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정월 대보름맞이 행사장에서 울엄니 모습입니다.
어머니와 살아오며 써놓은 일기 글과 문예창작학과 편입 뒤 시 흉내를 낸 글들은 묶어 책으로 보내드릴 계획이다. 아마 이 글도 책에 넣어드릴 후보 중 하나가 될 듯하다. 엄니가 쓰고 있는 모자는 큰누나네 며느리가 손수 뜨게질로, 분홍색 스웨터는 작은누나가, 장갑은 내가 E-마트에서 사 드린 것이다. 바지는 보이지 않아. 무릎을 덮은 타월은 내가 아프리카에서 근무할 때 쓰던 것이다. 엄닌, 하늘에서 그날의 추억을 기억하고 계실까?
그림은 문창과 다니면 회화과에 개설된 <손그림 일러스트레이션> 과목을 수강하며 과제(연습)로 제출했던 그림입니다. 당시 어머니의 모습을 추억하며 그려보려 했지만, 짧은 시간에 표현한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맷돌>
드르륵 시르륵
드르륵 시르륵
윗방에서 맷돌 가는 소리 들리면
남포등 불빛 아래
육 남매 고이 잠들고
삼경 하늘에 별빛도 잠이 든 밤
어미는 *설운 밤을 퍼내며
강냉이 쌀을 만든다.
눈꺼풀에 내려앉은 졸음 귀신
떠날 줄 모르고
광목 적삼 소맷자락엔 소금꽃이 핀다.
자식 낳은 게 죄가 되어
새끼 딸린 어미의 죄가 커서
삼백 예순 날
어미는 맷돌에 죗값을 치른다.
" 그땐 맷돌도 지겹게 돌렸지!
강냉이 쌀 대엿 되 만들라면
매일 통강냉이 건중 한 말 갈아야 했지
껍지(질) 나가지, 눈(씨눈) 발리지
* 도듬이로 치면 가루 빠지지
그걸 여덟 식구가 입에 풀칠해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도듬이 구멍에 걸린 *지치래비도
아깝다고 다 먹어야 했으니까 "
때론 잊고 싶다던 질곡의 세월도 그리웠던지
강냉이밥이 그립다던 어미!
강냉이밥이 먹고싶다던 어미!
맷돌에 죗값을 다 치렀던지, 어미는
이승의 짐 훌훌 벗은 뒤 천상으로 떠나고
맷돌은 죗값을 다 잊었던지
쓸쓸히 홀로 남아 아무 말이 없다
맷돌을 안아주던 철부지가 울고 있다
참혹했던 지난날 당신의 세월이 그려진다며
수많았던 나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당신의 어깨에 짐 지운 죄 용서해 달라며
용서해 달라며 울부짓고 있다.
맷돌이 묻는다
이승의 한이 무엇이길래
이제 철이 들었느냐고!
2015년 03월 21일(토) 밤
죄많은 막내 올림.
※ 괄호() 안에 덧붙인 글들은 방언(강릉사투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 인용부호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는 엄니가 직접 들려준 말 입니다.
* 강냉이 (강릉사투리-옥수수)
* 설운 (울엄니가 쓰시던 말)-서럽다(서러운), 서러워 눈물이 난다,는 뜻이라고 했다.
* 지치래비 (강릉사투리로 옹골진 것을 추려낸 후 남은 찌꺼기)-좀더 구체적으로는 옥수수가 단단하게 여물지
않아 맷돌에 들어가서도 옥수수 쌀이 안 되고 짓이겨져 나온 것을 말함.
맛이 씁쓸하고 소나 개에게 끓여주어야 하는 것들임 (= 찌꺼기)
* 도듬이(체의 한 종류)- 쌀낱 크기의 알곡이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체의 구멍이 커서 옥수수 알갱이를 맷돌
에 타서 깨져 나오면 도듬이로 체질(걸러)하여 옥수수 쌀을 만들었음.
※ 이 이야기는 6.25 전쟁이 끝난 뒤 1955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 중 하나 입니다. 당시 저는 아주 어려서 어렴풋한 기억만으로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재구성하였습니다.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안방(아랫방)과 작은방(윗방) 사이에 드나드는 통문(문 없는)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남포등('호야불'이라고 불렀음)을 켜놓고 늦은 밤 엄닌 혼자 맷돌을 돌리고 있었다.
온종일 농사일 하랴 산채 뜯어와 밤이 이슥하도록 다듬어서 이른 아침 왕복 6km나 되는 약수터 하숙집을 찾아다니며 팔아오시랴! 줄줄이 식구들은 많고, 연일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셔도 가족들 끼니 차려주시랴, 엄닌 매일 밤이 이슥하도록 식구들이 잠든 사이에 홀로 맷돌을 돌려 다음 날 먹을 옥수수 쌀을 만들곤 하셨다. 연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셨으니, 마음의 짐은 짐 대로 몸은 몸 대로 얼마나 힘드셨을까! 누나들이 시집가기 전에 많이 도와주었다.
엄니가 천상으로 떠난 지 벌써 1년 반이 되었다. 엄닌 그날의 아릿한 추억을 기억이나 하실까? ㅠㅠ
그리운 어머니, 꿈속에서라도 자주 보고싶습니다.
(2015.03.21 밤, 안방에 생전의 엄니가 주무시던 그 자리에 밥상을 펴놓고 앉아 울며 이 글(시)을 썼다. 참고로 이 글은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책을 만들어드리기 위해 들어간 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 <시쓰기 특강> 과목의 중간고사 작품으로 제출한(3편 이상) 것 중 하나입니다.
경인년(2010.02.28 일요일) 춘천시민 정월대보름축제 한마당에서 엄닌 내가 써 드린 소원문을 정성을 다해
달집에 묶어 달고 있다. 엄니의 소원이 무었이길래 저리도 진지하게 소원문을 엮어 달고 계실까?
소원문을 묶어 달곤 두 손을 합장하여 소원을 빌고 계신 울엄니. 이 날 달님은 엄니의 소원을 들어주셨을까?
엄마 이름이 '금성'이라 애칭(H대병원 간호사 지어줌)인 '샛별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