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에이션 룸 ♣/예전일기보관

[스크랩] 경운기 할아버지 ^^

봄내지기 2008. 1. 10. 12:18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집 앞 강둑산책로 벗나무 위에 개개비(?)가 호기심에 가득찬 눈빛으로 무언가 바라보고 있다 ^^



               *경운기 할아버지*

 

따스한 봄햇살이 가득한 4월의 아침이 열리면 수면 위에 피어오르는 뽀얀 물안개가 나를 반긴다.

일터에 나와 일과 준비를 마친 후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컴텨 앞에 앉아 글을 읽으며 음악을 듣고 있는데

"똑 똑 똑 "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내다보니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문밖에서 머뭇거리며 무언가 말씀을 할 듯 서성이신다.


" 할아버지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
창문을 열고 내가 먼저 말을 건네자 할아버지는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 여기서 경운기도 손 봐주는지...? "
말꼬리를 흐려 어렵사리 말을 꺼내신다.


"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할아버지...경운기 어디 있어요? "

" 저 큰길가에 세워놓고 와서 내 가서 몰고 와야하우 " 하시며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 하시는 할아버지...


사연인즉...도시 주변에 농기계 수리하는 곳이 없어 (이곳에서 조금 외곽에 떨어진 마을에 살고 계셨다)

 몇몇 카센타에 들려 이야기를 하자 모두 모른다며 얼른 경운기를 다른 곳으로 빼라고 문전박대를 했단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주눅이 들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어려워 하시며 경운기를 길가에 세워놓고

조심스레 걸어오셔서 어렵사리 물어보시는 길이었다.

  

" 내 가서 경운기를 몰고 오리다...좀 봐 주..." 하시며 경운기가 있는 곳으로 가신다.

잠시후 퉁퉁 거리며 (ㅎㅎㅎ) 일터 마당에 정겨운 경운기가 들어와 멈추었다. 

사실 전날 맡겨놓은 자동차들이 마무리가 덜 되고 새로 맡긴 차들로 그리 여유있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업소는 승용차만 전문으로 취급하기에 업소 이미지와도 관련이 있어 화물차도 잘 안 받는

특수성이 있었기에 다소 난감했다. 그렇다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예컨데...

트럭이나 찝차 승합차 등 다양한 차종을 받으면 일반적으로 전문업소 기능이 떨어지는 선입견을 받게 되어

우리 업소는 승용차만 취급을 한다. 그런데 일터의 마당에 경운기가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하니 먼저 업소의

이미지가 그림처럼 떠올려진다.

그래도 어쪄랴...할아버지의 모습이 넘 안쓰러워 잠시만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경운기의 문제점은 시동키를 돌려도 시동이 안 된다.

농기계 전문은 아니지만 마이스터의 노하우를 살려 간단한 회로테스트를 해보니 시동스위치로 들어오는 전원

공급회로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10분만에 해결하여 시동키를 돌려 경쾌하게 경운기 시동을 걸어주자 할아버지는

안도와 기쁨의 표정을 감추지 못하신다.

그동안 시동키로 엔진 시동이 안 돼 노약한 할아버지의 힘으로 시동을 걸기에 얼마나 힘에 부치셨을까?

 

" 할아버지 잘 고쳐졌어요 그냥 가져가셔서 잘 타세요 "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맡긴 자동차를 다시 손보기 시작하는데 마당 저편에서 할아버지는 길을 떠날 줄 모르고

주춤주춤 내곁으로 다가오신다 나는 다시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 왜 할아버지 다른 문제라도 있으세요? "
" 그게 아니고...내 그냥 가기가 미안해서... "  

하시며 웃저고리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권 한 장을 꺼내어 내게 떨리는 손으로 내미신다.

울퉁불퉁 굵어진 손마디에 허름한 옷차림새,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하며,

순간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간다.

몇몇 카센타를 다니시며 문전박대를 받으셨다니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셨으면 저렇게 길을 못 떠나실까?

코끝이 찡함을 느끼며 다시 웃움띤 얼굴로 맞이했다.


" 할아버지...경운기는 고치는데 부품이 안 들어서 그냥 맘편히 가셔도 괜찮아요..어여 빨리 가세요 "

그래도 한사코 받으라고 하시는 할아버지의 끈질김 때문에...
" 그럼 오늘 할아버지 주신 돈으로 짜장면 사먹게 3천 원만 주세요 " 하자 그럼 5천 원만 받으란다.  

 결국 주유소에서 잔돈을 바꿔 5천 원을 내게 주신다.
" 할아버지 또 경운기 문제가 있으면 이리로 오세여~ "
" 그려~ 정말 나같은 늙은이를 생각해줘 고맙수... "

 

퉁퉁거리며 떠나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내 두 눈에는 또 다시 눈물이 흐른다.

이궁~ 저 하늘에 계신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랑 무엇이 다르랴...ㅠㅠ

 

농촌인구의 노령화로 다 큰 자식들 밖으로 내보내고 아직도 힘에 부친 농기계를 다루고 계신 할아버지.

평균 수명을 바라보는 연세임에도 당신의 천직이요 업(應報)으로 생각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는다.

 

    2004년 4월 중순경 어느 따스한 봄날
                ***봄내지기***

이 글은 당시 써놓았다가 감정 조절이 안 되어...
묻어 두었다 다시 꺼내어 읽어보다 올립니다.
오늘 고향에 계신 부모님게 안부전화라도 꼭 드려보심이...^^

출처 : 경운기 할아버지 ^^
글쓴이 : 스타카센타 원글보기
메모 :

이 글은 울업소 홈피에서 발췌하여 옮겨온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