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남자들의 로망, 캠핑카 / Life with Car
.
Life with Car
남자들의 로망, 캠핑카
집 주위의 공원에만 나가도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부터,
조그만 시냇물에 한 칸짜리 낚시도 제대로 드리우지 못하도록 되어 있거니와,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형국에 캠핑카라니!
예전 어느 광고 카피처럼 ‘길이어도 좋다, 아니어도 좋다’ 는 마음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계절 탓 아니어도 남자들이라면, 그리고 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특히, 훌쩍 떠난다는 일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랑과 꿈을 실은 캠핑카
뙤약볕 아래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째 정체를 겪다 보면 미지근해진 음료수를 마시면서 투덜투덜거려 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온라인 쇼핑몰을 드나들며 ‘차량용 냉장고’라는 단어를 입력해 보기도 한다. 이런 단계가 지나면, 혹은 이런 단계가 오기도 전에 성급하게 캠핑용품부터 챙긴 사람들이 머리에 떠올리게 되는 게 바로 캠핑카다.
해외 화보가 심심찮게 인터넷 화면에도 올라오곤 하는데, 그런 멋진 그림들을 보면서 우리는 근사한 캠핑카에 연인이나 가족들을 싣고 시원한 강가 그늘이나 아늑한 숲속 공터에 차를 멈추고 나만의 공간을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렇다. 진정한 남자라면, 캠핑카 하나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꿈을 싣고 달려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는 너무나 크다. 일반 차량보다 몇 배나 비싼 차량 가격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유지비는 또 어쩔 것인가. 잠깐만 쓰고 ‘처박아 둘’ 공간도 문제이거니와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늘 이상은 공상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우리의 꿈을 완전히 포기할 것만도 아니다. ‘글램핑’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얇은 주머니를 생각하는 알뜰족들은 기발한 생각을 해내곤 하는 것이다.
기존의 펜션 업체들은 글램핑에 적합한 공간을 만들어 두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일반적인 펜션보다 건축비가 훨씬 쌀 것 같은데, 이용 요금은 더 비싸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그냥 캠핑도 아니고 글램핑이란 단어가 만들어진 걸 보면 사람들의 상향식 욕구는 끝이 없는 모양이다. 거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내 본 것이 바로 오늘의 주제인 캠핑카라 할 수 있겠다.
움직이는 소형 주택
캠핑카가 갖추어야 할 미덕은 무엇일까?
우선, 소형 주택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일상적인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일반 주택은 침실, 욕실, 주방, 거실 등으로 공간이 나뉘어 있다. 그러나 캠핑카는 이 모든 공간이 겹치더라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이런 용도의 겹치기 출연이 많을수록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캠핑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움직이는 주택’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집을 통째로 떼어 트레일러에 싣고 다닐 수도 없는 일, 필요한 기능을 잘게 쪼개고 포개어 최대한 이동에 편리하도록 배치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침대를 접으면 소파가 되고, 소파를 나누면 식탁이 되는 등의 마법을 부려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전기, 가스, 냉온수 등의 사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대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인터넷도 되어야 하고, TV 등도 설치되어야 한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여성분들 중에는 ‘그 복잡한 거 집에 다 붙어 있는데 왜 그걸 끌고 다닐 생각을 하는 거람?’ 하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남자들이란 동물은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자.
캠핑카는 직접 운전을 해서 끌고 다닐 수 있는 것과, 차 뒤에 매달아서 끌고 다니는 것, 이렇게 두 종류로 나뉜다. 대체로 엔진이 붙어 있어 직접 운전하는 녀석이 더 비싸고, 트레일러처럼 차 뒤에 붙여서 다니는 놈이 조금 더 싸다고 한다. 그러나 꾸밈새를 보면 트레일러 형이 훨씬 더 편리하다.
구입보다 임대를 생각해 봄직
대부분의 서민들은 이거나 저거나 살 만한 형편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캠핑카에 대한 미련을 죽어도 못버리겠다면 구입이 아니라 임대라도 해 보자. 요즘은 레저에 대한 욕구가 많이 늘어나 캠핑카 제작업체도 생겨났지만 임대를 해주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캠핑카 운전 자격이다. 도로에서 흔히 보이는, 사고가 나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견인차량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견인차처럼, 트레일러 모양으로 생긴 캠핑카(그 중에서도 아주 작은 것들만!)를 끌고 다니는 것은 2종 보통 면허로도 가능한데 다른 것들, 직접 몰고 다니는 것이나 덩치가 큰 트레일러형 캠핑카는 따로 면허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트레일러형 캠핑카인 경우에도 자신의 차에 견인장치를 달아야 하고, 이마저도 없는 경우엔 견인차량까지 빌려야 하니 30만 원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하루 숙박을 위해 이 정도 돈을 투자해야만 한다면, 좋은 숙박시설로 간편하게 짐을 꾸려 떠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나 남자들의 로망을 위해서, 이런 비용도 불사하겠다는 용자(!)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질수록 그 속에서 탈출할 방도가 없는 사람들은 일시적인 일탈이나마 꿈꿀 수밖에 없다. 쇼생크 탈출은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 땅의 아내들은 남자들의 어리석기만 한 이런 만용을 한 번쯤 눈감아줄 용기가 필요하다.
혹자는 말한다. “아니, 집 한 채를 끌고 다니는 어리석은 짓을 왜 해?”
그렇다. 남자들은 어리석다. 어리석기에 무모한 시도를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캠핑카에 대한 로망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어리석음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문명을 키워낸 원동력이라는 아이러니를 이해해야만 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본능에 기인한다.
다른 부족들이 생산해 낸 잉여 식량을 빼앗아 오기 위해 전쟁이라는 문명을 발명해 낸 인류가 아니던가.
목욕탕에 들어앉아 부력의 원리를 깨달은 아르키메데스나,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바라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밝혀냈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 왔다.
인간은, 쓸데없이 무모하거나 한심한 상황에서 비약적인 진보를 이뤄냈던 사실을 상기하자.
남자들의 무모함이, 우리 남편의 끝모를 허황함이, 지겹기만 한 우리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캠핑카를 몰고 우쭐해 하는 남자의 겉멋과 그의 얇아진 지갑만 잠시 잊는다면, 캠핑카는 사실 여자들의 로맨틱한 상상도 충분히 채워줄 수 있는 멋진 낭만이 될 수 있다.
규제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정부는 캠핑카 산업을 활성화시키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는 전용 야영장 등 기반시설이 부족한 편이다. 개개인의 주머니 사정을 차치하고라도, 캠핑카를 끌고 전국을 누벼보겠다는 남자들의 로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리나라는 규제가 만능인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집 주위의 공원에만 나가도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부터, 조그만 시냇물에 한 칸짜리 낚시도 제대로 드리우지 못하도록 되어 있거니와,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형국에 캠핑카라니!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캠핑카는 상·하수도와 전기시설이 갖춰진 지정된 야영장에서만 머물면서 취사와 숙박을 해야 한다. 캠핑카를 끌고 다니는 관광객들이 해변이나 올레길 주변 등에 주차할 경우 공유지 및 사유지 무단 점용으로 단속을 당할 수 있다.
또 한 곳에 장기간 머물면서 오폐수를 무단 배출하면 하수도법 위반 행위에 해당된다.
외국의 캠핑카 문화는 하루만 머물고 다른 곳으로 계속 이동하는 게 보편화 됐고, 웬만하면 제재를 하지 않는다.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는 전가의 보도는 캠핑카 문화에 관한 한 우리에게도 적용되었으면 한다.
글 함성주
시인, 칼럼니스트.
동국대 국문과 졸업. 신문, 잡지 등에 작은 글들을 쓰거나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
웹진 Switch
SHINHAN B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