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렉션으로 모아 올린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펼쳐져 나타납니다.

 

 

 

♡ 원주시 단구동 박경리 문학공원 내 박경리 선생님 생가와 뜰. 아담하고 좀 오래된 2층 양옥집이다. 선생님은 80년 이곳으로 이사 와 20여 년 홀로 지내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쓰다가 삶을 마감하셨다. 사진 오른쪽에 그날 밤 이어질 뮤지컬 공연에 앞서 선보일 음악회에 연주 단원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다.

 

 

♡ 박경리 선생님이 글을 쓰다가 잠시 뜰에 나와 산책도 하시고 소꿉놀이 하듯 채마를 가꾸던 텃밭이다. 텃밭

    은 주인의 손길을 잃었지만, 아직 선생님의 사랑을 잊지 않았는지 갖가지 화초와 채소들로 가득하다.

 

 

♡ 집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제법 울창하다. 선생님 작품 속에 나오는 '살구나무'에 얽힌작품 속 인용문이 집 터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살구나무에 시화처럼 걸려 있다.

 

 

♡ 박경리 선생님이 돌아가신 분이라고 들려드리니, 울엄니 당신의 남은 삶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는지 괜실히 우울한 모습이다. 인명은 재천(在天)이라 말했거늘. 그 누가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을 미리 점치며 살 수 있을까? 지금만큼이라도 건강을 유지하여 내 곁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 박경리 선생님 생가 터 앞마당 작은 연못에 초록빛으로 물든 수생 식물들이 아주 앙증맞게 자라고 있었다.

    생전의 선생님께서 뜰 앞을 산책하면서 식물들과 무언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많이 주었지 싶다.

 

 

 

 

♡ 박경리 선생님은 원주로 오신 후 줄곳 이곳에서 글을 쓰며 바깥 나들이는 거의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글 속에서 선생님은 집 주변에 널려 있는 군상(群像)들의 천태만상을 선듯 받아드리기 좀 힘드셨나 보다. 늘 글 속에 파묻혀 도시문화와 익숙치 않은 순수한 할머니(ㅎㅎ)께서 도시의 이기적인 이웃정서를 낯설어 하셨지 싶다. 즉, 단구동 선생님 집 주변은 원주 시내에 자리한 주택가와 상가가 밀집한 곳이라 더더욱 그랬지 싶었다.

 

  ♡ 그 모진 세월을 강인한 정신력 하나로 지탱하며 때론
몸져 누워 다시는 펜을 들 수조차 없을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고 '토지'를 탈고하기까지 수십 년 인고의 세월을 보냈건만 일상의 소소한 일에서 부딪치는 한 여인의 나약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겨울날 물 펌프가 고장 나 물을 길어오다 눈길에 넘어졌는데 일으켜 주는 이 아무도 없어 서러워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고. 선생님께 그런 모습이 있으셨다니..^^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80여 년 세월, 선생님의 손때 묻은 것이 어디 한둘이랴. 이제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이 다가옴을 선생님은 알고 계셨을까? 홀로 외딴 집을 지키며 살아야 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니 모두 그리움 뿐이거늘. 선생님, 마음으로 받는 선물이 가장 오래 간다죠.^^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

 

 

♡ 박경리 문학의 집 개관식을 맞아 선생님의 문학을 사랑하는 제자들이 자원봉사를 자청하여 직접 음식을 만

들고 작은 선물까지 준비하여 개관식을 찾은 축하객들을 조촐하게 맞이하고 있다. 참 정겨워 보이죠~ ^^ 

 

 

♡ 한 점 한 점 점점이 정성을 들여 빚은 음식이라 차마 먹을 수 없어.^^  우린 그냥 눈요기만 하며 돌아보았다.음식이라기보단 하나의 미술작품처럼 느껴졌다. 예쁘죠. 우린 소설 토지 작품 속에 나오는 찐 감자와 찐 옥수수, 수박 한 조각만을 엄니와 둘이 나눠 먹었다. 물론 막걸리와 부침개까지 정성스레 준비되었지만 운전을 해야 하는 몸이라 유혹을 떨치느라고 엄청 고생했다. 사진엔 담지 못했는데. 강원도 토속 음식이라 기념식을 위해 특별히 고른 메뉴라고 관장님이 말하셨다.

 

 

♡ 개관기념식에 앞서 오픈 세레모니로 축하공연이 먼저 시작됐다. 무대의 주인공들은 우리 전통 국악을 사랑하고 전파하는 순수 아마츄어 어머니들로 구성 된 원주국악봉사단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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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청 국악인들의 공연이다.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한복
    과 어우러진 춤사위는 언제
    보아도 참 예쁘고 흥겹다.

  ♡ 흥겨운 가락에 맞춰 춤사위
    가 이어지니 관중들은 흥이
    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 멋진 마무리를 위한 포즈^^

 

 

♡ 우리 고유의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한국인의 애환이 담겨 있는 민요를 부르며 부채춤까지 덩실덩실 추니 축하객들은 신명이 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특히 '고은, 김지하(박경리 선생님 사위)'시인도 참석하셨는데 무척 좋아하셨다.

  

 

♡ 소설 '토지 속의 등장 인물에게 편지쓰기' 대회에서 입상한 한 독자가 연단에서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참고로 전 2009년 토지 서사극(전편) 공연관람 후기를 쓰고 상장과 토지 '전집'을 부상으로 받았다. 당시 시상식이 토요일이었다. 나는 업무가 바빠 시상식엔 참석하지 못하고 우편 택배로 받았다. 그 때 소설 토지 전집 겉표지에 새겨진 박경리 선생님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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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토지 속의 인물에게 편
    지쓰기 입상자 시상식 장면.
    시상은 문학관 관장님이...
  ♡ 어느 어머님의 수상소감이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 시상식을 끝낸 수상자들의
    기념촬영. 초중고 학생들의
    참여가 두두러졌다.

 

 

♡ 시상식 뒤 신명나는 '난타' 공연이 시작되었다. 언제 들어도 힘이 절로 솟는 '난타' 공연은 저작자인 '송승환' 의 신지식인 예술분야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우리 것을 발굴하고 다듬어 세계에 널리 알리고 전통문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발한 송승환님께 박수를 보낸다.

 

 

♡ 흥겨운 축제엔 사물놀이도 빠질 수 없죠. 장구와 꽹가리 장단을 이어받아 춤까지 덩실거리니 흥이 절로 아니 날 수 없다. 우리의 전통 농악이나 사물놀이 공연을 접할 때면 저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민족이 본래 낙천적이고 가무를 즐기며 신명이 많은 유전자를 타고 났기 때문이다.

사물놀이 창시자인 중요 무형문화제 '김덕수'님께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참고로 춘천의 소양댐 안에 '소양예술농원' 에서는 사계절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이 열린다는 것 잊지 마세요.^^

  (물론 무료 공연입니다. 홈페이지 참고- http://www.soyangartfarm.com/)

  

 
♡ 전통 풍물놀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열두 발
    상모돌리기. 나이 어린 애제자의 열연이 더
    욱 돋보이는 자리였다.
  ♡ 온 마당을 휘저으며 소고 장단에 맞춰 상모
    의 꼬리가 바람을 가를 때 사람들은 흥에 겨
    워 박수 갈채를 보냈다.

 

 

♡ 주최 측의 특별 배려로 앞자리에 앉은 우리는 편안히 기념식과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한국 문단에 별이신 낯 익은 선생님들이 몇 분 참석을 하셨지만, 이름을 불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우리 옆자리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자리를 하셨다. 이 때는 암 발병 전이었지만, 선생님은 무척 피곤하셨는지 눈을 감고 계셨다. 얼핏 옆모습을 바라보니 마치 울엄니와 친 자매같이 느껴진다. 박완서 선생님은 이듬해 암으로 우리곁을 영원히 떠나셨다. 선생님이 남기신 수많은 문학 작품은 영원히 한국문학사에 길이 기억되리라 봅니다.

♥ 선생님, 하늘나라에서도 선생님의 작품을 사랑한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이야기 많이 많이 들려주세요^^ ♥

 

 

♡ 울엄니 특유의 친화력이 여기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옆자리에 앉은 박완서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덕담까지 주고받으며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선생님이 그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다면 좀 더 이야기 나누고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드리는 건데. 박완서 선생님은 찐옥수수를 맛있게 드셨다.

 

 

♡ ' 박경리 문학의 집' 관장님이 개관식 축하인사를 하고 있다. 적당한 볼륨에 둥글둥글 하여 친근감이 느껴졌다. 축하 화환 중에 통영시장이 눈에 띄는데 바로 박경리 선생님의 고향이 경남 통영이기 때문이다. 박경리 선생님은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결혼 후 직장생활을 하다 문단에 데뷔하여 한국 근대사의 일대기 ' 土地 ' 를 20여 년의 긴 장고 끝에 탈고하는 우리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기셨다.

  

 

  ♡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자리한 박경리 문학공원 내 세워진 '박경리 문학의 집'이다. 도심에 3층으로 지어진 아담한 건물인데 건축공사가 진행중이었다. 1층은 리셉션 룸, 2층은 유품 및 작품전시관, 3층은 소설 토지자료관으로 꾸며져 있다. 4층, 5층으로 증축 될 예정이다. 옆의 작은 건물에는 서점도 있다.

 

 

♡ 박경리 문학공원 재단이사장이자 박경리 선생님의 큰따님께서 내빈들께 인삿말을 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대형 걸개에 쓰인

" 생명은 사랑이요, 생명은 아픔이다 "

란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은 주로 우리민족의 아픔과 역사적 인식에서 시작되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랑에서 작품은 출발하고 있다.

 

 

♡ 날은 저무는 데 바쁜 관장님께 잠시 짬을 빌어 울엄니 인증샷 하나 날렸다.ㅎㅎㅎ

뒤에 글귀가 마음에 들어 꼭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 생명은 사랑이요, 생명은 아픔이다. "

관장님 성격이 둥글둥글 외모도 둥글둥글 꼭 부잣집 맏며느리 감이다.ㅋㅋㅋ

 

 

♡ 어머니와 함께 찍은 박경리 선생님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어머니를 빼 닮았다. 당시로서는 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옷차림새와 신발도 제법 세련돼 보인다. 차렷 자세로 다소곳이 사진을 찍은 선생님의 모습이 넘 귀여워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라면 선생님이 하늘에서 화를 내시려나~!ㅋㅋㅋ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선생님은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시간이 점차 다가옴을 느끼셨는지 글 속에서 지나 온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낄 수 있다. 마음 비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건만, 선생님께서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 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하셨다. 그만큼 선생님은 문학소녀로서, 엄마로서 또 작가로서 한 평생을 살아오며 한 점 후회 없이 살다가 돌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여유로운 마음으로 행복해하고 관대하셨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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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 박경리 선생님의 손때 묻은 재봉틀. 당시 어머니들이 다 그러셨듯이 선생님도 예외는 아니어서 검소하고 알뜰한 한국의 한 어머니였다.   ♡ 박경리 선생님의 생전 육필원고, 집필하실 때 사용하던 필기구, 돋보기 안경.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을 요구했던 소설 토지를 탈고하기까지 선생님의 혼과 땀이 밴 유품이다.   ♡ 텃밭에서 잡초를 뽑고 김을
매고 바위에 걸터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텃밭의 친구(?)들과 대화를 하셨다는데, 주인 잃은 호미와 밀짚모자가 더 쓸쓸하게 다가온다.

 

♡ 2층 전시관에 마련된 생전에 박경리 선생님이 쓰시던 유품들이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이미지로 보임.

 

 

♡ 박경리 선생님과 수십 년 인고의 세월을 동거동락한 재봉틀. 선생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흐른다. 당시 우리네 어머니들이 다 그러셨듯이 선생님은 한국전쟁 당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오셨다.

박경리 선생님도 한국의 여느 어머니들과 다름 없이 기워 입고 손수 만들어 입고 그리 하셨을 게다. 반짇고리 역할을 하던 주머니도 아마 직접 만들었지 싶다. 그 속에 자질구레한 단추를 모아두고, 꼭 울 엄니 같았다.

  

 

♡ 젊은날의 박경리 선생님. 선생님은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수도권으로 거처를 옮기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직장생활을 하며 수도여자사범대학(서울 세종대)을 나와 잠시 교편생활을 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남편과 사별 후 홀로 딸을 키우며 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어 그 때부터 창작에 몰두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셨단다.

  

 

♡ 박경리 문학의 집 3층 전시관 중앙홀. 소설 '토지'속의 연대별 이야기를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을 사진으로 재연해 놓았다. 연대별 사진을 보노라면 책에서 읽은 스토리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소설 '토지'는 워낙 방대한 양의 작품이라 웬만한 끈기로는 전 편을 다 읽기도 벅찬 대장정(?)이다.

※ 학교에서 현대문학사 시간에 유성호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에피소드를 옮겨 본다.(2016.10.31 추가)

  " 소설 '토지'를 모르는 사람도 없거니와 '토지'를 다 아는 사람도 없다. " 이 말은 그만큼 방대한 양의 대하소설인 '토지'를 다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뜻이다. 강의 시간에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 ㅎㅎ

 

 

♡ 개관기념식을 끝내고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친 뒤 박경리 선생님 집 앞 마당에서 색다른 이벤트가 열렸다. 소설 토지의 일부 내용을 서사극으로 각색하여 뮤지컬로 무대에 올렸다. 배우들이 나와 소설 속 대사를 주고받으며 때론 화자로 등장하는 문학관 관장님이 해설을 맡고 특별 초대한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다. 엄니와 나는 문학공원 주변에 사는 이웃주민들과 함께 관람했다.

  뮤지컬 공연에 앞서 클래식음악도 선보였는데 연주 음악과 성악가들의 하모니가 밤하늘에 울려퍼져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진 속의 박경리 선생님이 마치 바위 위에 걸터 앉아 뮤지컬 공연을 흐믓하게 바라보시는 듯하다. (플래시 없이 숨어서 몰래 담아 이미지가 선명하지 못하다)

 

 

♡ 박경리 선생님 생가 앞마당에는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중에 가지를 사방으로 드리운 소나무 한 그루가 연못 한가운데 서 있었다. 나무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어 화사하다. 아마 연못 가에 심은 나무라 선생님의 사랑을 더 받았지 싶다. 적당한 크기에 제멋대로 뻗어 있는 가지마다 나름 개성(못생김?)이 묻어 있어 문학적 사고와 향기를 지닌 선생님의 내면 정서와 잘 어울려 특별히 많은 애정을 받고 자라지 않았을까?ㅎㅎㅎ 왠지 나는 이런 나무 같은 사람이 좋다. 왜~!! 있잖은가? 예쁘지는 않지만 조명발 잘 받고 화장발 잘 받아 언제 보아도 편안하고 건강미가 넘치는 사람!ㅎㅎㅎ

 

 

♡ 문학의 집 관장님이 소설 토지 속의 대사를 피아노 연주에 맞춰 낭송하고 있다. 까만 밤하늘 아래 쏟아지는 별들의 속삭임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 낭랑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온 하늘에 울려퍼졌다. 하늘에 계신 박경리 선생님도 흐믓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셨지 싶다. 아니! 바로 앞에 앉아 귀 기울이고 경청하고 계시지 않는가? ㅎㅎ

  

 

♡ 이날 한여름이었음에도 밤 공기는 제법 서늘했다. 마당 가에 심어진 초록이들이 공연장의 불빛을 받아 더욱 짙푸르다. 나무들도 박경리 선생님의 추모을 기리는 듯 공연 내내 미동도 않은 채 가지는 숨죽여 있있다.^^

  

 

♡소설 '土地' 속에 나오는 일부 내용을 극화하여 뮤지컬로 배우들이 열연하자 지역 주민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며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개관기념식은 아주 소박하게 치뤄졌다. 생전에 박경리 선생님의 검소함을 잘 알기에 주최 측에서 지인들과 일부 문인들,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모여 조촐하게 자리를 빛내주었다.

 

 

♡ '토지' 서사극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떠났지만 우린 이내 휑하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마저 훌쩍 떠나면 선생님이 너무 허전할 듯 싶은 마음에 잠시 박경리 선생님 조소 곁에 다가가 엄니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목례를 한 뒤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엄니에게 아주 유명하신 분인데 하늘나라로 가셨다니, 울엄니 마음 아파하며 " 안 됐다. 자손들은 있겠지. " 하며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있다. 동상은 박경리 선생님이 늘 앉아 쉬던 실제 돌바위에 맞춰 세웠으며 오른 손 옆에는 호미도 한 자루 놓여져 있다.

 

 

           2010년 8월 14일 (토) 흐림 후 갬(오후 늦게 빗방울 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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