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내 스튜디오 ♣/♡봄내지기 그는

봄내지기는 어떤 일을 할까욤~?

봄내지기 2006. 5. 13. 19:25

           

  ♡ 세 번의 낙방 끝에 받은 자격증. 자동차정비 현장기술 분야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에 최고가 되겠다는 집념으로 얻은 종이 조각 한 장. 우습죠? 이 자격증으로 부를 얻으려 한 것은 아닙니다. 업소를 찾는 고객들에게 좀 더 내가 하는 일에 신뢰를 심어주고 전문 기술분야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게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

  참고로 기능장과 기술사는 주무부처의 장관이 별도의 자격 증서를 부여합니다. 이 것은 예우 차원에서 수여하는 것이고, 한국산업인력단단에서 부여하는 작은 수첩형 자격증은 따로 있습니다. 격식이 다르다고 내용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 오래 전(98년 IMF 시기) 사진이지만 일할 때 모습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블루칼라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참고로 전 넥타이 맬 줄 모릅니다.ㅋㅋ 자동차정비사 유니폼 차림에 마스크와 토시 끼고 일합니다. 위 사진은 가수 '김수희' 누나와 찍은 사진입니다.(설명:촌넘과 내고향 참조)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수희 누나가 힘내라고 써준 IMF 캠페인 '싸인지' 입니다.^^

 

   옛이야기 에피소드...(지나고 보니 정말 그때는 젊음 하나로 배짱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전공하고 1급 자격을 취득 후 22살 때 'H구릅' 해외 파견근무 시험에 응시 원서를 냈습니다. 1차 필기 시험은 합격을 했는데 2차 실기 시험은 시험 감독관이 몇 마디 이야기만 어보더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말없이 돌아왔습니다.ㅠㅠ

  

두 번째 다시 응시 원서를 냈는데 같은 감독관이 말합니다. " 넌, 현장 경험이 없어서 안 돼. " " 일단 실기 시험을 볼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 하니 일언지하로 거절합니다. 스스로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시험 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 데 대한 오기가 발동해 될 때응시할 거란 배짱으로 다시 응시를 했습니다. ㅋㅋㅋ

 

세 번째 응시 원서를 접수하고 시험 감독관을 직접 찾아갔습니다.(지금도 떨림ㅋㅋㅋ)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전 해외 파견 근무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감독관 하는 말 "젊은 친구가 용기는 좋은데 해외 파견 근무는 장난이 아니야! 만일 네가 해외 현장에서 적응 못하고 귀국 조치 당하면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알아! " 하시더군요. 전 다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보내만 주신다면 전 할 수 있습니다. "

  

감독관이 웃더군요. 그리고 일단 응시 원서를 냈다니 시험 보는 날 다시 보자고 하였습니다. 시험 당일 필기시험(언제나 필기 시험은 좋은 성적임ㅎㅎㅎ)을 마치고 실기 시험을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감독관이 저를 다시 별도로 부르더군요. 떨렸죠.^^ "너 정말 현장에 가면 견딜 수 있겠어? "  " 예, 보내만 주십시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곤 전담 시험 조교를 부릅니다. "이 친구 곁에서 잘 지켜보며 모두 시켜 봐! " 솔직히 학교에서 배운 것과 실기 시험을 위해 개인적으로 연습해 본 것이 고작인데 무척 떨리고 자신은 없었습니다. 다행히 조교가 내 또래의 훈련생이라 주고 받는 이야기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며 주고받는 이론적인 이야기는 아주 잘 통했습니다.ㅎㅎㅎ

  

다른 응시생들은 일정 코스를 도는 시험 주제 중 찍어서 몇 가지 과제를 주고 끝나면 바로 돌아갔지만, 전 아니었습니다. 저녁 무렵까지 온종일 전담 시험 조교를 붙여 풀코스를 돌며 강행군했습니다. 감독관이 마지막으로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또 묻습니다. "너, 정말 할 수 있겠어? "  "네, 보내만 준다면 공부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인정받겠습니다."  "좋아, 젊은 친구가 용기가 좋아 내 한번 믿어보지.  2층에 가서 면접관 찾아 인사드려! "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참 지금 생각하면 그 때는 무슨 배짱으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웃음이 납니다. 동기부여가 뚜렷하면 못할 것이 없는가 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지. 내 여자라고 필이 눈에 꽃히는 순간 쟁취하고자 하는 투지!ㅎㅎㅎ

  

처음 동남아 말레시아 건설 현장 워크샵(건설현장의 자동차, 중장비 정비와 관리를 하는 곳)에 투입되었습니다. 경험이라곤 일천하여 초보 정비사는 어리버리 좌충우돌이었습니다. 현장에서 근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무 담당(직원들의 일반 사무관리)자가 저에게 다가와 귀엣말처럼 들려줍니다. " 윗분들이 '최ㅇㅇ은 아무리 봐도 안 되겠어? 다른 현장으로 보내던가 아님 귀국조치하던가'해야겠다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일과 후 밤에는 원서(모두 외제 자동차와 중장비라)로 된 영문판 정비지침서를 읽으며 이론을 익히고 낮에는 하늘 같은(당시 제가 그 현장에서 가장 막내였음-만21살) 경험 많은 선배들께 물어보면서 적응하고 윗분들께 인정받기까지, 약 6개월을 인내와 세상과의 싸움이었죠.ㅎㅎㅎ

 

※ 덧붙여... 처음 LNG 기지 건설 항만공사 현장에 배치되었다. 막내라곤 해도 실전(현장) 경험이 없으니까요.  " '공장장께서 많이 우려하신다' 고 노무관리 담당자가 저에게 찾아와 분발하라 " 고 알려줬다. 그 뒤 영문판 외국 정비지침서를 공부하며 6개월 정도 지나니 그땐 오히려 제가 더 정확하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해결하는 해결사가 되었음- 때문에 일부 선배는 '눈엣가시'로 보기도! 아마 그때 적응을 못했다면 '낙하산 입사' 했다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지 않았을까? ㅎㅎㅎ

 

※ 다행히 학교에서 영어 과목을 좋아해 어려움 없이 정비지침서를 공부할 수 있었죠. 영어가 전공은 아니었지만 대학 입학 시험(학교 출제 고사) 영어는 만점 받았고 재학 중 교양영어도 'A' 받았던 사실이! 영어 공부 다시 열심히 해야 하는데. 글로벌 자동차 정비하려면! 외제차가 보편화 되어서!  만약 결혼하여 아이가 태어난다면, 영어 과목은 내가 직접 가르쳐 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럼 과외 비용은 이미 벌어놓은 건데. 아이 엄마는 그 보답을 뭘로 하시려나~ㅋㅋㅋ 수학(자동차 정비가 논리가 필요한 일)도 좋아는 했는데 영어만큼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 영어를 좋아한 계기는 아마 담임 선생님의 미모가 주는 영향도 적지 않았나 싶습니다.ㅋㅋ  조금 통통했는데. 정말 예뻤음- Lee YL샘-

 (해외 근무하고 돌아와 교육청에 전화해 선생님을 찾아 전화 통화를 했는데, 경기도 모 중학교에 근무하신다며 무척 반가워 하셨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많이 변했겠죠- 40대 아줌마가 되셨을 텐데... ㅎㅎㅎ

 

휴~  그렇게 적응하며 지낸 시간이 벌써 인생을 책임질 시기라니... ㅠㅠ  그때가 그립습니다. 젊음이란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재산이며 꿈과 용기를 심어주기 때문이죠. 그리고 7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변화된 전자제어 자동차 시스템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학교를 가고 고향으로 내려와 둥지를 틀은 지(95년 아파트 입주, 97년 일터 오픈) 강산이 변했네요.^^ 

 

오늘 주말이라 달리 함께 누릴 사람도 없어 지난 추억을 늘어놓았습니다 ㅎㅎㅎ (2006.05.13)

 

PS: 생전의 아버지께서 어느 날 내 방 벽에 붙어있는 이 사진을 보고 흐믓한 표정을 지으시며 어머니를 보고 "막내에게 여자가 생긴 모양이야" 하시더랍니다. 아버지는 하늘로 떠나시기 전까지 김수희 누님을 막내 며느리감으로 생각하시면서 눈을 감으셨지 싶어 두고두고 마음이 아립니다.(2019.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