 뽑은 240편의 명시를 수록한 선집이다. 이시영 김승희 고형렬 안도현 박성우 다섯명의 시인이 시기별로 나누어 일차로 수록작을 뽑고 문학평론가 백낙청 선생이 최종 선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공동작업을 함으로써 선집의 질적·양적 균형감을 확보하고자 했다.
주지하다시피 고은 시인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인으로 자리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의 시(선)집들은 영미와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을 포함해 약 20여개 국가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시인은 그런 위상에 버금가게 수많은 국제문화행사에 초청되어 시낭송 등의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출간된 단행본만 160여권에 이를 정도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왕성한 창작열을 수십년간 지속해오고 있는데, 그 엄청난 분량 속에서도 각각의 작품집이 늘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거두며, 시인 자신의 시적 갱신 또한 거듭하고 있는 만큼 시인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선집의 출간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나아가 고은 시인 자신도 이 시집을 문학인생의 대표선집으로 삼겠다고 한 것처럼 이 책은 그의 대표작을 모은 정본이라 할 수 있다.
십년 전(2002) 『어느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선집에는 첫 시집 『피안감성』(1960)에서부터 당시의 근작 『두고 온 시』(2002)까지에서 추린 150편의 시가 실려 있었다. 10년 만에 개정·증보된 이번 선집 『마치 잔칫날처럼』은 최초 발표작 「폐결핵」 등 많은 독자에게 친숙한 초기 작품을 비롯하여 『어느 바람』의 정선 대상 시집 속에서 30여편을 추가로 수록했고, 2002년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출간된 근작 시집 5권에서 54편을 새로 정선해 수록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인 새로운 선집으로 탄생했다. 명실상부하게 고은 시인의 시세계를 총망라한 대표 시선집인 것이다. 『백두산』 『만인보』 『머나먼 길』 등의 서사시·장시를 선정대상에서 제외하여 읽는이의 부담을 덜고, 수록작에 대해 시인 자신의 개고(改稿)를 거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서 지난 시기를 있는 그대로 정리하는 선집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고자 했다.
탐미적·허무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고은 시인의 초기 시들에서는 특유의 분위기와 함께 감각적이고 유려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시로 쓴 한민족의 호적부’라 일컬어지는 『만인보』를 완성한 ‘민족시인’ 고은이 지금과는 또 어떤 차별적인 지점에서 시인으로 출발했는지를 읽을 수 있다.
누님이 와서 이마 맡에 앉고/외로운 파스·하이드라지드 병(甁) 속에/들어 있는 정서(情緖)를 보고 있다./뜨락의 목련(木蓮)이 쪼개어지고 있다./한번의 긴 숨이 창 너머 하늘로 삭아가버린다./오늘, 슬픈 하루의 오후에도/늑골에서 두근거리는 신(神)이/어딘가의 머나먼 곳으로 간다. (「폐결핵」 부분)
이미 「임종(臨終)」 「화신북상(花信北上)」 등 초기 시편에서도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도 하지만, 고은 시인의 시세계는 시인이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선 1970, 80년대를 거치며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 역사와 사회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이 시를 통해서도 이루어진 것으로, 이는 이후로도 고은 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별 하나 우러러보며 젊자/어둠속에서/내 자식들의 초롱초롱한 가슴이자/내 가슴으로/한밤중 몇백광년의 조국이자/아무리 멍든 몸으로 쓰러질지라도/지금 진리에 가장 가까운 건 젊은이다/땅 위의 모든 이들아 젊자 (「조국의 별」 부분)
서해 백령도에서는/바다 건너/중국 산동성 청도 어장에서/고기값 흥정하는 소리를 들어서/바다 건너/한국 인천 연안부두에 전해준다//또한 북한의 남포/남한 인천의 고철값을 알아다가/산동성 주물공단에 전해준다//(…)//태풍이나/태풍에 앞서 몰려오는/바닷속 조기떼를 맞아들여/한번 쉬게 했다가 보내느라 온몸을 벼랑져 세우고 있다/이곳 사랑에는 이별이 많았다 오고 가느라고/아픈 밤이 많았다 (「백령도」 부분)
짧은 단시 중의 명편을 일별해볼 수 있는 것도 이 선집의 큰 재미 중 하나이다. 고은 시인은 때로 굳게 응집된 언어를 통해 선(禪)적인 깨달음의 순간을 시화하는 탁월한 시편을 남겨왔다. 가령 “이 세상에서 모래 한알이 가장 옳다”(「변산」)라거나,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순간의 꽃」 연작 중) 같은 ‘죽비소리’들은 그뒤에 길고 긴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그런가 하면 히말라야 고행을 비롯해 해외에서의 경험을 녹여낸 ‘순례자’로서의 시편들은 시인의 시세계가 거느린 시공간적·정신적 영역이 무한에 가깝게 확장된 증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도 5천 미터 황야/아비도/어미도 모르고/오직/나 하나//녹색 전무였다//녹색이란/지난날 내가 본 녹색의 기억이었다//사나운 짐승들아 달려오라/달려와/내 지친 몸뚱어리 물어뜯어라/뜯어먹어라//그 집단 공포와 고통 뒤에/올 평화와/황야는 둘이 아니었다/절망은 절망의 꿀 (「황야」 전문)
가슴을 뜨겁게 하는 시, 이마를 치게 만드는 시, 언어와 철학의 깊이에 압도되는 시들 모두 고은 시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명편들이지만 읽다보면 잔잔한 미소와 함께 아련한 기억에 젖게 하는 시들 또한 시인은 적지 않게 선보여왔다.
저녁나절은/떨이다 하고/넘기고 나서/또 한접 받아다가/떨이다 하시옵지요/허허허 일흔 여든 이런 할머니한테/잠깐 속아넘어가는 하루도 있어야 하옵지요/그러고 보니 돌아오는 길/무궁화를 부용꽃으로 잘못 본 바/이것도 오랜 무궁화께서/이 미련한 사내 하나 속이신 것이옵지요 (「안성장 할머니 몇분」 전문)
시인은 일흔을 넘긴 이후에도 무려 6권의 시집을 낼 정도로 지금 우리 시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현역 시인으로 최근 10년을 보내왔다. 수십년간 일구어온 자신의 시세계가 가닿아야 할 지향점을 변함없이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간단없는 시적 갱신을 행한 시인의 근작들을 모은 5부는, 지금의 독자들에게 고은이라는 ‘대시인’의 풍모와는 별개로 바로 동시대의 작가로 회자될 만한 뛰어난 감각과 시의성을 갖추고 있다. 1부부터 따라 읽다가 이 5부에 와서, 시인 최초의 ‘사랑 시집’ 『상화 시편』과 시력 50년을 넘은 자신의 시적 본류를 다시금 탐구하는 『내 변방은 어디 갔나』에 이르면 독자들은 세계적인 시인이 온몸으로 살아낸 수십년의 삶과 문학인생을 오롯이 마주하는 듯한 경이로운 감동을 느낄 법하다.
무식한 아버지/묵은밭 어둑어둑 갈던 곳/진리가 마을 안에 있던 곳/내가 잠들면 너도 잠드는 곳/죽은 아저씨 살아 돌아오는 곳/소작료 삼칠제로 뼈 빠져버린 곳/(…)/누가 죽으면 모두 상주인 곳/김씨도 장씨 숙부이고/갑씨도 을씨 사촌이던 곳/사또나리 오시지 않는 곳/커다란 달밤/누군가가 그 달밤에/식칼 갈아 허공 포 뜨며 번뜩이던 곳/의미가 무의미에 고개 숙이는 곳/두고 온 그곳//내 변방은 어디 갔나 (「내 변방은 어디 갔나」 부분)
사실 50년 넘는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긴 대시인의 시세계를 한권의 책으로 감당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잔칫날처럼』은 우리 문학의 독자 모두에게 하나의 기념비와 같은 성과라 할 만하다. 한국현대사의 산증인이자, 우리 시는 물론 세계 시단의 거두인 고은 시인의 명편들을 읽는 시간은 시인의 시를 오래 곁에 둔 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들의 정수를 또 한번 가슴속에 아로새기는 계기가, 시인에게 첫 발을 내디뎌 그의 진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이들에게는 우뚝 선 거대한 봉우리에 다가드는 벅찬 순간이 될 것이다.
고은 시인의 말
가야산에서의 첫 시집?앞서서 인쇄 도중 화재로 타버린 첫 시집의 소멸을 이어준 시집?이래 제주도와 제주도 직후의 두 시집, 서울에서의 서너 시집을 지나면 그뒤 안성 30년의 시집들로 내 시의 합산이 된다.
그뒤가 다른 시작이다.
이것의 표제 ‘마치 잔칫날처럼’은 어느 책갈피 속에 박혀 있는 것을 떼어왔다.
이 선집은 누차 오랜 벗과 후배 들의 과분한 은덕으로 가다듬어진 것이다. 허수아비에 비단이겠다.
10년 전 ‘어느 바람’이라는 섣부른 이름이다가 이제 10년간의 무당 푸념들이 무작위 삼아 더해졌다. 창비의 사랑이 또 이것이다.
갇히지 않으려고 버둥치지 않아도 가둔 힘이 운명 안에 고여 있는 자유에 의해 스스로 풀어지면서 시가 기율을 버리거나 기율이 시를 흘끔흘끔 뒤따르거나 하는 해방의 풍모를 그동안 지녀주었다.
시는 밤바다와 달 사이의 요염한 우주 인연을 지우기도 하고 되받아오기도 했다. 나의 시 말이다.
앞으로 어이될지 모르겠는데 이 미혹은 어떤 깨달음도 사절하며 남아 있는 풀더미 속을 들어선다. 안성 시절 다음 수원의 삶이 그것이련다.
언제까지나 귀향의 답은 없다. 도상(途上)일 것이다.
시의 55년을 앞두고 있다.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 만난 아도니스가 그의 모국어 아랍어로 ‘Ko Un’의 발음은 ‘존재하다’라는 뜻이라 했다. 장차 내 부재의 어느 날도 존재이기를 누추하게 꿈꾸지 않는다. 나에게는 오로지 현재가 내 꿈의 장소이다.
허나 현재란, 꿈이란 얼마나 천년의 가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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