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할 것 같다고요?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은 저를 두고 하는 말일 수도 있어요.(웃음)"
4월 29일,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마음치유 콘서트’를 앞두고 혜민스님을 만났다. 리허설을 막 끝낸 그는 전날 미리 건넨 질문지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답변을 할 때면 방금 자신의 말을 곱씹어보며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말은 아니었는지,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을지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 순간에도 출간 3개월 만에 45만 부가 판매된 신간의 인기를 증명하듯, 일찌감치 전석 매진된 ’마음치유 콘서트’의 티켓을 구하기 위해 현장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신간의 인기가 굉장하다는 기자의 말에 "저도 그 이유가 궁금해서 독자 후기를 매일매일 보고 있는 중이에요."라는 말과 함께 사람 좋은 웃음을 건넸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후 4년의 시간. 그는 올해 초 7년간 재직했던 햄프셔대학 교수직을 내려놓고 20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한 후 귀국했다. 그 사이 ’교수’라는 직함 대신 ’마음치유학교 교장’이라는 새 직함도 얻었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출간하기까지 4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물으니 "공인으로서의 삶을 택한 순간부터 고민했던 사회적 역할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관계와 소통 단절의 사회에서 홀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이번 신간을 출간하기까지의 과정과 20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을 선택하게 된 자세한 배경, 공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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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저자 혜민스님 (사진 남경호 스튜디오2M) |
"완벽한 이미지? 생각과는 다른 내 모습에 창피할 때 많다"
Q 4년 만의 신작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은 전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쉼’과 ’성찰’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반면 이번 책은 부족한 나 자신과,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들을 어떻게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비의 눈길로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보았고요."
Q 출간 3개월 만에 45만 부가 판매되었습니다. 전작에 이어 굉장한 반응입니다. 독자들의 어떤 바람이 반영된 걸까요?
"저도 그게 너무 궁금해서 독자 후기를 열심히 보고 있어요.(웃음) 사실 저는 종교인이기 때문에 글재주를 부려서 사람들에게 예술적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능력은 부족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제 글이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글을 써요. 삶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 역시 스스로 괴로운 순간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순간들 속에서 제가 성찰해낸 것들이 그분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찾아주시는 게 아닐까 해요."
Q 직장인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드라마 ’미생’을 챙겨보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고민을 지닌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고민을 듣다 보면 간접적으로 그분들의 삶을 경험하게 돼요. 상담을 하다 보면 우리 조직문화 속에서의 답답함이나 어려움을 알 수 있어요. 현재 사회적 구조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고용도 안 되고 여러 가지로 힘들잖아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 나름대로 고민하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 역시 그런 한국 사회의 조직을 경험하고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스님들의 세계도 쉽지 않아요. 가끔 사람들은 스님들을 일반 사람들과 달리 보시는데, 저희도 조직이거든요. 산중이라고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제가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7년간 했으니 그 안에서 배운 것들도 쓰게 되는 거죠."
Q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고민에도 변화가 있던가요?
"그 반대예요.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고민은 늘 비슷해요. 특히 고전을 읽어봐도 그 고민이 그 고민이에요. 인간은 생로병사의 문제를 넘어설 수 없어요. 안 그래요? 엄마가 편찮으시거나, 갑자기 우리 애가 말을 안 듣는다거나... 그게 과연 요즘 시대만의 일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죠."
Q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이 깨닫게 되는 것들도 있으시죠?
"문제가 아닌데 그걸 문제라고 말해서 문제화시키면 결국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죠. 그런데 스스로는 몰라요. 가장 중요한 ’알아차림’이 없어서 그래요."
Q 가끔은 본인의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사에 완벽할 것만 같은 스님도 고민하시는 것들이 있으신가요? 어떤 방식으로 해답을 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완벽할 것 같다고요?(웃음) 저도 고민 많아요.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제목은 어쩌면 저를 두고 하는 말일 수도 있어요. 부족한 면이 많다는 걸 느끼죠.
이제 ’어떻게 가야 한다’라는 큰 방향성은 조금 알겠어요. 공부도 하고 수행하려고 노력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나의 습관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내 생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죠. 그래서 창피할 때가 있어요. 저 역시 인간관계 안에서 삐거덕거리고 실수를 하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는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는 거예요. 그렇지만 어떡하겠어요.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 것을.(웃음)"
Q 완벽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는 게 중요한 거겠죠.
"그럼요. 아주 중요해요. 그걸 바로 ’통찰’이라고 해요. 최소한 내가 누군지는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관계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연습이 필요해요. 관계라는 것은 곧 거울입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나요. 우리는 똑같은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를 잘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내 모습을 그 사람과 빗대어 봅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밖에 행동을 못 하지?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게 돼요. 그게 중요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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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저자 혜민스님 (사진 남경호 스튜디오2M) |
"자살률 1위 우리나라, 혼자 힘들어하기 때문"
Q 한때 ’독설’이 인기를 끌던 시기가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공감과 위로를 원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책이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하나의 증거가 되는데요. 반면 위로가 실질적인 대안을 주지 못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고민하는 문제에는 답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갑자기 부모님이 편찮으세요. 혹은 아이를 유산했어요. 도대체 대안이 뭔가요? 우리 인생을 뒤흔드는 것은 결국 생로병사이고, 이런 상황에서는 마음의 진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켜봐 주고 버텨주는 것 이게 더 필요한 거예요.
물론 독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 방식이 잘 맞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도움을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우리 인생에 대안이 없는 고민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그럴 때 상대가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배려하고 함께 버텨줘야 해요. 힘든 감정을 같이 공감해주고 버텨주면 스스로 어떻게든 이 상황을 파헤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이런 과정 없이 섣불리 대안이나 방법만 제시하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어요."
Q 한 매체에서 인터뷰어로 코너를 진행하기도 하셨는데요, 책, 인터뷰, 그리고 강연 등을 통한 소통에는 어떤 차이점들이 있나요?
"저는 세 개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왜냐면 책도 그렇고 인터뷰도 그렇고 강연도 그렇고 누군가를 만나는 거잖아요. 책도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고민을 가지고 시작하는 거고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안에서 배우는 게 있어요. 그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되고 나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고요. ’나는 저렇게 못하나’, ’저런 삶도 있구나’ 등 배우는 게 있기 때문에 저는 좋아요."
Q 올해 초 약 20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하셨습니다. ’햄프셔대학 교수’라는 직함 대신 ’마음치유학교 교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얻기도 하셨습니다. 새로운 선택은 어떤 고민의 결과인가요?
"저는 작가, 교수이기 전에 종교인이잖아요. 저 혼자만의 삶이 아닌 공인으로서 삶을 살겠다고 나선 것이니 사회적인 역할을 해야 하죠.
미국 같은 경우에는 어떤 개인적 아픔의 순간들이 찾아왔을 때 혼자 아파하지 않고 같이 아파해줄 사람들이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잃었다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가서 위로를 받는 거죠. 그 전까지는 사람들이 아무리 위로를 해도 위로가 안 돼요. 그런데 거기를 가면 위로가 돼요. 자신과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고, 행복도 바닥이에요. 왜 그런가 보니까 혼자 힘들어 해요. 점차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연결감을 느낄 수 없는 형태가 되는 거예요. 종교와 상관없이 아픔이 있는 분들을 함께 모으고 치유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마음치유학교’예요. 그래서 마음치유학교의 모토가 ’혼자 힘들어하지 마세요’이고요."
Q 평소 스님이 보여주는 종교적 신념을 초월한 소통과 교감, 존중은 많은 분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존경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고, 이해인 수녀님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데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종교학을 학사 4년, 석사 3년, 박사 7년, 총 14년을 공부했어요. 그러니 종교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공부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다양한 종교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어요. 잘 모르면 선입견이 있지만, 공부할수록 그 선입견은 사라져요. 잘 모르기 때문에 ’저 사람은 나와 다를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모습과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의 모습이 어떻게 다를 수가 있겠어요. 이해인 수녀님과도 잘 지내고 있고 조정민 목사님이 계신 교회에 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내일도 이해인 수녀님의 행사가 있어서 제가 시를 읽기로 했어요. 이런 식의 교류는 끊임없이 하고 싶고, 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최근(4월 25일) 혜민스님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습니다. 후기를 보니 ’힐링이라는 이슈거리에 지쳐 있던 차에 스님을 통해 진정한 위로와 공감의 의미를 깨달았다’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객관적으로 살펴본 본인의 일상을 어떻게 감상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아마도 ’힐링’에 대한 식상함은 단어가 주는 식상함일 거예요. 하지만 힐링이라는 언어에 대한 식상함과 ’치유’의 필요성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생각돼요. 그리고 저는 제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정말 보기 싫어요.(웃음) 어휴. 박찬호씨랑 나온 ’땡큐’도 안 봤어요. ’무한도전’도 보기 싫었는데 잠깐 보고 말았죠. 이상하게 너무 쑥스럽고 부끄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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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저자 혜민스님 (사진 남경호 스튜디오2M) ※ 편집 옮김- meister595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