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맛 고추^^
♣ 오이맛 고추 ♣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늦은 오후 퇴근시간 무렵이었다.
컴텨 앞에 앉아 고객관리 기록을 정리하며 더위를 잊고 있는데... 며칠 전 자동차 수리를 끝낸 목사님이 까만 비닐봉지에 무언가 들고 찾아오셨다.
" 어쩐 일이세요 이 더운 날씨에... "
" 이거 집에서 기른 고춘(추인)데..아삭아삭하고 맛있는 품종이라 좀 가져왔습니다 "
" 뭘 이렇게 많이 주세여..그쪽 작은 봉지에 든 걸 주세요 "
" 아니 그냥 드세요. 우린 또 따면 되니까 "
개척교회 옆 조그만 텃밭이 있어 생명을 다루듯 키운거란다. 지난번 애마인 비스토를 이젠 10년이 넘어 종합검진을 받아봐야 한다며 대대적인 수리를 하시곤 경과를 보러오시라 했는데...차는 집에 두고 걸어서 왔단다.
그때 시동성이 떨어져 몇 가지 검사를 마치니 시동모터의 내부 문제여서 다른 부위와 더불어 수리를 끝냈다.
수리를 하는 동안 자동차 엔진키가 웬지 좀 부자연스럽게 느껴져 그냥 계속해서 쓰게 되면 차에 달린 본체가 손상을 받아 나중에 모두 교환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되니 열쇠전문점에 가셔서 맞춰쓰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실은 복제키를 사용하는데...어미(본래)키를 잃어버렸다고 하신다. 업소에 카드키 만드는 자동기기가 있었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아 좀 깊숙히 넣어두어 꺼내기 불편하여 업소의 부탁을 받고 단골로 열쇠를 깍아주는 전문업소를 소개시켜드렸다. 그후 전문점을 찾았더니 그 친구가 아주 섬세하게 마이크로 전용 측정기기로 엄마키를 만들어 딸키까지 여분으로 만들어줘 이젠 부드럽게 작동을 한다며 환한 미소를 지으신다. 자동차 키가 부드럽지 않아 늘 조금은 불만이었는데, 본체까지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이갸기를 들려주어 실행에 옮기게 되어 마음도 가볍고 기쁘다고 하신다. 그래서 그 감사함에 풋고추를 들고 오셨단다.
참 감사하다. 난 그저 전문직업인으로서 일반적인 상식을 전해드린 것 뿐인데...흐믓했다. 작은 나눔이 있어
이웃들과 행복할 수 있다니..., 마음만으로 받고싶다니 한사코
받으라며 건네주며 발길을 돌리신다. 내가 어머니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어머니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우리 사
회가 안고 있는 사회복지분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셨다. 특히 노인복지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으셨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겪은 이야기를 들려드릴 때마다 노인들의 심리 상태나 행동 양식에 물어보며 관심을 표명하셨다.
자녀들도 사회복지 관련 분야에 근무한다는 것으로 보아 온가족이 모두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따스한 심성을 지닌 아름다
운 이웃임에 분명하다.
처음 우리업소를 들렸을 때 10년이 넘은 아토스를 더 탈 수 있을지 궁금해 점검을 받으러 오셨다.그때 몇가지 검사와 점검을 마친 후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일을 하며 적당한 운동을 습관화 하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듯 자동차도 그와 비슷하여 주기적으로 엔진오일과 기능성 소모품을
교환해 주고 또 가끔은 시외 구간도 쌩쌩 달려 스트레스를 풀어 ↗ 오이맛 고추...정말 아삭아삭한 풋고추향
주면 건강해져 오래 탈 수 있다'고 설명해 드리니 고맙다며 그때 이 느껴져 며칠간 매 끼니 맛있게 먹었다.
부터 단골이 되셨다.
그후 아토스의 주치의가 되어 인연을 이어가며 지나온 모습들이 웬지 맘속으로 인상깊이 받아드리셨나보다.
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정겨움을 나눠주시는 모습이 참 살갑게 느껴진다. 분명 작은 화단같은 자투리 땅에 이것저것 채소 씨를 뿌리고 자식을 키우는 심정으로 아침저녁 바라보며 기른 고추였을텐데...^^
그 정성으로 키운 뿌듯함을 작은 이웃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마음씀이 내게 더 큰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퇴근길에 풋고추가 가득 들은 비닐봉지를 들고 집에 들어서니 엄니가 반기며 묻는다.
" 그게 뭐야~ "
" 풋고추~ 오이맛 고추라고 하는 건데 씹으면 아삭아삭하고 맛있는 고추야~ "
" 사왔어~"
" 아니 손님이 주셨어...농사지은 거라고 많이 주셨잖아...봐봐~ "
" 아유~ 크기도 해라 장 찍어 먹으면 맛있겠다. 차를 잘 고쳐주니 줬겠지... ㅎㅎㅎ "
" 엄마 어케 알았어~ ㅎㅎㅎ 엄마 씻고 밥먹자 넘 덥다. 배고파도 쫌만 기다려...."
" 어여 씻어...난 괜찮아 아까 참에 바나나도 먹고 뭐...콩물(두유)도 마시고 그래 배 안 고파..."
풋고추와 함께 저녁상을 봐 엄니랑 둘러앉았다. 정말 흔히 보는 고추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길고 컸다. 얼마
나 정성을 들여 키웠으면, 그런데 씹으니 아삭아삭 오이를 씹는 것보다 더 연하고 향긋하다. 그리 맵지도 않았다.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엄니와 나는 풋고추를 일명 바나나고추장(바나나+고추장 믹스)에 찍어 먹었다풋고추향과 바나나향이 묻어나 맛이 가히 일품이다. 바나나고추장은 달콤한 바나나향이 곁들여진 퓨전 고추장쏘스다. 엄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를 받고 퇴원하셨는데, 갑자기 주방장으로 승격된 내겐 기쁨(?)이 커다란 숙제였다. 그때 실험정신으로 울엄니의 입맛을 찾다가 개발한 나만의 등록상표다. 그후 울엄니에게는 그 어떤 반찬도 바나나고추장 앞에서는 2 순위다. 달콤하고 살짝 매콤하고 약간의 간맛이 살아있으니 그 맛이 밥상 위의 마약같은 위상이 되었다.ㅎㅎㅎ
캬~ 이게 얼마만에 느껴보는 추억인지....어린시절 고향 마을 시골집에 살 때 여름이면 보리쌀을 섞은 잡곡밥에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어 썩썩 비빈 후, 숟가락이 넘치도록 입 안이 가득 퍼넣고 밭에서 방금 따온 풋고추를 된장에 쿡~ 찍어 반찬삼아 우적우적 씹어먹던 그 추억이 그림처럼 지나간다. 참 그때의 맛이란...달리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뚝딱 해치우고 그 포만감에 행복해 하던 그 추억을 그려볼 수 있다니...^^
오이고추는 냉장고에 감춰 두고 큰누나에게 들키지 않게 먹어야겠다. 울엄니도 감춰두고 먹으라 하신다.ㅋㅋ
아마 처음 맛보는 고추라...연하고 맵지도 않으니 나만큼 아끼고 늘 엄니 마음속에 가득한 큰누나도 이번만큼은 예외인가보다. 이름만 들었던 오이고추가 이렇게 아삭거리며 맛난 고추인줄은 미쳐 몰랐으니 말이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아토스 주치의로서 그 사명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다만 내년에도 오이맛 고추를 맛볼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옵고... 그리고 이 불쌍한 영혼이 지구를 떠나지 않는 한 영영 그 은혜는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아멘~ ♡ ㅎㅎㅎ
2009년 7월 21일 화요일 맑음(무더운 날)
*** 봄내지기 ***